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여행]
오슬로시청과
에드바르드 뭉크 미술관
노르웨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바이킹의 나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라다.
완전한 독립 국가로 출발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국민소득이 높고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어
북유럽에서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는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의 하나다.
또한 북극해와 대서양을 길게 마주하고 있어
이 나라는 선천적으로 모험심이 강하고 전통적으로
진취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성질을 타고나
극지와 학술탐험을 운명적으로 받아드리는
개척정신이 투철한 민족이기도 하다.
오슬로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여 1950년 완성된
시청 건물이다.
붉은 벽돌과 두개의 사각기둥 탑이 대칭으로 서 있어
우선 강한 인상을 심어 준다.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그림과 벽화들이 있어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며 언제나 개방되어 있어 관람할
수 있다.
수도 오슬로는
국토의 남쪽 덴마크와 마주 보는 협만 깊숙한 곳에
있어 지리적 이점이 많아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여
많은 부를 축적해 오늘날 노르웨이의 정치 경제
중심지로 도약한 도시이다.
이곳은 매년 12월 10일
노벨의 숨진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리는데 최초의 수상자 적십자를 창설한
스위스의 앙리뒤낭을 비롯하여 마틴루터킹 목사.
고르바초프. 넬슨 만델라. 그리고 2000년에는
우리나라의 김대중 전대통령이 수상한바 있다.
우리나라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초로 영광스럽게 노벨상을
받게된 이유는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에 집중적으로
이바지했다는 점과 IMF 환란을 슬기롭게 극복한 점.
냉전 상태인 남북관계를 평화 분위기로 조성한 점.
그리고 아시아 국가 관계를 한층 발전 식혔다는
공로였다.
시청사 내 의원실의 책상과 의자는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아주 소박한 것들이어서
검소한 의회 정신을 보는 것 같았고 특히 벽에
그려진 독일 나치군이 오슬로 점령 하의 고뇌를
표현한 작품들을 대할 때는 당시 국민감정을
잘 묘사해 준 것 같아
피지배자의 애환을 엿볼 수가 있었다.
오슬로는 조그만 도시지만
거대한 공원같은 행정의 요충지이고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실내에서 뒤편 창문으로 보이는 항구의
아름다움이 정말 그림 같아 지금까지 머리에서
지워지지를 않는다.
상 운.
[국립 미술 박물관]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의 그림
절규(The Scream 1893.)
길을 걷다가 피처럼 붉게 피어 오르는 하늘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 앉을 뻔한 순간
자연을 관통하는 절규를 그린것이다.
다리 난간에서 귀를 막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해골을 연상 식히고 감정으로 구비치는 선과
부자연스러운 원근감이 불안과 공포를 표현하는
듯 하다.
고독과 불안 그리고 광기 서린 강렬한 색채의 선으로
보는이로 하여금 충격과 공포의 세계로 몰아넣어
같은 절규를 느끼게 한다.
* 당시 뭉크의 감정을 기록한 일기를 보자.*
치구 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 질녘이였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때 갑작이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 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핏빛 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와 피요르드에 걸린 칼을 보았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
봄 (Spring 1889)
뭉크는 1863년에 태어나 1944년에 사망한
노르웨이의위대한 화가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누이의 죽음도 직혀
봐야 했는데 정신적으로 나약한 형제들과
신경질적인 아버지 밑에서
유년 시절을 쓸쓸하고 어둡게 보냈다.
그의 삶이 불행하고 어두웠던 만큼
그의 초기작품에는 질병과 죽음에 관련된 음울한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뭉크는 자신의 생애 동안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끊임없는 갈등에 사로잡혀
염세주의적인 성향이 그의 작품들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는 파리와 베르린에서도 활동을 하였는데
그곳에서는 동판화.석판화.목판화등의 작품으로
유명했었고
1910년 노르웨이로 돌아와서 죽을 때까지는
자연에 대한 관심에 많이 쏠려 이전보다는 덜
염세적인 밝은 색상의그림들을 그려 냈다.
사춘기 (Die Pubertat 1984)
냉철한 관찰력과 인간에 대한 깊흔 이해로
이제 성에 눈을 뜬 소녀의 내면을 사춘기 특유의
감수성과 불안으로 표현하고 있다.
홀로 덩그러니 침대에 앉은 소녀는
두려움에 떠는 큰 눈망울과 웅크린 자세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섬세하게 나타내며 소녀 뒤의 기묘한
그림자가 소녀의 불안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여성의 내면을 감추려는 듯 두 손을 앞에 가지런히
놓고 움츠려 애틋하면서 청순한 소녀 사춘기의
동경과 불안으로 가득한 정면을 똑 바로 바라보는
시선이인상적이다.
마돈나(Madonna 1895)
뭉크는 이 작품에 대해
"죽음에 손길이 삶에 미치고 있다"라고 썼다.
농염한 성적매력이 넘치는 이 여성은 성의 극치를
느끼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될 때에는 정자와 태아가 그려진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은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표현으로
사랑과 수태의 의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 마돈나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 있다.>
세상 모든것이 움직임이 정지되는 순간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당신의 얼굴에 머믄다.
잘 익은 과일처럼 붉은 너의 입술
고통을 견디지 못해 열린다.
그것은 죽음의 미소
죽음이 삶에 손을 내민다.
생명의 사슬은 이어져서
이미 죽어간 수천의 생명이
후대의 수천세대와 연결된다.
담배를 든 자화상
(Self-Portrait with Cigarette 1895)
1895년 작품 담배를 든 자화상이다.
아버지가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5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누나도 같은 병으로
1877년에 사망한다.
젊은 시절 겪었던 가족의 죽음과 공포는 평생
뭉크의 삶을 지배하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아픈 아이(The sick child)
뭉크는 의사인 아버지의 왕진에 따라갔다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됐다.
그 집에는 아픈 소녀가 있었는데. 소녀를 본 순간
뭉크는 일찍 죽은 누나가 생각났었고.
뭉크가 무척 사랑했던 누나 소피에는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뭉크는 누나보다 한 살 어렸지요.
누나를 잃은 일이 몹시도 가슴 아팠던 뭉크는
아픈 소녀의 모습을 본 순간,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는 당연히
누나의 이미지가 선명히 배어 있다.
----서양미술사 참조----
릴레함메르(Lillehammer)
릴레함메르는 1994년 17회 동계올림픽대회가
개최되였던 곳이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이곳은 노르웨이 남동쪽
뫼사호수 북부 끝자락에 있는 라겐강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인구 23000명의 작은 도시로서 원래는
무역 전초기지로서 시장 마을이 형성되었었다.
워낙 자연경관이 빼어난 데다 올림픽경기가 열려
올림픽공원과 다양한 주제의 전시물을 볼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 관광지로도 매력적이다.
구시가지에는 아름다운 전통 목재 건물이 있어
옛 모습 그대로 체험할수 있고 보행자를 위한
차 없는 거리도 지정해 놓아 쾌적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잔잔한 호수위에 떠 있는 이 조그마한 마을은
푸르른 잔디와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 단풍잎을
물감으로 그려 놓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꿈속의 나라 같았다.
잠시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주위의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렌즈에
담아 보았다.
높은 산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와 마당 벤치 옆에
붉게 열려 있는 “룬투나무” 빨간 열매가 신비스런
그림 자체였다.
(가이드가 나무 이름을 알려 주었다)
오후의 늦은 가을 햇살이 고원의 호수 위에
곱게 물들였다.
멀리 흰 눈으로 덮인 설산이 노르웨이의
자연풍광임을 은연히 나타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