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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 히브리서 저자는? 저자 미상-바울~이유는 사상과 문체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유대인-율법에 정통한 사람/ 유대인들은 율법에 능통/ 성전 제사~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었다.
자기와 같은 사상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과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은 레위지파로 아론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백성을 위한 제사를 드리기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속죄제사를
반드시 수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뿌림으로 자기를 정결케 했다. 레 8장 번제~
이후에 제사장으로 위임받아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창 29장 레위는 야곱의 3째 아들-연합-의미
특별히 레위지파는 하나님과 연합된 자로 하나님을 섬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헌신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로 다윗 후손 오신 왕!
창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시편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 7: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히 7: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대제사장,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다.
죄와 허물이 없으신 분, 자기 자신의 죄를 위한 속죄제사가 필요없는 분.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서 오신 대제사장이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일컬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속죄제물은 흠과 티가 없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대제사장이다. 친히 속죄 제물되심.
히 2:6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시 8:4 천사=하나님 혹은 천상의 존재=하나님보다 잠깐 못하신 상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계시의 비밀이다.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간과 똑같이 되셨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의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으셨다.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셨다.
구약에는 제물을 잡고 피를 흘렸다. 그 피를 제단 앞에 쏟았다.
지성소 위에 피를 부렸다. 제단 뿔에 발랐다.
하나님 아비지께서는 그 피를 보시고 인간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셨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그 피를 보고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는 자의 죄를 용서하셨다.
사람이 죄사함을 받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제물되어 주심으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 참 신 = 인간을 위해 죽으셨다.
기독교는 세상 종교와 다르다. 신이 인간을 군림 다스림 권위를 행사
그러나 기독교는 무한하고 능력많은 신이 유한한 인간. 죄인들의 손에 죽임 당함.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 십자가의 비밀/ 복음-믿음의 실체
세상에 이런 신이 참 신인가? 성경은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어린 양!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누구를 위해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제물되게 하셨다. 아버지의 진한 사랑, 가이없는 사랑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희생이다. 헌신이다.
*국제시장/ 배경~흥남철수~북한 임시수도 강계 있는 임시수도를 공격하기 위해 미해병대 1사단이 진격하는 중에 중공군의 매복에 걸렸다. 중공군에게 완전 둘러싸여 시시각각으로 포위망이 좁혀온다. 천신만고 끝에 포위망을 뚫고 피난민 10만여명/ 군인 10만여명이 철수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은 영하 30도 얼어죽는 사람이 무수히 발생했다.
미군 유해 발굴 조사단이 99~05 북한에서 유해발굴-하와이 정밀감식
12명이 동양계 판명-지난 주 부산에서는 그의 조카에게 극적/신원확인증/위로패/태극기 전달/ 21세 다른 형제를 대신 캬튜샤 입대/ 1950.12.6. 장진호 전투 사망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차가운 동토에서 전사한지 6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22천KM 먼거리를 돌고 돌아왔다. 임병근일병
다른형제를 대신하여 그는 자신의 몸을 바쳤다. 그리고 죽었다. 그는 흙이 됨
그는 조국을 위해 희생했건만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가족을 위해 21세의 청년은 자신의 한 몸을 던졌다. 숭고한 희생이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인간의 죽음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다시 살아나셨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의 희생과 헌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나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 생명으로 다시 사셨다.
그분은 먼 길을 돌고 돌아서 오시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가 요청하면 즉각 임해주신다.
지체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
우리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신 분
우리를 지독히 사랑하신다. 택한 자기 백성들을 절대 잊지 않으신다.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 49장 15~16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자식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손바닥에 새긴바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자신의 마음에 새기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지키시고 양육하신다. 책임지신다. 언제까지
시121편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 48: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샘물이 되셨다.
결코 마르지 않는 샘
한 겨울에도, 뜨거운 태양과 바람 앞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는 생명수 샘물되신다.
주님의 은혜가 고갈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만약 고갈되는 은혜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은혜는 마르지 않는다.
그리스도로 피로 이룬 샘물은 영원하다. 결코 식지도 않는다.
2.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잡으라
히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고
주님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미쁘시고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
소망되신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소망'은 예수의 제사장적인 행위와 연관된 것= 내용은 현재와 미래의 구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행위에 의해 약속하신 종말론적 구원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을 의심치 말고 확신 가운데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소망 즉 종말론적 구원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굳게 잡을 수 있는 것은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이후 세상은 끊임없이 요동친다.
흔들거리는 세상, 마음에 중심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세상의 흐름 속에 떠내려간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였다~평생 빚진 마음일 것이다.
부끄러운 모습
에서는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팔았음,
하나님 앞에 스스로에게 죄송한 마음
이삭은 창세기 24장 4대 족장들 중에서 제일 장수한 사람이었다.
이삭도 실수는 없지 않았다. 아내를 아버지처럼 누이라 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고 (창25:7), 야곱은 147세를 살았고 (47:28),
요셉은 110세를 살았으나 (50:26) 이삭은 180세를 살았다 (35:28).
그는 제일 장수한 사람이었으나 뜻밖에도 그에 대한 성경 기록은 가장 짧다?
창세기 50장 중= 12장 걸쳐 아브라함의 기록, 야곱과 요셉의 기록도 거의 비슷
이삭의 기록은? 완전히 그의 기록만으로 나오기는 창세기 26장 한 장뿐이다.
족장들의 생활 중에서 그의 생활이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것 같다.
결코 펑범하지만은 않다. 누구든지 한 사람의 생애를 돌이켜 보면 파란만장하다.
이삭 청소년기-아버지에 의해 모리아 산에 번제물 되었다. 창 22장
이삭은 하나님의 미리 예정된 신부 리브가를 나이 40세에 맞아들임.(창 25:20)
들판에서 묵상하는 중에 그의 아내를 맞이한다. 성경적인가? 아름다운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아내를 얻는다. 묵상하는 중에~
주님을 모시고 홀로 들판에서 묵상하는 중에 아내를 맞이하는 장면은?
자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아내를 얻었다.
창 25:20과 25:26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했을 때
리브가가 아들을 낳았을 때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여 60세에 아들을 낳았음
이삭은 결혼 후 20년 동안 아들이 없었다. 그는 아브라함의 외아들이었다.
그의 씨가 "하늘의 별 과 같이 땅의 티끌과 같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 그럼에도 20년 동안 아들이 없었다. 60이 다 되도록 아들이 없었다. 큰 시험이다.
25:1-4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는 6형제를 낳았고 손자들과 증손자들까지 번성
25:12절 아브라함의 첩의 소생인 이스마엘은 12형제를 두었고 12 방백 (25:16).
약속의 아들 이삭은 나이 60이 되도록 아들이 없었다? 답답한 시험이었겠는가.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 (창25:16).
그 기도를 20년 가까운 긴 기간의 기도였을 것이 분명하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경건했던 이삭에게 이처럼 오랫동안 아들을 주시지 않았을까?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이삭은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20년 동안 참아 기다리며 간구했어야 했다.
그의 인내와 성품을 보여주는 것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다.
창 26장 그는 일곱 번에 걸쳐 우물을 판 역사가 있다.(15,18,19,22,25, 32 절).
그는 무엇 때문에 그처럼 우물을 파야 했나?
우물을 파 샘물을 얻었을 때마다 원수들이 시기하여 싸우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과 다투지 않았다.
누가 싸우려 하면 우물을 넘겨주고 그는 또 다시 옮겨 새 우물을 팠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 넘겨주고 그는 다시 옮겨 새 우물을 팠다 일곱 번이었다.
그는 싸울 힘이 없어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이삭의 부대는 아비멜렉 왕보다. 더욱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창26:16).
그러나 그는 싸우지 않았고 다시 자리를 옮겨서 우물을 팠던 것이다.
그는 진실로 속옷을 달라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벗어 주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 가는 곳마다 복주어 새로운 샘물을 얻게 했다.
마침내 아비멜렉도 그를 시기함은 헛된 일임을 알게 됐다.
그를 괴롭게 했던 이가 군대장관들을 데리고 왔다. 찾아와서 무릎을 꿇게 되었다.
브엘세바/광야 입구 이스라엘의 성지
그는 평화의 아들이었다. 이삭은 오실 메시야 구원자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미쁘시고 신실하신 분, 우리의 소망되시기에 충분하시다.
*요즘 한국 경제가 위기상황/ 저성장 침체기/ 사람들의 대화 내용은?
온통 불안하고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하다.
세상은 인간 타락 이후로 단 한 번도 위기 아닌 적이 없다. 소망없는 세상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 위기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생명
*아무리 위기 위기라 할지라도 과거 우리가 살았던 때에 비교하면 400배나 더~
*제가 어렸을 때에 지금처럼 석유/개스/난방시설/주방시설/가구/주거환경은??
의식주를 생각해 보면 유사이래로 가장 잘 사는 환경.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
모세의 영도 하에 출애굽 광야 세대들 중에서도 여호수아 갈렙은 마침내 가나안 땅을 밟았다.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이처럼 위기 가운데서도 산 소망되시는 분 계시기에
모든 사람이 다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주님이 약속하셨다. 소망의 주님이 그를 붙드시기에 그곳은 우리가 정복할 땅.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물처럼 녹아 밤새도록 통곡~돌아가자 (민14장)
여/갈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게서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 백성들은 그들을 돌로 치려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심.
그들의 불신앙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사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산 소망되어 주신다.
소망되신 예수 이름으로 행해야 할 것은?
3. 서로 돌아보아/ 사랑의 격려/ 선행으로 격려하라
1) 돌봄/ 서로를 향한 관심/ 지속적으로 관찰/
한 가족 한 식구는 서로에게 무한 책임을 진다.
낳았다고 다 한 가족은 아니다. 낳고 기르는 양육 ~ 죽을 때까지 간다.
그가 잘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품/ 성도들에게는 어머니와 같다.
주님께서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세상에서 절망하고 낙심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다.
너희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존귀하고 영화로운 신분이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실패한 것 같으나 성공한 자이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마지막 추수의 때가 지연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
임박한 종말을 눈 앞에 두고는 누구든지 긴장하게 마련이지만,
간사한 인간은 이 '지연'으로 인하여 스스로 피곤해 하며 넘어지게 될 것이다.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행함'의 의미를 강조. 쉬지 말고 선을 행하라 ~
반드시 거둘 때가 있을 것이다.
시편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6:10 그러므로~ 기회있는 대로 - '기회가 있는 동안'
한 개인의 생애 가운데 기회는 제한되어 있다.
다른 이들을 향한 섬김-착한 일은 항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면 그 기회도 끝이 난다. 기회의 제한성을 나타낸다.
사람은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동안에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이다.
착한 일 - 헬라어 '아가돈'은 9절의 '칼론'('선')대신에 쓰여졌다.
'칼론'이 '윤리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
히10:24 선행을 ~ 피조물이 창조주의 의도대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온전한 모습-창조의 목적을 따른 것
'아가돈'은 철저하게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단어이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베푸는 자비와 동정심을 가리킨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선행이다. 불신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
'더욱' 헬라어 '무엇보다도', '최고로', '특히' 등의 뜻을 가진 최상급이다.
바울이 이처럼 믿는 자들에게 특별히 잘해주라고 권면하는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 속에 있는 거짓 교사들과 유대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함을 받았다. 한 식구로 연합되었다.
신앙 공동체의 불가분리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격려/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일으키듯 ~ 활성화시키는 것을 뜻함.
우리의 격려의 대상은 모든 이들이나 먼저 더욱 힘씀과 애씀은 믿는 이들에게
진토리 교회를 비롯한 믿음의 식구들끼리
2) 사랑의 격려/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흘려 보내라
3) 선행의 격려/ 칼로스~ 하나님의 백성의 선함은? 하나님의 존재 목적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한 분 한 분 세우는 이 일-선행의 격려
이 땅에 있는 주님의 교회를 주님의 의도대로 든든히 세우는 일
말년에 병에서부터 나앗을 때에 실수한 것이 있었다.
히스기야 죽을 병에 걸림 ~ 고침을 받은 이유는?
왕하 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
왕하 19장~ 산당제거/ 주상 깨뜨림/ 아세라 목상/놋뱀 분향-깨뜨림-느후스단
전날 그는 하나님 앞에 유월절/우상을 타파/모세부터 느후스단.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영원/거룩/무흠/하나님=사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내가 가진 어떠함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 하나님 앞에 선다.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필요하다.
신학적으로 칭의는 법적인 용어이다. 한번 칭의=의인됨은 영원한 것이다.
결코 무르거나 되돌릴 수 없다.
한번 레위지파로 대제사장은 영원한 대제사장직을 수행해야 한다.
아론의 후손들-직계 자손들 중에서 장자들에게 세습=종신직
그 본래의 정신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헌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속죄함 받도록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구약 출28~29장 대제사장 의복 ~ 일반 제사장의 의복과는 다소 구별.
영광과 아름다움, 거룩을 상징하는 의복이다(출 28장).
① 흰 세마포 관 - 하얀 베실로 만들어진 터번(혹은 원추형) 모양의 둥근 모자.
② 금패 - 흰 세마포 관 정면 이마에 부착된 금으로 된 패. ‘여호와께 성결’이란 글귀
③ 판결 흉패 - 에봇 위 가슴 부위에 달린 정사각형 주머니. 12개의 보석이 달려 있고 주머니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어 제비뽑기 도구로 사용되었다.
④ 에봇 - 대제사장이 입는 조끼 모양의 의복. ⑤견대 - 에봇의 앞과 뒤를 붙들어 매는 어깨 띠.
⑥ 에봇 받침 겉옷 - 에봇 아래 입는 청색 의복. ⑦ 반포속옷 - 겉옷 안에 입는 통으로 짠 의복.
⑧ 석류와 금방울 - 에봇 받침 겉옷 아랫 자락에 달린 성물.
지금으로부터 이천년+일천4백년=34백년 전 대제사장의 예복=채색옷 + 영광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광야 생활을 했던 그들에게 이렇게 대제사장 예복을 만들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하나님께 연합된 레위지파 제사장직의 가치
신약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 자녀된 이들의 영광스러움과 존귀함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할 것 없이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 존귀와 영광의 관을 쓰신 것처럼 우리들도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와 영광이 영혼에 임해 왔다. 영혼과 육체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거룩한 인침을 받았다. 거룩한 마크가 찍혔다. 거룩을 지향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낸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세상은 너무 험악하다. 악하고 음란하고 부패와 타락의 냄새가 난다. 역겹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당연한 듯 자랑하듯 자신의 수치를 드러낸다.
오늘날 이 민족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소망되심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다.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 자녀들이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소망되어야만 한다.
히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 때 육이오 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 하시고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치하에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하며 살아도 국군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 삼 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일주일 걸려 겨우 걸어서 닿은 곳이 평택 옆 어느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심이 사나워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집 흙담 옆 골목길에 가마니 두 장을 주워 펴놓고 잤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마니 위에 누운 우리들 얼굴에 이슬이 내릴까봐
보자기로 씌어 주셨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를 껴안고 슬피 우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
다음날 새벽 어머니는 우리들이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을 들고 나가서
쌀로 바꾸어 오셨다. 쌀자루에는 끈을 매어서 나에게 지우시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평택에서 수원으로 오는 산길로 접어 들어 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서른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 곁에 붙으면서
<무겁지 내가 좀 져 줄게> 하였다.
나는 고마워서 <아저씨 감사해요>하고 쌀자루를 맡겼다.
쌀자루를 짊어진 청년의 발길이 빨랐다.
뒤에 따라 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으나 외길이라서 그냥 그를 따라갔다.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봐 <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와>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다.
청년을 따라 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앉아 있으면 쌀을 잃을 것 같았다.
당황해서 큰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셨다.
길가에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첫마디가 <쌀자루는 어디갔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청년이 져 준다면서 쌀자루를 지고 저 길로 갔는데,
어머니를 놓칠까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내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 하시며 우셨다.
그날 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농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셔서 새끼 손가락만한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얻어 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
하시면서 우셨다.
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고
누워 있는 나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주시다니.
그 후 어머니에게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이
그 토양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바보처럼 보이는 나를 똑똑한 아이로 인정해 주시던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박동규님의 글 “어머니” 시인 박목월님의 아내.
우리 주님은 우리를 영리하고 똑똑하다고 하신다.
어리석고 허물많은 사람을 부르셔서 늘 격려하신다.
너는 존귀한 자,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신부,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
미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구원의 샘~생명샘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