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내 것 인양 끝까지 육체를 소유하고 싶어서 별별 짓을 다 하는 인간의 소유욕이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로 자연에 역행해 엄청난 현실적 재난을 받고 있다. 온 산야가 무덤으로 점점 뒤집여 싸여 과연 이곳이 인간이 사는 자연 동산인가 싶을 정도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자연 그대로 모든 것을 그 자체에 내 맡겨야함에도 우리 자신의 끝없는 욕심으로 썩어서 없어저 버릴 육신에 맹종되어 지나친 허세를 부려 육신과 영혼이 분리된다는 종교적인 면에 너무 치우쳐 육체에 지나친 집착을 한 나머지 몇 십년 후면 다 사라질 무덤을 위해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작태를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다.
국토가 작은 영국에서도 묘 재활의 문제에 봉착하였다고 전한다. 즉 무연고자의 (2년 이상 소식이 없는)묘에 대하여서는 그곳을 2층식으로 만들어 그 좁은 땅의 효율을 넓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묘의 처리는 크나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후손의 갈 길은 참으로 암담한데, 이 지구의 면적이 장묘에 아름다운 삶을 위한 터를 잠식시키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문제가 걱정이 안일 수 없다.
일평생을 한글사랑 운동에 바쳐왔고 안과 의사이자 한글 기계화 운동가 공박사가 생전에 “사람은 죽어 빈손으로 간다. 장기를 기중하려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무 것도 없이 흙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묘자리로 땅 한평을 차지하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게 낫다”라고 전해진다.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며, 유언으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해부학교실에 시신을 기증했다.
죽음의 신비성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는 죽은 육신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죽은 육신을 살아 있는 육신보다도 더욱 정중하게 더욱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장례식의 장엄함도 결국은 시신에대한 예우이며 한편으로는 또 다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표시이기도 한 것이다. 이 두려움의 대상인 시신을 의학교육용으로 기증한다는 생각을 보통사람들이 쉽사리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신에 관한 한 의식의 전환이 절실한 때라고 생각이 든다.
휴거소동으로 기독교계에서 시신기증운동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적이 있는데 이것은 지극히 잘못된 신앙관임을 새삼 지적한다. 우리의 부활은 소위 썩어 없어질 육신의 부활이 아님을 잘 모르는 일부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현상이었던 것이며.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육신을 의학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총체적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의학교육 중 해부학 실습의 중요성을 간파한 분이라면 시신기증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사랑의 실천 운동인지를 깨달았을 것으로 안다. 죽어 없어질 한 육신이 질병으로 죽어 가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진정한 의학교육의 자료가 될 때 성경이 말하는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의 진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시신기증의 의의 시신기증이란 본인의 유언이나 유가족의 뜻에 따라 아무런 조건과 어떤 보상 없이 해부학 교육과 연구를 위하여 죽은 후 몸을 내놓는 것을 말한다.
시신기증은 정상적인 의학교육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의사를 만들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며. 기증인의 훌륭한 뜻은 사회를 맑게 하고 그 뜻을 이해한 유가족들은 돌아가신 이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되며, 유가족들은 장례절차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며, 사회적으로는 묘지를 없애 우리 산을 아름답게 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시신기증은 단지 교육에 필요한 시신부족을 해결하는 데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의사로서 필요한 마음가짐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신기증은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의사를 길러내는 데 밑거름이 되어 우리의 건강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는 고귀한 일이다.
인간은 무덤을 만드는 최초의 동물이 됨으로써 그 장소가 사람들의 성(聖所)였다는데, 앞으로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 없어도 스스로 각자의 일신을 스스로 처리하는 그런 시기가 온 듯하다.
아브라함 링컨은 평소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고 전한다.
내 마지막 날 나를 땅에 묻고 돌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이런 말을 듣고 싶다고 “아브라함 링컨, 당신은 땅에서 잡초를 뽑고 꽃을 심다 떠난 사람이군요.” 라고 이렇듯 생존에 아름다운 생각들을 또 인류를 위한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한평생 머물다 떠난 자리는 소나무의 옹이처럼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남게 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이름 남길 만큼 큰일은 못했으나 다른 사람에게 미약한 도움이라도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십 수 년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시신기증에 대한 서약을 했다.
시신 기증으로 인체연구를 위해 실험하여 질병을 알아내고.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인류에 큰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해외로 갈 수도 있고, 자라는 아이들이 앞으로 내 나라 안에 산다는 보장도 없고, 또 한 어느 나라에 가서 살지도 알 수 없는 현실에 굳이 매장문화에 아이들을 묶어 둘 수 없지 않을까 싶어서 이런 문젠 주위 사람들에게도 진언을 하고 싶다. 이 세상 떠날 때 이름은 남기지 못해도 그나마 의학계에 한줌 밑거름이 되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하다.
또 한편으론 죽어서 자식에게 짐 되기 싫어 시신 기증을 신청한 것이다.
나의 이런 행동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시신을 기증한 이들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이 묻어납니다.” 라고 말들을 한다.간혹 안치장소에 기념일이 있을 때 가보면.
그곳 소장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을 위한 선택을 하신 분들을 위한 곳"이라며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시신 기증이라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하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해 주며 나름대로 칭찬을 한다. 하지만 칭찬을 받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면서.실제로 시신기증을 받는 전국 50여개 의과대학에서는 8~15명가량의 학생들이 1구의 시신으로 1~2년가량 실습을 진행하고 실습을 포함한 연구 등으로 대학들은 연평균 50~100여구의 시신을 보관 관리한다고 말한다..
훗날 아름다운 의사가 되길 원하는 이들에게 남겨 놓고 싶은 말은
점차 상업화 되어가는 의술이 안타깝다.
이 한 몸 의학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여러분의 심장에 늘 살아있길 기대하며
부디 초심을 잊지 않는 봉사자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이로써 나의 장례 문제는 끝이 났다.
낙조처럼 떨어지는 가랑잎, 인생 낙조가 있기에 노을은 더 곱지 않을까.
이제 숙제를 끝내니 마음이 깃털 같아, 보기도 좋고,
다들 뭐 때문에 미련을 못 버리고 아등바등 살았는지.
세상은 밝고 아름답다.
이 순간 떠오르는 시가 생각난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는 천상병의 시가 마음에 와 닿는다.
살아서 못한 사랑과 헌신을 죽어서 보상받으려는 듯 자신의 욕망 때문에 거창한 묘를 조성하면서까지 천만년의 소유에 급급한 인간상이 도처에 우리를 울리고 있다. 대를 이을 일들이라면서 죽어서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에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갈지 한심스러운 일이 안일 수 없다.
자신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고 그동안 잘 쓰고 입고 있던 옷을 스스로 정중히 이 세상에 정리하고 되 돌려주며, 떠나주는 것이 바람직함이라 생각 든다.
살아 있을 때가 우리들 인식 문제지, 의식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그 육체와 영혼의 길은 당연히 불리 시켜서 홀가분한 처신을 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도 다른 방법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해서 나는 시신을 기증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알지 못하는 병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여 껍때기 뿐인 이 육신을 시험의 도구로 활용하여 모든 이에게 도움의 길로 나서는 것이 죽음을 앞에 둔 우리들의 마지막 후손을 사랑하는 행동이 안일까 싶다.!
매장하여 다 썩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육체가 당연히 흙으로 돌아가길 바라면서 이 길이 오직 죽은 이들에게 대하는 가장 선행이라고 믿게 한 그 당시의 종교적 사상이 오늘날 까지 자주 변천하는 풍습에 나는 혼민 안인 혼돈 하면서 이제는 현실적이고도 실질적인 매장문화를 혁신 하고 싶어 이렇게 나의 갈 길을 결정한 것이다.
살아서 다 못한 사랑
훗날 친구에게
나 안인 내 것을
한구의 표구가 되어
인간의 참 정으로
불행한 이에게 주고 나면
나 더 무슨 욕심이 있으리,
좁은 땅에 홀로 위세하며
영원토록 호화 묘 장식하고
지나친 명당자리에 온 재산 탕진 후
육신과 영혼을 끝까지 집착한 나머지
후손이 그곳을 찾을 때
허술하고 파해처진 장소를 보고
한탄하는 모습이 바로 눈앞에 아롱거린다.
병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맡기고 나니, 그리도 홀 가분 하고 정리된 나의 정신 는 하늘을 날아 끝없는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