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8월 29일
'구라'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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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랑 같은 회사 다니는 사람이
모 출판사 편집장으로 있는 아는 형이 쓴 내용이라고 회사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구라라는 단어의 유래....입니다.....
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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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이의 피곤한 구라에 대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낸 재즈동 동지들과
다른 가축모임 소속(제가 만든 모임)의 팬들에게 우선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오늘도 심심한 구라를 계속해서 풀어가보기로 한다.
특히 오늘은 이 "구라"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구라의 어원이 뭔지 아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난 안다.
"구라"의 어원뿐만 아니라 "노가리"의 어원도 난 안다. 정말 멋진 넘이다.
하지만 멋쟁이는 아니다. "멋쟁이"는 버미 옵바가 이미 찜을 했기땜시 쓸 수가 없다.
역쉬 사람은 뭐든 동작이 빨라야 한다. 피곤하다고 그냥 있다가는 날 샌다.
어쨌든 각설하고...... 구라의 어원이 무엇이냐?
구라는 원래 "굴화"에서 나온 말이다.
굴화는 바로 전국시대 때 초(楚)나라의 시인인 굴원(屈原)의 여동생 이름이다.
굴원은 초사(楚辭)의 창시자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 초사 란 쉽게 말해 "초나라식 야부리" 라는 것으로서
초나라 때의 속가 작법의 풍으로 시를 지어 초사라고 했던 것이다.
사방초가... 아니다 사면초가 라는 말이 있다. 동서남북에서 초가(楚歌)가 들린다는 말인데,
초가는 중국 양자강 이남(강남) 지방에서 초나라를 중심으로 하여 민간에 널리 퍼져 있던
속가 내지 민간시가로서, 강건하면서 약간 오랑캐스러운 북쪽 지방의 시에 비하여
사람의 심정을 쥐어짜는 듯 구슬프고 연약한 정서가 배인 시로 유명해서,
나중에 항우의 고사에도 등장할 정도였다.
초나라는 무시카고 무시칸 한나라에 비해 민간에서조차 예술적 정서가
장난이 아닐 정도로 깊이 퍼져있던 선진국이었다.
풍요로웠던 강남의 환경 덕택으로, 문물이 발달하고 생활이 풍족해서 그랬던 모냥이다.
말하자면 울 나라 통일신라 때의 문예 부흥과 사치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백성들의 심성이 유약하고 퇴폐적이어서 절라 거친 한나라 넘들과
싸움이 붙었을 때 역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유방이 항우를 이겨먹은 이야기는 그런 역사적 사실을 대변한 것에 불과하다.
어쨌든 굴원은 이 아름답고 슬프고 감상적인 초국의 속가를 잘 정리하고 법습(法習)하여
사(辭)를 지었는데...그리하여 제목이 초사가 된 것이다.
사辭는 시詩, 서書, 문文, 표表 등 중국의 문장 종류 중의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으로 치자면 노래와 시를 다 포함하는 운문풍의 글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노심초사(老心楚辭) 라는 말도 있다. 노자(老子)의 마음은 초사에 가 있었다는 뜻인데,
여기서 "심"이란 한자는 "집중하다", "몰두하다"는 뜻도 있다.
즉 노자의 마음이 초사에 있다, 또는 노자가 초사를 절라 들이팠다....의 뜻이다.
초사가 너무나 오묘하고 환상적이어서 노자가 밤낮으로 초사를 연구하느라 골몰했는데,
그러다 보니 몸이 마르고 피골이 상접하여 더 이상 초사를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자
그때서야 비로소 초사의 심원한 오의(奧意)가 홀연히 떠올랐다고 한다.
즉 시나 노래는 모름지기 머리로 절라 연구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뜻인데,
후대에 뜻이 변하여 한가지 일에 골몰하고 걱정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암튼, 굴화는 이 초사로 유명한 굴원의 여동생이다.
이쯤 하면 아는 사람은 "아하~"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그렇다. 굴화는 전국시대 때 문장과 그림과 음악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 굴화다.
굽어졌다는 굴(屈) 짜에 꽃 화(花)를 쓴다.
"구라"가 "굴화"에서 나온 것을 어쩌다 알게 된 인간들이 간혹 굴화를 한자로
"屈話"로 잘못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착각에도 연유가 있다.
이따 말할 거다. 보채지 말라.
굴화는 당시의 뭇 문장가와 시인들을 빼어난 말솜씨로 홀딱 넋이 나가게 한 재인가녀로서
에피소드가 절라 많다.
가령 유방의 참모이자 한나라의 일급 문사였던 양명문이 굴화에게 문장을 겨루자고 찾아왔는데,
굴화가 우물을 가리키며 저것은 나의 시가 나오는 샘이니, 저것을 채울 수 있는 남자라야
문장을 겨룰 수 있다고 하자, 말뜻을 알아차린 양가백(명문의 호다)이 얼굴이 뻘개져서
돌아간 일은 아주 유명하다.
또 모령공(법가의 아류로서 염철론이 유명한데, 후대에 모자라고 받들어 부른... )이 굴화를
길에서 만났는데, 모자가 오빠가 어찌 지내는지 묻자 굴화 답하는 말이,
"동굴이 시작되는 곳"이 어떠한지는 들어와 봐야 알 일이지, 어찌 동굴의 꽃에게 묻는다고
알 수 있는 일이요, 라고 말해서 모자의 대답을 궁색하게 만든 에피소드도 있다.
동굴의 깊은 곳...... 즉 오빠 굴원의 이름을 살짝 비틀어서, 窟源이라고 하면서
이 굴화에게 말로만 묻지 말고 퓌지컬로 물어라는 요상한 대답이었던 것이다.
굴화의 말솜씨는 워낙 뛰어나고 야하기도 해서 여러 사람이 본 받으려 했으나,
흉내를 내다보면 늘 썰렁한 말이 될 뿐이어서 굴화의 팬들에게 조소를 받았으니,
그것을 가지고 굴화의 야부리는 타고난 것이다 (生之屈話 또는 生生之屈話) 라는 말이 생겼다.
이 단어를 줄여서 "생굴화"라는 말이 나왔는데, 지금의 "생구라" "날구라"의 원래 단어였다.
어쨌든 이렇게 굴화가 만나는 사람마다 엄청난 내공으로 구라를 떨어대니,
당시 초나라와 전국시대 사람들은 "굴화의 이야기"라는 표현을 보통명사처럼 쓰기에 이르렀다.
즉 굴화지화(屈花之話)란 아주 이빨을 능청스럽게 잘 까면서 상대를 탄복시키는
그런 말재주를 일컫는 말로서, 나중에는 줄여서 그냥 굴화(屈話)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라의 어원을 생각하면, "구라를 깐다" "구라를 친다" 라는 말은 틀린 용법임을
알 수 있다. 그냥 "구라를 풀어놓는다" "구라처럼 말한다" "구라 한다" 정도로 쓰는 것이 적당하다.
이것과 비슷하게 "사사 事師" 라는 말이 있는데, "사사"란 스승으로 모신다,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이니까 "~에게 사사를 받는다" "~에게 사사했다" 는 틀린 표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를 사사했다"라고 해야 한다.
아, 피곤이가 심심하다고는 하지만 구라 풀어놓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심심하다 못해 피곤해진다. 그러니 초나라 때의 아리따운 굴화는 얼마나 천재적이란 말이냐.
앞으로 구라는 풀지 말고, 야부리나 노가리만 풀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의 구라는 여기까지...
(기우杞憂로 말하는데, 이상의 구라는 완존 생구라로서 굴원이 초사를 지었다는 것 빼고는 새빨간 날조 내지 창작임. 부디 어디 가서 진짜인 양 날구라를 풀지 마시압~ ㅋㅋㅋ)
# by | 2004/08/29 14:40 | 퍼스널 다이어리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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