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집 읽기
삶의 응시, 기억과 사유의 흔적
김미정
시를 통과한 일상이 빛을 발할 때가 있다. 그것은 시간의 파장이며 삶의 갈피에 숨겨져 있으나 존재하는 세계다. 그 모든 일상이 시 안에서 무늬를 이루며 ‘언표 불가능한’, ‘말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이라는 두꺼운 벽 뒤에 숨겨져 있는 삶의 이면일 것이다. 그것들은 때론 소외되거나 외면되어 표출되지 않았던 상처의 풍경이거나 오래전 스쳐 지나간 먼지 가득한 기억일지 모른다. 시인은 시 속으로 들어가 삶을 응시한다. 아니 삶 속에서 시를 응시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무겁거나 한없이 가볍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른 특별한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그것들은 위태롭게 금이 가 있거나 얼룩으로 뭉쳐 있다. 그렇게 불온한 세상을 향한 모종의 시적 대응이 이미 시작되었다.
윤관영 시인은 첫 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과 두 번째 시집 오후 세 시의 주방 편지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다. 이번 소시집 5편의 시를 살펴보면 ‘삶’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과 부드럽지만 강한 서정의 힘을 포용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시인의 시편들은 내공 깊은 한식 요리사의 소박하지만 깊은 맛과 향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음식을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시인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담아 시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의미 있고 힘든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 윤관영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 다듬고 유연하게 세공하여 시를 완성하였으며 그러한 독특한 시편들로 그간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독자들은 그의 시를 통해 시인이 추구하는 언어에 대한 천착을 느낄 수 있다. 우리말의 쓰임들이 정겹고 담백하며 순우리말과 사투리들이 시 안에 어우러져 녹아 있는 시편들은 감칠맛 나고 재밌다. 그 속에 숨겨놓은 유머와 해학을 발견할 때면 그 맛은 배가 된다. 어찌 시의 행간이 이리 정갈하고 그윽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조금씩 아껴 읽게 된다. 요즘 사람들의 입맛은 배달 앱의 발달로 편리함과 속도도 함께 배달하는 것 같다. 한 가지 음식을 완성하려면 재료를 사서 씻고 다듬고 불 위에서 볶고 끓이고 맛을 내는 과정이 길고 길다. 이렇듯 손가락으로 폰을 누르는 것만으로 바로 음식이 배달되는 세상에 시인의 곰삭은 시편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
소리가 없다
독이 소리를 빨아들이납다
독에 붙은 벌집은 먹자둣빛
사납지가 않다
고요하다 못해 적적하다
들어찬 고요로 장독은 터질 듯하다
어쩌다, 장을 터는 소리가 있었을 것이고
손끝의 장을 빠는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누름돌의 가라앉는 속도는
환장하게 느렸을 것이다
참숯은 배앝는 중이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의 삼중주
다 가라앉아
잠자리 날개 같은
마른 냄새를 피워 올리고 있다
독의 퇴색은 고요의 중첩이다
독을 부시는 내내
내가 고요해졌다
찻물이 가라앉고 국화꽃 떠오르듯
내가 앙금되고
…… 있었다
그랬다
「장독 부시기 2 」전문
“부시다”는 “그릇 따위를 씻어 깨끗하게 하다”란 의미의 동사다. “부시기” 위해선 행위가 필요하다. 그러기에는 의도를 가진 자발적 자아가 필요하다. “독을 부시는” 과정을 통해 나를 비우고 내 안에 침잠하여 고요로 들어가고 싶은 화자의 열망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이 소리를 빨아들이납다”라는 부분은 “장을 터는 소리” “손끝의 장을 빠는 소리” “누름돌의 가라앉는 속도”를 다 참고 견디고 안으로 삭히며 고요의 세상을 견인하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독을 부시는 과정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여정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고요함과 삶의 깊이를 생각하게 한다. 살아가는 동안 욕망과 번민과 괴로움이 주는 고통을 다 빨아들여 소멸시키며 “ 다 가라앉아” , “고요하다 못해 적적하다/들어찬 고요로 장독은 터질 듯하다”라고 한다. 장독을 부시는 외적인 풍경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한다. “독”은 흙으로 빚어 고온의 열가마에 넣어 굽는다. “독”이라는 소재가 주는 무게감을 감지할 수 있는 시다. “독을 부시는 내내/내가 고요해졌다”는 고백으로 시를 마무리한다.
시인에게 “독을 부시는” 일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욕망을 버리고 순수한 자아로 회귀하려는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앙금되고 /…… 있었다”는 행간에는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그 무엇들이 가라앉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지 가생이에 묻은 장을
짚끌개로 훑으며 내려가셨다
그게
종내는 단지 바닥에 기대,
서 있었다
어무이를 생각했다
장 위에 비닐을 덮고, 그 위에 굵은소금을 놓아두셨다
그것을 한 쪽으로 밀고는
장을 뜨셨을……
쇠대가리 같은 오부자의 어머니
그런, 어무이를 은애하기로
다짐 부셨다
「장독 부시기 3」부분
위의 시에서 장을 뜨는 어머니의 모습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성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화자는 “가생이에 묻은 장을/짚끌개로 훑으며 내려가셨다” “종내는 단지 바닥에 기대/서 있”는 장을 보며 어머니의 일생을 관통하는 희생적 삶을 떠올린다.
석회암 지대라 지표만 흙인 단양, 소를 들이대서는 밭을 갈 수가 없었다 밭 가운데 돌 자갈이 심심찮아, 소가 골 따라 움직일 수 없을 뿐더러 돌부리에 걸려 쟁깃날이 남아나지 않았다 경사까지 가팔라 그 일을 사람이 대신하게 됐는데, 때로는 여자가 소의 역할을 맡아서 쟁기를 끌었으니 女人耕이라고나 해야 할지 어린 난 그 힘든 걸 남자가 끌지 않고 왜 여자에게 시킬까 궁금했다
돌에 걸려 아내의 어깨가 뒤로 휘청할세라 쟁기를 들어 돌을 타 넘고야 쟁기를 내려놓는 쟁기잡이 남편, 밭골의 상태에 따라 쟁기를 왼녘 오른녘으로 흔들었고 가래의 깊이를 조절하였다 아내 눈치 보며 내내 밭을 갈아엎어야 했다 말 한 마디 없는 勞心과 焦思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여서 양손을 가슴골에 묻고는 쟁기가 돌에 턱! 허니 걸려도 모르쇠로 턱이 무릎 닿도록 허릴 숙였다 뒤에서 다 보는 남편은 쟁기를 밀어 골을 내었다
일 끝나기 무섭게 쇠죽 먼저 쑤듯, 소가 상전이었다 쇠죽을 내고 짚검불을 깔고 끌개로 털을 긁어주고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인경이 있던 날 해시(亥時) 무렵해 끓는 콩기름장판방에선 여인의 신음이 돌을 긁으며 타 넘는 쟁깃날처럼 소쿠라졌다
남자끼리 끄는 인경도 있었는데 부부간 인경은 되우 궁하거나 형제가 없거나 금실이 좋아야 했다 뿌리를 슬쩍궁 잡아당기기만 해도 딸려 나오는 감자알처럼 애들이 조랑조랑했다 돌밭농사에도
「人耕을 아시는지요?」 전문
위의 시는 시인만이 발산하고 있는 독특한 설정과 이미지를 통해 시를 직조하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는 시다. 그 안에서 섬세한 시적 상상력은 남다른 개성적 서사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과거 한국 농촌 생활의 현실을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삶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인경”은 서로 인접한 농가나 가족 간에 서로의 노동을 나누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농사의 과정이다. 勞心과 焦思"는 열정과 불안, 염려와 기대의 마음을 함께 나타내는 표현으로 삶에 대한 자세로 이해할 수 있다. 등장인물 각자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표현하면서 단순한 농촌 생활의 묘사를 넘어서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돌에 걸려 아내의 어깨가 뒤로 휘청할세라 쟁기를 들어 돌을 타 넘고야 쟁기를 내려놓는 쟁기잡이 남편”라는 부분은 “뿌리를 슬쩍궁 잡아당기기만 해도 딸려 나오는 감자알처럼 애들이 조랑조랑했다”라는 부분과 맞물려 금실 좋은 부부간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 위의 시는 윤관영 시인이 작품에 임하는 진정성과 노력을 엿볼 수 있으며 앞으로 예사롭지 않은 시의 행보가 그려지는 시다.
독에서 태어났다 거무벌건
대낮에 독을 깨고 나왔다
태어날 때 내 울음소리는 독 깨지는 소리보다 컸다 내 울음소리에 내가 놀랠 지경이었다 그날은 술래잡기하던 날이었다 엉뚱깽뚱했던 나는 야트막한 부단지를 밟고 독의 뚜껑을 연 후, 그 속에 들어가 숨었다 뚜껑을 닫은, 그 캄캄칠야 속에서 놀래킬 마음이 컸던 나는, 마른 메주와 그 위에 깐 짚가시랭이 위에서 꼬치오뎅처럼 몸을 접고는 고새 잤다 다리가 저린 순간 칠흑의 어둠에 와락 식겁한 나는 오금을 펴면서 그대로 독과 함께 넘어졌다 머리와 손, 무릎이 피칠갑이었다 밭일 하시던 어머니가 달려오셨고 나는 뭔지 모를 겁에 그악스레 울었다 메주 냄새가 살을 파고 들었다 그런 나를 동무들은 독새끼라 불렀다
안적껏 막내이모는 나를 보면 웃고는 한다
간용이가 쪼까 유달르기사 했제
나는 열 살 줄어 독생자로 다시 태어났고
사금파릴 알발로 뭉개버린 겁대가리 금이 간
독새끼 시인이 되었다
「독새끼」 전문
시인은 자신의 경험 속에 눙치는 유머와 아이러니를 섞어 시를 탄생시켰다. 시인의 시적 특징과 색을 오롯이 담고 있는 시다. 어려서부터 “엉뚱깽뚱했던 나는” “술래잡기” 도중 “독” 속에 숨는다. 이 시에서 주목할 부분은 “나는 오금을 펴면서 그대로 독과 함께 넘어졌다 머리와 손, 무릎이 피칠갑이었다”는 대목이다. 나로 인해 독이 깨진 것이다. 이 사건은 다른 은유적으로 생각하면 기존의 틀을 깨고 나오는 것, 즉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발이다. 그 세계는 3연과 연결된다. “독새끼 시인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새로운 나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 “독”이 깨지는 순간을 절묘하게 잡아내어 시를 완성해 낸다는 것은 재밌고 놀라운 발견이다. “사금파릴 알발로 뭉개버린 겁대가리 금이 간” 시인이라니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시인이 된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아를 발견하며 시인이 되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쌀 안치고는 손바닥을 담근 채
쌀을 누르고는 잠시 있는다 잊는다
밥물이 손등에 무언가를 그려놓는다
밥물점 같다 아른아른
서낭당 그늘이 된다
네가 아무 말 안하고 …
나 또한 아무 말 안하고 …
그래서 우리의 이별은 간단했다
실감이 안 났고, 퍽이나 싱거웠다
여러 차례 씻은 쌀뜨물 같았다
그렇게 아무 일 없는, 수십 년이었다
한 날 몸의 저간(這間)을 풍사 맞은 듯
난 해괴한 울음을 울었다
서녘 가좌리를 향해 조막손을 맞붙였다
문둥이 울음이라 했다
「별리」 전문
"쌀 안치고는 손바닥을 담근 채" 시는 시작된다, “밥물점”이 “아른아른” 하더니 "서낭당 그늘이 된다"와 같은 구절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복잡한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나타낸다. 시인은 뭉글하면서 절절해지는 느낌을 능숙하게 언어로 다루고 있다. “그렇게 아무 일 없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해괴한 울음”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사랑일 것이다. 이별의 애절함과 미처 표현하지 못한 감정과 아픔이 밥물처럼 끓어 넘치는 시다.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살아가는 것이 ‘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관계와 관계 속에 넘어지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마다 온도가 있다, 이 시는 뭉근한 온도로 시작해서 뜨거워진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의 시에서 느끼는 이런 느낌은 다른 시와는 차별되는 감정이다. 시에서 독특한 시적인 맛을 간직한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의 시는 삶의 바닥을 뚫고 나온 시라고 할 수 있다. 바닥 그보다 더 아래 공간에서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끌어 올리는 행위가 시를 쓰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인은 삶의 비의를 들추어내어 시를 견인하며 또한 스스로 길을 열어가는 작품들 속에서 독자에게 삶의 이면을 제시해 준다. 그래서 그의 시는 마음을 만져주는 시가 된다.
이번 소시집에서 보여주는 윤관영 시인의 시의 풍경들은 현실을 딛고 뿌리내린 ‘일상의 체험적 기억’을 배경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 안에서 깊은 울림 속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웃음을 보았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투명한 고통의 신음을 들었다. 시적 언술의 새로움은 인식의 새로움에서 시작된다. 독자들은 지리멸렬한 일상에 은폐된 사물과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독특한 교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한 삶 속에 새겨진 기억과 사유의 흔적을 따라 흐르는 시인의 감각적 응시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에서 ‘현재의 내 이야기를 쓸 것’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시는 궁극적으로 희망과 절망, 평온과 불안이 교차하는 삶 속에서 가라앉은 자신의 흔적을 찾는 것이며 그 안의 어긋남과 결핍의 문장들을 건져 올리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정겹게 보이는 시의 표정 속에 시인이 닿고자 하는 곳을 향한 뜨거운 발걸음을 본 듯도 하다. 시인의 아름답도록 처절한 발자국을 뒤따라 가보고 싶어진다.
#김미정 #김미정시인 #김미정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