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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 캐며 살던 시절을 추억함
함민복
국망산 비둘기바위
너덜겅 오르내리며
구절초를 뜯고 하산하다가
더덕밭을 만났다
약초 푸대를 멘 나도
도시락을 든 아버지도
밥상 대하듯 정신팔려
아버지 얼굴이 지워지고
어둠이 山 담는 것도 모르고
신바람나던 더덕밭 더덕밭
내려가기 위해 내려가려 했으나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
능선 타던 아버지의 굽은 어깨
더덕과 구절초를 메고
산의 정적에 떡갈나무 잎새
발자국소리 찍으며
산길 내려오던 약초향기
어느새 덩그런 달 뜨고
내 가슴 환히 비춰주던
아버지의 맘
아아, 어머니가 끌어올렸을
구월의 달빛 달빛
[현대문학] 1994. 01
눈물은 왜짠가
함민복
..
지난 여름날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밴댕이
함민복
팥알만한 속으로도
바다를 이해가고 사셨으니
자, 인사드려야지
이분이
우리 선생님이셔
라면을 먹는 아침
함민복
프로 가난자인 거지 앞에서
나의 가난을 자랑하기엔
나의 가난이 너무 가난하지만
신문지를 쫙 펼쳐놓고
더 많은 국물을 위해 소금을 풀어
라면을 먹는 아침
반찬이 노란 단무지 하나인 것 같지만
나의 식탁은 풍성하다
두루치기 일색인 정치면의 양념으로
팔팔 끓인 스포츠면 찌개에
밑반찬으로
씀바귀 맛 나는 상계동 철거 주민들의
눈물로 즉석 동치미를 담그면
매운 고추가 동동 뜬다 거기다가
똥누고 나니까 날아갈 것 같다는
변비약 아락실 아침 광고하는 여자의
젓가락처럼 쫙 벌린 허벅지를
자린고비로 쳐다보기까지 하면
나의 반찬은 너무 풍성해
신문지를 깔고 라면을 먹는 아침이면
매일 상다리가 부러진다
꽃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의 꽃의 향기를 음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선천성 그리움
함민복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이 하나 없네
달의 눈물
함민복
금호동 산동네의 밤이 깊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노루들의 잠자리나 되었을 법한
산 속으로 머리를 눕히려 찾아드는 곳
힘드려 올라왔던 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 더럽히고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숨찬 산 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하수도 물소리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전봇대 굵기 만한 도랑을 덮은
쇠철망 틈새로 들려오는
하수도 물소리
누군가 때늦은 목욕을 했는지
제법 소리가 커지기도 하며
산동네의 삶처럼 경사가 저
썩은 내 풍길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또 비린내가 좀 나면 어떠랴
그게 사람 살아가는 증표일진대
이곳 삶의 동맥처럼
새벽까지 끊기지 않고
흐르는
하수도 물소리
물소리 듣는 것은 즐겁다
쇠철망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면
달의 눈물
하수도 물소리에 가슴이 젖는다
공터의 마음
함민복
내 살고 있는 곳에 공터가 있어
비가 오고, 토마토가 왔다 가고
서리가 오고, 고등어가 왔다 가고
눈이 오고, 번개탄이 왔다 가고
꽃소식이 오고, 물미역이 왔다 가고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당신 눈동자가 되어 바라보던 서해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에게 이름 일러주던 명아주, 개여뀌, 가막사리, 들풀이 푸르고
수목원, 도봉산이 간간이 마음에 단풍들어
아직은 만선된 당신 그리움에 그래도 살 만하니
세월아 지금 이 공터의 마음 헐지 말아다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함 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을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함민복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중에서
서울역 그 식당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 온 것도 모르고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 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돌아서는 그대
아침,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님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가을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대나무
-함민복
나는 테러리스트올시다
광합성 작용을 위해
잎새를 넓적하게 포진하는 치밀함도
바위 절벽에 뿌리내리는 소나무의 비장함도
피침형 잎새로 베어 날리는
나는 테러리스트
마디마디 사이에 공기를 볼모로 잡아놓고
그 공기를 구출하러 오는 공기를
잡아먹으며 하늘을 점거해 나아가는
나는 테러리스트
나의 건축술을 비웃지 말게
나는 나로서만 나를 짓지 않는다네
자유롭고 싶은 공기의 욕망과
나를 죽여버리고 싶은 공기의 살의와
포로로 잡힌 공기의 치욕으로
빚어진 아,
공기, 그 만져지지 않는
허무가 나의 중심 뼈대
나는 결코 나로서만 나를 짖지 않는다네
그래야 비곗살을 버릴 수 있는 법
나는 테러리스트
내 나이를 묻지 말게
뒤돌아 나이테를 헤아리는 그런 감상은
바람처럼 서걱서걱 베어먹은 지 오래
행여 내 죽어 창과 활이 되지 못하고
변절처럼 노래하는 악기가 되어도
한 가슴 후벼파고 마는 피리가 될지니
그래, 이 독한 마음으로
한 평생 머리 굽히지 않고 살다가
황갈색 꽃을 머리에 이고
한 족속 일제히 자폭하고야 말
나는 테러리스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1996 /창비시선
버드나무
-함민복
버드나무는 붉은 태양과 푸른 하늘 향해
한 生을, 가지를 뻗어 올리지 않는다
더 높은 곳에 희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허망함에
反가지를 치렁치렁 당당히 내린다
버드나무는 향일성 세계의 이단아다
버드나무는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세파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근육에 힘빼고 목소리 낮춘 부드러운 힘으로
버드나무는 자신을 사랑한다
사색의 가지 늘어뜨려 자신의 몸을 더듬기도 한다
나는 정말 존재하는가
그러나 버드나무는
가시로 온몸을 무장하는 가시나무처럼
광신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흙으로 다시 돌아갈 육신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았자 무엇하나
정말 나는 흙이 아닌 나로 존재하는가
버드나무는 삶의 회의주의자다
버드나무는 무엇이 그립는지
지난 세월 살았던 기억 속으로
가지를 차르르 늘어뜨려
살아온 공간을 반추하며
흙이었던 시절, 육신의 고향을 향해
이른봄 비들개지를 피운다
버드나무는 지독한 향수병자다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중에서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함 민 복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한 물 두 물 사리 한 개끼 대 개끼
소금물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어민 후계자 함현수
함민복
형님 내가 고기 잡는 것도 시로 한번 써보시껴
콤바인 타고 안개 속 달려가 숭어 잡아오는 얘기
재미있지 아느시껴 형님도 내가 태워주지 않았으껴
그러나저러나 그물에 고기가 들지 않아 큰일났시다
조금 때 어부네 개새끼 살 빠지듯 해마다 잡히는
고시 수가 쭉쭉 빠지니 정말 큰일났시다 복사꽃 필 때가
숭어는 제철인데 맛 좋고 가격 좋아 상품도 되고.....
옛날에 아버지는 숭어가 많이 잡혀
일꾼 얻어 밤새 지게로 져 날랐다는데 아무 물때나
물이 빠져 그물만 나면 고기가 멍석처럼 많이 잡혀
질 수 있는 데까지 아주, 한 지게 잔뜩 짊어지고
나오다보면 힘이 들어 쉬면서 비늘 벗겨진 놈
먼저 버리고 또 힘이 들면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참숭어만 냉겨놓고 언지, 형님 갯숭어 알지 아느시껴
언지는 버리고 그래도 힘이 들면 중뻘에 지게 받쳐놓고
죽을 것 같은 놈 골라 버리고 그렇게 푸덕푸덕대는
숭어를 지고 뻘 길 십 리 길 걸어나와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곶뿌리 끝에 서서
담배 한 대 물고 걸어나온 길 쳐다보면서
더 지고 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도 했다는데
뻘 길 십 리 길 가물가물 멀기는 멀지 아느껴 힘들더라도
나도 그렇게 숭어 타작 좀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시다
현수씨 콤바인 타고 들어가 고기 싣고 나오는 얘기는
여차리* 일부 뻘 얘기지만 뻘이 딱딱해진다는
너무 슬픈 얘기라 함부로 글을 쓸 수 없고
고기 버리며 나와 온 길 다시 쳐다보았다는
아버지 얘기는 그냥 시인데 뭘 제목만
'인생'이라고 붙이면 되지 않겠어
형님, 한잔 드시겨
*여차리: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마을 이름.
詩人 2
- 함 민 복
암자에서 종이 운다
종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는 것은
종이 속으로 울기 때문이라네
외부의 충격에 겉으로 맞서는 소리라면
그것은 종소리가 아닌 쇳소리일 뿐
종은 문득 가슴으로 깨어나
내부로 향하는 소리로 가슴 소리를 내고
그 소리로 다시 가슴을 쳐 울음을 낸다네
그렇게 종이 울면
큰 산도
따라 울어
큰 산도
종이 되어주어
종소리는 멀리 퍼져 나아간다네
* 함민복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비평사)중
** 쇳소리... ...종소리
산
함민복
당신 품에 안겼다가 떠나갑니다
진달래꽃 술렁술렁 배웅합니다
앞서 흐르는 물소리로 길을 열며
사람들 마을로 돌아갑니다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삶에 지치면 먼발치로 당신을 바라다보고
그래도 살다가 영, 당신을 볼 수 없게 되는 날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이 될 수 있겠지요
샐러리맨 예찬
- 함 민 복
쥐가 꼬리로 계란을 끌고 갑니다 쥐가 꼬리로 병 속에 든 들기름을 빨아 먹습니다 쥐가 꼬리로 유격 훈련처럼 전깃줄에 매달려 허공을 횡단합니다 쥐가 꼬리의 탄력으로 점프하여 선바에 뛰어오릅니다 쥐가 꼬리로 해안가 조개에 물려 아픔을 끌고 산에 올라가 조갯살을 먹습니다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30분 60분 90분--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자본주의의 약속, 세계사 1993)
오래된 잠버릇
파리는 내가 덮고 자는 공간을 깔고 잔다
날개 휘젓던 공간밖에 믿을게 없어
날개의 길밖에 믿을 게 없어
천장에 매달려 잠자는 파리는 슬프다
추락하다 잠이 깨면 곧 비행할 포즈
헬리콥터처럼 활주로 없이 이착륙하는 파리
구더기를 본 사람은 알리라
왜 파리가 높은 곳에서 잠드는가를
저 사내는 내가 덮고 자는 공간을 깔고 잔다
지구의 밑 부분에 집이 매달리는 시간
나는 바닥에 엎드려 자는데
저 사내는 천장에 등을 붙이고 잔다
발 붙이고 사는 땅밖에 믿을 게 없다는 듯
중력밖에 믿을 게 없다는 듯
천장에 등을 붙이고 잠드는 저 사내는 슬프다
어떤 날은 저 사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늦게 거꾸로 쭈그려 앉아 전화를 걸기도 한다
저 사내처럼 외로운 사람이 어디 또 있나보다
빨랫집게
옷을 입고 있지 않을 때
내 몸을 매달아본다
몸뚱이가 되어 허공을 입고
허공을 걷던 옷가지들
떨어지던 물방울의 시간
입아귀 근력이 떨어진
입다무는 일이 일생인
나를 물고 있는 허공
물 수 없는
시간을 깨물다
철사 근육이 삭아 끊어지면
툭, 그 한마디 내지르고
훑어지고 말
온몸이 입인
세월1
나는 어머니 속에 두레박을 빠뜨렸다
눈알에 달우물을 파며
갈고리를 어머니 깊숙이 넣어 휘저었다
어머니 달무리만 보면 끌어내려 목을 매고 싶어요
그러면 고향이 보일까요
갈고리를 매단 탯줄이 내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고
어머니가 늙어가고 있다
만찬(晩餐)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를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럿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구혼
불알이 멈춰 있어도 시간이 가는 괘종시계처럼
하체엔 봄이 오지 않고 지난한 세월로 출근하는 얼굴
장미꽃이 그 사내를 비웃었다
너는 만개하지 못할 거야
그후, 시든 장미꽃이 다시 그 사내를 비웃었다
그래도 나는 만개했어
칠석(七夕)
달빛
내
리
고
장독대
정
안
수
한 사발
어
머
니
아, 저것이 美信이다
동지(冬至)
한석봉 어머니 깜박 챙을 써는 사이
한석봉이 꾸벅 떡을 읽는 사이
옥탑방
눈이 내렸다
건물의 옥상을 쓸었다
아파트 벼랑에 몸 던진 어느 실직 가장이 떠올랐다
결국
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일
24평 벼랑의 집에서 살기 위해
42층 벼랑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좀더 튼튼한 벼랑에 취직하기 위해
새벽부터 도서관에 가고 가다가
속도의 벼랑인 길 위에서 굴러떨어져 죽기도 하며
입지적으로 벼랑을 일으켜 세운
몇몇 사람들이 희망이 되기도 하는
이 도시의 건물들은 지붕이 없다
사각단면으로 잘려나간 것 같은
머리가 없는
벼랑으로 완성된
옥상에서
招魂하듯
흔들리는 언 빨래소리
덜그럭 덜그럭
들리는
횡단보도 앞에서
손에 닭튀김을 들고 서 있었다
머리도 발가락도 없는 닭고기 냄새가
팔을 타고 올라왔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겉옷에 달린 단추 몇개 풀며
닭튀김을 내밀고 싶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는지
차량들의 불빛 행렬이 끊기지 않았다
그렇게 사십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고 향
함민복
개구리 울음소리가 쏟아진다
고향 개구리 울음소리는 다르다
산등의 생김새가
들꽃의 향기가
논배미 물고의 깊이가
미루나무 잎새 떨림이 달라
기우는 달빛도 다르니
한창 즐기는
개구리 울음소리 저리 다르다
스피커가 달라
변한 귀가
변하지 않은 소리를 기억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