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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에서의 종강!
정년을 앞 둔 사람이 마지막 수업 시간을 맞으며 어떻게 마무리를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 시간이 여러분과의 마지막 만남이다. 그 동안 내 강의를 경청해 주어 고맙다.’ 이건 아니다. ‘아무 말 없이 강의 진행하고, 이게 나의 마지막 강의였노라고 마음 속으로 자족하는 것이 어떨까.’ 그건 너무 싱겁고 종강의 의미가 없다. 그래도 내 생애 교단을 이어왔고, 정년을 하게 되면 다시는 강단에 서지 못하게 될 터인데 좀 더 의미를 붙여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이 되도록 해 보자.
종강을 앞두고 마지막 남기고 싶은 추억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수업안을 작성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그리고 내 캠코더 두 대를 동원하여 마지막 수업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1학년 학생들과는 교육심리학 강의를 마치며 방학중에 이 책을 읽으면 더 깊은 의미를 알게 될 것이며 자신을 위하여, 유아교육을 위하여 예비교사로서 최선을 다 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들에게는 정년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3학년생들은 좀 다르다. 3년 간 지도교수였으며 6개월 후면 졸업이 될 직전 교사들이기 때문에 준비한 수업과 수업기록을 하려는 것이다.
과목을 종강하고 나의 마지막 강연 20분을 기록하기 위하여 캠코더 한 대는 나를 향하게 하고 다른 한 대는 학생들을 향하게 설치한 다음, 나의 ‘아름다운 교단’이라는 주제를 영상으로 내 보냈다.
아름다운 교단. 나의 교단 여정(1961-2008)은 이러하다. 나의 강의를 받은 수강생을 헤아려 보니 무려 9,500명이다. 초등 1,100명, 중등 900명, 유아교육과 4,000명, 방송대학, 1500명, 연수원 500명, 보육교사 1,000명, 대학과 대학원 500명 등.
교단 초기 10년은 ‘고향사랑’교육기간이었다. 입시교육 열풍,l 교과중심/생활중심 교육과정의 복합, 행동주의 방식의 교육 그것이었다. 후 10년은 ‘학문사랑’ 기간이었다. 광주에 전입되어 비로소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고 교육대학교 부속초등학교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2년 간 중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대학에 출강하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동강사랑’ 25년이 되었다.
우리 유아교육과에서 강의한 25년은 의미가 있어왔다. 5년씩 나누어 보니 1기는 교육방법 연마기, 2기는 대학 운영 참여기, 3기는 대외 연수활동 지원기, 4기는 학과운영 충실기, 5기는 교육방법 보급기였다.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한다. 그것은 내가 아니면 수행할 수 없는 전문화된 직종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교육격언을 음미해 보라. 우리는 연수활동과 수업연구, 그리고 평생학습을 통하여 전문성을 높여가야 한다. 학교에 학생이 있어 우리는 존재한다. 참다운 교사는 열정, 온정, 공감, 신뢰, 경청, 정직 그리고 일관성을 가지고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본다. 미래를 위한 교육은 학생의 가소성과 개성을 존중하며 기초 기본교육에 충실하고 인성 교육, 세계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들의 사고는 닫혀있는 경우가 많다. 유아들, 우리의 미래인을 지도하는 교사들의 사고는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이 나의 마지막 강연 요지.
제자들은 조용히 경청했다. 물론 박수를 보내며. 나로서는 의미를 부여하는 20분 강연이었으나, 학생들에게 얼마만큼 와 닿았는지는 미지수다. 내 자신의 위안을 얻은 셈인가.
다음 날, 다른 반의 수업이 종료되는 순간, 3학년 학생들 모두가 모였다. 물론 박 교수(유아교육과)의 예고로 이루어진 이벤트인 것 같았다. 교탁에는 축하메시지가 담긴 꽃바구니와 케익이 놓이고 학생들이 기립했다. 동료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 헌정시가 낭송되고 두 교수님과 학생들의 꽃다발이 이어졌다. 나는 엉거주춤 행복한 모습이었으리라. ‘스승의 은혜’를 노래하고…. 분위기가 석별의 정이었다. 박 교수는 눈물까지 보이고 몇몇 학생은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 아름다운 교단을 지키면서 여러분과 같은 아름다운 학생들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교단을 마감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긴 세월 수업을 하면서 한결같이 수업시간을 지루해 하지 않았던 것은 여러분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쁜 날 웃어주기 바란다.” 우리는 웃으며 촛불을 불었다. (2008.6.10)
‘오래오래 행복한 누이’
이주희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금명간에 대학 스튜디오(영상 제작실)에서 찾아 갈 테니 어머니 정년퇴임기념으로 축하의 말씀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님 몰래 조촐한 퇴임축하를 하려는 자녀분들의 뜻을 헤아렸다. 고마운 일이고 대견한 기획이었다.
축하의 말을 구상했다. 우선 교수님을 만난 지 25년, 유아교육과 출강으로 뵙게 된 영광, 편안한 인간관계, 합리적인 일 처리, 배려와 봉사심, 꼿꼿함과 일관성 등등. 바로 다음 날 제작진이 연구실에 들이닥쳤다. 물론 오전 중 예약이 되어 4시경에 도착한 것이다. 두어 번 연습 후 본격적인 녹화가 진행되었다.
「김필식 이사장님과 인연을 갖게 된 지 만 25년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제가 소속된 유아교육과에서 강의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더욱 가까운 자리에서 모시는 영광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사장님은 저희에겐 어려운 관계이시지만 항상 따뜻한 정을 주셨기 때문에 한 번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포근하신 분입니다. 바쁘신 업무가 산적되어 있어도 차분하게, 차근차근 합리적으로 처리하시는 모습도 어른다우셨습니다. 또 많은 분들에게 끊임없이 배려를 아끼지 않으시고 특히 하부에서 일하는 분들께 칭찬과 격려와 용기를 주신 분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공정 무사하십니다. 초지일관 꼿꼿한 분이시라 시류에 흔들리지 않으신 분이기도 합니다. 정년 이후라도, 그 모습을 이어가셔서 아름다운 스승으로, 어진 어머님으로, 이 사회의 참된 지도자로 기억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공자님 말씀대로라면 칠순이면 종심소욕불유구라 하였으나, 작은 일들은 자손들에게 맡기시고 이사장님 말씀대로, 하루를 이틀 사흘로 연장하며 세상의 소금과 등불이 되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년을 축하합니다.」 ‘오래오래 행복한 누이’가 주제인 정년퇴임기념 만찬이 시작되었다. (2008.6.14.18:00) 조촐한 모임이었다. 가족, 대학교의 총장 및 보직교수 몇 분, 우리 대학 학장님과 보직교수 몇 분, 그리고 유아교육과 교수들, 광주여고 동문 몇 분, 친지 몇 분, 도합 100명 미만.
정작 주인공이신 이사장님(교수)은 최근에야 자녀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 편 기쁘기도 하지만 총장님(남편)도 가신 마당에 빈자리에서 축하를 받기가 죄스럽고, 초대 손님들을 가리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이니 없던 일로 하라고 하셨지만, 이미 기획된 일인지라, 초대 대상을 본인보다는 나이가 어린 분들로 하라고 당부하셨다는 것이다.
시종 화기만당한 분위기에 모든 이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채워 주었다. 동영상 상영, 학장님의 축사, 본인의 감사의 말씀, 가족 대표 인사, 가족의 공연, 가수의 찬조 출연, 축배와 만찬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럽고도 행복한 모임. 아드님과 사위분들의 중창 ‘오래오래’, 따님들과 며느님의 중창 ‘나는 행복한사람’. 동신대학교 학처장님들의 중창 ‘누이’가 어우러져 ‘오래오래 행복한 누이’가 되었다.
그런데, 동영상 첫 화면에 나의 축하 메시지가 떴으니, 이찌나 당황하였던지…. (2008.6.14)
나는 행복한 사람(이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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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지막 강의가 있으시다는 말씀을 듣긴 했지만. 행복한 종강이셨으리라 생각돼요. 아버진 참교사니까요. ^^ (제가 홍서방만나던 당시 즐겨 부르던 노래가 나와 깜짝놀랐답니다.)
눈물이 다 나네여..훌륭하고,참된 스승이신 자랑스러운 울 아빠!!!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