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효의 야생초 산행-금산
봄꽃 벌써 '활짝' 겨울 어찌 날꼬…
남해 금산 (681m) 2006-12-07 09:30:00
속담에 ‘가을비 한 번에 속옷이 한 벌’이라고 한다. 가을의 끝자락인 11월 마지막 주에 내린 한 줄기 비가 겨울을 재촉 하더니, 달이 바뀐 지난 주말에는 계절을 두부 자르듯 나눌 것처럼 수은주를 갑자기 떨어뜨리며 겨울 맛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겨울산행은 북서계절풍이 불어와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며 바깥출입을 꺼릴 때가 제격이다. 북서계절풍에 실려 온 찬 공기는 맑고 깨끗하여 드넓은 시야를 확보해 주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산을 오른 경험 있는 산 꾼들은 이런 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주말을 이용하는 야생초산행도 때맞춰 북서계절풍이 불어와 오랜만에 먼 곳까지 조망할 수 있는 즐거운 산행이 되었다.
금산(錦山 681m)은 남해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속의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산의 남쪽 기슭에는 은빛 백사장과 송림이 어우러진 반월형의 상주해수욕장이 있어 한층 아름다움을 더한다. 사실 상주해수욕장의 드넓은 백사장은 금산이 만들어낸 또 다른 걸작품이다. 금산은 마그마가 지표면 가까운 곳에서 굳어 형성된 산 전체가 화강암 덩어리다. 상주해수욕장의 고운 모래는 오랜 비바람에 풍화되어 흘러내린 금산의 바위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금산의 본래 이름은 원효대사가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창건한 보광사라는 절에서 유래한 보광산이었다. 이성계가 보광산에서 200일 기도를 올린 후 조선 개국의 꿈을 이루게 되자 보답의 뜻에서 비단으로 산을 덮겠다고 한데서 금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암석에 녹아든 광물질의 성분 때문이겠지만 금산의 기암괴석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붉은 빛을 띠는 것이 신비할 따름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여인의 살결처럼 고운 빛깔의 크고 작은 바위가 모여 금산 38경을 만들었다. 그래서 세상의 기암괴석을 모조리 옮겨 온 것 같은 금산을 일러 남해의 소금강이라 했던가.
산행은 금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한 상주매표소를 통과하여 금산의 대문격인 쌍홍문으로 올랐다. 등산로는 탄탄대로와 같은 외길이라 중간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산의 위치가 남쪽 바닷가인 탓에 산속에는 광나무, 동백, 사스레피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많아 푸른빛을 잃지 않고 있다. 숲속에는 자금우와 마삭줄, 좀마삭줄 등이 바닥을 덮고 있어 야생초가 말라버린 겨울임에도 푸른 생명이 가득하여 계절을 잊은 듯하다.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는 쌍홍문은 금산의 출입구로 자연동굴이 두개의 무지개처럼 뚫려있다. 동굴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쏟아내 흘러내린 땀방울을 씻어주며 등산객을 맞는 것 같아 궁금증을 더한다. 또한 쌍홍문 바로 앞 목책 넘어 등산로 주변에는 계절을 잊은 푸른 식물이 여름 같다. 아마 위치가 남향으로 따스한 햇볕이 잘 들고, 북쪽이 막혀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며, 병풍처럼 둘러싼 주변의 큰 바위가 온기를 보존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푸른 식물 가운데는 꽃이 핀 ‘산괴불주머니’가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산괴불주머니’의 꽃을 초겨울에 보다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꽃을 자세히 보면 모양이 길쭉한 꽃은 위쪽이 뭉툭하게 막혀 튀어나와 있고, 다른 한쪽은 물고기 입처럼 벌어져 있다. 줄기를 잘라보면 속이 비어있는 현호색과에 속하는 이 식물은 번식력이 좋아 여름에 씨앗을 받아 뿌려두면 두어 달이 지나 싹이 트고 다음해면 꽃이 핀다. 한 번 적당한 곳에 심어 두면 특별히 관리 하지 않아도 매년 꽃을 볼 수 있는 봄꽃이지만 지금 핀 이유를 알 수 없다.
쌍홍문을 지나면 상주해수욕장을 비롯한 시원한 전망이 눈부시다. 쌍홍문 주변에는 늘푸른식물인 송악이 바위를 타고 굵은 나무마냥 붙어있다. 송악은 마삭줄과 함께 금산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은 식물중 하나인 것 같다.
보리암은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3대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암자가 위치한 자리가 워낙 전망이 빼어난 곳이라 기도를 드리지 않더라도 반드시 들렀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보리암을 지나 망대가 있는 정상으로 이어진 길가에도 계절을 잊고 사는 꽃들이 즐비하다. 남산제비꽃, 금창초의 꽃이 피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뱀딸기’는 제철마냥 빨간 열매가 익은 채로 매달려있다. ‘뱀딸기’도 꽃이 피는 시기는 봄과 초여름이다. 딸기보다는 원형에 가까운 작은 열매를 먹을 수는 있으나 맛이 딸기만 못해 ‘뱀딸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장미과인 ‘뱀딸기’의 꽃은 양지꽃이나 가락지나물과 비슷하나 열매가 꽃잎 가운데 맺혀있는 것이 다르다. 꽃봉오리 때의 꽃이 더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계절을 잊고 안간힘을 다해 꽃대를 내민 모습이 대견하고 제철에 활짝 핀 꽃보다도 아름답다.
망대가 있는 정상 주변에도 크고 작은 구멍이 뚫린 바위들이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구멍들은 낮은 압력에서 마그마가 식으며 수증기와 휘발성 물질이 빠져나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하산은 단군성전을 둘러 상사바위를 돌아 좌선대, 쌍홍문으로 했다. 정상 가까운 등산로 주변에는 경작을 하는 밭이 있어 채소를 재배하기도 한다. 햇살이 도타운 밭둑에는 ‘떡쑥’이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국화과 식물인 ‘떡쑥’은 지금쯤 월동을 위한 하얀 털이 보송보송한 겨울 잎을 내밀고 있어야 한다. 잎의 모양이 쥐의 귀를 닮아 서국초라고 부르기도 하는 ‘떡쑥’은 떡을 해 먹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따뜻한 곳이라지만 다른 식물이 사라진 후에 꽃을 피우고 있으니 더 귀하게 느껴진다.
금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바위인 상사바위에 올라 원근을 조망하고 바위 면에 뚫린 크고 작은 구정암, 즉 아홉 개의 구멍을 세어보기도 했다. 상사바위를 뒤돌아 좌선대를 거쳐 쌍홍문을 다시 빠져나와 올랐던 길로 내려 왔다. 길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겨울에 여러 종류의 꽃을 즐긴 귀중한 산행이었다. 같은 길을 왕복할 경우 금산 등산에 걸리는 시간은 4~5시간이면 충분하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 진교IC > 1002번 지방도 남해대교 > 19번국도 남해읍 우회 > 상주리 금산 매표소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남해읍까지는 각지에서 운행하는 직행버스를 이용하고, 남해읍에서는 첫차 06:30부터 막차 20:15분까지 하루 20여회 운행하는 군내버스를 이용하여 상주리 매표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문의 : 055) 864-7101)
(농협중앙회 하동군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