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예배를 마치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공원에서 매미가 울어댔습니다.
저는 혼자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매미는 무슨 할 말이 많아서 밤이 되어도 열정적으로 소리칠까?’ 아니면 ‘낮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낮을 가렸다가 조용한 밤에 하소연이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매미에게 무슨 신나는 일이라도 생겨 목청을 높여 노래하는 것일까?’
아내는 매미가 시끄러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미는 소리가 왜 저렇게 크냐?’ ‘매미를 어떻게 쫓아버릴 수 있을까?’ 그래서 제가 ‘매미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더나?’ ‘혹시 당신 마음이 시끄러운 것은 아니가?’ 라고 말했습니다.
어릴 적 시골집에는 큰 살구나무가 두 그루 있었습니다. 살구나무의 그늘은 온 식구가 점심을 먹는 그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네를 매어 타는 놀이터였습니다. 새콤하고 달콤한 살구를 통해 간식거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채를 들고 나무에 올라가서 매미를 잡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잠자리채를 들고 산으로 들로 매미를 잡으러 다니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 땐 매미 소리는 저에게 아름다운 노래였습니다. 저는 ‘나도 하루 종일 노래 불러도 목이 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음과 저음으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실 매미는 태어나서 열흘 정도밖에 살지 못합니다.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을 살면서 작은 몸으로 온 몸을 불태우며 소리 지릅니다. 매미는 자신이 할 일을 온 몸으로 노래 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매미 소리를 듣기 싫어할까요? 물론 매미 소리가 큽니다. 그러나 매미와 나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내가 매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내 마음이 복잡하고, 시끄럽고, 화난 것은 않을까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자신의 인생을 즐길 권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즐겨선 안됩니다. 예수님은 남에게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고난 당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 수는 없을까요? 내가 평화롭지 못한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평화로우면 매미 소리가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들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