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한 숨결로 닿는 길
- 변산반도 개암사 -
황토 빛은 다정하다.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의 안온함의 흙, 땅, 대지
같음이지만 사뭇 다가오는 느낌은 다르다.
그 길을 밟으며 물길을 찾고 산길을 찾아 당도한 길 부안이다.
두어 번 다녀간 이곳이 늘 마음의 못에 걸려 있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엉켜있지만, 그 기억의 편린들 속엔 그리움이 더 오롯하다.
먼저 말 걸어 나무가 되고, 바다가 되고, 개펄이 되고, 작은 포구가 되고,
먼저 걸어 간 사람에 대한 배경들이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고
또 긴 시간을 읽어 내고 있는 곳.
천천히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적요가 깔린 절 마당에 닿는다.
‘그 곳에 이르기가 어렵다’ 라는 (능가 -범어) 능가산 자락엔 아름다운 모습들이 고즈넉하다.
두어 철전에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무심으로 마음이 열린다.
무심에 이르는 길에 만난 도량의 법어는 ‘그대로인 나’ 를 묵언으로 일갈하는 듯하다.
개암사 대웅전은 보수에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다.
하늘은 울금바위 밑으로 서기가 서려 있는 듯 쨍하니 깨어질 듯 푸르다,
마치 진표율사가 찐쌀 스므말을 들고 망신창법(온몸을 돌로 치며하는 수행) 으로
미륵을 친견했다는 不思義房에서 토해지는 장엄하고도 쩡쩡한 기운의 청정함 같다.
지장전에는 스님의 흰 고무신이 염불소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건너 나한전에 계신 나한님들의 모습은 제 각각, 지금 도량을 돌고 있는
여행객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계신 듯하다. 돌담위의 관음전은 햇볕에 문짝 하나를
정갈히 말리고 서 계신다.
얼굴을 들어 내지 않는 대웅전은 ‘만날 사람은 언제고 만나진다’ 라는 부처님의 법을
몸으로 보여 주시는 중 이다. 다음에 또 뵈러 올 수 밖에 없는 인연이다.
나뭇잎이 물길의 도랑으로 내려앉은 길을 옆에 두고, 아침빛이 조촐하게 비쳐드는 부도에
눈길을 모은다. 다정하다, 나란한 두개의 부도가.
누구신가 묻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으실 듯 하다. 다 부질없음이니라! 가랑잎 소리만 사그락 거린다.
일주문을 걸어서 가야하는 수고를 놓치고 보니 나올 때야 일주문을 본다.
이런! 부처님을 친견할 자세가 옳지 못했음을 뒤에 놓고 내소사로 향한다.
첫댓글 역시 우리 답사회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해 주시는 멋진 글이십니다.
진짜배기는 바로 여기있었네요. 감사 감사......
이번 답사에 참가는 못했지만 님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그 느낌을 따라가 봅니다. 섬세한 눈과 아름다운 감성으로 쓰신 글에 포옥 빠져 듭니다. 오필리아님에게 감사를.....^^
오필리아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꾸벅~
"지장전의 흰 고무신이 염불소리를 고스란히 담고..."라고 하셨는데요...제게는 오필리아님의 글이 개암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멋지세요. 정말!
답사기 쓰신다 들어 목빼고 기다렸습니다. 이제~ 님의 마음을 읽으며 나 또한 님을 따라 개암사 뜨락을 거닙니다. 단청을 마다한 대웅전의 高雅한 맛이 그리도 좋아 자주 발길이 머물던 곳 개암사! 얼굴 가려 만나지 못한 내 친구 龍들! 바라건데 예스러이 천정에 머무르라. 내 벗들과 쉬이 찾아가리니...
일주문은 들어갈 때 보는게 아니었군요.........일주문을 들어가면 불토이고 나오면 속세인데....
불국토에 들기는 아직 몸에서 고기냄세가 많이 났었나보네요 ^^ (버스안에서 그만 놓쳤지요. 맨 뒷자리이다보니....)
사진이 들어가니 분위기가 확 달라지네. 요로코롬 좋은 사진 혼자만 보려고 꽁꽁 감추면 누가 모를 줄 알고? 고무신 찍는 것 본 사람 있는데...여혜당 눈 네 개 인 것 알잤남. ㅎㅎㅎ
멋집니다... 특히나 의미있음직한 사진 ! 한참을 들여다 보았네요. 글을 음미하면서...
깔끔합니다.
언제 사진을 올리셨나요? 사진과 함께 보니 더더욱 좋습니다.^_______^
'누구신가 묻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으실 듯' 氾然하게 서 있는 나란한 부도를 봅니다. 조촐한 아침볕 받고 계신 부도 주인은 무슨 깨달음 안고 훌훌 떠나셨을꼬... 조금 전 읽은 민들레님의 詩 <낙엽의 유서>에 곁들인 사진이 자꾸만 부도에 오버랩 됨은 어인 일일까...
일상적인 자리에서 오필리아님을 몇번 대하면서 어떤 글을 쓰시는 분일까 궁금했는데 오늘 님의 글을 보게되니 (여성 만은 아니겠지만) 섬세한 느낌을 지니고 계시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