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 컷
1. 20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지옥의 묵시록>이 ‘파이널 컷’이라는 이름으로 재상영되었다. 그동안 스틸컷이나 부분적인 내용만을 접했던 것을 이번에는 제대로 관람할 수 있었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느낌은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이후의 피로처럼 신체를 지배하였다. 인간의 광기, 전쟁의 무의미한 살육, 통제하려는 욕망, 광신적인 순종 등 인간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부정적 요소들이 뒤섞이며 정신적 에너지가 급격하게 소모되었다. 21세기 빠르게 변환되는 속도있고 경쾌한 영화 문법과는 다른 20세기에 만들어진 묵직하면서도 직접적인 내용과 감정의 전달은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영화를 만나는 느낌을 주었다. 대면하기 부담스럽고 피곤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진실과의 불편한 만남이었다.
2. 영화는 군의 지시를 어기고 독자적으로 캄보디아 정글에서 활동 중인 엘리트 군인 ‘커츠 대령’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동하는 ‘월라드 대위’의 동선을 통해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전쟁의 공포에 빠져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이상적인 흥분에 몰두하는 괴이한 인간들이 모습이 전개된다. 월남전의 참상은 무자비한 폭격을 통해, 또한 그것에 저항하는 베트콩들의 테러를 통해, 파괴되고 폭발하는 정글의 비극 속에서 재현된다. 그런 와중에 부하들의 안전을 무시하며 해변에서 보드를 타려는 비상식적인 지휘관의 모습이, 오해 때문에 학살당하는 베트남인들의 절망이 등장한다. 생생한 전투 장면보다 오히려 전쟁을 조롱하고 전쟁이라는 광기의 무대에서 정상적인 행동을 잃어버리고 미쳐 날뛰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통해 전쟁은 고발되고 있다. 타인의 나라를 공격하면서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자들의 전쟁이다. 아니 질문을 포기하고 행동에만 몰두하고 있는 ‘즉물적 존재’ 들의 난장판이었다.
3. 영화는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베트남에서 자기의 권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싸우고 있는 프랑스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직도 ‘제국주의적 망령’에 휩싸여 있는 유럽의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지휘관은 베트남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강변한다. 타국을 침략하고 그곳을 장악한 폭력도 오랜 시간이 지나, 빼앗은 땅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인식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심각한 오만으로 전환된 것이다. 거기서 만난 프랑스 여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영화의 또 다른 주제를 예고한다. “인간의 마음은 두 가지예요. 사랑하는 마음, 죽이려는 마음”
4. 커츠 대령을 만난 윌라드는 피로에 찌든 커츠를 발견한다. 원주민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지만 커츠는 혼돈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전쟁을 일으키고 살육을 명령하면서도 겉으로는 전쟁의 추악함을 감추려는 지도자와 장군들의 위선을 못견뎌하고 전쟁을 증오하면서도, 그 또한 원주민들의 신으로 군림하면서 그들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츠가 끊임없이 되새기는 ‘공포, 공포’라는 말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에 대한 두려움이자, 그런 전쟁 속에서 파괴되어 가는 인간의 야만성의 확인에 따른 결론인지 모른다. 더 큰 두려움은 그런 인간들의 위선과 광기를 비난하면서도 오히려 더 큰 광기에 빠져있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인지 모른다. 결국 커츠는 원주민들의 희생제 동안 윌라드에게 죽음을 자처한다. 죽이러 온 자는 결국 명령을 완수한다. 어쩌면 그것은 커츠에 대한 월라드의 사랑의 마지막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영화는 죽인 자도, 죽은 자도 모두 전쟁의 비극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짙은 어둠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개인은 전쟁이라는 ‘지옥’ 속에서 무력한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 이 영화는 월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 전개의 모티브는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핵심>을 원작으로 한다고 한다. 아프리카 콩고를 배경으로 한 <어둠의 핵심>은 서구 제국주의의 위선과 인간의 광기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아야겠다.
첫댓글 인간의 광기!
역사의 퇴적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