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공광규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이팝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또 다 못 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 앉고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아까시나무 가지에 앉다가 그래도 남은 눈은 찔레나무 가지에 앉는다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만 알고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는다 https://brunch.co.kr/@happyreading/26
<흰 눈>에는 눈의 여정이 담겨 있다.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벚나무 가지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았다가 이팝나무 가지에도 앉는다. 이팝나무 가지에 다 못 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도 앉는다. 그러다가 아까시나무 가지에도 앉고, 찔레나무 가지에도 앉는다.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으면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 알고 할머니의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내려앉는다. 할머니 성긴 머리 위에 내려앉은 흰 눈,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고 향기롭다. 매화나무로 시작하여 찔레나무를 지나 할머니 성긴 머리 위로 가만가만 내려앉는 눈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우리의 성긴 머리에도 하얀 세월이 내려앉아 있다. 공광규 시인의 시 <흰 눈>은 주리 작가의 그림을 만나 시 그림책 <흰 눈>으로 출판되었다. 그림책을 기획한 바우솔 출판사는 어린이들이 그림책 <흰 눈>을 읽고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순환이 가져오는 아름다움, 더 나아가 세월의 흐름을 이해하며 어른으로 성장해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내리는 눈과 더불어 시 그림책 <흰 눈>도 꼭 읽어보기 바란다.
※ 이 글은 한국성서대학교 <코코스>지에 ‘임경미의 토닥토닥 시’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는 임경미선생님의 단상(斷想)으로, 2024년 12월호의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