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blue 블루...시리도록 차가운..그래서 더 슬픈 빛..
▶ 작가 : 한을혜성
▶ 작가 메일 : myth4ever@empal.com
▶ 출처 : 민셩홈페이지 X
「작가는 감상을 먹구 산답니다~~
일케 좋은 글 쓰신 작가님께 감상보내는건 기본 예의겠져??
소설 퍼가시는 분께서는 작가님께 꼭 허락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 새초롬진」
* * *
### BLUE ###
블루.. 시리도록 차가운..
그래서 더 슬픈 빛..
<1>
### 차가운 너는 나만의 천사 나만의 것.. ###
모든게 끝이었다. 우리집도.. 부모님도.. 그리고 나도..
낮에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 의해.. 우리집은 그리고 나는..
그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회장님.. 데려왔습니다.]
[..그 녀석만 들여보내..]
[넷!]
혜성은 끌려온 빌딩 맨 꼭대기 층의 어느 방 앞으로 인도되었다.
아니.. 거의 끌려왔다고 하는 표현이 맞겠다.
[들어가!]
그들은.. 그 방 안으로 혜성을 내팽겨치듯 밀어넣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쿡쿡.. 기분이 어떠신가..?]
[..당신은..]
..이.. 민우..?
아버지 친구분 아들..?
그런데.. 왜 니가 여길..?
[아마.. 궁금하겠지..?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혜성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년 전 쯤..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았지.. 그런데.. 공교롭게도.. 네 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지께 수백억 대의 빚을 지고 계시더군..]
[... ...]
혜성은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채로 민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버겁게 입을 연 혜성..
[..원하는 게 뭐지..?]
민우가 조소를 띄우며 혜성에게로 다가온다..
[..다른 건 필요없어.. 돈 따위는..]
그리고는.. 혀로 혜성의 입술을 살짝 핥는다.
[..너만 있으면 돼..]
[!!!!!!]
혜성은 경직되었다.
[..미친놈.. 내가 물건이야!!!]
[쿡.. 집과 부모님이 어떻게 되어도 좋단 말인가?]
[... ...]
[네가 나에게 넘어오는 조건은 간단해.. 모든 걸 없었던 걸로 해 줄 테니..]
[..그럼 난..?]
혜성의 날카로운 눈빛과 민우의 차가운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닥쳤다.
[..얌전히 내 소유가 되면 돼..]
소유가 된다..
누군가의 것이 된다..
혜성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하지만..
이 방법 밖에는 없다..
[..좋아..]
혜성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날.. 주.. 겠어..]
[쿡.. 진작에 그랬어야지..]
민우의 차가운 미소가.. 혜성의 뇌리에 박힌다..
저주할거야.. 널..
영원히.. 저주할거야..
<2>
### 너는 독을 품은 한 마리의 도도한 고양이.. ###
혜성이 따라간 민우의 집은 생각했었던 것 보다 넓었다.
물론.. 대 기업 회장이라는 것도 감안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아마..
[혼자 살기 때문이겠지..]
[??]
느닷없는 민우의 목소리에 혜성이 고개를 돌렸다.
민우의 눈빛은 어느 감정 하나 묻어나 있지 않았다..
단 한가지..
고독.. 외로움이라는 것을 제외하자면..
[..니 방은 2층이야..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써도 좋고.. 필요 한 거 있으면 사서 써.. 그치만.. 어디 갈땐.. 누구한테라도 이야기 하고 가야돼..]
[... ...]
민우는 혜성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하긴.. 혜성도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딸깍..
아주 작은 소리인데도.. 텅 빈 집에서는 크게 울리나보다..
문 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
혜성은 방 안의 풍경에 조금 놀랐다.
자신의 방과.. 거의 흡사했다고 해야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흰색.. 아이보리색이 주류를 이루는 방안의 인테리어..
방 안의 가구.. 책상.. 탁자.. 카펫.. 커튼.. 심지어는 침대 시트까지도.. 자신이 집에서 쓰던 것과 똑같은 것..
설마..
우연의 일치일거야..
애써 떠오르는 생각을 부정하는 혜성..
천천히 침대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하나도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그냥.. 부모님이 출장으로 떠나신 후의 혼자있는 집 같다...
[..후우..]
샤워를 마치고 나온 민우..
수건을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듯 던져두고 1인용 소파에 깊숙히 눌러앉았다.
맘에 들어할까..?
집과 똑같이 해 두었는데..
다시금 예전 그 기억으로 젖어드는 민우다..
4,5년 전 쯤인가.. 경영계 인사들끼리의 친목도모를 위해 마련된 파티..
그 때.. 처음 보았을 것이다.
아버지 친구분의 아들이라는 아이를..
그 아이의 이름은 신혜성..
자신과 동갑인.. 조금은 도도하고.. 조금은 청순해보이는 그런 아이..
[..사교계에서도.. 도도한 고양이라고 통한다지..? 쿡쿡..]
우연히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 같다.
도도한 고양이.. 고양이..
쿡.. 귀엽다..
마치 소녀인 양.. 새침하게 앉아있는 모습이나.. 조금은 까다로워 보이는 외모도..
민우의 시선을 잡아끌기엔 충분했다.
마치.. 유리종 속의 천사 인형처럼.. 하얀 그 아이는.. 민우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언젠간.. 널 갖고 말겠어..
그리고.. 자신의 바람을.. 지금 현실로 이루었다.
물론..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아직.. 그의 마음까지 갖지는 못했지만..
넌... 내게서 벗어날 수 없을꺼야..
나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신혜성..
<3>
### 난 너의 독재자.. ###
삑..
작은 핸드폰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고요함이라는게..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Trrr...
신호음이 간다.. 한번.. 두번.. 더해 갈 때마다.. 혜성은 초조함에 휩싸인다.
-여보세요..-
받았다. 혜성에게서 작은 한숨이 터져나온다.
[..진이니..?]
-혜성이지?! 그치?-
[응.. 나야..]
혜성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서린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 너 지금 어디야..-
[..사정이 있어서.. 집에는 못 갈거 같아.. 부모님께 니가 말씀 좀 드려..]
-무슨 일인데 그래..?-
[미안.. 지금은 말 할 수 없어.. 미안해..]
-일단은 묻지 않을게.. 어쨌든.. 몸 조심하고.. 가끔 연락좀 하고..]
[알았어.. 고마워..]
탁..
힘없이 닫히는 플립..
혜성은 보일 듯 말 듯한 미미한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으신가보지?]
[... ...?]
혜성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누구하고 전화 한거야..?]
[..니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한치의 떨림도 없는 청아한 목소리.. 혜성의 눈빛은.. 그 여느때보다 도도하다.
[쿡..]
민우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도도함이 지나치면..]
민우의 손은 재빠르게 혜성의 팔목을 낚아챈다.
[..건방져 보일 수도 있어..]
[무슨.. 으읍!!]
혜성이 채 대답도 하기 전에 민우의 입술은 혜성의 입술을 막아버린다.
부드러움이란 찾아볼 수 없이.. 거칠기만 한 민우의 키스..
혜성은 숨이 막혀옴을 느낀다. 이 사람..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나..?
[..잘들어.. 신혜성..]
그 오랜 키스 후에도.. 민우는 흐트러짐 하나 없이 혜성을 향해 한자 한자 또박또박 말한다..
[..어짜피 나와 있을거라면.. 나에게 익숙해지는게.. 너에게는 좋을거야..]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일까..?]
[수동적으로.. 길들여지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
민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일까..? 혜성의 눈빛은 의아하다는 물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혜성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다는 걸까..? 민우는 혜성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말 안듣는 고양이는.. 주인에게 혼나지.. 안그래?]
[!!!!]
혜성의 표정이 경직된다..
그런.. 거였어..
잠시 있고있던 현실..
난.. 그의 소유였다는 것..
더 이상.. 내 자아.. 내 의지는 없다는 것..
난.. 그의 인형이라는 것..
조금전의 날카롭던 눈빛이.. 점차 힘을 잃어간다..
낙심(落心)한 고양이는 꼬리를 늘어뜨린다.
그래.. 내가.. 이 상황에서 뭘 더 할 수 있겠어..
이제.. 신혜성은.. 이민우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 걸..
<4>
### 눈물.. 아픔.. 혹은 두려움.. ###
혜성의 방을 나서던 민우의 귓가를 울리는 소리..
[..흑..]
분명.. 흐느낌.. 작은 흐느낌 소리..
울고 있는 건가..?
분명.. 민우의 말은.. 그리고 현실은.. 혜성에겐 크나큰 충격이다.
그리고.. 혜성의 흐느낌 또한.. 민우에겐 비수가 되어 찾아든다..
[젠장!]
퍼억..!
벽을 후려친 민우.. 오른 손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거..
모르는 거 아냐..
하지만 난..
내 모든 걸 잃는 다 해도..
널.. 신혜성 널..
내곁에서 떠나 보내지 않아..
민우의 눈은 빛나고 있다.
혜성에 대한 사랑과 집착으로..
[..흑.. 흑..]
혜성의 흐느낌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어깨의 들썩거림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이민우..
너.. 원래.. 이런 애였니..?
내가 알고있던 넌..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래도 조금은 따뜻할 거라 기대했다면..
그건 내 착각이었니..?
혜성은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는다..
눈물 맺힌 눈썹이 살짝 드리웠다.
그리고.. 다시금 그 때의 기억 속으로 찾아든다..
5년 전.. 어느 날 보았던..
당당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 아이..
작은 체구에도..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었던.. 그 자신감..
[저 애가 아빠 친구 아들이란다.. 민우라고 하지..]
민우.. 이민우..
그 때부터 였을까..?
민우는.. 혜성에게 작은 우상이 되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약한 몸 때문에.. 항상 남의 보호를 받고 살았어야 했던 그에겐..
[..아빠.. 나도.. 민우처럼 되고 싶어.. 민우처럼 당당하고.. 민우처럼 강하고..]
아버지와 이야기 할때는 저도 모르게 민우의 이야기가 한번.. 두번.. 튀어나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된 혜성..
그런데.. 지금.. 자신이 보고있는 민우는..
당당하다.. 강하다..
그러나.. 잔인하다..
이민우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아.. 빠..]
혜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조용히 방 안에 울린다.
속눈썹에 맺혀있던 눈물방울이 하나 둘.. 옷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풀썩..
민우는 거실 소파 위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조금 전.. 혜성을 압도하던 강한 눈빛은.. 조금씩 사그러들고..
빛을 잃은 까맣기만 한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고있다.
신.. 혜.. 성..
손을 뻗으면 멀어져 버릴 것만 같은..
별빛같이 희미한 아이..
그래서.. 더 갖고싶은 너..
<5>
### 마음만은.. 진심이고 싶어.. ###
[..배고파..]
혜성은 빨갛게 부운 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부터 밤이 깊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질 못한 탓인지.. 속이 쓰려왔다.
한발.. 한발.. 자는 민우가 깰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아래층으로 내려온 혜성..
[..뭐야.. 이 사람은 뭐 먹고 산거지..?]
한 나라에서 손꼽히는 그룹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사는 집의 부엌이란..
엉망이다..
피곤에 지친듯 잠들어 있는 모습의 민우는..
조금전 자신이 봤던 민우와는 달리 애처롭다..
[..우.. 으음..]
차가운 새벽 공기 탓에 눈을 뜬 민우..
[..어..]
일어나 보니.. 밤에는 없었던 이불이 덮여 있었다.
그리고.. 오른손엔.. 정성스럽게 싸맨 듯.. 하얀 붕대가 감겨져 있고..
혹시..
민우는 일어나 2층으로 향한다..
똑똑..
노크를 해도 대답없는 혜성의 방..
민우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안을 들여다보느 혜성은 돌아누워 자고있는 모양..
표정을 보니.. 몹시 고단했던 모양이다..
자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어린아이의 모습..
[..풋..]
민우는 저도 모르게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이래서 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걸까..?
너에게 그렇게까지 못되게 구는 날..
그래도.. 걱정해 주는 건..
민우는 자신의 오른손에 감긴 하얀 붕대 위에 살며시 입을 맞춘다.
아직까지 혜성의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
혜성에게 다가가던 민우의 손이 멈칫한다.
...자는 걸 방해해선 안되겠지..
민우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혜성의 방을 나온다. 행여나 그가 깰까..
어린 천사의 잠을 깨울까..
<6>
###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어.. ###
[우음..]
아침 10시경이 되어서야 잠에서 깬 혜성..
[..벌써.. 10시인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방 밖으로 나온 혜성..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안이.. 삭막해..
사람은.. 자기 주위 환경을 닮아간다고 하던데..
정말인가봐..
1층을 돌아다니다가 민우의 방 앞에 멈춰선 혜성..
[..안되는 건 알지만.. 잠깐.. 좀 볼까..]
호기심에 살짝 방문을 열고 들어간 혜성..
어제 거실에서 잔 탓에 민우의 방은 전혀 손 댄 구석 하나 없이 어지럽기만 하다.
[..혼자사는 사람이 이게 뭐야..? 집에 가정부도 하나 안두나..?]
볼멘 소리로 중얼거리는 혜성..
하긴.. 나도 엄마나 가정부 아주머니께서 다 해주셨으니까..
나도 혼자 살면.. 민우같이 될 지.. 누가 알겠어..?
[..어..?]
문득..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액자에 눈길이 간 혜성..
민우의.. 어머니..?
혜성은 그 액자를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어릴적의 민우같다. 어머니에게 안겨 웃고있는 민우..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
혜성은 그 액자를 들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민우..
이 사람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차갑고.. 냉혹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사실..
무척이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처럼 보여..
내게 보이는 그 차가움도..
어쩌면 내면의 상처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Brrrr...
[..? 누구지..?]
갑자기 들려오는 벨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 혜성..
아직 민우가 오기엔 이른 시간인데..
인터폰을 집어 든 혜성..
[..누구세요..?]
-..여기.. 민우네 집 아닌가..?-
[..네..? 맞는.. 데여.. 민우.. 지금 없는데.. 누구신지..]
-..아.. 나 민우 친구에여..^^-
[아.. 그러세여..? 잠깐만여..]
잠시 후.. 그 민우의 친구라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근데.. 그쪽은..]
[네? 저여.. 아.. 사정이 있어서.. 지금 민우네..]
[하하.. 그래요..? 전 민우 친구 김동완이라고 합니다. 그쪽은..]
[아.. 신혜성이라고 해요.. 저.. 동완씨 나이는..? 전.. 21살인데..]
[..아.. 나도.. 21살인데.. 우리 나이도 같은데 말 놓지..?]
[..쿡.. 좋을대로..]
그런데.. 신혜성..?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건지.. 혜성을 쳐다보는 동완..
설마.. 민우가.. 말했던.. 그 신혜성..?
<7>
### 나랑.. 약속 하나 할래..? ###
[..왜 그래.. 동완아..?]
[어..? 아.. 아냐..]
예전.. 언젠가.. 민우가 동완에게 했던 말..
자신이 꼭 가지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고..
그게 무어냐고 물었을 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천사라고..
그게 신혜성이라고..
한 없이 차갑던 민우였지만..
혜성의 이야기를 할 때만은..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게 하던..
민우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
신혜성..?
한참 상념에 잠겨있던 동완을 현실로 돌아오게 한건.. 혜성에게서 난 소리(?) 였다.
꼬르륵..
[..??]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혜성을 쳐다보는 동완..
혜성은 무안한지 얼굴을 붉혔다.
[..어..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단 마랴!!]
어린아이 마냥 투정부리는 말투로 중얼거리는 혜성.. 동완은 피식 웃었다.
니가 말한 천사같다는 것이..
이런거였니..? 민우야..
[..나가자. 내가 점심 사줄게..]
[어.. 정말? 초면에.. 그래도 돼?]
[당연하지~^^]
[그럼 잠깐만~]
갑자기 2층의 자기 방으로 후다닥 뛰어올라가는 혜성.. 아무리 배가 고파도 멋을 내야 된다는 건가..--;
조금 후.. 강남의 어느 한 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
[고마워~ 잘먹을께..^^]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던 혜성도.. 어느 새 동완과 많이 친해진 건지.. 스스럼없이 식사를 하고 있다.
한참 식사를 하던 두 사람..
동완이 잠시 멈추더니 혜성에게 말했다.
[혜성아.. 밥 사주는 대신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머..?]
막 돌돌 말은 스파게티를 입안에 집어넣은 혜성이 토끼눈이 되어 동완을 쳐다본다.
[그냥 부탁을 하자니.. 미안해서 구실 붙이는 거야..]
[..먼데..?]
말만 해! 라는 표정으로 동완을 쳐다보는 혜성..
[니가.. 민우를 바꿔줘..]
[응..? 켁켁..]
갑자기 먹던 것이 사례가 걸린건지 물을 들이키는 혜성..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지금의 민우를.. 예전처럼.. 되돌려 주었음 해..]
[..예전의.. 민우라면..]
[..지금처럼 차갑고 냉정한 녀석이 아닌.. 민우 본연의 모습..]
[..그런걸.. 내가.. 어떻게.. 해..]
망설이는 표정의 혜성..
[아니야..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거든..]
[..내가..?]
[..그래.. 너..]
포크로 혜성을 가리키는 동완..
흠칫 놀라는 혜성..
[..사람.. 찌르겠다..]
[..그랬어? 쿡.. 미안..]
피식 웃는 동완..
[어쨌든.. 부탁할께..]
[..노력..은.. 해볼께.. 근데..]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혜성.. 동완에게 물었다.
[..민우는.. 왜.. 그렇게 차갑게 변한거니..?]
<8>
### 상처.. 지워지지 않는 흔적.. ###
[..민우는..]
동완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민우가 10살때.. 민우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 ...]
더 묻지 않는 혜성..
[..민우의 아버지는 사업이다 뭐다.. 항상 가정은 내팽개쳐 두고.. 일에만 몰두하셨지.. 민우 어머니는 그 당시.. 심장병을 앓고 계셨는데.. 아버지가 그걸 알 리가 없으셨던 거야.. 결국.. 민우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민우는..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실 떄 까지 내버려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지..]
[... ...]
동완의 표정은 착찹했다.
[..이후.. 민우는 무서우리만치 차갑게 변해버렸지..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렸달까..? 친구인 나도.. 그 녀석에게 쉽사리 접근할 수는 없었거든.. 그런데..]
[그런데..?]
[..어느 날.. 녀석이.. 갑자기 표정이 밝아져서 내게 찾아왔어.. 아주 오랫만에 보는 녀석의 웃는 모습이었지.. 그러니까.. 그게.. 5년 전쯤 이었을 거야..]
[..5..년.. 전..?]
문득.. 민우를 처음 보았을 때를 생각하는 혜성..
[..난 궁금해 했어.. 그토록 차갑던 녀석에게 웃음을 가져다 준.. 사람이 대체 누굴까.. 하고 말야..]
[..그게.. 누군데..?]
동완은 혜성의 새삼스런 질문에 피식 웃었다.
[누구긴 누구야? 신혜성.. 바로 너지..]
[..나..?]
혜성은 자못 놀란 눈치다..
[..그.. 그치만.. 민우는.. 나한테 너무 무섭게 대하는 걸..? 차갑고..]
혜성의 목소리가 사그러든다..
[그건.. 그 녀석의 버릇이 쉽사리 고쳐지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래서 니가 필요하다는 거지.. 민우를 바꿀 수 있는 건.. 너뿐이야..]
포크를 쥔 혜성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그 녀석이 말이지..]
[쿡쿡..]
한참 신나게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두 사람.. 이미 저녁 늦은 시간이 다 되어서다.
[..그냥 넘어져 버리더라구.. 어..? 민우야..]
[..민우..?]
동완의 시선을 따라가던 혜성..
그 곳에는 싸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는 민우가 보였다.
[..쿡 두 사람이서 아주 신나셨군.. 계속 얘기 해.. 방해가 됐나보지..?]
동완과 혜성이 뭐라 변명도 채 하기 전에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민우..
[..이런..]
동완이 허탈한 한숨을 지었다.
[..하나 잊고 있던게 있었다..]
[..뭐가..?]
[아.. 아냐.. 그럼.. 나 가볼게..]
[왜.. 벌써 가려고..?]
[민우 신경 안 건드리려면 난 빨리 사라져 주는게 좋아..^^ 그리고.. 오늘은 민우 기분 별로 안 좋을 테니 조심해..]
[..무슨.. 어쨌든.. 알았어.. 잘 가..^^]
동완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혜성..
촤악!!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닫아버리는 민우..
젠장.. 이민우.. 너 이게 뭐냐..
치졸하게 친구나 질투하고..
하지만.. 혜성이가..
다른 사람을 보고 저렇게 웃는 거..
민우는 소파에 주저앉아 이마를 짚었다.
아직도.. 어린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건가..?
이런.. 빌어먹을..
<9>
### 마음과는 다른 나.. ###
똑똑..
[..?]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든 민우..
[..저.. 민우야.. 저녁 안 먹었..]
[필요 없어..]
[..어..? 그치만.. 너..]
[필요 없다고 했잖아!!!!]
[... 그래..? 미안해...]
혜성은 별 다른 말 없이 나가버렸다.
탁..
힘없이 닫히는 문 소리..
칙..
라이터에 불 붙는 소리...
긴 담배연기가 소리없이 흩어진다.
[..나.. 또.. 상처를 주는건가..? 쿡..]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민우..
[... ...]
어떻게 방까지 올라온 건지도 모르겠다.
혜성은 침대 한켠에 걸터앉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민우를 바꿀 수 있는건.. 너 뿐이야..-
동완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동완아.. 내가..
정말 민우를 바꿀 수 있을까..?
그치만.. 솔직히 나.. 지금
의심스러워.. 그리고 겁나..
민우를 마주대한다는 거 조차..
삑..
혜성은 폰을 열었다.
그냥.. 누군가와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답답했기 때문에..
Trrr... Trrr...
두어번 신호음이 갔을까..?
-여보세요..-
[..진아.. 나야. 혜성이..]
-..어.. 혜성아..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그냥.. 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쿡.. 자식.. 그래.. 어디 아픈데는 없고..?-
[응.. 걱정 마.. 잘 있으니까.. 집에는 별 일 없니..?]
-어.. 으응.. 괜찮아.. 걱정 마..-
왠지.. 진의 대답이 껄끄럽게 들린다.
..사과해야 하는 걸까..?
민우는 혜성의 방으로 찾아갔다.
[어~ 그래.. 그럼.. 나중에 봐.. 응..]
혜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또..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건가..?
덜컹!!
거칠게 방문을 열어제끼는 민우가 보인다.
[..깜짝이야.. 노크라도 하..!]
별안간 혜성을 벽쪽으로 몰아붙이는 민우다.
[..가.. 갑자기 너 왜그래?!]
[..누구야..?]
[..누구.. 냐니..?]
민우의 눈빛이 섬뜩하다.
[방금.. 전화한 사람..]
혜성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민우를 쳐다본다.
[..너 정말 이상해.. 대체 왜 그런 것까지 니가 간섭하.. 으읍!!]
더 이상 혜성의 대답이 듣기 싫다는 걸까..? 민우가 혜성의 입술을 막아버렸다.
<10>
### 난 독점욕이 강해.. ###
[으..ㅂ.. 하아.. 왜.. 이래!!]
혜성이 신경질적인 어투로 소리친다.
[..몰라서 물어?]
[..알면.. 내가 이러겠어? 너 대체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너한테 그렇게 잘못한 거야?]
혜성의 상기된 얼굴이 볼만하다.
[..난..]
민우의 목소리가 뜨거운 입김과 함께 혜성의 귓가에 서린다.
[..니가 다른 누군가와 있다는 것 조차도 싫어..]
[..뭐..?!]
혜성이 움찔한다.
민우의 눈빛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
벽에 닿아있는 혜성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나만 봐..]
[..!!]
혜성의 놀란 눈이 민우를 주시한다..
[..니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 바라보는 것도 싫어.. 이기적이라고 날 욕할지도 모르지만..]
[... ...]
혜성은 머릿속이 백지 상태가 되어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는다.
[..난.. 신혜성에 대한 독점욕이 강해..]
[..그..게.. 민.. 읍!]
또 다시 이어지는 민우의 키스..
혜성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옴을 느낀다.
조금 다른점이 있다면.. 민우의 키스가 이전과는 달리 조금은 부드러워 졌다고 해야 할까..?
[..민.. 아.. 그만.. 하아..]
숨이 찬 건지.. 혜성이 힘겹게 말한다.
혜성의 작은 손은 어느 새 민우의 셔츠를 움켜쥐고 있었다. 살짝 꺾이는 혜성의 다리..
민우의 손은 혜성의 셔츠 단추를 끄르고 있었다.
벌어진 셔츠 사이에 드러난 하얀 어깨.. 민우의 입술은 혜성의 어깨에 작은 낙인을 만들었다.
[..아..앗!]
적응이 안 되는 걸까..? 혜성이 움찔 한다.
[..아파..]
혜성의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처음인가..?]
[..나.. 난.. 키스도 니가 처음이란 말야!!!!////]
얼굴을 붉히는 혜성.. 부끄러운지 민우의 셔츠로 고개를 파묻는 혜성이 새삼 귀엽다.
[..쿡..]
민우의 웃음소리.. 하지만.. 뭐랄까.. 이전의 그런 비웃음과는 다르게 들리는 건..
[..그럼.. 나한테 길들면 되겠군..]
[뭐?! 야.. 이민우.. 너..!!!!///////]
[..수강료는 따로 안 받을게..]
혜성의 셔츠를 정리해 주고는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리는 민우..
[넌..저녁 먹었어?]
[..아니..]
[..훗.. 아쉽네..]
[뭐가?]
삐쭉거리는 혜성.. 민우는 그런 혜성의 표정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먹었다고 하면.. 난 너로 배채우려고 했는데..]
[...날.. 먹어?]
혜성이 눈이 깜빡인다.
민우는 아니다 싶은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 아냐.. 그럼.. 나갈래..?]
[..뭐... 좋을 대로.]
혜성이 어깨를 으쓱 한다.
[..내려.]
민우와 함께 온 곳은 어느 호텔..
[들어가자.]
[..근데.. 나.. 점심도 밖에서 먹고.. 저녁도 밖에서 먹고.. 살찌는 거 아닌가..--;]
[..그렇게 마른 녀석이 무슨 살 걱정이야..?]
[..내가 마른거 어떻게 알아?]
혜성의 말투는 새삼 새침하다.
[..눈으로 봐도 다 알아..]
[..칫.. 나뿐..]
궁시렁거리며 민우를 따라 들어가는 혜성..
<11>
### 조금은.. 가능성이 있을까..? ###
[..근데 말야.. 나.. 궁금한 거 하나 있어..]
식사를 하던 혜성이 물었다.
[..뭔데..?]
[..왜.. 내가 갖고 싶은데..?]
나이프를 든 채로 턱을 괸 혜성의 모습이 새삼 새끼 고양이처럼 앙증맞다.
[..글쎄.. 왜 일거 같은데?]
[..모르니까 묻는 거 아냐..?]
[쿡..]
민우는 그 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낸다.
[..신혜성이라는 사람의 모든 것이 날 사로잡아 버렸어.]
[... ...]
혜성은 그저 민우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민우의 말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
[..처음에.. 5년 전.. 그러니까.. 아마 너도 알겠지? 우리가 서로 처음 보았던 날..]
[..응..]
[..그래.. 그 때.. 처음 보고.. 많이 놀랐거든.. 세상에.. 저게.. 사람일까..? 천사가 아닐까..? 그런 생각에..]
[핏.. 뭐야.. 유치하게..]
그런 혜성의 시큰둥한 반응에는 아랑곳 없이.. 민우는 계속 말을 잇는다.
[..널 보고 뭐랄까.. 한 순간에 널 갖고싶다는.. 나만의 사람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아니..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말하는 민우의 표정은 뭐랄까.. 왠지 아련한 첫사랑을 추억하는 듯한 표정이다.
[..근데.. 너 그거 알아..?]
[뭘?]
[..니가 내 첫 사랑이라는 거..]
민우의 말에 혜성은 조금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그리고는 또 다시 민우를 뚫어져라 주시한다. 조금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데..?]
[..근데 그렇게 키스를 능숙하게 해..?]
[..하여튼.. 신혜성.. 분위기 깨는 데는 뭐 있다니까..]
술잔을 기울이면서 피식 웃는 민우..
어느 새 호텔 지하의 칵테일 바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
[치.. 내가 뭘?]
볼멘 소리로 대답하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칵테일 잔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혜성..
[..예쁘다..]
체리빛 칵테일이 신기한지.. 마실 생각도 않고 쳐다만 보고있는 혜성..
[..신혜성.. 넌 그런게 매력인 거 같아..]
[뭐가?]
[..적응되지 않는다는 거..]
[..적응되지.. 않아..?]
[..그래..]
혜성을 바라보는 민우의 눈빛에는 묘한 느낌이 서려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그런 느낌을 받지.. 이 세상은.. 너무 맞춤형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마치.. 기계속의 한 부속인 양.. 딱 맞춰져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리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마치 이단자가 되는 양.. 이탈되는 듯.. 그렇게 도외시 되어 버리고.. 그리고 사람도 그처럼 틀에 맞춰 살아가고..]
딥 블루(Deep Blue)의 눈빛.. 혜성은 그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넌 달라.. 그런 틀과는 전혀 상관 없다는 듯.. 마치..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 사람들을 지켜본다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아.. 그 때도.. 지금도.. 넌 꼭 하늘에서 막 내려온 천사같은 그런 순진함을 보여주고 있어..]
[... ...]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다..
하지만.. 민우의 눈빛을 이길 수는 없다는 걸까..? 혜성이 먼저 시선을 거둔다.. 얼굴은 약간 상기된 듯..
술 탓이라고 돌려버릴까..?
[괜찮아..? 좀 취한 거 같은데..? 설마 술 전혀 못하는거야?]
[..웅..? 처음.. 마셔보는데..////]
몸을 가누기가 힘든지.. 혜성이 민우의 어깨에 기대어 선다.. 민우는 그런 혜성을 안아들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녀석.. 뭘 먹고 살았는데 이렇게 가볍냐..?]
민우의 말투가 왠지 새삼 장난스럽게 들려온다.
[..말라서 미안하다.. 치..]
민우는 혜성을 침대에 눕혀 놓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마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 좀 아플거야.. 괜히 무리해서 일어나지 말고 푹 자..]
혜성의 방을 나가는 민우.. 민우가 나간 뒤.. 혜성은 생각에 잠긴다.
내가 그에게 느꼈던.. 아까의 그 감정은 뭐였을까..?
설마.. 신혜성도.. 그를.. 이민우를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닐까..?
<12>
### 넘을 수 없는 벽.. ###
[..오늘로 몇일째지..?]
[..뭐가?]
[..혜성이 사라진 지..]
[..한.. 일주일..? 갑자기 그건 왜..?]
진은 정혁이 새삼 혜성에 대해 묻는 것을 의아해하며 술잔을 건낸다.
[..아니.. 그냥..]
그렇게 얼버무리듯 대답하는 정혁의 표정이 왠지 심상찮다.
[..그나저나.. 녀석 잘 지내나..? 한 사흘동안은 맨날 연락하고.. 그러더니만 요즘엔 전화도 안 하고..]
[..누구랑 같이 있다거나.. 그런 건 모르겠어..?]
[전혀 몰라.. 자기에 대한 얘기 전혀 안 했으니까.. 그냥.. 부모님이나 친구들 잘 지내느냐.. 뭐.. 이런거만 묻고.. 그랬거든..]
[..전화 걸면?]
[..안 받아. 아마 꺼놓고 지내나 봐.]
[..그래..?]
정혁의 눈빛이 한풀 꺾인 것 처럼 보인다.
[..너 왜 그렇게 힘이 없냐..?]
[..그 녀석.. 보고 싶다.]
[..하긴.. 나도.. 그치만.. 워낙 자기 관리에 철저한 녀석이라..]
진의 한숨섞인 푸념을 들으며 정혁은 한숨을 쉰다.
신혜성..
너 대체 어떻게 된거야..
너.. 내가..
널 얼마나 생각하는지..
그런건 모르는 거야..?
[이건 어때..?]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새로 사 온 옷을 대보고는 민우에게 묻는 혜성..
[..괜찮아.]
[치.. 글케 건성건성 대답하지 말구.. 넌 너무 무뚝뚝해.]
[..이게 내 말투야.]
[..핏.]
혜성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다.
Brrr...
[..누구세요?]
벨소리에 혜성이 달려나간다. 그리고 조금 후.. 낮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어.. 동완아.. 왠일로..?]
[자식.. 이제 친구도 안 반갑다 이거지?]
투덜거리는 동완.. 혜성은 피식 웃었다. 민우는 동완이 불평을 하던 말던.. 별 신경 안 쓰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민우야..]
갑자기 심각하게 변하는 동완의 표정..
[..어.. 혜성아.. 잠깐만..]
동완과 서재로 들어가는 민우.. 혜성은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사업 얘기라도 하나..? 심각해보이네..]
[..무슨 일인데 그래..?]
[..저번에 니가 말한 청주건설.. 아무래도 영월에서 눈독들이는 거 같아.]
[..영월이..?]
[..아무래도.. 다음주에 있을 모임에서 그것에 대해 종지부를 찍던지.. 해야 할 것 같은데..?]
[... ...]
민우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민우의 눈빛이 날카롭다.
[..그래.. 그 때.. 결정짓지.]
동완이 고개를 끄덕인다.
[..얘기 다 한거야..?]
[..어.. 응..^^]
[..커피 끓일건데.. 어떻게 해 주지..?]
[난 헤이즐 넛으로.. 동완이 넌..?]
[..난 뭐.. 아무거나 잘 마시니까.. 나도 같은걸로.]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부엌으로 가는 혜성.. 동완과 민우는 혜성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행복해?]
동완의 물음에 피식 웃는 민우..
[..당연하지..]
<13>
### 내게서 떨어지지 마.. ###
[..파티에.. 간다니..?]
[사업상..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경영계 인사들끼리의 모임이랄까..? 같이 갈래..?]
[..내가 가면 방해되지 않아..?]
[특별히 그런 건 없어.. 동완이도 같이 가니까..]
[정말..^^ 알았어.]
수요일 저녁.. 민우를 따라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는 혜성..
[우아.. 복잡하다.]
왠지 겁먹은 눈초리의 혜성..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툭..
그러다가 누군가와 부딪힌 혜성..
[아..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민우를 찾으려니.. 자신의 앞에 있어야 할 민우는 온데간데 없고..
[..어.. 미.. 민우야..]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려 당황한 혜성..
[민우야~ 어딨어..?]
민우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혜성..
[..어이.. 이봐요..]
[..??]
[..아가씨.. 혼자인가?]
[..아.. 저 아가씨.. 아닌데요..]
[아.. 뭐.. 그런건 상관없고.. 우리랑 같이 놀래..?]
아마도.. 어떤 재벌 2세정도.. 되는 모양이다.
[..아.. 전 됐어요..]
[..에이.. 튕기지 말고..]
[..이거 놓으라니깐요!!]
한참 그 남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혜성..
[..이봐!]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넌 뭐야?]
[..이 분이 싫으시다잖아.. 좋은 말 할 때 꺼지시지..]
그들은 그 남자를 노려보더니 욕지꺼리를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괜찮으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전 이선호라고 하는데.. 그쪽은..]
[..네..? 전..]
[혜성아!!]
저쪽에서 혜성을 향해 황급히 달려오는 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민우야..]
혜성..?
선호의 눈이 혜성을 쫓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 같은데..
[어떻게 된거야.. 걱정했잖아.. 갑자기 사라져서..]
[..미안해~ 나두 놀랬단 말야..]
[..앞으론 내 곁에 꼭 붙어있어.]
[응..^^ 아참.. 선호씨.. 아까는 고마웠어요..^^]
[아.. 별 말씀을.. 그럼 전 이만..]
혜성을 보고 살짝 웃어주고는 사라지는 선호..
[..저 사람은 누구야?]
[..나두 몰라..^^ 어떤 사람들이 집적대는 걸 저 사람이 구해줬어..]
[..어.. 그래..]
혜성이 무사한 건 다행이지만.. 혜성이 다른 사람을 보고 저렇게 웃는 것이 새삼 질투나는 민우.. (여전하군..--;)
[아.. 어서 가자. 그 쪽에서 기다릴라.]
[..그 쪽이라니..?]
[어.. 나랑 이야기 할 사람이 있어서..]
[..나두 가..?]
[또 혼자 있다가 헤메려고..?]
[..알았어..]
민우는 혜성의 손을 꼭 잡았다. 놀란 혜성이 민우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낀 혜성.. 아무 말 없이 민우의 뒤를 따라갔다.
<14>
### 위험한 만남 ###
동완이 기다리는 곳으로 간 두 사람..
[어.. 미안.. 내가 좀 늦었나..?]
세 사람이 간 곳은 어느 라운드 테이블..
[..어..?]
그 곳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고 놀라는 혜성..
[..왜 그래.. 혜성아..]
그러다가 고개를 돌린 그와 눈이 마주친 혜성..
[..혜성이?!]
그도 혜성을 알아본 모양이다.
[..정혁아..]
혜성이가.. 왜..
왜.. 이민우와 같이 있는거야..
정혁은 사지가 뻗뻗하게 굳어버렸다. 오랫동안 자신이 보고싶어 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그것도 자신의 라이벌격인 이민우와 함께 있다니..
[..일단.. 앉으시죠..]
[..아.. 네.. 혜성아. 앉아.]
[어.. 응..]
혜성도 뭔가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다.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가보지..?]
[어.. 응..^^ 진이의 사촌이야..]
[..진..?]
[..아.. 참.. 민우 넌 모르지.. 전에 내가 전화하던 친구 말야..]
[..아..]
쾅쾅쾅..
거세게 문 두드리는 소리..
[누구세요..? 정혁이야?!]
다급하게 문을 여는 진..
[..우음.. 진아..]
[세상에.. 문정혁.. 너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거야?!]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정혁을 부축하는 진..
[..진아.. 혜.. 성이..]
[어.. 혜성이가 왜..?]
[..혜성이.. 이민우와 같이 있어..]
[뭐?!]
정혁의 말에 경악하는 진..
[..이민우라면.. 그..]
[맞아..]
정혁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진..
[..이.. 일단.. 너 좀 자.. 취했어.. 내일 이야기 하자..]
정혁을 데리고 방으로 가는 진..
[..민우야..]
[... ...]
[..민우야?]
[..어..?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민우는 내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이 없다.
[..혜성아..]
[어..?]
[..아.. 아냐..]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민우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조금 안타까워 보인다.
집에 들어선 후에도.. 민우는 아무 말이 없다.
[..이민우.. 너 이상해..]
[... ...]
민우는 조금은 슬퍼 보이는 눈빛으로 혜성을 주시했다.
[..민우야.. 왜.. 으읍!]
갑자기 혜성을 끌어안고는 입술을 부딪히는 민우..
[..미.. 민.. 하악.. 민우..]
입술을 뗀 민우는 그저 혜성을 바라보고만 있다. 혜성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혜성아..]
조용한 집 안.. 민우의 목소리만 울렸다.
[..나.. 너 사랑해.. 다른 사람 보지 마..]
아까 그 사람.. 나와 똑같은 눈빛으로 널 바라보고 있었어..
<15>
### 잠깐동안의 이별.. ###
[... ...]
혜성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다.
-나 너 사랑해.. 다른 사람 보지 마..-
사랑한다.. 사랑.. 한다..
사랑이라는 게 뭘까..
혜성은 혼란스러움에 휩싸였다.
난.. 민우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앉아서 베개를 꼭 끌어안은 혜성..
그 때였다.
Trrrr...
[..갑자기 왠 전화.. 내가 폰을 켜 두고 있었네..]
자신의 폰에 걸려온 전화..
[..여보세요..?]
니가 그렇게 슬퍼하면 안되잖아..
나 때문에.. 니가 불행해 지면..
널 내게서 놓아줄게..
[..흐윽.. 흡!]
혜성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민우..
평소보다 더 진하게.. 하지만 거칠지 않게..
[...마지막이야..]
[응..?]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채 민우를 바라보는 혜성..
[..내가 너의 주인으로서 해 주는 마지막 키스였어.. 잘가..]
[..민우야..]
혜성을 내버려두고 나가버리는 민우..
니가 가 버리면..
나 또 다시 혼자 되면..
다시 살 자신 없지만..
니가 슬퍼지는 걸 원치 않아..
잘 가.. 나의 천사..
민우는 무작정 차를 몰고 달린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목적도 없이..
<16>
### 방황.. ###
민우는 무작정 달리다 어느 곳에서 멈추었다.
[ROAM]
방황하다..
민우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린다.
쿡.. 신기하게도 맞아떨어진단 말야..
민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희미한 조명과 어두운 분위기는 민우의 마음을 완벽하게 대변해 주고 있었다.
혜성아..
지금의 내 모습..
니가 보면 뭐라고 할까..
예전 혜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민우..
넌.. 그때.. 신기하다고 했던가..?
근데.. 왜 내 눈에는 이렇게 우울하게 보이는 거지..?
그 때.. 누군가 민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혹시.. 이민우씨..?]
[..??]
고개를 돌린 민우..
[..당신은.. 혹시.. 저번에..]
[..하하.. 맞군요.. 설마 이런데서 만날 줄이야.. 전 이선호라고 합니다. 앉아도 되겠죠?]
[..좋을 대로..]
선호는 민우의 곁에 앉는다.
[..그런데.. 혜성씨는 어디 가고 혼자..]
[..떠났어요..]
[네? 떠나다니..?]
[..너무 슬퍼해서.. 그래서 더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가라고 했죠..]
[... ...]
선호는 말 없이 민우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다.
[..제가 보기엔.. 민우씨도.. 충분히 슬퍼 보이는데요..?]
[... ...]
선호를 쳐다보는 민우.. 선호는 그저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혜성씨가.. 민우씨 곁에 있어서 슬퍼한다고 생각했나요?]
[..꼭 그렇지 만은 않아요.. 하지만.. 내 곁에 있으므로써.. 그 애가 정말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애가 슬퍼했죠.. 그래서.. 보냈어요.]
[..쿡.. 그건.. 민우씨가 한쪽 면 만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
선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민우..
[..민우씨는 못 보셨겠죠? 민우씨가 없을때의 혜성씨를..]
[... ...]
고개를 끄덕이는 민우..
[..제가 본 혼자 되었을 때의 혜성씨.. 무척이나 불안해 하고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어요. 마치 엄마를 잃은 어린 양처럼..]
[... ...]
[..사람은 오래 같이 있다보면.. 어느 샌가 길들여지는 법이죠.. 감히 말씀드리는 거지만.. 혜성씨.. 분명 돌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쿡.. 고마워요..]
쓴 웃음을 짓는 민우..
[..그런데.. 당신은..]
[..아..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혹시 이야기 상대라도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쿡.. 그럼 전 이만..]
민우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선호.. 민우는 선호가 준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MST International Electric Company 한국지사 사장 이선호]
MST 한국 지사 사장..?
민우는 흠칫 놀란다. MST라면.. 세계적인 전자 회사.. 그런 전자 회사의 한국 지부 사장이.. 저 사람이라니..
<17>
### 날 알아주는 사람들.. ###
[헉.. 허억..]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고.. 또 달리는 혜성..
병실 앞에 다다랐을 땐.. 이미 밤이 늦은 뒤였다.
딸깍..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혜성..
[..엄마..]
[..혜성이니..?]
침대에 누워 힘겹게 혜성을 돌아보는 혜성의 어머니..
[..엄마~]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왈칵 솟아나는 혜성..
[엄마.. 흐윽.. 엄마.. 많이 아파?]
[..괜찮아... 엄마 괜찮아.. 우리 혜성이도 잘 지냈어?]
[으응..]
혜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오랫만에 해맑게 웃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아..]
순간 멈칫 한 혜성.. 민우의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어.. 친구네 집에서 지내면서.. 나 밥두 잘 먹구 잠두 잘 자구 했어..]
[그래.. 다행이구나..]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제..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맞아줄 혜성은 없다.
털썩..
민우는 지친 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후우.. 혜성아..]
혜성을 불러보지만.. 그는 없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미소짓는 혜성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선호씨의 말을.. 믿어도 될까..
니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지친 마음을 안고 민우는 눈을 감는다.
혜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똑똑..
[네.. 들어오세요..]
[혜성아!]
[어.. 진아..]
오랫만에 만나는 친구의 모습..
[그동안.. 잘 지낸거야..?]
목이 메었는지..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혜성은 빙긋 웃었다.
[응.. 잘 지냈어..]
혜성의 미소를 보자 마음이 놓이는 듯.. 진도 희미하게 웃었다.
[.자식..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혜성을 와락 끌어안는 진..
[..미안해.. 진아..]
[..그나저나.. 어머니는..]
[..자고 계셔.. 나가서 얘기하자..]
[으응..]
병실 밖으로 나간 두 사람..
[..그런데.. 너..]
임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건 진이었다.
[..이민우와.. 함께 있었다며..]
[..정혁이한테.. 들었어?]
[..응..]
처음에는 조금 놀라는 눈치의 혜성이었지만..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왜.. 니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거야..? 그것도.. 니네 회사를 위협한.. 이민우와..]
[그것 때문이야.. 자세한 건 말 할 수 없어..]
[..그래.. 그럼 더 묻지 않을게..]
[..고마워..]
혜성이 작게 미소짓는다.
자신의 속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고마워서..
<18>
### 두근거림.. 사랑의 시작.. ###
[..그런데.. 혜성아.. 이거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넌.. 그 사람.. 어떻게.. 생각하니..?]
[..누구..?]
[..이민우..]
[... ...]
혜성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진이 새삼스래 이런 질문을 한 이유..?
문득.. 그 날 밤.. 정혁이 술에 취해 들어왔을 때.. 술김에 중얼거리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진아.. 나.. 혜성이.. 사랑하는데.. 정말.. 사랑하는데.. 근데.. 그런데.. 그 사람이.. 혜성이 곁에 있는 그 이민우가.. 혜성이를 사랑하고 있어..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눈빛으로.. 혜성이를 바라보고 있었어..-
이민우가 신혜성을 사랑한다..
그럼.. 신혜성은..?
혹시나.. 혜성이 그를 사랑해서..
그의 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진은 생각했다.
[..모르겠어.. 아직은..]
혜성의 차분한 대답..
하지만 진은 읽을 수 있었다.
혜성의 눈에 담겨있는 혼란을..
혜성아.. 갈등하고 있구나..?
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느라..
..정혁이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음 날..
[으.. 음..]
어머니의 침대곁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던 혜성..
내가 잠이 들었었나..?
어머니도 자고 계신 모양이다. 혜성은 잠시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갔다.
진의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는다.
-넌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니..? 이민우..-
난.. 민우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나를 사랑한다 말하던.. 그를..
복도 벽에 기대어 눈을 감은 혜성.. 어렴풋이 민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너의 주인으로서 해 주는 마지막 키스였어.. 잘가..-
민우의 그 마지막 목소리가 미치도록 슬프게 들렸다. 혜성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그의 슬픈 딥 블루의 눈빛..
그가 그리워지고 있다.
그가.. 보고싶다..
이민우가.. 보고싶다.
[..민우야..]
가만히 민우의 이름을 되뇌어보는 혜성..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그리워졌다.
자신을 잡아주던 그의 손길이 그리워졌다.
자신에게 입맞추던.. 그의 입술이.. 그리워졌다.
주륵..
[!!!]
어느샌가 혜성의 눈에서 흐르는.. 또 다른 눈물..
신혜성은 어느샌가 이민우에게 길들여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민우를 사랑하는 거야..
<19>
### 네게 가고 있어.. ###
어머니의 퇴원 날..
혜성은 왠지 모르게 들뜨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를 보지 못한지.. 너무나 오래 되었다.
이제.. 그에게 갈 수 있다.
그에게 가고 싶다..
그가 다시 자신을 받아줄 지는 모르지만..
이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신혜성은.. 이민우를 사랑하노라고..
[엄마.. 혜성이 가야 돼.]
어머니는 더 묻지 않으시고 아들에게 미소지어 주실 뿐이다.
[..몸 조심 하거라.. 가끔은 연락도 하고..]
[..응.. 엄마도 몸 조심 해.. 아빠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어머니를 꼭 끌어안은 혜성..
[엄마.. 혜성이가 엄마 무지무지 사랑하는거 알지..?]
[그럼.. 우리 아들..]
지금 어머니에게서 처럼.. 민우에게도.. 그렇게 말하리라.. 혜성은 다짐한다.
Brrr...
두 번이나 벨을 눌렀는 데도 대답이 없다.
집에 없는 걸까..? 그치만.. 이쯤이면 집에 돌아와 있을 시간이고.. 민우의 차도.. 분명 있다.
혹시.. 그 사이.. 자신을 잊은 건 아닐까..
혜성은 기대 반.. 두려움 반..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초조함으로 가득 찬다.
살짝 대문을 건드려보는 혜성..
끼이..
[..? 문을 안 잠궜나?]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는 혜성..
[민우야~ 이민우!!]
민우를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혜성.. 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다.
어두컴컴한 집 안.. 왠지 뭔가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다.
[문도 안 잠그고 나갈 리가 없는데..]
분명.. 철저한 민우의 성격을 아는 혜성.. 민우가 집 안에 있을거라 생각하는 데..
[..으.. 으음.. 혜.. 성..]
[??! 민우니?]
민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간 혜성..
[..민우야!!!]
혜성은 경악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민우..
[..민우야.. 정신차려.. 민우야!!]
민우를 흔들어 깨우는 혜성.. 하지만.. 민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민우의 몸은 뜨거웠다. 굉장히 심한 고열인 듯..
당황한 혜성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민우야.. 너.. 어떻게..
이렇게 아픈데..
누구.. 한테.. 도와달라고..
민우의 옷을 뒤지는 혜성..(이 사람이 큰일 날 짓을!!)
민우의 지갑 속에 있는 작은 명함..
[..이선호씨..?]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무작정 전화를 거는 혜성..
[이젠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을테니까..]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주며 혜성을 달래주는 선호..
[고마워요.. 매번 도움만 받는 거 같고.. 정말 죄송해요..]
[에이.. 뭘요..^^ 살다보면 남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그런 거지..]
[그런데.. 어떻게 민우에게 선호씨의 연락처가..]
[아.. 이전에 어떻게 해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거든요.. 쿡..]
소리죽여 웃는 선호..
[참.. 그런데.. 민우는..]
[..아마.. 좀 무리를 한 것 같다는군요.. 피로가 많이 누적 된 모양이에요.. 끼니도 많이 거른건지.. 소화기관 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고 하고...]
[..왜 저런 지경이 될 때까지..]
[그건.. 외로워서가 아닐까요..? 혜성씨가 없으니까.. 혼자라는 생각을 잊기 위해서..]
[... ...]
혜성의 눈빛이 젖어들었다.
[..처음.. 민우를 대면했을 때.. 무척 차가운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혜성은 선호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민우를 무척이나 무서워했어요.. 늘 나한테 화 내고.. 소리치고.. 덕분에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치만 알았죠.. 본심은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이란 거..]
[..사람에게는.. 누구나 저마다의 사랑하는 방식이 있죠..]
[... ...]
선호가 혜성을 향해 살짝 웃어보였다.
[..어떤 사람은 그야말로 무한한 사랑을 베풀기도 하는 반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 자신의 마음과는 반대로 표출되는 것도 있죠.. 민우씨의 경우는 후자가 아닐까요..?]
[...글쎄요..]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그것을 숨기기 위해.. 겉으로는 강하게 보이려 하곤 하죠.. 때문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이.. 똑바로 겉으로 나오질 못하게 되는..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거죠.]
[그러고 보니.. 동완이도 그랬어요.. 민우는 어릴 적.. 가족 때문에 많이 상처받은 아이라고.. 그래서.. 내가 민우를 바꿔야 한다고..]
[..그래서.. 혜성씨는 지금 민우씨를 얼마나 바꿔놓았죠?]
[..네..? 그..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요..]
어색하게 웃는 혜성..
[솔직히.. 민우에게서 떨어져 있기 전에는.. 내가 민우에게 어떤 존재인지.. 내가 민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건.. 생각해 보지 않았었거든요.. 그치만..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적어도..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럼 된거에요.. 이제 그걸 민우씨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거죠..]
[쿡.. 고마워요.. 그런데.. 선호씨.. 이거 하나만 물어봐도 되요..?]
[..네.. 좋으실대로..]
[..선호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저나 민우씨를 도와주신 건지..]
[아.. 그거..]
선호는 빙긋 웃더니 혜성 곁을 지나.. 두 세 발짝 걸어나갔다.
[..당신이.. 내가 예전에 사랑하던 사람과 아주 많이 닮았거든요..]
[... ...]
그리고는 뒤 돌아서 혜성을 향해 씩 웃었다.
[..그래서.. 당신들은.. 꼭 사랑하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다음에 또 무슨 일 있으면 연락 해요..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그럼 난 이만..]
혜성을 향해 손을 흔들며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버리는 선호.. 혜성은 선호가 사라질 때 까지 그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고마워요.. 선호씨..]
병실 안으로 들어온 혜성..
민우는 자고 있는 것 같다. 못 본 새.. 많이 수척해 진 듯한 민우..
혜성은 민우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었다.
[..바보같이.. 왜 그렇게 혼자 힘들어해.. 너 걱정해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거야..?]
혜성은 민우의 손을 꼭 잡고는 살며시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차가울 것만 같은 그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다.
[..다들.. 혜성이 병실 지키는 신세나 만들고.. 너무해..]
조금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투정부리듯 중얼거리는 혜성..
[..민우야.. 나 너 일어나면 꼭 해 줄 말 있어.. 그러니까.. 빨리 건강해 져..]
[..무슨 말인데..?]
[..어.. 민우야.. 너.. 안 자고 있었어..?]
[조금 전에 깼어.. 너 들어올 때.. 그런데.. 할 말이 뭐야..?]
혜성을 바라보는 민우.. 혜성은 민우를 향해 살포시 웃어보인다.
[..사랑한다고.. 이 말 하고 싶었어..]
[..?!!!]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지.. 눈을 크게 뜨는 민우..
[..다시.. 한번 말해줄래..?]
<21>
### 이젠 함께 가는거야.. ###
[사랑한다고.. 신혜성이.. 이민우를 사랑한다고..]
[..정말.. 이지..? 나.. 믿어도.. 되는거지..?]
[..그래.. 정말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돌아온 거잖아.. 이젠.. 민우 곁에 있을게.. 이건 계약이 아닌.. 내 뜻이야..]
민우는 혜성을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 다시.. 돌아와줘서..]
내 인생에 한줄기 빛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너야.. 신혜성..
[..퇴원은 언제 한데..?]
[..이틀 후에..]
[나 참..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으구.. 또 일 타령.. 그건 퇴원 후에나 생각해.]
[네~ 알겠습니다요.]
똑똑..
[네.. 들어요세요~]
[나다.. 몸은 많이 좋아졌냐..?]
[어.. 동완아..^^ 어서와.]
[자식.. 그러게.. 그렇게 무리할 때부터 알아봤어..]
민우의 머리를 툭 치는 동완..
[..문정혁측의 움직임이 수상해..]
혜성이 잠시 마실 것을 사러 나간 사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아마도.. 그렇겠지.. 그 녀석도.. 혜성이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
[..그 때.. 혜성이랑 같이 녀석을 만났을 때.. 알았어..]
[..하여튼.. 이민우.. 눈썰미 하나는 끝내줘..]
[그래서.. 녀석들이 어떻게 하고 있어..?]
[..한가지.. 걸리는 게 있어.. 녀석들이.. 성운전자와 태일전자 측을 흡수하는 것 같아.]
[..성운과.. 태일을..?]
둘 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소기업..
전자계열에서는 무시 못하는 세력인데..
영월에서 둘을 흡수해서 전자계열의 세력을 키우면..
현재 전자시장점유율 30%인 우리 측의 손실이 크다..
어두워지는 민우의 표정..
[..녀석들이 합치게 되면.. 현재 12%인 녀석들의 점유율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성운과 태일에서 부품을 공급 받는 우리측 손실 또한 커.. 어쩌면.. 우리쪽은 전자를 아얘 포기해야 할 지도 몰라..]
[..알고 있어..]
[..일단.. 니가 퇴원한 후에 자세한 얘기는 하도록 하자. 그동안 어떻게 생각 좀 해봐.]
[알았어.]
젠장.. 돌아버리겠군..
영월이 설마 단기간에 그렇게 급성장할 줄이야..
성운과 태일을 동시에 흡수하다니..
문정혁.. 이 자식.. 본격적으로 해 보겠다는 건가..?
끼익..
때맞춰 들어오는 혜성..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어..? 아무것도.. 그냥 이것 저것..]
[..자. 커피..^^]
[고마워~]
[..민우 퇴원하면 내가 맛있는거 많이 해줄게.. 그러니까 병원이 좀 갑갑해도 참아.. 알았지~?^^]
고개를 끄덕이는 민우..
혜성앞에서 차마 근심어린 표정을 내비칠 순 없어서 애써 표정을 지워본다.
[..정혁아.. 정말 할꺼야..?]
걱정스러운 진이 목소리..
[당연하지.. 쿡쿡.. 이민우.. 니가 이겼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어둠속에서 빛나는 정혁의 눈빛이 날카롭다.
복수.. 그리고 애착에..
<22>
### 모든 위기에는 탈출구가 있다. ###
퇴원 이후.. 민우는 영월과의 신경전에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다.
[나 왔어.]
[이제 와..? 좀 늦었네..]
[어.. 일이 늦어져서.. 안 심심했어?]
[응..*^^*]
웃는 혜성을 보자 안심이 된 듯.. 민우도 웃었다.
[..밥 안먹었지? 내가 저녁 차려놨어.]
[알았어.]
마치 신혼부부인양 행복한 두 사람..
물론.. 민우에게는 떨쳐버리지 못하는 고민거리가 한가지 있긴 했지만..
[..아직도.. 무슨 생각.. 떠오른 거 없어..?]
고개를 가로젓는 민우..
[하아.. 미치겠군..]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었다.
[..혜성이는 잘 지내?]
[어? 으응.. 잘 지내.]
[혜성이한테 말 안했지?]
[..당연하지.]
[..천천히 생각해봐.. 나도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동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민우..
마주 앉아서 저녁 식사를 하는 두 사람..
[..왜그래? 민우야.. 맛 없어?]
[어..? 아.. 아냐..]
[..그런데.. 표정이..]
[..어..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 그럼 죽 끓여줄까?]
[아니.. 됐어.. 밥 먹을 수 있어..]
[..그럼.. 다행이고..]
민우가 내심 걱정 되는지.. 혜성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 TV라도 틀어놓을까?]
혜성이 TV를 틀었을 때.. 때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TV를 쳐다보던 혜성..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맞아.. 오늘 뉴스에서 저 얘기 매번 나오던데..]
[무슨얘기..?]
[..그.. 있잖아.. 한영이랑 예신이랑 이번에 새로 합작으로 컴퓨터 산업에 뛰어든다나..? 그러면 이번에 우리나라 컴퓨터 시장이 확 바뀐다구..]
[..합작?]
[..응.. 너두 알지? 한 두달 전쯤인가.. 예신이 법정 관리 들어갔잖아.. 근데 한영에서 이번에 새로 컴퓨터 계열에 손을 뻗는데 혼자 힘으로는 무리일 것 같으니까.. 컴퓨터 쪽에서 알아주는 예신과 손을 잡은거지..]
[..손을.. 잡는다..]
혜성의 말에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민우..
[... ...]
합작..
알아주는 쪽과.. 손을 잡는다..
[그래!!]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민우..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혜성아! 고마워!!]
혜성을 와락 끌어안는 민우..
[..아우.. 숨막혀.. 고마운건 또 뭐야..--;]
바로 동완에게 전화를 하는 민우..
Trrr...
-네.. 김동완입니다.-
[..동완이냐? 이제 방법이 생겼어!!]
-무슨 방법이길래.. 그래?-
[..손을 잡는거야..]
-..손을 잡다니..? 누구랑?-
[..쿡쿡.. 적임자가 있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민우..
마치.. 이번 게임의 승리를 확신하 듯..
<23>
### 위기탈출.. 하지만.. 아직은.. ###
금요일 저녁..
[..갑자기 인터컨티넨탈에는 왜 간다는 거야?]
[..사업상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누구랑?]
[..가 보면 알아.]
민우의 차를 타고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향하는 두 사람..
호텔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웨이터가 두 사람을 어느 곳으론가 안내했다.
특별히 마련된 장소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이야기 인 듯..
[..오랫만이군요..]
[..선호씨?]
혜성은 먼저 와서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호를 발견하고는 놀랐다.
[..사업상 이야기 할 사람이 선호씨였어?]
[..응..]
고개를 끄덕이는 민우..
[..영월이.. 성운과 태일을 흡수해 전자 계열 세력을 확장시킨다는 소리는 저도 들었습니다.]
[..물론.. 아마 MST측에도 적잖게 영향을 끼칠거라는 건..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선호..
[..그래서.. 민우씨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제가 제안 하나 하죠..]
[제안?]
[..MST와 우리 신영이.. 손을 잡는 겁니다.]
[..!!!]
뜻밖의 제안에 놀라는 선호.
[..아.. 물론 전자 계열에 한해서이지만..]
[..손을 잡는다.]
턱을 괴고 상념에 잠긴 선호..
혜성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어색한 지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선호씨네.. 회사와 민우씨네 회사가 손을 잡는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다음 날 아침.. 전국은 난리가 났다.
[..정혁아!! 문정혁!! 큰일났어!!]
아침부터 요란하게 정혁의 방문을 두드려대는 진..
[..아침부터 시끄럽게 왜 그래..?]
[..시..신문 좀 봐!!!]
진이 내민 신문을 본 정혁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MST-신영 세계 전자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손잡는다]
[... ...]
[..정혁아..]
젠장.. 이럴수가..
이건 말도안돼..
이제 겨우.. 녀석을 꺾었다고 생각했는데..
꾸깃..
[..이민우.. 이 자식.. 가만 두지 않겠어..]
정혁의 주먹 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나참.. 기자라는 것들은.. 대체.. 벽에 귀가 달린건지.. 비밀리에 진행한 건데.. 어떻게 알았지?]
아침 신문을 보고는 피식 웃는 민우..
[..민우 대단하다..^^ 신문에도 톱 기사로 나고..]
혜성은 민우가 내려놓은 신문을 집어들고는 사진에 나온 민우를 쳐다보았다.
[..민우는 사진발두 잘 받네~^^]
[..사진발..--;]
[..근데.. 어떻게.. 선뜻 선호씨가 수락을 했네..?]
[..그쪽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나보지..]
이제.. 문정혁 측에서 어떻게 나올지..
쿡쿡.. 갈수록 재미있어 지는데..?
<24>
### 위험한 결심 ###
[뭐? 미쳤어?!]
[..나 말리려고 하지 마..]
[..그치만.. 그러면 상처받는 건 혜성이 뿐이라는 거 몰라?]
[... ...]
정혁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알아.. 하지만..]
반짝..
날카로운 빛을 내뿜는 총..
혜성이 곁에 있는 사람이.. 다른사람도 아닌 이민우라는 건..
내 상식에선 용납할 수 없어..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몇일 후 있을 경영인 세미나에서.. 처리할꺼야..]
걱정스러운 한숨을 짓는 진..
[..이민우.. 언제 그런 생각을 다 한거냐..?]
[..쿡.. 다 혜성이 덕분이지 뭐..]
[..앙? 왜 내 덕분이야?]
민우의 말에 의아한 듯 되묻는 혜성..
[..선호씨를 알게 된 것도 너 때문이고.. 합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것도 너 때문이니까..]
역시.. 넌 내 천사였어..
날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결국.. 이번 일은 혜성이 땜에 풀린거네..--;]
[..뭐.. 그렇다고도..]
동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민우..
[..그럼.. 이제 그쪽에선 어떻게 나올지.. 짐작 가는 거 있어?]
[..아직은.. 하지만.. 어떻게 나오더라도 대결할 생각이야.]
경영인 세미나..
코엑스 오디토리엄 홀에서 열리는 거대한 회의.. (제가 입시설명회 들으러 간 곳입니다요..--; 거의 머.. 국회의사당을 연상케하는 규모..)
국내 내놓으라는 경영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국내 최대 규모의 회의이다.
[..혜성아.. 한 시간 내지 두시간 정도 걸릴 거 같다. 동완이랑 밖에서 기다려.]
[알았어~^^]
민우는 곧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고..
[..동완아..]
[어?]
[..나.. 왠지 불안한 거 있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혜성의 표정은 상당히 심각해져 있었다.
[모르겠어.. 그냥 여기 오는길에 내내 불안하잖아.]
[..쿡.. 기분 탓일거야..]
혜성을 위로해주는 동완..
[..그럼 다행이지만..]
회의 내내.. 민우는 정혁의 신경이 쓰였다.
마치 죽일 만큼 살벌한 눈빛으로 민우를 노려보는 정혁..
물론.. 겉으로는 태연한 척.. 신경쓰지 않는 듯 했지만..
분명.. 그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새로 발표된 MST와 신영의 합작 이야기가 화두로 제시될 때는 더욱..
젠장.. 문정혁 저 자식..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사람 괜히 불안하게 시리..
..이민우..
회의가 끝나는 동시에.. 넌.. 죽은 목숨이야..
절대 살려두지 않겠어..
<25>
### 널 위해서라면... ###
멍하니 앉아서 손만 꼼지락 거리는 혜성..
마치.. 무슨 대회를 앞두고 있는 어린 아이같다.
[..혜성아..]
[... ...]
[..혜성아?]
[어.. 어..? 왜..]
[휴우.. 너 지금 굉장히 초조해 보인다? 아직도 그것 때문에 그래?]
[응.. 그 기분이.. 영 사라지질 않아.]
혜성의 목소리에는 왠지 힘이 없다.
[혜성아. 너 혹시 예언자 기질을 타고났다던가.. 뭐 그런거 없냐? 머.. 꿈에 내일 일어날 일이 보인다던가.. 갑자기.. 미래가 보인다던가.. 그런거.. 쿡쿡..^^]
[머야? 동완이 너..--;;]
[하하.. 농담이야. 니가 하도 그러니까 나 까지 불안해지는 거 같아서 그런거지.. 자식..]
혜성의 머리를 마구 헤집는 동완.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회의가 종료되고.. 민우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따라 일어나는 정혁.. 그의 시선은 아직도 민우에 머물러 있었다.
멀찍이서 혜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민우를 쳐다보는 정혁..
그의 손이 천천히 안 주머니로 들어갔다.
철컥..
[..동완이 지금 화장실 갔느데 잠시 후면 올 거야..]
[어.. 그래?]
[..무슨 회의 한거야?]
[..어.. 이런 저런.. 이야기..]
그 사이.. 정혁의 총은.. 점점 민우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안오는거야?]
[..글쎄.. 화장실이 저 쪽이었는..]
고개를 돌린 혜성..
[!!!!!!]
순간.. 멀찍이 보이는 정혁의 모습과..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검은.. 총..
그 총구가 향하고 있는 사람은.. 민우..!!
[민우야!!]
혜성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는 민우..
타앙!!!!
장내는 소란스러워졌다.
갑작스런 총성과 함께.. 쓰러지는 그 누군가를 보고..
민우야..
민우야!!
뭐라고 말 좀 해봐..
응..?
나 지금 너무 답답해..
<26>
### 영원히.. ###
똑똑..
[네.. 들어오세요..]
하얀 병실 안에는.. 병실 안 만큼이나 새하얀 그가 있다.
[..혜성아.. 괜찮아?]
[..어? 응..]
희미하게 웃는 혜성..
[휠체어.. 탈 수 있겠지?]
[어.. 으응..]
조용한 산 속..
두 사람만이 나란히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휠체어 미느라 힘들지 않아? 나 괜히 왔나?]
[..아냐.. 힘들긴..]
휘이잉..
조금은 쌀쌀한 듯한 바닷바람..
말 없이 조그마한 무덤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잘 있었어? 정혁아..?]
이윽고.. 침묵을 깨고 조용히 입을 여는 혜성..
[..바보같이 왜 그런 짓을 한거야..]
혜성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왔다.
[..민우야..]
[어?]
[..정혁이 잘 있을까..?]
[..쿡.. 그래도.. 니가 살아있잖아..]
혜성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는 민우.. 혜성의 눈물을 살짝 닦아주었다.
[..고마워..]
[..아니.. 난 민우를 위해선 뭐든지 해 줄 수 있는걸..]
혜성이 작게 미소지었다.
설마.. 난 놀랐어..
문정혁이.. 그 자리에서 자살할 줄..
그 자리에서 민우를 밀치고 대신 총을 맞은 혜성..
자신이 쏜 총에 혜성이 맞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정혁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총으로 자살해버렸다.
혜성은 다행히 먼 거리여서 였는지.. 다리에 맞는 것으로 그쳤다.
물론.. 정신적 충격까지 더 하진 했지만..
다행히 회복세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혜성아.. 우리.. 여행.. 갈래?]
[..여행?]
[응.. 좀 멀리.. ..그 동안.. 너 너무 힘들었잖아..]
혜성을 꼭 끌어안는 민우.. 혜성은 민우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알았어..]
[..너 퇴원하면.. 바로 가자..]
[..조심해서 다녀와..]
[..알았어. 그동안 회사 잘 부탁해.]
[자식.. 지는 신나게 놀다 오고.. 난 뭐냐? 핏..]
틱틱대는 동완.. 혜성은 피식 웃었다.
[..혜성아..]
[어..? 왜?]
동완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는 혜성..
[..고맙다.]
[뭐가?]
[..그냥.. 민우의 친구로써.. 잘 다녀와~]
혜성의 머리를 툭~ 치는 동완.
[이띠..--++ 동완이 넘해..]
[..그럼.. 간다.]
[잘 다녀와라.]
민우는 동완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혜성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올 때 선물 사오는거 잊지말구~]
[..으이구.. 녀석..]
이제야 힘겨운 싸움을 끝낸 연인이 있습니다.
그동안.. 수 많은 눈물과 웃음이 함께 했겠죠..
이제.. 그들의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