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다 못한 자식
돈은 돈이고 자식은 자식이다. 맞다.
그런데 어떻게 자식을 돈과 같이 볼 수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돈보다 못한 자식들도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돈은 귀하게 여기면서 부모는 귀찮게 생각하고 학대하는 자식들이 있다는 말을 우리들은 늘 들어 왔다. 돈을 갖고자 하는 이유와 자식을 두고자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같다고 본다. 늙어서 힘이 되어 주고 보호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데서 돈도 있어야 하며 또 자식이 필요하다.
산업화로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직업이 다양화되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사는가 하면 발달된 교통수단을 이용, 수 십 키로 혹은 수 백 키로를 출퇴근 하며 산다. 부족한 것이 없고 없는 것이 없는 물질 만능의 시대다. 이렇듯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사회에서 인간들은 자식과 부모 형제 자매간, 또는 일가친척 간, 그런 것 들이 큰 의미를 상실해가며 도덕불감증이 날로 팽배하여 자식이 부모를 저버리는 일들이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재물을 놔두고 형제 자매간의 관계나 일가친척간의 관계는 남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남들보다 더 못한 경우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재물은 “화”를 달고 다닌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그래서 터무니없이 재물을 탐내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TV나 신문의 뉴스를 통해서 돈보다 못한 자식들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접할 수 있다.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의 재산을 놓고 자식들 간 칼부림 끝에 피를 흘리고 결국에는 형제가 형제를 살해하는 일,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여 부모가 교도소 감방 신세를 지고 그 추운 겨울 온기도 없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그런 것이 팽배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네들은 자식보다는 돈이 더 중요함을 엿 볼 수 있다.
서울 종로에 있는 탑골 공원에는 어느 날 할 것 없이 수 백 명의 남여 노인들이 모여 이곳저곳에 둘러 앉아 지난 세월을 추억 삼아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 남은 세월을 한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자원 봉사단체가 제공하는 밥 한 공기 국물 한 사발, 반찬 몇 가지 주는 것 받아들고 옆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숟갈로 입에 넣어 빠져버린 이빨대신 입염으로 우물우물 씹은 듯 마는 듯 목구멍으로 밀어 넣어 굶주렸던 배 채우고 나면 부자가 부럽지 않고 불효자식 학대 속에 사는 것보다 이것이 차라리 훨씬 낫다는 푸념 섞인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돋아나는 이른 봄 햇빛이 내리 쬐이는 오후였다. 공원 여기저기에 서있는 나무들도 가을에 벗어 던져버린 옷을 갈아 입기위해 나뭇가지 가지마다 껍질을 뚫고 내미는 새싹들이 제법 푸르게 물들고 있었다.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나는 시간이 있어 탑골 공원에 갔었다. 팔십이 넘어 보이는 노인 너댓 명이 모여 앉아 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옆에 끼어 앉았다. 마침 비타 500 음료수 10개들이 한 상자를 사 들고 갔었다. 목마르신데 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이야기하시라며 내 놓았다. 그중 한 노인네 하시는 말씀이 젊은 사람이 고맙게도 웬 이런 비싼 것을 사 왔냐 하시며 그렇게도 고마워 하셨다. 그러곤 자 하나씩 나누어 먹읍시다. 그러면서 하나씩 쭉 나누어 주셨다. 그러더니 저쪽 한 노인을 보고 여보 김씨 당신은 당신 하나 드시고 그 할망구 애인도 한 병 갖다 주시구려 하며 두병을 건네준다. 그런 정겨운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이곳은 비록 어려운 여건에 모두가 힘들어하면서도 따뜻한 인심이 메마르지 않고 서로가 양보하며 나누어 드시는 그 훈훈한 정이 듬뿍 담겨있는 곳 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또 이야기를 계속한다. 나는 옆에 앉아 그 노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한 노인의 말이다. 자기는 아들 하나를 뒀다고 한다. 그 아들 나이가 사십이 넘었으며 영등포 신길동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며 하시는 말이 아들이 있으면 뭣하오 제 놈 먹고 살기도 힘들어 아비가 밥을 어떻게 먹고 잠은 어디서 자는지 걱정은 커녕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데.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도 그렇죠 그런 자식이 있다고 무의탁 노인들에게 매월 주는 생활 보조금도 안 주니 그런 자식은 없는 것만 못한답니다. 차라리 그 자식이 없으면 생활 보조금을 받아 최소한 밥은 먹고 지낼 것 아닙니까. 제 자식, 자식 놈이 아닙니다. 원수 놈이죠.
그 말을 듣고 있던 또 다른 노인은 나는 갖은 것 자식 놈에게 다 빼앗겨 버리고 이 꼴이 되었소이다. 당신 자식은 없어서 그런 가 봅니다만 내 자식 놈은 저기 남대문 상가에 가면 옷가게를 하고 서부 이촌동에 넓다란 아파트도 가지고 살만큼 살고 있지요. 그 가게 내가 젊어서부터 했던 것을 아들 자식 하나 있어서 벌어먹고 살면서 늙으면 우리 두 부부 먹여 살리겠지 하며 줬더니 전세 방 한 칸 얻어 밖으로 내 쫒더니 돌아 본 척도 하지 않소 그래도 할망구 살아 있을 때는 그럭저럭 지내며 이 꼴은 아니였죠. 할망구 죽고 나니 대책이 없어 날이 새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지낸다오. 그 자식 없으면 나도 정부가 주는 생활 보조금 받을 것 아니겠소만 그 원수 같은 놈 때문에 생보대상자가 될 수 없다는 군요.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어디 가서 무엇을 하겠소. 질긴 목숨 이렇게 지탱하고 있답니다. 그 노인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인다. 말 못할 깊은 사연이 있는 듯싶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어느 날 거지가 자식들을 데리고 앉아 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7월이면 의례히 찾아오는 장마비. 하루는 갑자기 폭우가 내려 마을 앞 하천 제방이 무너져 논이 범람하고 마을이 물에 잠겨 가축들이 떠내려가고 낮은 곳의 집은 지붕만 빼꼼이 보일뿐 형체를 찾아 볼 수 없었다.또 지형이 높은 곳에 있는 집마저도 반쯤 물에 잠겨 버려 사람들만 겨우 뒷동산으로 피하여 큰 솔 밑에 옹기종기 모여 발만 동동 굴리며 아우성인데 그 마을 입구 산자락에 움막을 지어 살고 있는 거지가 자식들을 데리고 앉아 하는 말이 저것들 보아라. 집이며 세간 살이 들이 물에 잠기고 가축들 떠내려가 저 야단법석들인데 그래도 네놈들은 아비 잘 만나 저런 걱정 없이 이렇게 홀가분하게 구경하고 있으니 다 애비 잘 둔 덕택인 줄 알아라. 하며 자기자랑을 늘어지게 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그 거지 말마따나 집도 재물도 없이 사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고 걱정도 없어 행복하다고 한 말과 같이 몹쓸 자식 있는 것보다 그런 자식 없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을런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재물은 “화”를 데리고 다닌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재물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 “돈”은 못된 자식들처럼 최소한 불효는 하지 않는다. 있는 돈 때문에 그 누구도 업신여기며 괄시하진 않는다. 세상에는 비굴하기 그지없는 인간들 천지다. 돈보고 아부하는 천한 사람 돈이 탐이 나 사기 협박하는 사람 칠팔월 들 가운데 켜놓은 불빛을 보고 죽음을 겁내지 않고 모여드는 불나방처럼 돈을 보며 그 돈을 따라 다니는 속물들도 있지만 그래도 돈보다 못한 자식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낫다. 돈은 꼭 필요하다. 늙고 병들수록 돈이 있어야 남의 신세를 지지 않는다. 지더라도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항상 자식으로써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항상 젊음으로써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월이 가면 입장도 바뀐다. 나이를 먹고 나이를 먹으면 늙기 싫어도 늙어져가고 죽기 싫어도 병들어 죽게 되어있다. 훗날의 자기 인생을 그 누가 알고 산다드냐. 먼 훗날은 그만두고 내일 당장도 모른다. 아니다. 한 시간 후 그 보다는 당장 1분 후의 자기 갈 길을 안다면 숨이 차고 답답해서 못 살 것이다.
나는 지난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 아버지 나이가 85세가 되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학교 교장선생님 이었다고 했다. 65세 정년을 하시면서 퇴직금을 일시불 수령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시곤 자신은 76세까지 살 것이라 하시며 매월 일정액을 생활비로 쓸 것으로 계산하여 정기 예금을 시켰다. (76세까지 사실거란 계산은 무슨 근거로 하셨는지는 모른다) 당시의 평균 수명은 그보다는 낮다. 물론 예금이자며 물가 상승률 등 모두를 고려하여 금액을 정확하게 추정 적어도 이 돈이면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 남겨놓고 나머지는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셨는데 76세를 훌쩍 넘겨 생활비가 바닥이 나자 자식들을 모아 놓고 사정을 털어 놓으면서 죽지 않고 살아있어 어떻게 하나 자식들이 매월 생활비를 거둬 주어야겠다고 하시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렇듯 사람마다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다. 곧 부모가 처한 현실이 머지않은 훗날 자기의 몫이 될 것을 그리도 모르고 하는 짓들을 보며 인간들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리석어 하는 짓이란 하는 수 없지만 최소한 돈보다 못한 자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 봄이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