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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바라봄의 법칙이 있습니다
성경본문 : 히브리서 12장1절-13절
설 교 자 : 지 명 숙 목사 < 2012년 6월 20 일 수요일 >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
오늘 본문 히브리서 12장1절-13절 까지 봉독합니다
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절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절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절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절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절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절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
미국 남북전쟁(1861∼1865) 직후. 소년 <어니스트>는 오막살이 집
문 앞에서 어머니로부터 마을 앞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는
사람 형상의 ‘큰 바위 얼굴’에 관한 얘기를 듣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언젠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으나
아직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어니스트>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순종과 사랑으로 큰 바위 얼굴을 닮기 위해 애씁니다.
가난한 그에게는 큰 바위 얼굴이 유일한 스승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엄청난 부자, 전쟁터에서 많은 공을 세운 장군,
언변이 뛰어난 정치인, 그리고 천재 시인….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가 기다리던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사인 노년의 <어니스트>가 해질 무렵 야외에서
오래 전부터 해오던 대로 동네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 모습을 본 천재 시인은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야 말로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19세기 미국 소설가 <나다니얼 호손의> 단편
‘큰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피천득 역)은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면서 닮기를 위해서 애쓴
<어니스트> 야 말로 진정한 큰 바위 얼굴의 인물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를 바라보느냐 또는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내용과 질이 달라지게 됩니다.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책은 거제도 섬 소년이
청와대 경호실 차장이 되기까지의 믿음생활이 기록된,
거제도 섬 소년이 청와대 경호실 차장이 되기까지에는 요셉처럼
하나님만 바라보며 전진한 ‘바라봄의 법칙’이 있었다고
그는 이 책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갑작스런 사업실패로 거제도로 가게 된
저자는, 아버지의 병 치레와 죽음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고학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긍정의 모터를 단 사람처럼 늘 탱크처럼
전진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전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주씨 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처음 교회에 갔을 때 교회 문 위에 걸려 있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현판을 보고 예수님의 성이 자신과 같은 주씨 인 줄 알고 단번에
친근감을 느꼈고, 주씨 아저씨를 평생의 멘토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평생의 멘토를 만난 저자는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전진해, 마침내
바라보고 바라봤던 청와대에 입성하게 됩니다.
정보화 불모지였던 청와대에 들어가 경호 시스템을 IT로 변화시켰고,
탁월한 리더십으로 경호실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새벽기도까지 다니면서도
기독교인 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사는 이들에게 보란 듯이 청와대 내에
선교회를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할 때에도,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감옥에서 간수장의 신임을 얻어 감옥 총무로서
일을 했을 때에도.. 그는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그에게 꿈을 주셨고,
그와 함께하는 하나님만을 항상 바라보며 나아갔습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
우리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자주 던져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엉뚱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엉뚱한 삶으로
우리의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바라봄에는 몇 가지의 법칙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라봄의 법칙을 항상 기억하고 그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이 될 수가 있고,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따라야 할 바라봄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첫째 ), 바라보는 자를 닮는다는 법칙입니다.
누구를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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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선수가 <미쉘 콴>이었고, 존경하는 선수가 <미쉘 콴>이었고,
매일 <미쉘 콴>의 경기 비디오를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
세계 선수권에 출전해 세계 피겨 1위가 되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렇다면 <
그녀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1994년 만 14세의 나이로 데뷔했고.
이후 1998년 동계 올림픽 은메달을 수상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8년 연속 미국 선수권 대회를 석권했습니다.
또한 1996, 1998, 2000, 2001, 200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5번의 우승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이 <미쉘 콴>을 바라본 <
우리는 누구를 닮아가야 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2장 2절은’
예수를 바라보자’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그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그 분은 우리의 믿음의 주이시며,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분이시오,
오늘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2장 2절의 내용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대 우리는 그 분의 성품을 닮아 갑니다.
그 분의 인격을 닮아갑니다. 그분의 사랑을 닮아 갑니다.
그 분의 삶을 닮아 갑니다. 그 분의 인내를 닮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라는 말씀을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떼까지 자라가기 위해서는
즉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는 우리는 항상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 바라보는 대상을 신뢰 한다는 법칙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주님을 당연히 신뢰해야 합니다.
신뢰한다는 말은 믿고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자는 나에게 어려움과 환란과 징계와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나를 연단시키고
단련시켜서 주님의 일꾼으로, 주의 일을 위한 그릇으로 사용하시기 위한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2장 6-11절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6절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절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절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절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요셉은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좌절 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자기 앞에서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형들에게 요셉은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 요셉의 고백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항상 바라본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루바야>에 큰 교회가 있습니다.
예배당은 2만 5천 석이나 됩니다. 교회를 담임하는
<아브라함 알렉스 >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가정에 뇌성마비 아들이 있었습니다.
목사 가정에 뇌성마비 아들이 태어났다고
이슬람교도들이 비웃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참으로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지 그는 주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뇌성마비 아들이 주님 안에서 건강해지는 모습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감사했습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을 매일같이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신뢰 하면서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넉 달이 지났습니다. 아침에 기도하러 방에 들어갔는데,
뇌성 마비였던 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벌떡 일어나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고 감격스런 순간이었습니다.
<알렉스> 목사님이 항상 바라본 주님을 그가 얼마나
신뢰 하였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신뢰한 주님이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시편 146편3절에는
‘너희는 힘있는 고관을 의지하지 말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의지하겠습니까?
사람입니까? 돈 입니까? 세상의 권력입니까?
과학과 의술과 지식입니까? 아니면 내 자신이 경험과 능력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주님을 신뢰할 따름입니다.
셋째 ), 바라보는 대상을 기쁘게 한다는 법칙입니다.
연애 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우리는 팬이라고 말합니다.
팬들은 자기가 바라보는 연예인들을 위해서,
그 연예인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합니다.
가수 <
많은 선물들을 팬들이 보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어떤 여학생은 천 마리의 학을 접어서 보내기 까지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바라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가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분 히브리서 12장4절-5절은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4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절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우리가 바라보는 주님이 우리에게 죄와 싸워서 이기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죄를 가까이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죄를 멀리하고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하겠지요.
이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권면을 받아 들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의 권면을 기쁘게 받아 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꾸지람을 하실 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흔히들 내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내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때 선물로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목적이 은혜를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라면 우리는 뭐든지 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적 예배 참석하기를 기뻐하시면 우선 순위를 두고
공적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올바른 헌금을 하기를 기뻐하시면
우리는 올바른 헌금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면
힘들어도 시간을 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변의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돌보기를 기뻐하시면 내가 바빠도 그것을 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전도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내가 봉사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면
내 적성에 안 맞아도 그것을 해드려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바라봄의 법칙을 잘 알고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쓰임 받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자 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