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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과 '청렴성'에 달렸다
올해로 13번째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된 김대중 대통령은 20세기 마지막 수상자가 될 수 있을까.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내막과 장애물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1987-1999, Nobel 평화상 13회 후보 지명.”
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됐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왜 공식 발표도 없이 올해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됐다는 것을 인터넷에서만 ‘조용히’ 알린 것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올해도 과연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된 것일까.
먼저 청와대 홈페이지 담당자에게 전자우편으로 물어본 결과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후보 지명자와 관련해서 어떤 확인도 해주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87년부터 매년 추천을 받았기 때문에 올해로 13회째 된다는 의미로 쓴 것일 뿐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는 답변을 얻었다.
다음으로 주 노르웨이 한국대사관에 문의한 결과 한 관계자는 “이곳에서는 노벨평화상 후보가 누구인지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노벨위원회에 문의조차 할 수 없지만, 김대중 대통령께서 올해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청와대나 주 노르웨이 한국대사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는지 여부를 확인해주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였다. 추천 사실을 ‘떠벌리는 것’ 자체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인터넷의 노벨재단 홈페이지(www. nobel.se)를 방문하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노벨위원회는 (추천 자격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수상자 후보 추천을 받지만 그 명단은 발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추천서를 제출한 사람들 중에는 추천 사실을 알리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특정 후보를 위한 캠페인 기구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노벨위원회의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노벨평화상 후보자들이나 추천자들이 수상에 영향을 끼치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은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과 관련된 로비를 하는 것은 금기로 통한다. 주 노르웨이 한국대사관측에서는 이런 점을 가장 의식했겠지만, 청와대에서는 이 점 외에도 신경써야 할 대목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햇볕정책을 쓰는 것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라는 야당의 비난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햇볕정책을 펼치는 것이지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그런 것은 아니다”는 것.
그러나 여당인 국민회의 의원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경제를 회생시키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결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대통령 개인에게 뿐 아니라 민족 전체에 영광된 일 아니겠느냐”며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독립기념일인 지난 7월4일 필라델피아에서 ‘제2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자유메달상을 수상(수상식 연설 참조)하게 되자 노벨평화상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대통령 등 여러 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자유메달상을 먼저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김진배(金珍培) 국민회의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극찬’하는 발언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7월4일 필라델피아에서 ‘자유메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흔히 ‘미국판 노벨상’으로 부릅니다. 지금까지 이 메달을 탄 11명 가운데 5명이나 노벨상을 탄 것만 보아도 이 상의 가치를 짐작케 합니다. 노벨평화상 ‘0 순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DJ로 애칭되는 우리 대통령 개인의 영예일 뿐만 아니라, 꿋꿋하게 압제를 견디어 내며 마침내 민주헌정을 되찾은 코리아의 영광입니다.”
그러면 김진배 의원의 희망대로 올해는 김대중 대통령이 자유메달 수상에 이어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게 될까.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됐듯이 12전13기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될까.
우선 노벨평화상 후보는 어떻게 추천되는 것일까. 노벨평화상 관련 사이트 (www.nobel.no/indexen.html)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스웨덴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는 다른 노벨상과는 달리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노르웨의 노벨위원회에서 선정한다.
노벨위원회는 매년 2월1일 전까지 추천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사한다. 2월1일이 지난 후에 추천된 사람은 다음 연도의 심사 대상이 된다. 노벨위원회는 매년 100명 정도의 후보자를 추천받는데, 노벨평화상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일곱 부류다.
1. 노벨위원회의 전·현직 위원들과 노벨연구소 자문위원들.
2. 각국의 국회의원과 행정 각료 및 국제의원연맹 소속 의원들.
3.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중재재판소와 국제사법재판소 법관들.
4. 국제영구평화사무국 집행위원들.
5. 국제법연구소 연구위원들.
6. 법학, 정치학, 역사학, 철학을 전공한 현직 대학교수들.
7.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노벨위원회는 이들로부터 노벨평화상 후보자를 추천받으면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노벨위원회 실무진은 상근 자문위원들 및 개별 후보자에 대해 특별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임시 자문위원들과 함께 후보 지명자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과정에 제일 중요한 것은 노벨위원회가 적합하다고 판단해 최종 선발 명단에 오른 후보자들의 자질을 재검토하는 작업이다.
자문위원들이 후보자들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후보자들을 평가하는 것은 노벨위원회가 한다.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상자가 선정되면 일반적으로 10월 중순에 발표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식은 앨프리드 노벨이 사망한 12월10일에 거행되는데, 다른 노벨상이 개인들에게 수여되는 것과는 달리 노벨평화상은 기구나 학회 등 단체에도 수여된다. 공동 수상도 가능한데 3명이나 3개 이하의 단체에만 허용된다.
수상식은 1990년부터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 시청에서 거행되고 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왕과 총리, 그리고 노르웨이 국회의원들과 초청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상자에게 증서와 메달을 수여한다. 그러고 나서 수상자는 수상 연설을 한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올해도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추천이 됐다면 올해 1월말까지 추천작업이 완료됐어야 한다. 그렇다면 1월 말까지 추천이 끝난 것일까. 추천을 했다면 누가 한 것일까.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인 홍업씨가 부이사장으로 있는 아태평화재단에 먼저 알아보았다. 아태평화재단은 김대중 대통령이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만든 단체로 김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맡아오다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넘겼다. 아태평화재단의 오기평 사무총장은 “노벨평화상과 관련해서는 아태재단이 한 일이 없으니 당 쪽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 의원들을 여러 명 만나본 결과 지난 1월초 임시국회 때 본회의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서명작업이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을 주도했던 남궁진(南宮鎭) 국민회의 의원과 7월12일 오후 통화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서명은 모두 몇 명이나 했습니까?
“추천 마감일을 앞두고 1월 초에 급하게 하느라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여당 국회의원의 서명을 전부 받지 못하고 107명의 서명만 받았어요.”
현재 국회의원 의석수는 한나라당 134석, 국민회의 105석, 자민련 54석이므로 서명자수는 국민회의 의석수보다 2명 더 많다.
-다른 정당 의원들도 서명했습니까?
“자민련 의원도 일부 서명했어요.”
-서명이 된 추천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1월25일경에 익스프레스(특급우편)를 통해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로 보냈어요.”
추천서 수신인은 게이르 룬데스타드 교수(54). 냉전체제 전문가로 유명한 룬데스타드 교수는 노벨위원회 사무총장과 노벨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남궁진 의원은 추천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노벨위원회의 1차 선정 과정은 통과했습니까?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올해도 당연히 후보자로 지명을 받았으며 1차 관문을 통과한 5인에 포함된 것으로 압니다.”
-외국인 중에는 누가 추천 작업을 주도했습니까?
“외국인 서명은 누가 주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조용하게 추진했을 겁니다.”
외국인 서명과 관련해서 아태민주지도자회의로 문의를 했다. 다음은 7월12일 김세웅 아태민주지도자회의 사무총장과 나눈 일문일답.
-아태민주지도자회의에서 올해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과 관련해서 외국인 서명 작업을 추진하지 않았습니까?
“올해는 전혀 모르겠어요.”
-작년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추천을 했습니까.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작년에는 추천한 사람 중 몇 분이 직접 알려줬어요. 제프리 탐슨 뉴질랜드 국민당 당수, 게리 우다드 호주 멜번대 교수, 덴 히데오 일본 참의원 등이 추천했습니다.”
-제프리 탐슨 당수와 덴 히데오 참의원 등은 아태지도자회의의 회원들인데 아태민주지도자회의에서 추천 작업을 주도한 겁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외국에서는 주로 민주주의 지도자들이 추천했을 겁니다. 그중에는 아태지도자회의 멤버들도 있겠지만 자신이 추천했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노벨위원회에서는 추천 사실을 알려줬습니까.
“지난해 7월경에 노벨위원회 관계자가 우리 재단에 편지를 보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12명의 노벨평화상 후보자 최종 명단에 포함됐다는 내용이었어요. 당시 피추천인인 김대중 대통령의 직함이 아태민주지도자회의 공동의장으로 돼 있으니까 우리쪽으로 보낸 것 같아요.”
아태민주지도자회의(FDLAP)는 김대중 대통령이 94년 12월에 만든 것으로 상임공동의장과 이사장직을 맡아오다가 지난 3월에 김영삼 정부 때 외무장관을 지냈던 한승주(韓昇洲) 고려대 교수에게 공동의장과 이사장직을 넘기고 명예공동의장과 명예이사장으로 물러났다.
아태민주지도자회의 구성을 보면 국제적으로 여론을 주도할 만한 인물들이 포함돼 있다. 고문에는 미얀마 민주화투쟁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주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 리차드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대통령 등이다.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모두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공동의장에는 필리핀 대통령을 지낸 아키노 여사,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 소냐 간디 ‘라지브간디재단’ 의장 등이 포함돼 있다.
그동안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시대에 따라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노벨평화상은 1901년부터 1차대전까지는 평화운동을 조직화한 선구자들에게 수여됐지만 2차대전 이후로 수상자의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인권운동은 평화의 대의명분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널리 인식됐기 때문에 1960대 이후에는 많은 인권운동가들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60년까지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예외없이 북미나 서유럽 출신이었지만 그이후로 점차 전지구적으로 범위가 넓어져서 이제는 각 대륙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애쓴 사람은 작고한 베니노 아키노 필리핀 상원의원,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 김대중 대통령 세 분입니다. 수지 여사는 아직 민주화를 실현해야 할 과제가 있는데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면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유력합니다. 김대통령은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주장했고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싱가포르의 이광요 전수상은 아시아적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김대통령의 민주주의 중시론과는 입장이 다릅니다.”
이영작(李英作·68) 한양대 석좌교수의 말이다. 이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로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통계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메릴랜드주립대 수학교수를 역임했다. 미국에서 인권문제연구소를 운영하며 선거 때마다 귀국해 DJ를 돕기도 했다. 이 교수는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후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작업에 관여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처음 추천된 것은 1987년이었다. 이 해는 ‘6월항쟁’으로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해였다. 정권교체를 통해 군부 출신의 집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해였지만 김영삼과 김대중 등 두 야당지도자의 분열로 민주화투쟁 세력은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사실 그때 김대통령이 대통령후보를 YS에게 양보했다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겁니다. 대통령도 사석에서 그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집권을 해서 민주화를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겁니다. 요즘 야당에서는 김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북한에 너무 끌려다닌다는 비난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김대통령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대통령으로서 국익에 신경을 쓰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이영작 교수의 말이다.
92년 대선에서 DJ가 패배하고 이듬해인 93년에 정계를 은퇴했을 때는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 (ANC)의장-클라크 남아공 대통령 등 공동수상자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DJ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사람들은 주로 외국인이었다. 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 의회 의원들이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작 교수는 “미국에서는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을 자유메달상 수상자 후보로 적극 추천했던 포글리에타 주이탈리아 대사, 남캘리포니아대 조지 타튼 교수,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가톨릭계 대학의 윌리엄 커 총장 신부 등이 애를 많이 썼다”고 말했다. 노벨위원회에서는 미국 정치인들이 영향력을 행세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교수들이 추천했다는 것.
국내에서 정당 차원에서 DJ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은 95년이 처음이다. 94년 12월 이기택 현 한나라당 고문이 민주당 대표위원으로 있을 때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던 DJ를 당 차원에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작업을 했다. 당시 후보 추천 사유서 작성을 위한 자료정리는 아태평화재단이 맡았는데 ‘추천 공적서’에는 아태민주지도자회의 결성 등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외에서 DJ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작업을 하던 관계자에 의하면 이 때가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한다.
“95년경이었어요. 노르웨이를 방문한 길에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인 룬데스타드 교수를 만났더니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DJ도 부패하지는 않았는지, 재벌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는지 물어요. 근거가 없는 음해성 루머라고 해명은 했지만 상당히 곤혹스러웠어요.”
이 관계자는 음해성 루머의 진원에 대해 어떤 언급도 회피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에서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방해했으리라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당시 주노르웨이 한국대사를 통해 ‘YS의 이미지를 좋게 하고 DJ의 이미지는 흠집을 내는’ 작업이 이뤄졌다는 것. 그러나 이 의혹은 아직까지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노벨위원회는 5명으로 구성돼 있다. 노르웨이 의회가 이들을 선출하는데 재선도 가능하다. 1936년부터 행정부 각료는 위원회 위원이 될 수 없고 1977년부터는 노르웨이 현직의원도 위원이 될 수 없다.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후보자 심사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사람은 노벨위원회 위원장과 사무국장이다. 현재 노벨 위원회 위원장인 프란시스 사이에르스테드(63)는 경제·사회사 분야 교수인데, 1991년부터 위원장을 맡고 있다. 92년 9월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고려대에서 강연을 하고 판문점을 시찰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한반도의 분단과 갈등을 극복하는데 기여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노벨연구소장을 겸직하고 있는 사무총장은 게이르 룬데스타드 교수(54). 룬데스타드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음은 이영작 교수의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룬데스타드 노벨평화상 위원회 사무총장을 잘 알고 있어요. 김대통령이 83년에 하버드대에 계실 때 룬데스타드가 교환교수로 와 있었습니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과 세미나에서 하는 발언을 듣고 호감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나는 룬데스타드 교수를 만나 노벨평화상 후보 지명과 수상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김대중 대통령과 관련된 새로운 자료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룬데스타드 교수는 내가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임을 잘 아니까 이런 활동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97년 봄에 노르웨이에 가서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주로 대선 얘기와 정치일반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7월경에 학회 참석차 노르웨이에 들렀다가 전화를 했더니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났어요. 상당히 반갑게 맞아줬는데 햇볕정책 등 정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았습니다. 그후로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노벨위원회 규정에 의하면 후보자들에 대한 심사권은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들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인 룬데스타드 교수는 후보자를 결정하는데 직접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룬데스타드 교수의 지도 아래 노벨연구소에서 최종 선발된 후보자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 보고서를 근거로 위원들이 판단하기 때문에 룬데스타드 교수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과 사무총장의 관심 사항에 비춰볼 때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는 20세기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고 냉전체제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인권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DJ의 ‘청렴성’에 대한 증명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취임초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대북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은 최근 ‘서해교전’ ‘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 ‘남북차관회담 결렬’ 등으로 난관에 부딪혔다. 애당초 햇볕정책-남북 고위급회담-남북 정상회담-한반도 평화체제 전환 등의 시나리오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노벨평화상 후보자가 발표되는 10월 중순까지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내각제 문제, 국민회의 전당대회 문제, 정치개혁 등 풀어야 할 국내 문제가 산적한데다 최근 악화된 국민의 대북 정서를 감안할 때 냉각된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풀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다가오는 8·15 광복절에 무기수 등 국가보안법 관련 수감자들을 대폭 석방, ‘인권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쌓으려 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종차별의 벽을 뛰어넘은 넬슨 만델라처럼 냉전으로 쌓인 남북의 벽을 허물어 세계인이 감동할 수 있는 드라마를 펼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안기석 신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서리
첫댓글 언론사 세무조가 있기 전이라서 그런지, 이 때까지만해도 동아일보 기사가 지금처럼 편파적인 보도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지금은 '카더라'와 '아니면 말고' 식 보도와 이명박 편들기가 조선일보를 능가하려고 합니다..웃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