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론의 축복권(민 6:22-27)
할렐루야! 비가 많이 올 때는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비가 안 오고 날씨가 더울 때에는 차라리 비라도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런 날씨, 저런 날씨로 원망하기보다는 늘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축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를 잘 분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고 했습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공을 하고, 출세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우리가 실패를 하고, 아파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하는 것은 복이고, 멀어지게 하는 것은 저주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
여러분! 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 12:3)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려 주십니다.
축복받기를 원하십니까? 다른 사람을 많이 축복하는 사람은 축복받지만,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저주하는 사람은 축복받을 수가 없습니다. 축복받기를 원하시거든 다른 사람을 많이 축복하십시오.
로마서 12:14절을 보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자, 우리를 핍박하는 자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옆 사람을 축복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사람이 되십시오.”
“복의 근원이 되십시오.”
“갑절의 복을 받으십시오.”
“잘 사십시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복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만큼 복을 좋아하는 민족이 다름 아닌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축복을 사모합니다. 복 받기를 사모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유달리도 축복을 사모했던 사람이 등장합니다. 장자가 되기 위하여,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사람입니다. 사냥 나갔다 돌아온 형의 허기진 배를 이용하여, 형의 장자권을 빼앗은 사람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이어지는 장자의 축복권을 받기 위하여,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아버지를 속였던 사람입니다. 20년 동안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밤 낯선 사람을 만나 밤새도록 씨름을 하였을 때,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떼를 쓰고 매달렸던 사람입니다. 밤새 씨름을 했습니다. 밤새 씨름을 할 정도로, 별로 관계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보통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두 번 씨름하다가, 서로 통성명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얼마나 사이가 안 좋았으면, 밤새 씨름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이일지라도,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붙잡는 것을 보면, 축복을 사모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축복을 사모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야곱입니다.
밤새 씨름을 하고 난 뒤에 야곱이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갑자기 그의 재산이 많아졌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재산 가운데, 엄청난 양의 재산을, 형을 만났을 때, 형에게 뇌물로 주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야곱의 재산이 적어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축복달라고 놓지 않고 떼 쓰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밤새 축복해 달라고 씨름을 했는데, 다음날 눈을 뜨고 난 다음, 그의 재산의 상당 부분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놓지 않고 떼 쓰다가, 절뚝 절뚝하면서, 한 평생을 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우리가 성공을 하고, 출세를 한다 할지라도,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된다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우리가 실패를 하고, 아파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우리의 가진 재물이 축 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건강을 잃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복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밤새 씨름을 한 다음, 복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도둑놈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스라엘”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을 보면,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였습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적수인 브닌나”라는 표현을 보면, 한나와 브닌나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한나의 적수인 브닌나가 한나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한나는 늘 괴로웠습니다. 한나는 제사를 드리러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먹지도 않고 늘 울면서 기도드렸습니다. 그 날도, 마음이 원통하여, 기도하고 있는데, 엘리 대제사장이 들어오더니, 술 마시고 성전에 와서 기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삼상 1:14)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삼상 1:15-16)
엘리가 한나에게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한나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음식을 잘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
엘리 대제사장은 별로 좋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축복하였을 때, 한나는 한 마디로 “아멘”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 아들을 더 낳았고, 딸 둘을 더 낳았습니다. 아들 하나 달라고 했는데, 아들 넷, 딸 둘을 더하여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제사장의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축복한 대로 되어짐을 믿는다면, 그대로 되어집니다. 그러나 믿지 못한다면, 아무 역사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훌륭하고, 훌륭하지 않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사장의 축복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은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역사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아론의 축복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제사장의 축복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형인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할 일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백성을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시는데, 제사장이 기도하면,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축복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을 주시지만, 제사장이 축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지 않겠다는 말도 됩니다. 제사장의 축복권이 이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22-2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아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축복의 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대변자였고 하나님께는 백성들의 대표자였습니다. 성전에서는 제사를 담당하여 언약궤와 회막을 관리하였고, 율법에 따라서 선과 악을 구별하고, 소송과 분쟁이 있을 때 재판관이었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과 규례를 가르치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행사할 수 없는 제사권과 축복권을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았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축복을 선포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
하나님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어떤 내용을 축복하라고 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신다”고 축복하라 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아멘.
복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복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산이나 바다에 가서 나무 또는 돌로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라고 복을 빌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을 받기 원하는 마음은 있는데, 누가 복을 주는지 모르고, 아무 데나 찾아가서 복을 빕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복을 받습니다.
여기에서 ‘복’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오는 행복한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성공, 번영, 풍요, 건강, 장수, 자손, 그리고 힘과 지혜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진짜 복입니다. 세상적인 탐욕과 거짓과 죄악으로 인해 얻어진 복은 잠시 왔다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야 합니다.
창세기 14:19절을 보면,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그를 축복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멜기세덱을 가리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렘 왕이었기에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기에, 아브라함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아멘.
아브라함은 살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 전쟁에서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하나님,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지난 주에는 “하늘 축복을 받는 비결”인 “십일조”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왜 십일조를 해야 합니까? 십일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면 복 주시고, 십일조를 안 하면 복 안 주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복을 받으려면, 복 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복 받을 일을 하지 않습니다. 복을 달라고 하는데, 도대체 복 받을 일을 안 합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제사장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하라고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도대체,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 받기를 원하면서도, 복 받을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쉽게 눈에 보이는 “십일조라도 온전하게 하라. 그러면 복 주겠다”는 것입니다.
왜 십일조를 합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적절한 예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많은 이들이 복권을 합니다. 예를 들어, 꿈에 그리던 1등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당첨금이 1억이라고 합시다. 당첨된 1억을 그대로 다 줍니까? 1등에 당첨이 안되어 보아서, 모를 수 있겠지만, 주기 전에 세금 다 제하고 당첨금을 줍니다. 1억을 통장에 넣어준 다음에, “세금 내실 때, 복권에 당첨된 세금도 내세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금 다 제하고 나머지를 줍니다. 그렇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금 제하고 나머지만 준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세금을 제하고 준 돈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흥분하여 받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원래 내 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도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물질도, 내가 누리고 있는 생명도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 신앙입니다.
그러나 내게 있는 물질도 내 것이요, 내가 누리고 있는 생명도 내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책임은 누가 져야 합니까? 자기 것이니까, 자기가 지키고, 보호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십의 하나도 내 것이 아니요, 십의 구도 내 것이 아니요,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 신앙입니다.
그러면, 그 물질, 그 생명,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누가 보호하고, 누가 지켜야 합니까?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의 지키시고, 보호하셔야 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내 것은 내가 지켜야 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6:19-21절을 보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대대로 그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셨는데, 그들에게 아주 특별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언제나 복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건강하십시오. 부자가 되십시오. 사업이 잘 되십시오. 학생들은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시험 볼 때마다 좋은 성적 얻으세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큰 사람 되십시오.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십일조 제일 많이 하십시오.”
둘째,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하라 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함께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아멘.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을 받는 것도 큰 복입니다. 재산이 줄어들지 않게 지켜주시고, 건강하게 지켜주시고, 가정과 직장과 나라를 지켜주시고, 전쟁과 위험에서 안전하게 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지켜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사나운 짐승에게서 보호하시고, 적군에게서 보호하신 것같이, “하나님이여, 우리 가정을 지키시고, 우리 자녀들을 지켜 주옵소서. 우리 교회를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셔서, 지켜 주옵소서. 더 나아가 하나님이여 이 나라와 이 민족도 지키고 보호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32:10절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되, 어느 정도로 보호하시느냐 하면, 눈동자처럼 보호하신다고 했습니다. 눈동자는 아주 예민하여서 조그만한 것이 들어오기만 해도, 금새 깜박거리고 반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시험 당하지 않도록, 병들지 않도록, 저주받지 않도록, 마귀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늘 지키고 보호하시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시편 121:3절에도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31:5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떠나면, 지금 있는 것도 다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지 않아서,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해 주셔서, 이 정도라도 은혜 받고, 축복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돌려 보세요. 나보다 더 힘들게 아등바등거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보다 잘난 사람, 우리보다 잘 배운 사람, 우리보다 더 가진 사람,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하루 아침에 세상을 떠나고,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 하루 아침에 감옥 가는 것, 얼마나 자주 봅니까? 우리가 그들보다 잘 났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보다 더 건강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졸지도 못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짐승 중에서 오소리라는 짐승이 있는데, 이 오소리는 작은 짐승이지만. 자기를 보호할 줄 압니다. 갑자기 독수리가 닥치거나, 자기보다 큰 짐승이 나타나면, 오소리는 바위 속으로 들어갑니다. 바위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아무도 오소리를 헤칠 수가 없습니다. 바위에 머물러 있는 한 오소리는 안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위를 떠나서 들판이나 산 속을 헤매고 있으면, 독수리가 쏜살같이 날아올 때, 피할 곳이 없어서, 잡아먹히고 맙니다. 그래서 오소리는 바위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교회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면, 가난과 저주와 질병과 마귀가 다가오지 못합니다. 왔다가는 달아나 버립니다.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줄행랑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떠나고, 말씀을 떠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면, 그와 함께 하나님의 축복도 떠나버립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곁을 떠나지 말고, 항상 반석 같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보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칠지 알 수 없고, 언제든지 사고의 위험은 있기 마련인데, 우리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명과 재물과 모든 것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직장을 지켜주시기를, 여러분의 사업을 지켜 주시기를, 여러분의 자녀를 지켜주시기를, 여러분의 물질을 지켜 주시기를, 여러분의 가정을 지켜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하라 하셨습니다.
2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아멘.
“은혜”란 “사랑과 호의, 불쌍히 여기고, 동정과 자비를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은,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저주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대가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가운데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회개하고, 구원받게 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알지 못해서 무지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며, 은혜 베풀 자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19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아멘.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불충성하고 은혜 입지 못할 짓만 하면서 어떻게 사랑 받겠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께 충성하시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03:8절에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기 원하는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고 당하고, 위험 당하고, 가난과 질병, 저주 가운데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죄값으로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행복하게 잘 살고, 풍족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은혜로우시며, 인자가 풍부하신 분이십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미술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한 제자가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예술은 영원하다고 했으니 최대의 예술가이신 선생님의 이름이야말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제자의 말에 미켈란젤로는 정색을 하며 “이 사람아,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지, 사람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재물, 영화와 권세는 잠시 우리 곁에 머물다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없어졌다가 다시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십니다.
영국의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에서 한 소년이 새장 속의 새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년은 새장 속에 막대기를 집어넣고 새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그것을 보다 못해, 소년에게 다가가서 “왜 새를 못살게 하니? 새가 불쌍하지도 않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 새는 어차피 죽을 거예요. 이러다가 죽겠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소년의 말을 듣고 “그 새를 나에게 팔지 않겠니?”라고, 2파운드에 그 새를 샀습니다. 그리고 새장 문을 열어서 새를 날려보냈습니다. 소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새를 사서, 풀어주고, 자유롭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죄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값을 탕감하셨습니다. 저주 속에서, 어둠 속에서, 절망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진리 안에서의 자유, 정신적인 자유, 더불어 축복과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보답하고 베풀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과 부인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풀고, 무엇을 해 줄까 생각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도와주겠다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기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서로에게 해 달라고 하고, 자꾸 바라기만 하면,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가정은 불행한 가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도, 자꾸 달라고 하는 것보다,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더욱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넷째,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하라 하셨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아멘.
“평강”은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완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평강의 축복이란 전쟁이 없는 평화, 죄악이 없는 마음의 평안, 분쟁과 갈등과 다툼이 없는 화목한 관계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평강의 축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마음에 평강이 없으면,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졌어도 평화가 없으면, 최고의 인기를 누려도 평화가 없으면, 그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어떤 평안입니까? 죄 없이 붙들려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신 예수님이십니다. 영혼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고, 승천하게 하시고, 승리자가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선한 사람에게는 평강이 있지만, 악한 사람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는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공포 속에 떱니다. 우리는 늘 평화로운 가운데서,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데이힐 카네기는 늘 환한 얼굴로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주고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평안스럽게 삽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정신적인 갈등이나 번민이 생길 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맡아서 해결해 주십니다. 갈등이나 번민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평강의 능력이 나를 사로 잡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평안이 여러분을 사로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마음 속에 평안이 있습니다. 만일 불안과 두려움, 공포가 있다면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태산같이 많은 문제가 쌓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평강을 허락하여 주시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주십니다.
카놀 산도스씨는 나이 60세 파산을 했습니다. 그는 수백만 달러의 빚을 지고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나이도 먹고, 파산해서 빚도 졌으니 이제 갈 곳은 딱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때 어디에선가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 걱정 근심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그는 찬송소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병원의 뒷문을 열고 가보니 조그마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몇 사람이 모여 찬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산도스씨는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서, 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만하여, 세상의 돈 명예 권세만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을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여태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평안함을 못 보았습니다. 평안만 온 것이 아니라 기쁨도 왔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혼자 살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돈이 좀 모아지자 통닭집을 운영하였는데, 그것이 맛도 있고 정성을 들이니까 잘 팔려서 전국에 체인점까지 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산도스 치킨’입니다. 나이 60세가 넘어서 파산하고 빚 가운데서 자살을 결심한 그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다시 시작했을 때 그는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과거에는 자기 노력으로, 자기 경험으로 살았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하나님과 더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업할 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적과 축복이 나타날 것입니다.
2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아멘.
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할 때, 그것은 제사장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여받은 하나님의 권위로 축복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의 축복권을 통하여 주시는 네 가지 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믿음이 없거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축복에 대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축복에 대한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은혜를 베푸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남은 생애 동안, 여러분과 여러분 자자손손 듬뿍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늘의 복을 주옵소서.
땅의 복을 주옵소서.
영적으로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우리의 육신도 지켜 주옵소서.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늘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