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중 하나가 템플스테이였고
왜 대승사를 선택했냐고 한다면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굳이 한가지를 말하라고 하면 문경이라고 읽고 단양이라고 생각했다는것이다.
대승사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에 있는 사찰이다.
그런데 나는 문경을 단양으로 생각했고 단양이라고 하면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라고 생각했고
단양8경을 떠올리기도 했다.
2023년 9월 13일 4시까지 입소여서 집에서 1시정도 출발했고 절에 도착을 하니 3시 32분
무려 2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럼에도 다행인것은 차가 종무소앞까지 올라갈수 있었다는것?
하염없이 추적거리는 비가 내리는 오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하여 대승사에 도착을 했다.
일주문
이곳을 차로 지나쳐 올라가야 되었으므로 나는 차를 잠깐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절에 갔을때 일주문부터 찍는것이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입구쪽에서 찍어서 사불산대승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지만 뒷면에서 보면 불이문이라고 되어 있다.
* 대승사의 창건 설화 *
사불산의 본래 산명은 공덕산이었다. 그러나 삼국유사권3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의 내용에 따르면 “죽령 독쪽 백여 리 지점에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진평왕 9년 갑신년에 홀연히 사면 10자 정도되는 큰 돌이 사방에 불상을 새겨 붉은 비단에 싸여 하늘로부터 산의 꼭대기에 내려왔다. 왕이 이 사실을 듣고 수레를 타고 가서 예경하고 그 바위 곁에 절을 지어 대승사라 하였으며, 법화경을 독송하는 망명(이름을 밝히지 않은) 비구를 청하여 절을 주관케 하였더니, 그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돌에 공양하여 향화가 끊이지 않았다. 산을 덕산, 또는 사불산이라 하였다. 비구가 죽자 장사 지냈더니 무덤 위에서 연꽃이 나왔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절은 ‘천강사불하고 지용쌍련’의 설화로서 더욱 잘 알려져 있다.(한국관광공사에서 가져옴)
참고로 대승사에 가면 커다란 누렁이개가 2마리가 있는데 한녀석은 사불이고(사불산에서 따온) 한녀석은 역덕(역덕산이라고 불린다고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숫하게 생겨서 누가 사불이고 누가 역덕인지는 모르겠다.(참고: 역덕은 내가 잘 들은것인지 조금은 자신이 없다)
만세루
대웅전 올라가기전 만세루가 먼저 나오는데 부처의 설법이 만세에 떨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대웅전
대승사의 대웅전은 팔작다포집으로 정변3칸의 전면에 4-6-4짝이나 되는 많은 꽃살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대웅전 문 꽃살문 꽃살무늬가 아름다워서 찍어봤어
한 천녀가 하늘의 꽃을 여러 보살과 부처의 십대 제자들 위로 뿌렸다. 꽃이 보살들한테는 달라붙지 않고 모두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십대 제자들 위로 뿌려진 꽃들은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제자들은 신통력으로 그 꽃을 열심히 떼려고 했지만 떼지 못했다. 천녀가 왜 그렇게 꽃을 열심히 떼려 하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이렇게 알록달록한 꽃은 수도승에게는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천녀는 꽃을 나무라지 말라고 했다. 꽃은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 따위를 하는 일이 없다. 그냥 떨어지는 것이다. 제자들이 스스로 좋다 나쁘다로 분별상(分別想)을 일으키고 있을 따름이다. 분별하지 않기로 약속한 출가 스님이 자꾸 분별만 하고 있으니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일체 제법이 곧 해탈의 상이다. 무소분별(無所分別)이 곧 여법(如法)한 것이다. 보살들은 이미 일체의 분별상을 끊어 버렸기 때문에 꽃이 달라붙지 않는다. 번뇌 망상의 악습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꽃이 몸에 달라붙는 것이다. 꽃도 하나의 색인데 색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색이 마음을 타고 들어오는 것이다. 꽃이 몸에 붙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없어져야 한다. [글 : 유마경에서 인용]
[출처] 문경 대승사 대웅전 꽃살문|작성자 저녁노을 이성순
노주석
보통 절에 가면 석등이 있는데 이곳은 독특하게 주위를 밝히는 석등의 용도로 사용했다고 해
대웅전앞 양옆에 노주석이 있어
대웅전을 정면에서 바라봤을때 왼쪽에 이렇게 생긴것이 있어서 난 이게 굴뚝인줄 알았어
왜 경복궁에 가면 정전 뒤에 굴뚝이 있잖아 그 아름다운 아미산에..
대웅전의 난방 방식이 온돌이라면 반드시 굴뚝이 있어야 되잖아...
그런데
오늘 아침(2023년 9월 14일)
새벽예불 (새벽 4시에 시작해서 5시 30분쯤 끝났어) 에 참석자가 나 한사람이었어
템플스테이에 온 사람이 나 말고 이틀전에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분은 새벽예불에 안온거야
난 스님이 예불하는거 실제로 첨봤어 그리고 당연히 첨 참석해본거지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엉거주춤 스님이 하시는대로 따라했어
절하시면 절하고 앉으시면 앉고 서계시면 서고
처음에는
전각 밖으로 나가셔서 목탁을 치시며 염불하신다고 하나? 염불을 외우시며 이표현이 맞나? 전각을 도시더라고
그후 들어오셔서 범종을 치시면서 또 염불을 하셨어 특이했던것은 염불하시다가 갑자기 몸을 좌우로 막 흔드셨어
2번정도 그러셨던거 같어
왜 그러셨는지는 몰라
그리고나서는 딸랑이 종을 흔들면서 또 염불을 외우시고
그 중간에 목탁치시면서 절도하시고 염불도 하시고 여튼 엄청 길게했어...
그리고 밖으로 나오시길래 여쭐것이 있다고 하면서 저게 뭐냐고(내가 굴뚝으로 알고 있었던 그거)
49제를 지내고 난후 나오는 물품을 소각하는 그런거래 조금 허탈했어 ㅎㅎ
대부분의 절들은 주불뒤에 괘불탱화가 걸려 있는데 여기는 괘불탱화가 아니라 사진처럼 조각된 부처님들이 계시는거야 이런것을 후불탱화 또는 목각탱이라고 한데
또한 이것이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고 보물575호래
가운데 빨간테두리광배를 두루신(혹시 이 포스팅을 보시는분이 계시다면 찾기 쉬우라고 이렇게 표현한거야) 분이 아미타여래임
그러데 이름이 아미타여래설법상이고 가운데 계신분이 아미타여래하고 했잖아
그렇다면 주변에 계분분들에게 설법을 하시는건데 순서는 잘 모르겠고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제장애보살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금강장보살, 미륵보살(8대보살)
그리고 십대제자와 대범천, 제석천(이름이 너무 많아서 생략)
천자, 용왕, 사천왕, 천공과구품연지 등등이 있어
어떻게 알았냐고?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및 관계문서라는 학술조사보고서를 선물로 받았거든.
학술조사보고서를 보면 과학적 근거등등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내용이 너무 많아 그리고 어려워
그래서 앞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에 나오시는 분들만 읽어 봤어
대승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대승선원에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사진을 못찍어서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왔어
삼성각
요위에 있는 사진의 설명이 아래 사진 극락전에 대한 설명이야
극락전
명부전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염라대왕과 시왕(十王)을 모신 법당이라는것은 다 알지
참고로 염라대왕님은 아마도 책을 머리위에 올리시고 계신분이라고 기억하고 있어
여기가 템플스테이를 하기위해 온 사람들이 묵는 숙소야
나는 왼쪽에서 제일끝방인 4번방에 있었어
혼자 사용했고 우리고 흔히 알고 있는 옵션없는 원룸이라고 생각하면 돼
범종각
내가 왜 목어만 특별히 클로즈업해서 찍었냐 하면 목어가 멸치만해
그래서 주지스님께 여쭤봤지
범종각안에 있는 4가지를 사물이라고 하잖아
범종, 법고, 운판, 목어
근데 목어가 왜이렇게 작냐고 했더니 추정컨데 범종과 법고를 주문제작해서 만들었는데 운판과 목어를 서비스로 해주신게
아닌가 추정한데 사실 다른절에 비해서 운판도 엄청 작긴 했어
그냥 추정일뿐이야..
오늘아침은 떡국이었어
설에도 못먹어본 떡국을 절에서 먹어봤네
참기름 냄새가 굉장히 고소한 그런 떡국있었어
템플스테이를 하려고 간김에 대승사라는 절에 대하여 알아봤어 그냥 지적 호기심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도착한날 그러니까 9월 14일이지
주지스님과 약2시간동안 차담을 했어
여러 절에 계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기억 나는것은 해인사, 직지사, 그리고 대승사로 오신지
3개월 되셨다고
법명이 일균스님이셔..
이제 템플스테이를 한 느낀점에 대하여는 이 시로 대신할께
그곳에 가니 쉼표(,)가 있었다
느리게 가는 시간
처마 댓돌위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아스라이 밝아오는 산자락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안개
산짐승 깨울까 숨죽여 흐르는 계곡물
청아한 스님의 새벽예불 소리에
잠시나마 시끄럽던 마음속이
잔잔해져 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