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A Tree Grows in Brooklyn)
베티 스미스 저. 김옥수 역. 아름드리미디어 간
* 사람들은 이 나무를 하늘나무라고 부른다. 씨가 떨어진 곳이면 어디서든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자라기 때문이다. 판잣집 옆에서도, 쓰레기 더미에서도, 지하실 창문 사이에서도 자란다. 아마 시멘트를 뚫고 자라는 나무는 이 나무밖에 없을 것이다.
* 커피는 이 집에서 즐기는 가장 큰 사치 중 하나였다...어쨌든 돈이 하나도 없는 날이나 비가 와서 집에 혼자 있는 날에는 비록 검고 쓴 커피지만 집안에 뭔가 먹을 게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가끔 집에 놀러 와서 커피 버리는 걸 볼 때마다 엄마에게 낭비가 심하다고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러면 엄마는 이렇게 대구하곤 했다. 프랜시 역시 다른 식구들처럼 식사 때마다 커피를 한 컵씩 마실 권리가 있어. 설사 프랜시가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버리는 걸 더 좋아한다고 해서 문제될 게 뭐겠어? 우리 같은 사람이 가끔 뭔가 낭비하면서 부자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먹을 것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는 것도 좋은 일이잖아?
엄마는 이 괴팍한 견해에 스스로 흡족해했고, 프랜시는 그런 엄마가 좋았다.
이 괴팍한 견해는 찢어지는 가난과 흥청망청 낭비하는 사치를 연결해주는 몇 안 되는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프랜시는 윌리엄스버그에서 가장 가난하게 살면서도 다른 누구보다 부자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낭비할 물건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프랜시는 그 누구보다 부자라고 할 수 있었다.
* 닐리는 다른 사람 생각에 동조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견해를 내세울 줄 아는 장점이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 프랜시는 서둘러 빵을 사지 않고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아이들 여남은 명이 서로 밀치면서 진열대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반대쪽 의자에는 노인 세 사람이 않아서 졸고 있었다. 윌리엄스버그에서 자식들한테 얹혀 사는 노인들은 심부름을 하든 아이를 보든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이들은 되도록 오래 기다렸다가 빵을 샀다. 라셔 빵공장에서 맛있는 빵굽는 냄새가 흘러나왔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등을 따뜻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의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졸며 기다리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기다리는 잠깐 동안이나마 자기 삶에 목적이 있으며 그만큼 자신을 필요한 존재로 여길 수 있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 아빠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 때문이지
* 엄마 아빠는 밤을 새우며 얘기꽃을 피우곤 했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말소리를 듣다 보면 밤마다 찾아드는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 아, 엄마! 이제 어떻게 해요? 우리 아기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지요? 나는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엄마는 가난해요. 조니와 나도 가난해요. 이 아이 역시 어른이 되면 가난하게 살 거예요. 아, 이제 아무도 이런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지난 한 해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이 지나고 조니와 내가 나이를 먹어도 좋아지는 건 하나도 없을 거예요. 그래도 지금은 우리에게 일을 할 수 있는 젊음과 힘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질 거예요... 비록 이곳에서 사는 게 힘들고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곳에는 희망이 있어. 이곳에서는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면 꿈을 달성할 수 있어.
*최소한 이 아기는 읽고 쓸 줄 아는 부모에게서 태어났잖아. 나에겐 그 자체가 굉장한 기적이다.
* 이 아이가 우리와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하려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비밀은 읽고 쓰는 데 있어. 너는 읽을 수 있어. 좋은 책을 골라서 매일 이 아이에게 한 쪽씩 읽어주어라. 아이가 스스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매일 읽어줘야 해. 그래서 아이가 읽는 법을 배우면 날마다 스스로 읽게 만들어라.
* 가장 좋은 책 두 권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아주 좋은 책이야. 나는 인생의 모든 경이로움이 그 책 안에 들어있다는 말을 들었어. 인간이 아름다움에 대해 배워야할 모든 것, 지혜와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또 다른 책은?)...개신교 신자들이 읽는 성경이야...개신교 성경이 이 세상과 천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담고 있다고 확신한다...설사 내용을 이해할 수 없거나 발음을 제대로 낼 수 없다 하더라도 계속 읽어주거라.
* 아이들은 최소한 여섯 살이 될 때까지는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어야 해... 아이에게 상상력이라는 놀라운 힘을 길러 줘야하기 때문이야. 저 아이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은밀한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 해. 그러면 이 세상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악해도 저 아이는 상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야...처음에는 마음속 깊이 믿고 있다가 나중에 믿지 않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다. 풍부한 감정을 가지고 앞으로 걸어가게 만들어주니까. 여자로 살아가다 보면 실망스런 일을 겪을 때가 아주 많지. 하지만 미리 실망하는 훈련을 쌓다보면 나중에는 그리 힘들지 않게 이겨 나갈 수 있을 거야. 저 아이에게 고통을 겪어보는 것도 좋다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 고통을 겪으면 개성이 풍요로워 지는 법이지. 그런 점에서 우리는 부자라 할 수 있단다.
* 놀란 가족은 개인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것들만 받아들였다. 이들은 어느 특정 집단의 일원이 아니었다. 어른은 괜찮다 하더라도 어린아이로서는 가끔 당혹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생활태도였다. 그래서 프랜시는 학교에서 편안함과 동시에 안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잔인하고 추악한 행위가 난무했지만, 그래도 학교에는 어떤 목적과 발전이 있었다.
*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어둡고 음울할 때가 있어야 영광의 빛을 찬란하게 흩뿌리는 햇살의 소중함을 느낄수 있을 터였다.
* 전 세계가 프랜시에게 문을 열어준 것 같았다. 사방에 읽을 거리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프랜시는 이제 더 이상 외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가까운 친구가 없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었다. 책이라는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온갖 종류의 친구들이 가득했다. 시집은 조용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모험소설은 재미있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중에 사춘기가 되면 연애소설을 있을 수 있을 터이고, 어떤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싶은 때에는 자서전이나 전기를 읽으면 될 터였다.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그날, 프랜시는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하루에 책 한 권씩을 읽겠다고 맹세했다.
* 더러운 사람은 별로 없다. 단지 불행한 사람들이 많을 뿐이지.
*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거짓말. 그러니 너는 앞으로 두 배 이상 착하게 살아가는 걸로 보답해야 한다.
* 선생님은 거짓말과 이야기의 차이점에 대해서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거짓말은 겁쟁이가 나쁜 마음 때문에 꾸며대는 것이지만, 이야기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어떤 것을 실제로 벌어진 그대로가 아니라 그렇게 되기 바라는 마음에 지어낸 것일 뿐이라는 것이었다....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어떤 일을 벌어진 그대로 얘기하지 않고 색깔과 감동과 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어 과장해서 말하는 습관이 들어서 고민이었던 것이다....무엇을 말하다 보면 어느새 여러 가지 색깔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여러 가지 색깔을 집어넣어야 기분이 풀렸다.
* 키이츠가 정의한 것보다 더 좋은 말은 없다고 여겨진다. 그는 이렇게 말했지. '아름다움은 진실이며 진실은 아름다움이다'라고....진실이란 별처럼 언제나 제자리에 있고 태양처럼 언제나 떠오르는 것, 인간의 고결함과 어머니의 사랑과 조국을 사랑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란 말이다...술에 취한 건 진실도 아름다움도 아니야. 그건 악덕이지. 주정뱅이들은 글로 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수용소로 보내야 할 대상이야. 그리고 가난이란 문제도 그래. 거기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어. 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일할 수 있어. 사람들이 가난한 건 너무 게으르기 때문이야. 나태함 속에는 아무런 아름다움도 없어.
* 사람들은 항상 행복이란 게 저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어떤 복잡하고 얻기 힘든 걸로. 하지만 얼마나 작은 일들이 행복을 만들어주는 걸까. 비가 내릴 때 피할 수 있는 곳, 우울할 때 아주 뜨겁고 진한 커피 한 잔, 남자라면 위안을 주는 담배 한 개피, 외로울 때 읽을 책 한 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행복을 만들어주는 거야.
* 어떤 것이든 마지막으로 본다는 것은 죽음처럼 뼈에 사무치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은 앞으로 다시는 똑같은 식으로 볼 수 없다고 프랜시는 생각했다. 아, 비록 과장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본다는 것은 얼마나 뚜렷하게 사물을 보게 하는가. 그리고 매일 그것들을 볼 수 있었을 때 더 잘 보지 않았던 것들을 슬퍼하게 한다. 외할머니가 뭐라고 하셨던가? "항상 무엇이든 맨 처음이나 마지막으로 보는 것처럼 바라보아라. 그러면 지상의 모든 시간이 영광으로 가득 찰 것이다."
* 브루클린은 꿈이었다. 거기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것은 모두 꿈속의 일이었다. 아니면 그 모든 것은 전부 현실이고, 사실이고, 프랜시 자신만이 꿈을 꾸는 사람이었던가?
* 그러나 그 나무는 죽지 않았다. 그것은 죽지 않았다. 새로운 나무가 그 나무 밑둥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 줄기는 빨랫줄이 걸려 있지 않은 데까지는 바닥에 붙어서 자랐고, 빨랫줄이 끝나는 데서부터는 다시 하늘을 보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살아있다! 그 어떤 존재도 이 나무를 죽일 수 없었다. 프랜시는 다시 한 번 비상구에서 책을 읽고 있는 플로리 웬디를 바라보면서 낮게 속삭였다.
"안녕, 프렌시"
그리고 창문을 닫았다.
**읽고 발췌한 날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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