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의 주말은 으레히 망년회로 채워져 있다. 폭음과 피로가 거동을 둔하게 한다. 그래도 움직여야 하겠기에 춘천의 금병산을 찾아 간다. 김유정역 앞에 도착하니, 한 옆으로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이곳을 한바퀴 둘러보고 금병산으로 향한다. 김유정은 현종의 비 명성황후의 친정아버지인 김우영의 후손으로 그의 넷째 손자 도택(道澤)이 김유정의 선조가 되었다. 아버지 김춘식은 자를 윤주(允周)라 했으며 진사시험에 합격해 사마좌임금부주사(司馬座任禁府主事)를 지냈다. 김유정은 1908년 이 곳 춘천에서 출생하였으며 야학활동을 하였다. 민중들을 사랑하여, 명문집안의 자손인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도 존대말을 하였다고 한다. 단편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당선되고, <노다지>가 중앙일보에 당선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집안이 기울면서 공장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누나에게 얹혀살다가 1937년 폐결핵 29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30여 편의 소설을 창작하였다. 오랜 벗인 안회남에게 편지 쓰기를 끝으로 1937년 3월 쓸쓸하고 짧았던 삶을 마감한다. 보성전문을 중퇴한 김유정은 당대 명기이며, 명창인 기생 박록주를 좋아 했지만 구애를 거절 당하고, 연희전문에서 제적까지 당하자 유정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불현듯 고향 춘천의 실레마을로 내려간다. 그가 고향에 내려간 것은 남은 재산을 마지막으로 탕진하고 있는 형을 상대로 한 재산분배를 주장하는 소송을 내기 위한 일도 겸해 있었다. 형에게 병 치료와 생활비를 요구한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둘째 누이와 함께 동거생활을 하고 있던 매형 정씨의 꾐으로 그런 일을 벌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김유정이 고향산천을 찾아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항상 잊지 못하고 살아온 고향의 산골 정취가 다분히 감상적인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김유정 문학촌을 떠나 금병산으로 들어선다. 산은 그저 잡목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전형적인 육산이다. 그리 볼거리도 좋은 풍경도 없다. 다만 잘 발달된 등산로와 부드러운 능선은 험하지 않아 힘든 줄 모르고 걸을 수 있다.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산행지로 좋을 것 같고, 눈이 쌓인 겨울철에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심설산행을 하면 아주 좋을 듯하다. 이산은 크지도 않고 수려하지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다. 산행겸 김유정의 흔적을 찾아 보는 것도 좋지만 수도권에서 경춘선을 타면 곧바로 김유정역에서 내려 산행을 할 수 있는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강촌을 지난 김유정역(구:신남역)은 금병산 산행기점이다. 이 곳은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는 뜻으로, 시루 증(甑) 자를 넣어 증리라 한다. 앞으로는 삼악산이 그림처럼 늘어서고 뒤로는 금병산이 병풍을 둘러치는 작은 분지다. 김유정은 경춘선 철길이 부설되기 3년 전에 요절하여 고향에 기차길이 생기는 것을 구경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유정의 고향 역 이름은 개통 이후 65년간 '신남역'으로 불리어 왔다. 이 신남역이 춘천시 문화인들 노력으로 12월1일부터 '김유정역'으로 바뀌었고 간판도 새로 걸렸다. 우리나라 역 이름 중 사람 이름으로 역 이름이 붙기는 처음이다. '김유정역'에서 바로 금병산 산행이 시작되는것이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지능선길로 잠시 오르면 왼쪽 아래로 산신각이 내려다보인다. 금병산을 넘어가는 십수 개의 고압송전탑을 세워 이 산신령이 노하시는 것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능선을 걷다보면 나무가지 사이로 골프장과 춘천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금병산은 정상에서의 조망을 빼고 나면 그리 볼만한 풍경은 없다. 다만 군데군데 제멋대로 자란 아름드리 노송이 능선을 가득채워 놓아 단조로움을 덜어 준다. 산은 어느 산에 오르더라도 세세히 둘러보면 나름대로의 멋을 찾을 수가 있다. 아무리 못생긴 사람에게서도 나름대로 매력을 찾아 낼 수 있듯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능선길로 10분 더 오르면 금병산 남서릉 송전탑 아래 안부에 닿는다. 이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남서릉을 타고 오르면 삼거리에 닿는다. 이어 아름드리 노송군락지대로 들어서면서 조금씩 가파라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싸리골과 실레 마을이 눈에 들어오고, 이따금 철길을 달리는 열차소리가 귓전에 와닿는 노송지대를 40분 오르면 하늘이 트이는 헬기장이 나오고, 전망대가 있는 정상에 닿는다. 정상은 참나무숲으로 에워싸여 조망이 어려웠던 것을 나무를 베어내고 전망대를 설치하여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북으로는 춘천시내로 들어가는 잼버리도로를 비롯해 봉의산 의암호반 용화산 오봉산 부용산 종류산 등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북동으로는 중앙고속도로 위로 금병산의 모산인 대룡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남동으로는 연엽산 구절산, 남으로는 금확산 쇠뿔봉 산릉이 넘실거린다. 남서쪽으로는 좌방산 종자산 널미재 장락산 등이 멀리 용문산과 함께 광활하게 조망된다. 서쪽으로는 소주봉 봉화산 검봉이, 북서쪽으로는 삼악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삼악산 오른쪽 멀리로는 계관산 북배산 가덕산 뒤로 화악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하산은 서릉을 탄다. 정상서 30분 정도 내려서면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북쪽 사면으로 내려서면 지능선에 닿고, 계곡으로 잠시 내려서면 펑퍼짐한 계곡을 뒤덮은 잣나무숲 속으로 들어간다. 잣나무숲을 빠져나오면 정면으로 삼악산이 마주보이는 농가에 닿는다. 삼악산을 마주 바라보며 15분 거리에 이르면 실레 마을에 닿게 되고 산행을 마치게 된다.
김유정역을 출발해 금병의숙 - 싸리골 입구 - 잣나무숲 - 남서릉 안부 - 남서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른 다음, 서릉 - 함몰지대 삼거리 - 잣나무숲 - 비닐하우스 농가 - 김유정기념전시관을 경유해 김유정역으로 닿는 산행거리는 약 8km로, 3~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하산을 하니, 농가에서 장작불을 지피는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라 산촌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백미현 - 눈이 내리면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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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행유정(山行有情) 원문보기 글쓴이: 바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