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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은 이야기론 출판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교양과학서적 시장의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출판한 종이 잡지 [한국 스켑틱]의 창간호가 3쇄를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를 고려해도 대략 1~2만 명가량의 교양과학도서 마니아층이 한국에 상주하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즉, 이들만을 상대로 출판을 한다 해도 완전히 망하는 장사는 아니라는 의미다.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불안해져만 가는 사회에서 과학에 대한 열망은 확실성에 대한 대리적 욕망 충족으로 읽을 수도 있다. 교양과학도서로 읽어야 하지만 인문도서로 소비되는 스티븐 툴민의 책 [코스모폴리스] (1990)는 정치적 공황기의 프랑스에서 데카르트가 어떻게 확실성에 대한 추구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사회가 불안할 때, 과학에 대한 요구는 급격히 증가하거나 축소될 수 있다. 한국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키를 돌릴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양과학도서시장은 여전히 열악하고, 수십 년동안 그다지 크게 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열악한 이유는 겨우 만여 명의 열혈 독자층을 붙잡고 출판을 감행해야 한다는 처참함 때문이다. 독재정권 시절부터 계속된 과학 대중화의 결과란 겨우 이런 것이다. 국가가 나서 과학을 대중화하고, 과학대중화만을 위한 부서와 온갖 초딩스러운 문화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지만, 그 결과란 겨우 1만여 명 남짓의 독자층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과학 대중화의 딜레마’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의 지나친 전문성과 난해함을 앞에 두고, 대중에게 다가서는 방법으로 과학 자체를 쉽게 풀어내는 방식만을 고집해왔다. 그 결과,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과학문화시장은 크게 발전했고, 자체적인 시장을 구가하고 있지만, 대학으로 진입하는 순간 그 시장은 사라진다. 과학은 입시를 위한 무엇으로 전락하고, 대학생과 성인들이 즐길 과학컨텐츠 시장은 축소되었거나, 이미 고양된 대중의 수준을 농락하고 무시하는 저열한 수준의 컨텐츠들로 채워져 버린 것이다.
이런 피라미드 구조는 뒤집혀야 한다. 과학 대중화의 정체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탓이다. 우리에게 대중적인 과학, 사회에 스며든 과학이 없는 이유는 과학이 쉽게 설명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 자체가 한국사회에서 기능하지 못하고 스며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출판을 위해 굳이 쉬운 과학책을 물렁물렁하게 만드는 일을 과학 대중화의 사명이라 여기는 일은, 진짜 과학을 위해서는 단기처방밖에 안 되는 것이다.
진짜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러 쉬운 과학교양서를 내어놓기보다는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연구한 경험 많은 과학자와 함께 연구서를 대중에게 내어놓는 작업들을 한다든가, 혹은 결국 팔리지 않을 것임에도 과학사의 고전들을 잘 번역하는 일들에 매진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출판의 수준은 과학의 건강함으로부터 비롯됨을 인지하는 것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1859)이, 도킨스와 굴드의 책들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그 사회에 뿌리내린 그들의 과학이 존재한다.
만약 우리에게 그들과 같은 과학저자들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그런 위대한 저자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들과 같은 과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믿어도 된다. 과학출판은 과학의 건강함으로부터 자연스레 흘러넘치는 물과 같다. 과학 대중화도 건강한 과학의 존재가 있다면 부러 걱정할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한국은 언제나 원인과 결과가, 선후가 뒤바뀌는 곳이다. 과학도 당연히 그렇다.
이런 와중에, 어떤 기관으로부터 과학교양도서 50권의 추천을 의뢰받고, 70권의 책을 추천해주게 되었다. 이런 추천 의뢰가 원래 ‘열정페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한 사람이 70권의 책을 고르고 ‘서지 목록’까지 제출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때는 ‘감사합니다’라는 답신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런 걸 받지도 못한 작업이었다.
그런 개인적 관계를 넘어서, 어차피 내가 추천한 책들이 해당 기관이 요구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책보다는 일반인들이 실제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만을 고려해주십시오.”라는 기준에 의해 많이 잘려나가게 될 것이 뻔하므로, 별도로 공개하기로 한다.
아래는 RISS에서 찾을 수 있는 해당 도서들의 목록이다. 과학책 읽기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의 입장에서 꼭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책들이 빠진 것은, 그런 책들은 (예를 들어 도킨스류)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뻔히 추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는 이 목록에 없다.
순서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굴드의 [풀하우스]를 중심으로 기억이 흐르는 데로 70권을 정리하다 멈췄기 때문이다. 도움이 되길 바란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모든 책을 관통하는 철학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의 논증이 들어 있는 고전이다. 이 책이야말로 과학자가 자신의 작업과 사회를 연결하는 글쓰기의 모범이자 백미 중의 백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생학에서 일반지능, 그리고 사회생물학까지. 생물학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순간 과학자는 어떤 방식으로 이를 바라보고 실천해야 하는가. 굴드가 제시하는 방식을 따라가면 과학이 관여하는 사회적 문제에 단순한 분노보다 과학적 논리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과학적 논거와 실천이 필요하다.
추천사로 써두었던 글들로 소개를 대신한다.
이기적 유전자와 통섭으로 대변되는 진화생물학 교양도서 시장은 편향되어 있고, 무엇보다 학계 논의와도 괴리되어 있다. 이 책은 진화생물학이 인간의 수준에서 논의될 때 반드시 숙지해야 할 학문적 역사와 함의를 담고 있다. 통섭을 읽고 설레발 치는 과학주의자들과 진화심리학이 인간 정신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리라 희망하는 얼치기 과학자들, 마지막으로 과학을 거부하는 것이 인문학 정신이라 생각하는 독단적 회의주의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한쪽에는 인간 정신은 과학의 분석대상이 아니라는 인문학자들이, 다른 한쪽에는 인간 정신을 모두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과학자들이 있다. 랄란드와 브라운의 이 책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인간행동에 대한 모든 과학적 시도들을 분석해나간다. 진화생물학은 인간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가? 그 주장에 무리는 없는가? 어느 진영에 서 있던 이 책을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은 ‘통섭’이라는 비정상적 유행 때문에 적절한 평가 없이 수입된 측면이 있다. 도킨스와 굴드는 도대체 왜 죽일 듯이 싸웠는가, 르원틴은 왜 에드워드 윌슨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면서도 적이 되어야 했을까. 한 번이라도 진화심리학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이들에게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들의 말처럼, 이 책은 적이 된 두 진영 모두를 이해하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기 때문에.
최재천, 장대익, 전중환 교수의 이름으로 한국에 알려진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 하지만 이 문제적 학문을 둘러싼 학계의 논쟁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두 학문은 아무런 문제 없이 성공가두를 달리고 있을까? 인간행동에 관한 진화생물학적 분석은 완벽한 것일까? 랄란드와 브라운의 이 책은 인간행동에 대한 입장에서 두 문화로 갈라진 양 진영 모두의 필독서다.
인간을 사랑하면서 인간행동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시도할 수 있을까. 인간행동이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분석된다면 인간성이 실종되는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해본 이들에게 랄란드와 브라운의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며,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를 수 있음을, 인간행동에 관한 과학적 분석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번역과정부터 전공이 다른 대학 교수들과 철학덕후가 만나 격의 없이 학문을 위해 뭉쳤다. 이런 것이 학문의 본령일 텐데, 한국사회에서 이런 결실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역학이란 점을 보는 학문이 아니라, “epidemiology”의 번역이다. 과학철학 중에서도 최신의 분과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지금은 학계를 떠난 불운한 과학철학자의 초기저작이다. 토마스 쿤을 읽었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글을 쓴다.
이 책은 공학 윤리 교과서로 기획된 책이다. 사례들을 중심으로 엔지니어들에게 단순히 윤리를 주입하는 방식을 벗어나, 엔지니어 스스로 자신의 작업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기술되어 있다. 기존의 공학 윤리 교과서들과 한국 공학 윤리 교육은 대부분 비현실적인 조언들과 강령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사용하는 대학이 등장하길 빈다.
훌륭한 책이다. 세계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원하는 사람들, 특히 사회와 그리고 책에서조차 소외된 한국 과학기술자들에게 권한다. 당신들이 역사의 주인이다.
이 책은 나에게는 성경이다. 미셀 모랑쥬는 현장에서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자이자 생물학의 역사를 기술하는 과학사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관점은 기존의 케케묵은 과학사가들의 책상 발림 논의들과 차별된다. 현장을 아는 역사가의 기술은 원래 다르다.
생물학은 하나가 아니다. 미셀 모랑쥬의 책과 짝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 사이를 메꾸는 공부는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은 현재 필자가 연구하는 행동유전학의 기원을 탐사하는 인터뷰와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조나단 와이너의 문장은 매우 훌륭하며, 그의 다른 책들도 모두 읽을만 하다. 특히 이 책은 한국에서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 초파리 연구자들의 낭만을 다루고 있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권한다.
조나단 와이너의 또 다른 이 책은 다윈의 전통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 핀치를 갈라파고스에서 여전히 연구 중인 그랜트 부부의 연구를 다룬다. 와이너의 책엔 현장이 살아 있다.
‘파블로프의 개’로만 그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생리학이라는 학문의 전통에서 연구하던 새로운 파블로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종소리에 침 흘리는 개 연구는 파블로프의 주요작업이 아니었다.
생리학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실험의학을 과학의 토대 위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했던 프랑스의 생리학자 끌로드 베르나르를 만나게 된다. 그가 남긴 거의 유일한 사상서인 [실험의학방법론]은 한 문장 한 문장, 전혀 버릴 것이 없는 현장과학자의 살아 있는 철학서다.
(다니엘 주; 국내에선 찾기 힘들어서 프랑스어로 된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영문번역서 링크를 알려드립니다. This material has been provided by UCL Library Services. The original may be consulted at UCL (University College London) https://archive.org/details/b21270557)
철학자 베르그송은 베르나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행한 기념강연에서 <실험의학서설>(실험의학방법론이라고 번역한 이 책)이 당대에 가지는 의미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 17-18세기에 갖는 의미와 같다고 말하였다. 다소 과장이 아닐까? 어떻게 실험실의 한 생리학자가 쓴 책을 근대철학의 문을 연 <방법서설>과 동격에 놓을 수 있을까?
베르나르는 이 책에서 크게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생명은 본질이 아니라 현상이며, 생리학의 역할은 바로 이 현상으로서의 생명을 탐구하는 과학이라는 점이다. 두번째는 생명현상도 다른 물리화학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결정론을 원인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베르나르가 말하는 원인은 사건 발생의 선행조건을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서 베르나르는 체계는 인간정신을 노예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므로 철학과 과학은 체계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철학이 사유체계의 구축을 의미하던 시절 베르나르의 이러한 선언은 분명 혁명적이었다. 그리고 베르그송이 베르나르에서 데카르트의 그림자를 보았다면 그것은 분명 새로운 시대의 철학이 나아갈 바를 베르나르의 생리학이 제시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베르나르가 발견한 과학적 사실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사유의 방법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나르에 대한 베르그송의 평가는 결코 과도한 것이 아니었다.
버틀란피의 이 책은 환원주의 시대에 태어나 시대를 앞서간 시스템 과학자의 철학이 녹아 있는 고전이다. 이런 책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철학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잊게 해주는 책이다. 수의 발견사를 이토록 일상의 유비들로 설명하는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아인슈타인의 극찬으로도 유명한 책이다. 산수를 싫어하는 자녀들에게 권하면 좋을 책이다.
일본의 과학은 우리보다 적어도 100년 이상 앞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식민지 시대를 겪고 전쟁의 포화에 휩싸여 있던 그 시기에, 일본의 과학자들은 이미 세계와 경쟁하고 있었다. 이마니시 긴지는 서양인들이 지배하던 행동생물학과 진화생물학에 완전히 새로운 연구의 패러다임을 제공한 인물이다. 이 책은 자연을 바라보는 동양인 생물학자의 관점이 녹아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마니시 긴지처럼 회고할 과학자가 없다.
절판된 이 책은 하나의 주제로 과학에서 예술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모아 엮을 때 필요한 하나의 모범을 보여준다. 독일에서 출판된 좋은 책인데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루이스 월포트는 단순한 발생학자가 아니라, 1990년대 과학전쟁의 선봉에서 인문사회과학자들과 논쟁했던 논객이기도 하다. 과학주의자라는 오명도 있지만, 과학자라면 그의 이 책과 더불어 과학전쟁 시대에 그가 쓴 여러 글을 읽으며 과학자의 글쓰기에 대해 한 번쯤 숙고해봐야 한다.
션 캐롤의 이 책은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종합인 이보디보에 대한 체계적 해설서다. 진화생물학의 최신유행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과학저술가 필립 볼의 책들은 신뢰해도 좋다. 특히 화학에 관한 교양서가 부족한 한국에서 이 책은 독특한 역사를 지닌 화학의 역사에 접근하기 위한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광섬유, 액정, 초전도체, 전도성 플라스틱부터 탄소 나노튜브, 인공 효소, 스마트 고분자까지현대와 미래 과학기술의 기반을 이루는 놀라운 첨단 화학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 책은 결정학, 분광학 같은 전통적인 화학 분야에서부터 유기전자공학, 인공 효소, 스마트 고분자 겔 등 화학과 관련 있는 여러 분야의 발전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저자의 풍부한 설명과 다양한 사진을 따라 이 책을 읽다보면 독자는 굳이 화학적 지실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현대 과학의 발견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연구할 분야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주고, 이미 학위를 받아 학교를 떠난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 외의 다른 분야에서 어떤 발전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준다.
신경과학과 의식에 관한 수많은 책이 있지만, 제럴드 에델만은 그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학자다. 얼마 전 작고한 에델만의 독특한 의식에 관한 접근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그는 생물학자로 훈련을 받아 심리학과 생물학의 중간 어디쯤에서 연구한, 경계를 걷는 과학자였다.
프리고진도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어려운 독특한 물리화학자다. 이 책은 <확실성의 종말>과 함께 읽기 어렵지만, 자신의 작업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과학자의 저술이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이 된다. 과학책이자 사상서이고 철학책이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와 함께 읽어야 하는 프리고진의 책이다. 두 권은 쌍으로 읽어야 한다.
과거의 결정론적이고 기계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확률론적인 입장으로 자연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소개.
세포학의 발달은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자 한명 한명을 역사 속에서 보면 꽤 많이 놀라게 될 것이다. 그들은 당대의 철학자들과 논쟁했고, 철학자로도 불렸으며,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포학은 세포를 다루는 학문이지만, 세포학자들은 세포에 갇혀 있는 상아탑의 학자들이 아니다.
라카토슈의 과학철학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과학철학의 표준적인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와는 달리 급진적인 주장을 하던 과학철학자 파이어아벤트의 [방법에의 도전]과 짝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래야 과학의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다. 과학은 다양한 과학철학의 관점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하기도 하고, 또 그 속에서 통일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은 흔히 과학을 비난하기 위한 인문학자들의 텍스트로 오독되지만, 파이어아벤트가 누누이 강조했듯이, 이 책은 결코 과학 자체에 대한 상대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의 다양성을 획일화하려던 비엔나학단과 포퍼 등의 과학철학에 대한 반항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 이외에 그의 자서전 [킬링 타임]이 번역되어 있다. 과학철학자 중에선 유일한 아나키스트이자, 크로포트킨과 함께 과학적 아나키즘의 전통에 서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이 철학자의 책들은 여러 면에서 두뇌를 환기해줄 것이다.
기거렌처의 책들은 인지신경과학과 통계학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 등등에 폭넓게 걸쳐 있다. 특히 이 책은 인간 합리성에 대한 고전경제학의 도그마가 와해하는 과정에 등장한 저술로, 우리의 뇌가 지닌 진화적 역사를 인지심리학의 눈으로 조망하고 있다. 과학의 이론에서 실용까지,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기거렌처는 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저자 중 하나다.
인하대 교수 황승식과 철학덕후 전현우의 또 하나의 작품인 이 책은 실제 우리의 삶에서 숫자 특히 통계가 얼마나 중요하며, 우리가 그 통계를 무시할수록 우리 삶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특히 의사들과 만날 때, 우리는 통계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유방암 검사, 에이즈 검사, 암 치료 등등, 기거렌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통계학을 쉽게 알려주고 있다.
또 다른 기거렌처의 책. [지금 생각이 답이다]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길리스피의 [객관성의 칼날]도 표준적인 과학사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길리스피는 뉴턴 연구자로도 유명하다. 과학사상사를 관통하는 그의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통찰을 읽는 것은 과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선행과제다. 물론 과학은 하나가 아니다.
이 책은 노벨상 수상자 칼 폰 프리슈의 전통에서 꿀벌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현장의 과학자가 자신이 수십 년에 걸쳐 발표했던 논문들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이런 책이 한국에서 등장하는 것이, 한국 과학이 토착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이 이런 책들을 저술하고, 그 책이 팔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엔지니어의 역사는 한국사회에서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독재정권에 의해 국가의 부품으로 이식된 한국 엔지니어 집단엔 주체적인 문화와 직업의식이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국, 독일, 미국, 프랑스 등에서 공학이 발전하면서 엔지니어 집단의 정체성이 형성된 과정을 보여준다. 한국사회 근대화에 누구보다 크게 이바지한 한국 엔지니어 집단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실리콘 밸리의 주인공은 엔지니어인데, 한국 IT 업계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엔지니어야말로 한국사회에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김성환의 이 책은 17세기 고전역학을 둘러싼 역사를 꾸준히 연구해온 김성환의 중간결산이다. 이 책의 서문 마지막 단락은 내가 자주 인용하는 명문이기도 하다.
“적을 아는 데 20년이 걸렸다. 아직 크게 부족하다. 그러나 적을 존경한다. 이 마음을 책에 담는다”
[초파리의 기억]과 함께 국내에 출판된 유일한 초파리 유전학에 관한 책이다. [초파리의 기억]이 1970년대 시작된 초파리 행동유전학의 역사를 다룬다면, 이 책은 야외생물학의 전통에서 성장한 과학자가 실험유전학자들의 작업을 접하게 되면서 이방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초파리 유전학의 놀라움을 그리고 있다. 초파리 유전학의 대략적인 윤곽을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과학자도 그랬지만, 1970년대 과학자들 중 상당수도 자기 작업과 사회를 결코 분리하지 않았다. 벡위드의 이 책은 상아탑의 과학자가 어떻게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내가 벡위드와 공명하는 지점은 아래 구절로 잘 표현되고 있다. 과학자는 사회와 연결되어야 하지만, 그 방식은 쉽지 않다. 하지만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나는 과학자가 생산적인 과학 경력을 쌓아 가면서도 동시에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활동가가 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많은 과학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는 분열된 개성을 지니고 과학을 시작했다. 과학 바깥의 사상 세계는 나를 매혹시켰지만, 과학자 공동체 내부의 세계로부터는 너무나 동떨어진 듯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게 있어 두 개의 세계는 점차 하나로 합쳐졌다. 나의 정치 참여는 과학에서의 생활과 융합되었다. 과학의 철학, 역사, 사회학에 관해 읽은 책들은 나 자신의 과학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과학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그 놀랍도록 인간적인 활동에 대해 숙고해 보는 법을 배웠다.”
기거렌처도 그렇지만, 에른스트 피셔도 과학에 대한 균형적인 관점을 가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저자다. 독일의 과학자, 과학저술가, 과학철학자들은 독특한 균형감각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은 과학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고 싶은 이들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피셔는 물리학에서 시작해 초파리 유전학까지 섭렵한 현장 지식을 지닌 과학저술가다.
번역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 교양과학서적 시장이지만, 몇몇 유명한 필자들에 지나치게 편중된 측면이 있다. 특히 물리학의 거대이론들과 진화생물학의 몇몇 저자들이 번역서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주류 번역서가 아니지만, 잘 쓰인 책이다.
독일의 가장 큰 기초과학자 집단은 ‘막스플랑크 연구소’다. 이 연구소의 이름으로 유명한 막스 플랑크의 일대기는 단순히 천재 과학자의 그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의 태동, 그 중심에 서 있었던 한 위대한 과학자가 독일의 과학계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그리고 있다. 한 사회에 막스 플랑크와 같은 위대한 과학자 한 명이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로 나타난다. 우리에겐 언제쯤 막스 플랑크가 나타날까.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른스트 피셔의 에세이 모음이다.
C.P. 스노우의 [두 문화]나 [교양,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읽은 독자라면 이 책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 특히 인문학과 소설, 시 등을 읽는 것만이 교양으로 인식되는 한국사회에서 과학지식의 사회에서의 지위를 고민하는 이들은 이 책에서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은 지식체계일 뿐 아니라, 문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과학이 완전히 사회에 자리 잡는다는 것은 과학자들이 늘어나고 출판되는 과학 논문의 양이 늘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해당 사회의 구성원들이 과학에 그만큼 이질감을 덜 느끼고, 과학이 고전음악처럼 하나의 교양으로 인식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학은 교양이다.
이 책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얇지만 결코 얇지 않은 에른스트 피셔의 과학저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짧은 글 모음이다. 각 챕터들은 언제든 따로 떼어 읽어도 좋을 완결된 글들이다.
과학으로 바라보는 인간. 과학주의도, 인문주의도 아닌 균형 잡힌 관점을 접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과학사회학, 특히 현재 한국의 과학계가 처해 있는 비참한 현실의 기원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20세기 이후에 과학은 국가와 기업에 종속되어가면서 거대화되었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전통에서도 멀어졌다. 과학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돈은 과학을 이질적으로 변화시킨다. 건강한 과학을 원하는 과학자들이라면, 자신의 작업에서 잠시 눈을 돌려 이 책을 한번 통독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과학연구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토대에서 눈을 돌려선 안 된다. 그것을 직시할 때에만 자신이 원하는 과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이 발전해야 기술이 발전하고 국가 경제가 발전한다는 선형모델을 반박하기 위해 저술된 책이다. 한국의 구세대 과학자들은 여전히 그런 선형모델에 기대어 국가의 과학에 대한 투자를 주장하는데, 그런 관점은 모조리 틀렸다.
국가별로 과학과 기술의 관계는 다르고, 과학이 발전해야 기술이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복잡한 측면을 상세히 밝히는 연구서다. 기초과학자로 국가에 기초과학 지원을 요구하고 싶은 과학자라면, 이런 책을 자세히 읽고, 자신의 논리를 재무장하는 편이 좋다. 기초과학에 대한 조건 없는 투자 요구는 어린아이의 투정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부분 대학에서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읽히는 책이다. 과학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막스 페루츠는 구조생물학자로 영국 분자생물학연구소를 세계적 연구소로 만든 과학행정가이기도 하다. 한 세대를 풍미한 생물학자의 과학에 대한 열정을 읽어보길 권한다.
[과학에 크게 취해]의 2부에 해당하는 책으로, 과학자가 연구의 과정에서 처하게 되는 사회와의 조우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
통계학에 관한 대중서들은 더욱 많이 출판되어야 한다. 특히 이 책은 20세기 통계학사를 아주 쉽게 그려놓은 수작이다. 이 책을 읽고 더 많은 통계학사 책을 읽는다면, 20세기 초반 대부분의 과학 분야와, 인문사회과학, 게다가 사회 전체를 뒤흔든 통계학의 탄생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국내에 들여온 과학자는 이병훈이다. 이 책은 국내과학자에 의해 쓰여진 얼마 되지 않는 제대로된 자서전이다. 사회생물학을 중심으로 이병훈 교수가 국내에서 활동했던 자전적 역사가 매우 구체적이고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일독을 권한다.
비엔나학파은 논리실증주의로만 알려졌지만, 그 학파의 시조는 에른스트 마흐라는 불세출의 과학자였다. 물리학자이자, 생리학자이며, 과학사상가였던 마흐의 사상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마흐의 대표작이며 결코 읽어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마흐의 전통을 읽어내는 것은 과학철학의 반쪽 전통을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전문화된 과학철학자들의 책과 이런 책은 다루는 문제와 관점 모두 다르다.
에른스트 마흐와 함께 비엔나에서 태어나 통계물리학을 창시하고 자살한 과학자 볼츠만에 대한 책도 국내에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은 거의 유일한 과학자이자 과학철학자, 그리고 사상가 볼츠만에 대한 일대기다.
최종덕 교수의 생물철학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는 꾸준한 학자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바로 이 알고리듬의 설계자들이 만든 플랫폼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업데이트를 기다리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스마트폰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현실이 왜 이렇게 비참한지 알고 싶다면 이런 책들을 직시하고 읽어야 한다.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와 짝으로 읽어야 할 과학사회학 저술이다. 과학의 공공성을 되찾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자본주의는 어떻게 과학을 변형시켰을까? 과학과 사회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굴드의 대표작이다.
자신이 진보적인 독자로, 마르크스 정도는 좀 안다고 자부하는 독자라면 이런 책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특히 마르크스의 친구 엥겔스의 [자연의 변증법]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마르크스는 근대과학의 거대한 세례 속에 성장한 철학자다. 이는 그의 [자본] 서문에서 자신의 작업을 과학자의 그것에 비유한 곳에서도 알 수 있다. 자연과학을 부정하면서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이율배반인데,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웃픈’ 현실이다.
최정규 교수는 한국에서 거의 유일한 행동경제학자이자, 얼마 안 되는 학자의 모범이다. 이 책은 그의 박사과정과 초기 연구들을 종합해놓은 책이다. 그의 작업들은 진화생물학과 경제학에 걸쳐 있고, 이타성 연구는 [이기적 유전자]에서부터 이어지는 진화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 최정규와 같이 세계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진화생물학의 전문가가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 책은 쉽지 않다.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을 읽고 도전해보면 좋을 책이다.
에델만의 이 책은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를 읽고 말년의 에델만을 알고 싶다면 읽으면 될 책이다.
문화공진화 이론은 이타성을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로, 저자들은 서구사회에서는 매우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문화공진화론을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번역서다.
도킨스를 읽은 이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두 진영은 극단적으로 대립하지만, 둘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고, 한쪽만이 옳은 것도 아니다. 유전자를 둘러싼 논쟁들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독서가 필요하다.
이 책도 [이기적 유전자]와 짝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 책도 [이기적 유전자]와 짝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제럴드 에델만 3부작 중 하나다.
악셀로드의 이 책과 그의 진화게임이 현재의 이타성 연구의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진화생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은 경제학에 걸쳐 있다.
굴드의 유명한 에세이집 중 하나.
진화생물학자들의 저술은 많이 발견할 수 있지만, 분자생물학자들의 저술을 발견하긴 쉽지 않다. 그 둘은 전통도 다르지만, 대중적 글쓰기에서도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전통은 조금 다르다. 프랑스의 철학은 태생부터 생명과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데카르트부터 깡길렘, 그리고 푸코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철학은 생물학과 의학에 크게 기대고 있다. 그런 전통에서 성장한 프랑스의 생물학자들은 많은 저작을 남겼다.
분자생물학의 중흥기에 오페론 가설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랑수아 자콥과 자끄 모노 모두 논픽션을 저술했는데 모노의 책 [우연과 필연]은 꽤 유명하지만, 자콥의 이 책은 잘 읽히지 않는 듯하다. 내 생각에 모노의 장황한 그 책보다 자콥의 이 책이 분자생물학의 철학이 보여주는 정수를 훨씬 담백하고 잘 묘사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프랑수아 자콥의 초기 저작이다. 분자생물학자들이 생각하는 자연과 세계는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 책도 [이기적 유전자]와 짝으로 읽으면 좋다. 진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과장된 결론까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본 글은 초파리 유전학자, 혹은 행동 유전학자이신 김우재씨가 2015년 7월 29일 슬로우뉴스에 개재한 글에 약간의 추가적인 정보(원문 파일, 추가적인 설명, highlight 등)를 첨가한 포스팅입니다.
출처: http://slownews.kr/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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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분자 생믈학은 한번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