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
- KA1ST 연구원 중심으로 (주)메디슨 설립. 첫제품
SONOACE-3000 KIMES'85 에 출품
(주) 한국기술개발 유망중소기업 선정 및 투자
국내시장 진입
1986 - 과기처 인정 기업부설 연구소 설립
대표이사 산업포상수상(기술진흥확대회의)
1987 - 터키로 SA-3000A 2대 처녀수출
1988 - 강원도 홍천군 농공단지내 제 1 공장 준공
주식장외시장 등록 및 매매개시
1989 - 초음파 전문잡지 "SonoAce" 창간 (국내판)
세계시장 공략
1990 - SA-88 FDA 승인
1991 - 제 1회 VENTURE 기업 대상 수상
청와대 성공기업 사례발표
500만$ 수출의 탑 수상
1992 - 세계 일류 상품화 기업지정 (KOTRA)
기술 선진화 중소기업선정
해외 합작법인 (JOINT VENTURE)설립
- 미 국 : MEDISON AMERICA,INC.
- 독 일 : MediAce Europe medizinische Geraete GmbH
- 러시아 : ULTRAMED
- 중 국 : SHANGHAI MEDISON
철탑 산업훈장 1000만$ 수출의 탑 수상
1993 - SA-4800HD(SONOREX) 장은기술상 대상수상
초음파 10,000대 출하 돌파
1994 - 제 2호 사내 VENTURE 동서의료사업부 분사,
(주) 메리디안 설립
SA-5000(SONO-E.T) 장은기술상 기술개발부문
우수상 수상. 사내 벤처기업 마이다스 사업부 분사,
(주)메디다스 설립
1995 - "생산성 대상 대통령상 수상" - 한국생산성본부
칼라 초음파 진단기 "Trident" KT 마크 수상
기술에 의한 세계 도전
1996 - 주식시장 상장
1.0T MRI 국산화 성공
품질 경쟁력 최우수 100개 기업 선정 (기술품질원)
메디슨-세인전자 합작,(주)바이오시스 설립
1997 - 유럽 의료기기 품질규격 "EN46001/MDD"승인
독일 MGB사 내시경사업부문 인수
일본 ACOMA 사 인수
"5000만불 수출의 탑"금탑 산업 훈장수상
1998 - 대표이사 제2회 한국 공학 기술상 특별상
"젊은 공학인상" 수상(한국 공학원)
ATL과 초음파 진단기사업 전략적 제휴 계약 체결
전경련 국제산업협력단 주최 제1회 산업협력대회
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상 수상(중국 NEU-Alpine사
와의 협력사례를 제출)
'Best Managed Companies" in Korea 수상
-Asiamoney in Hong Kong
초생명기업을 통한 성장
1999 - 메디슨벤처타워로 사옥 이전(연구소 통합)
KIMES '99 참가, 전년비 98% 신장된 91억원 계약
차세대 초음파 ASIC개발
3.0T MRI 품목허가 획득
SA6000C 통한 ATL-Philips와 전략적 제휴 강화
이민화 회장, 아시아위크 "밀레니엄 20인 리더"및
한국능률협회 "99 한국의 경영자상"수상
"초생명 기업을 통한 성장"선포
1억불 수출의 탑 수상
2000 - 해외자회사 크레츠테크닉' 유럽 증시 상장
(국내 최초) MRI 사업부 독립 (주)MEDINUS 설립
2000.7 '메디슨 연방체'로의 재탄생 을 향한 'Vision 2005'발표
메디슨은 1985년 초음파 진단기 전문 업체로 출발했다. 하지만 브랜드, 영업력 등에서의 열악함을 인식하고 우선 Low-end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도심지보다는 중소 도시, 벽지 등에 판매 거점을 확보하였고, 지방의 개인병원 의사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면서 판매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경쟁자가 상대적으로 적어 비교적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어 초음파를 녹십자병원에 납품하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외부 자원을 활용하였다. KAIST와 3차 년도 국책 과제를 체결하였고, KTDC로부터 투자와 융자를, 한국투자신탁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였다.
결국 창업 10년 만인 1995년 12월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액면가 5천원짜리 주식이 7만원에 거래됨으로써, 국내 증시시장 최고의 경쟁률과 최고의 신주 상장가격을 기록했다. 1997년 세계 최초로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출시했으며, 1998년에는 매출액 1906억원에 순이익 169억원을 달성했다.
Ⅱ 실패요인
1. 무분별한 차입경영
메디슨은 99년부터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보유주식의 값이 뛰자 이를 믿고 빚을 얻어 벤처기업 사냥에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이 회장은 이것이 위기의 시발이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코스닥시장에 거품이 빠지고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 자산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기업신용평가기관인 한신평이 메디슨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춰 발표하자 곧바로 현금흐름에 이상신호가 울렸다. 이때부터 단기부채를 마구 끌어들였다. 메디슨의 빚은 순식간에 연간 매출액의 1.5배인 3000억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2. 적절한 대응 미흡
한신평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은 시장이 메디슨에 보내는 명백한 위기 경보였다. 당시 주가가 다소 빠지긴 했어도 보유주식 일부를 팔면 빚을 갚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3000억원의 부채는 언제든지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회장은 재무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판단이었던 것이다. 부채와 시가총액의 단순비교에 따른 착시현상이었다.
이후 재무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치면서 메디슨의 경영은 급속도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2000년 10월 무한기술투자지분 매각,11월 한글과컴퓨터 주식 250만주 매각, 지난해 4월 메디슨 엑스레이 사업 매각,7월 크레츠테크닉 매각으로 발버둥쳤지만 때늦은 대응이어서 상황을 호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 명분에 너무 충실, 경영을 소홀히 함.
2000년6월 한신평에서 신용등급을 내리기 전부터 한글과 컴퓨터 등 보유주식을 팔아 부채를 갚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한글과컴퓨터에 대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국내기업에 판다’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씩 내다 팔지 않고 ‘한꺼번에 기관에 판다’는 것이었다. 남의 손에 넘어가더라도 경영권은 안정돼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원칙을 고집하다 보니 제때 주식을 처분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이 두 가지 원칙을 고집한 것은 한글과컴퓨터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었다. 이 회장은 지난 98년 한글과컴퓨터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팔릴 위기에 처하자 한글과컴퓨터의 ‘아래아한글 살리기 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대량으로 주식을 매입했었다. 이런 각별한 인연 때문에 너무 명분에만 집착한 나머지 경영논리를 뒤로 해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기업인이 기업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국가정책과 시장부터 생각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털어놨다.
4. 방만한 투자
이 회장은 사업다각화라는 명분으로 전공분야인 의료기기 개발과는 연관성이 없는 사이버키스트(온라인 교육), 벤처캐피털 등 여러 분야에 걸쳐 8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다양한 분야의 벤처기업들을 사 모아 ‘벤처연방체’를 구성한다는 것이 이 회장의 꿈이었다.메디다스,메디라인,비트컴퓨터 등이 관계사로 편입됐다. 한때 50여 개의 자회사와 투자회사를 거느린 때도 있었다.
이 회장은 ‘벤처연방체’가 시너지(상승)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비 핵심 영역에 대한 과다한 투자로 인한 비효율이 더 컸다.
기업어음(CP)의 만기도래 기간이 1개월로 짧아지고 이를 메우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단기성 부채를 늘리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결국 메디슨은 지난 1월28일 돌아온 44 억여원의 어음을 막지 못하고 벤처신화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