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계에서 가장 긴 국가명을 가진 나라.
이 지역은 오랫동안 지역 지배권을 둘러싸고 경쟁해왔던 강력한 지역세력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이러한 영향들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유달리 풍부한 인종적·문화적 혼합 지역으로 만들었다. 이슬람교·동방정교·로마가톨릭교가 공존하고, 이 3개 신앙들은 3가지 주요한 인종 그룹인 보스니아 이슬람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에 각각 상응한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역사적·지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여러 인종으로 이루어진 국민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오랫동안 민족주의의 영토 확장 열망에 불붙기 쉽게 만들었다.
1918년 새롭게 건국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에 통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분리 이후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독립을 얻었다. 하지만 나라는 바로 더욱 확대된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1995년 12월 평화협정 조인으로 내전이 끝나고 이 협정에 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계-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세르비아계 공화국으로 분할되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많은 민족이 거주하지만 주요 집단으로는 인구의 2/5 가량의 이슬람교도, 1/3 가량의 세르비아인, 1/5 가량의 크로아티아인 등이 있다.
이 3개 민족들은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인종적으로 뚜렷한 구별이 없지만 세르비아인들은 대부분 정교회 교도로 키릴 문자를, 크로아티아인들은 로마 가톨릭교도로 라틴 문자를 사용한다. 이슬람교도들의 선조는 오랜 투르크(오스만 제국)의 지배 기간동안 이슬람교로 개종한 슬라브인이다. 역사상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민족들은 혼재된 양식 속에서 서로 뒤섞여 살아 왔는데, 이러한 혼재된 양식은 평화시에는 세계시민주의적 분위기를 부여했지만 또한 수많은 전쟁이라는 해악을 불러오기도 했다.
현재의 정치체제는 이슬람계·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 각각 1명씩으로 채워지는 3인 공동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의회도 민족별로 적절히 배분하고 있다.
모스타르 (Mostar)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가장 유명한 도시이자 자치제이며,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생생히 담겨있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슬람풍의 중세도시이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 바로 위 다리를 지켰던 "다리 파수꾼들"을 뜻하는 mostari로 이름이 지어졌다. 터키의 통치 동안, 다리가 건설되었고 모스타르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다리는 1993년 보스니아내전중 크로아티아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다리의 파괴를 명령한 사령관은 그 것에 대해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받음)
무차별적인 도시 폭격,인종 청소,집단 강간과 대학살등으로 대표되는 내전이후 11만명이 사망하고 220만명이 난민이 되었는데 이렇게 처절한 내전을 껶어낸 핵심지역이 바로 모스타르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크로아티아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세르비아인도 상당히 거주하고 있었으나 전쟁 이후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지금은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도시를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사라예보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디나르 알프스산맥의 2,500m의 석회암산들 사이의 깊은 계곡으로 네레트바강이 흐른다.
강 위에 높이 치솟아 올라 걸려 있는 이 아치는 건축학적 걸작으로서 보스니아의 역사를 감싸고 있다. 스타리 모스트(오래된 다리)는 1566년 발칸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의 유명한 황제 슐레이만의 명에 따라 건설되었다. '스타리 모스트'라는 이름과 도시의 이름인 '모스타르'는 다리 양쪽 끝에 건설되었던 탑과, 통행을 지키던 오스만 군인 부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탑과 병사들 모두 '모스타리', 즉 '다리의 수호자'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슐레이만에게 있어서 이 다리의 우선적인 기능은 자신의 군대가 달마티아 해변의 부유한 도시로 손쉽게 접근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다리는 또한 은이 풍부하게 산출되는 보스니아 내륙의 산악 지대와 교역을 수월하게 해 주었으며, 달마티아의 염전으로부터 귀중한 소금을 내륙 지방의 마을로 신속하게 수송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1993년 11월 9일, 1991년부터 유고슬라비아를 집어삼켰던 광포한 내전의 물결 속에서 다리는 크로아티아 포병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다리가 파괴되었다는 소식이 사라예보에 도달하자, 정부는 사라예보 역시 포위되어 공격당하던 상태였음에도 국가적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오래된 다리'의 파괴는 내전으로 인한 무의미하고 잔혹한 유혈 사태를 상징한다. 여러 해에 걸친 설전 이후, 유네스코의 후원을 받은 재건축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다리는 2004년 7월 다시 개통되었다.(다리의 파편들을 강에서 건져 올려 복원)
스타리 모스트 오른쪽 탑은 옛날엔 감옥으로,왼쪽건물은 다리통제소로 사용하였다.
예로부터 모스타르의 청년들은 청혼을 할 때 저 다리위에서 강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현재는 관광객들이 다이버에게 일정량의 돈을 주면 강으로 뛰어 내린다.
도로가엔 폭격으로 무너진 집들이 서 있다.
외벽은 총탄자국으로 내전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다리위에서 해마다 세계 다이빙 대회가 열린다
사진 오른편 다리아래 다이빙 연습장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