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도 한번 이런 적이 있었는데 조금 기다리니까 다시 걸리더라"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 상황, 새벽 2시 고속도로 갓길에서 대관령 찬 바람이 골을 끈질기게도 타고 내려와 여전히 온 몸에 냉기를 확확 뿌려대고 있는데 본네트를 열면서 형의 일성은 이런 거였다. 다 알다시피 나는 한참 기온이 오를 때 대관령 목장 위에서도 어 춥다를 외치지 않았던가. 피엘 형 얘기대로,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나는 오늘 반바지를 입고와 이 새벽 이러고 자빠졌을까 후회에 가슴을 치고 있는데 이게 무슨 한가한 소리인가 말이다.
차 안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도대체 불안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멀리 불빛이, 그것도 갓길에 가까운 2차로를 자동차가 달려오면 그 공포는 극에 달했다. 소리는 또 얼마나 시끄러운가. 정말 아차 귀신도 똑바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까무러칠 기세였다.
차가 멈춘 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자 난 멍게를 깨웠다. 내 차를 열어본 깜냥으로 볼 때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본네트 뚜껑이라도 제대로 열어본 사람은 그때 차안에 멍게밖에 없었다. 술에, 잠에, 바닷가에서의 들뜬 기분이 비빔밥된 멍게가 갑자기 제 정신을 차릴 수는 없는 노릇, 당연히 버벅거리고 이쪽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촌극이 이어졌다. 본네트를 열어본 형은 물 있냐 없냐를 되풀이하고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물만 부으면 다시 갈수 있나 하고 기대를 보냈던 것 같다.
형은 조금 식히면 나아질 거라고 하고
그 다음 도무지 식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계속해서 확인되자 이제 두번째 소리를 해댄다. "내가 너무 밟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거기에 누구 하나 대꾸하는 이 없고 그 소리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에 파묻혀 떠밀려가고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삼각대라고 하나 뭐 그런 사고 표지판을 사라 형은 차에 가지고 다녔다. 하도 불안해서 뛰쳐나온 뒤 누군가 그것을 세워놓은 것을 알았다. 동작 하나 빠르네.
시동을 한 열번쯤 걸어봐도 도무지 나아지는 기분이 들지 않자 전화를 걸었다. 이때 형의 장점이 드러났다. 꼭 남 말하듯이 침착한 거 말이다. 나 같으면 전화 하면서 흥분해갖고 왜 빨리 안 오느냐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언성을 높이고 그럴텐데 이 못말리는 침착함의 결정체는 꼭 지나가던 차 견인 불러주는 시골 아저씨같다. 내 회사 동료가 해준 얘기인데 하루는 강원도를 가다 잠깐 방심한 틈을 타 공중으로 차가 붕 난 뒤 어느 논 바닥에 덜커덩 내려앉았단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논 주인이 나타나 약간 무미건조하고 비교적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러더란다. 아저씨, 렉카 불러드릴까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런 일로 한달에 몇건은 수입을 잡는 것 같아 보이는 그 논 주인은 렉카는 물론 병원,카센터, 비용까지 풀코스로 안내해주고 자신의 비용까지 청구하더란다. 기가 막혀서리.
나는 그 순간, 빌어먹을 그 순간, 회사 동료가 해준 그 말이 생각나 빙그레 웃고 있었다. 미친 넘처럼, 그러다 이번에는 똥파리투 대신 내가 당했다. 차안에 있으니까 불안하다 모두 나와라는 형의 성화에 모두 나와 물을 뺐던 그 잡초위에 한 5분쯤 지난 다음 바람이라도 조금 피해볼 요량으로 몸을 기울여 비스듬히 누워보았던 것이다. 당연즉슨 그 다음 엉덩이에 촉촉함과 찌릿한 내음이 확 번져왔다.
으와 누가 나 좀 살려줘! 비명도 못 지르고 그렇게 새벽이 깊어갔다. 새벽 2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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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까 저녁 8시쯤 통화했는데 횡성에서 7시 30분쯤 출발해 문막을 지나고 있다 했습니다. 차는 잘 고쳐졌다고 했고요. 아마 지금쯤 이 글들을 읽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돼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혹시 왜곡보도의 전형 어쩌구 하면서 언론의 책임 운운 할지 모를 일입니다.
웃긴웃었지만 가슴이 싸하다. 얼마나 추웠을까? 바닷가 간다고했을때 걸칠 웃옷정도는 신경써주었어야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다시는 찢어지지않는 방향으로....우린 뭉쳐서 꼭 같은 차를 타자. 큰차를 빌리든 관광버스를타든. 내작은소망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