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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클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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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이야기(준) 스크랩 "자살할 용기로 열심히 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재운1045 추천 0 조회 102 14.12.26 17: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자살할지 모를 사람에게

* 자살 예방 업무를 하는 공무원, 봉사자에게

* 자살할 위험이 있는 가족, 형제, 친구, 애인이 있는 사람에게

* 자살자가 심약해서 그렇다는, 그래서 자살도 범죄라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 태양빛에는 자외선 B가 있다. 이 자외선 B가 피부나 눈동자에 닿으면

비타민 D와 세로토닌을 생성시켜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외선 차단제로 이 자외선 B를 거부한다.

자살률이 높아지고, 우울증이 심해지는 이유 중 가장 크게 작용하는 기전이다.

 

자살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자살하는 게 참 대단한 결단이고 어려운 일인데 그 용기로 살 생각을 하지 왜 자살할까?" 의문을 갖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안다. 그래서 자살율이 안준다.

그 생각을 고쳐야만 우리나라 자살률이 조금이나마 떨어진다.

 

우선 자살 프로세스는 이렇다.

경제적 빈곤, 갑작스런 이별, 신체적 고통, 모욕 등을 당하면 순간적으로 스트레스호르몬이 나온다. 

 

스트레스 요인 -> 대뇌피질 자극(여기서 처리되지 못하면) -> 2가지 방식으로 대처 ->

* 대뇌피질에서 처리되는 스트레스는 "그래, 다 그런 거야.", "인간들이 다 그렇지 뭐. 그놈이 특별히 나쁜 놈은 아니지." "할 수 없지 뭐." 등으로 합리화하거나 체념할 수 있는 것들이다. 훈련, 수련에 의해 조절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절에서 가르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란 이와같은 1차적이며 기초적인 것들이다.

 

(1) 편도핵(Amygdala ; 해마에 있는 동물적 감정 조절기관. 본능적) -> 호르몬 CRH 분비하여 -> 시상하부 자극 -> 시상하부(생체시계)는 교감신경계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에피네프린(Epinephrine)을 분비시키도록 한다.

 

* 에피네프린이 하는 일 ; 아드레날린이라고도 한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체내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즉 심장박동, 혈압, 호흡을 증가시켜, 혈중 지방산으로 재빨리 에너지를 생산해낸다. 스트레스 요인과 맞서 싸우도록 한다. 흥분하며, 과격, 용감해진다. 힘껏 싸우거나 미친 듯이 도망치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2) 편도핵(Amygdala) -> 호르몬 CRH 분비하여 -> 부신피질 자극 ->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Cortisol)을 분비시킨다.

 

* 코르티솔이 하는 일 ; 혈압, 혈당을 높여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대사를 촉진시킨다. 이때 면역 시스템이 떨어진다. 맥박과 호흡은 증가한다. 식욕은 억제된다. 소화에 쓸 에너지도 스트레스 해소에 쓰기 때문이다.그 에너지로 싸워 스트레스를 해소하란 의미다.

 

문제는 스트레스호르몬으로 체내 에너지를 총력 방출시켜주었는데도 해결이 되지 않을 때다.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코르티솔은 급히 두뇌를 자극하여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시켜 편도핵을 자극한다. 말하자면 구원 요청이다. 그러면 편도핵은 이 호르몬의 명령으로 CRH를 다시 분비시켜 에피네프린, 코르티솔을 또 분비시킨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두뇌에서 분비되는 쾌감 자극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이 줄어든다. 또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이 줄어든다. 그리고 감정 조절에 쓰이는 세로토닌이 줄어든다. 게다가 거듭 방출되는 코르티솔은 그 자체가 독이 되어 해마의 편도핵을 파괴시킨다. 왜냐하면 해마에 스트레스 요인들이 기억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잊게 하려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기억을 지워서 스트레스를 없애면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고, 이때부터는 공허감을 갖게 된다. 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지만 머릿속에서는 아무 생각이 없게 된다. 더구나 다량의 코르티솔은 두뇌 신경세포를 공격하여 파괴시키기도 한다. 나쁜 기억을 죽인다는 게 멀쩡한 신경세포까지 죽인다.

 

더구나 마지막으로 엔돌핀이 분비되면 자살에 따른 공포심마저 야릇한 안락감으로 변한다. 엔돌핀은 심한 부상을 당했을 때 통증을 줄이기 위해 분비되는 것인데, 우울증이 깊어질 때도 역시 분비되어 환자를 자살로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개의 자살자들은 이런 심신 상태에서 자살을 실행하게 된다.

자살 직전의 사람들은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조차 지운 상태이므로 허허 웃기도 하고, 갑자기 초연해지고 달관한 사람처럼 변한다.

 

따라서 늘 우울하다고 호소하던 사람이 술 한 하자면서 웃고 농담하거든, 배우자에게 쇼핑하고 싶다며 놀러나가자고 하거든, 고향에 한번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거든, 지체없이 신경정신과로 데려가 반드시 진단받고, 치료받고, 24시간 집중 관찰하기 바란다. 그러다가 아픔을 호소하고, 짜증을 내면 그때는 자살 위험이 줄어든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 '비참한 사람들'을 그린 영화

 

<동아일보 / 긴급복지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사람,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살>

 

* 살아보겠다고 체면 무릅쓰고 찾아간 사람을 복지공무원이 서류 미비로 거절했단다. 이 사람이 대단한 걸 요구한 것도 아니고, 공공근로라도 해서 먹고살게 해달라고 한 것인데, 우리는 이런 실수를 한다. 공무원도 자살 프로세스를 모르고, 또 직권 범위를 벗어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복지의 현실은 이처럼 암담하다.

 

생활고 50대 구청 찾아 긴급복지지원 문의… “서류 부족” 답변에 청사 8층서 투신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 동대문구청에서 중년 남성이 이리저리 건물 내부를 헤매고 다녔다. 힘없이 터벅터벅 계단을 올랐고 술에 취한 듯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제자리에서 고민하듯 머물러 있는 모습도 목격됐다. 1시간 가까이 건물 여러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남성은 오후 5시 30분경 8층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어 복도 끝을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이 남성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20분 뒤 구청 건물 옆 좁은 인도 위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조금 전까지 구청 이곳저곳을 헤매던 바로 그 남성이었다. 숨진 사람은 구청 근처에서 목욕탕 구석을 개조한 월세방에 살던 이모 씨(58)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이날 오후 4시경 구청 3층의 복지정책과를 찾았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수년간 월 30여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그러던 중 더이상 지원금으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공공근로에 지원키로 했다. 직접 돈을 벌어 자립하기 위해서다. 올해 5월 그는 기초생활수급을 해지했다. 그래야 공공근로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청자가 많아 내년 2월에야 순번이 돌아온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도, 공공근로의 끈도 떨어져 생활은 더 어려워졌고 한 달 30만 원인 방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10월엔 27만 원을 냈고 11월 치는 5만 원밖에 내질 못했다. 이달 방세는 한 푼도 못 냈다. 주인의 눈치 탓에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씨는 어디선가 들은 긴급복지지원제도에 마지막 희망을 건 듯하다. 긴급한 상황에 놓인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제도다. 대상자가 되면 6개월간 월 39만9000원을 받을 수 있어 당장 방값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어렵게 마음먹고 24일 구청을 찾았지만 그는 빈손으로 돌아섰다. 긴급복지지원을 받으려면 6개월 이내에 일한 경험을 증명할 ‘근로확인서’가 필요했다. 담당 공무원은 “다음에 서류를 챙겨 오면 신청을 받아주겠다”고 설명했다. ‘다음’은커녕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었던 그는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담당부서를 나오고 한 시간 가까이 구청 곳곳을 돌아다니던 그는 8층 복도 끝 가로 70cm, 세로 180cm 크기의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현장에 유서는 없었고 창틀에 찍힌 이 씨의 발자국만 발견됐다.

이 씨는 가족과 왕래 없이 홀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혼인 이 씨의 가족은 82세 노모와 여동생(56)뿐이다. 다들 형편이 어렵다 보니 같은 동대문구에 살면서도 왕래가 거의 없었다. 동생은 경찰 조사에서 “2년 전 오빠가 전화를 걸어 ‘5만 원만 보내 달라’고 해 부쳐준 것이 마지막 기억”이라고 진술했다. 얼굴을 본 것은 4년 전이었다. 그때도 이 씨는 “3만 원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고 동생은 2만 원을 더해 5만 원을 쥐여 보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전해진 비보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노모와 함께 병원을 찾은 동생은 빈소도 차리지 못한 채 발인 일정만 정하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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