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이너프』,
-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다니엘S. 밀로/이충호 옮김. 다산사이언스. 2021년.
“왜 최고를 추구할수록 삶은 비참해지는가?”
기린은 그 긴 목이 무색하게 낮게 자란 풀을 즐겨 먹고, 뿔매미의 아주 거창한 머리 장식은 기능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다. 초기 인류는 더 작은 뇌를 가진 유인원보다 생존율이 낮았으며, 오히려 큰 뇌 때문에 위험에 처했었다.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우수하지 않은 종을 용납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생존할 수 없는 결정적인 사유가 없는 한 자연은 모든 실수와 낭비를 허용한다. 이것은 자연을 본뜬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인간의 뛰어난 뇌 덕분에 분업화를 이루고 안전망을 구축해서 우열이란 구분 없이 뛰어난 사람과 평범한 사람 모두를 수용한다. 자연과 사회에서 최소한 살아갈 자격만 갖춘다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최적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진화론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는 학문을 넘어 인간사회의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윈주의는 효율과 최적화를 요구하는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자연과학의 이론이 사회 경제 분야로 차용되어 아직도 인류를 경쟁과 생존의 압박으로 내몰고 있다.
다니엘 말로는 이러한 사회관에 문제를 제기한다. 자연은 탁월성을 쫓지 않는다. 자연에는 낭비와 과잉이 넘쳐나며 이를 통해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진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생존 다툼이 아니라 모두를 품는 관용이다.
다니엘 말로는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다. 저자는 다윈주의의 비판적 해석을 통해, 적자생존이라는 시야 가리개를 벗고 평범성을 포용하는 사회가 수많은 가능성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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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생존과 도태를 넘어서 있다.
자연에서는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개체나 운이 나쁜 개체가 도태된다. 충분히 훌륭하거나 특별히 나쁘지 않은 대부분은 살아남는다. 자연에서 도태된 개체는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그렇다.
自然, 스스로 그렇게 한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