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6. 경남 거제 계룡산 566m
기회가 주어지면 가보고 싶었던 산에 갔다. 날씨가 좋았다. 바람이 약간 차게 불었지만 봄내음이 나는 바람이었다.
선선함을 주었고 땀이 나지 않게 해서 좋았다.
거제까지 버스로 세 시간이 걸렸다. 11시 10분경 거제 공설운동장에 도착해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공원도 산뜻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으나 공원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포장도로를 조금 오르다가 이내 좌측 산길로 접어들었다. 상당히 경사가 지는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다른 때보다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았다. 20여명이 함께 출발했는데 오르막길이 시작되면서 먼저 가는 사람,
뒤따르는 사람간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상까지 계속 거의 오르막길이었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목에는
전망이 좋은 곳들이 있었다. 거제 바닷가에 설치되어 있는 조선소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거제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바다와 양식장들과 조선소, 시가지 아파트 숲이 조화를 이루는 듯한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1시간 30분 정도 올라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상의 양지바른 곳에서 선두로 올라 간 다섯이 정담을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은 더 아래쪽에서 점심을 먹는 것 같았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능선이 바위 길이었다. 정상에서 통신탑을 지나 포로수용소잔해가 있는 곳까지 능선 길을 가는데
울퉁불퉁한 바위로 된 길이었다. 지팡이가 짐이 되었다. 손을 잡아주어야 되고, 지팡이를 아래로 던져 놓고
네발로 기어 내려가야 하고, 앞에 간 사람에게 맡기고 네발로 기어올라야 하는 지점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에 전망이 좋은 넓은 바위들이 있어서 바다를 바라 보고, 산 아래 마을을 보고, 논밭을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보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갈 수 있는 것이 좋았다.
2008년 1월에 강진 주작산에 가서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 어렵게 다녔던 바위길이 자꾸 생각났다.
그 길과 비슷한 것 같았다. 다만 바람이 선선한 것이 다행이었다.
포로수용소의 잔해 건물이 있는 곳에서는 좌측으로 가깝게 하산할 수 있는 길의 표시가 있었으나 우리는 지도를 보고,
고자산치가 있는 곳으로 직진해서 계속 올라갔다. 약간 높은 봉우리를 지나니 바로 앞 내리막길 산등선이 온통 억새밭이었다.
가을에 오면 장관일 것 같았다. 지금은 억새가 모두 노란색으로 시들은 상태였지만 시간이 있으면 억새밭에서 싫컨
딩굴고 싶은 충동을 주는 부드러움이 가득한 넓은 곳이었다. 억새밭 사이에 고사목 한 그루가 고즈녁이 서 있었다.
고자산치에는 포장된 임도가 길게 있고 좌측으로 용산마을로 내려가는 표시가 있고, 임도로 가지 않고 산길로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었다. 숲속 등산로가 낙엽이 가볍게 깔린 부드러운 촉감을 주는 오솔길이었다. 어려운 바위길을 온 탓이었는지
그 오솔길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짧았다. 곧 임도로 나왔고, 포장된 임도를 따라 용산마을로 내려와서 우리의 하산지점인
백병원을 물어보니 먼 곳에 있었다.
백병원을 향해 가는 길은 거제시의 변두리지역이지만, 큰 길 옆으로 인도가 잘 되어 있고, 도로의 가로수가 싱싱한 종려나무였다. 따뜻한 나라의 어느 지역을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백병원 앞에서 버스를 만나 차에 오르니 뒤 따라 오던 사람들이 지름길로 먼저 내려와서 차에 타고 있었고,
우리와 같은 길을 온 사람 7,8명은 너무 늦어 버스가 데리러 가서 같이 왔다.
4시간 50분 정도의 산행으로 다소 힘들었지만, 다른 어느때보다 이번 산행에서는 말을 많이 했고, 또 많이 들었다.
자녀들을 뒷바라지 한 이야기, 대인관계에서 경험한 이야기,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 신앙문제 등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를 풀듯 폭 넓은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사람과 같이 다닌,
기분 좋은 하루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