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적’의 여운 (2), 메기효과와 신설동 곰보추탕
내 탓이오: 조병화 시인의 ‘천적’의 등장은 1985년이다(조병화 시집: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제29시집, 오상출판사, 1985.12.1,초판). 그 무렵을 전후한 시대적 상황에서 ‘내 탓이오’라는 멋진 사회운동이 전개되는데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 그 중심에 있었다. 천주교 전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1983년부터 신뢰회복운동을 시작하였고, 1989년 사회정신 개혁운동으로 ‘내 탓이오’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 후 1990년 9월 24일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자신의 승용차에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를 부착함으로써 천주교계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적인 운동으로 퍼져나갔다. 이 ‘내 탓이오’운동은 국민적 정서를 일깨우는데 크게 기여 하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제 탓입니다.’로 바뀌기도 하였고 사회정화에 굵직한 자국을 남기면서 90년대 중반부터 시들어 졌다
메기효과: 내탓, 네탓의 이기적 편향에 매몰되는 결과에 대해 일찍이 맹자에는 생우우환 생우안락(生于憂患 死于安樂)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 말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사람을 분발하게 하지만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쉽게 죽음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사례는 동식물의 생존의 법칙에서 수월히 발견된다. 먼저 우환을 극복하면 분발하여 잘 살게 된다는 생우우환(生于憂患)의 사례를 보자. 제일 많이 인용되는 것이 메기효과(catfish effect)이다. 정어리(sardine)는 냉한 해역에서 잡히는 어종이라 항구까지 이동 할 때에 많이 죽는데, 노르웨이의 한 어부는 잡은 정어리를 언제나 산 채로 실어 날라서 큰돈을 벌었다. 그 어부의 비법은 정어리가 가득한 수조 안에 천적인 바다메기(물메기)를 몇 마리 넣어 두었는데 정어리가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도망 다닌 덕분에 정어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싱싱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메기효과는 이미 육지의 양어업자들에도 친숙한 상식이 되었다. 미꾸라지와 천적인 메기와의 관계이다. 미꾸라지와 천적인 메기를 함께 넣어서 수송하면 싱싱하게 미꾸라지를 배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항상 좋은 것만 아니다. 정어리나 미꾸라지가 잡히지 않으려고 항상 도망 다니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산소도 부족하여 그렇게 신선도가 유지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법은 배부른 메기를 넣으면 겁 만 주기 때문에 괜찮다는 설도 있다.
이와 반대로 '사우안락(死于安樂)'의 사례를 보자.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는 프랑스의 ‘삶는 개구리 요리’이다. 이 요리는 손님이 앉아있는 식탁위에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직접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 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 방법이다. 이 때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 나오기 때문에 맨 처음 냄비 속에는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의 물을 부어 둔다. 그러면 개구리는 따뜻한 물이 아주 기분 좋은 듯이 가만히 있다. 그러면 이때부터 매우 약한 불로 물을 데우기 시작한다. 아주 느린 속도로 서서히 가열하기 때문에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기분 좋게 죽어지게 되는 것이다.
신설동 곰보추탕: 이와 비슷한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신설동 곰보추탕’이라는 좋은 사례가 있다. 이 집의 추어탕은 1933년에 개업했다는 역사와 더불어 ‘곰보추탕’이란 이름이 기억하기 좋고, 추어탕도 아니고 추탕이고, 전성기에는 당대 인기배우 김승호가 단골이어서 더욱 소문난 집이었다. 요리방법이 특이해서 냄비에 생 두부를 넣고 미꾸라지를 넣고 가열하기 시작하면 미꾸라지가 차가운 두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죽기 때문에 별미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수년전 대학동창들하고 곰보추탕 집을 찾아가 모았다. 여주인장이 우리와 동년배여서 옛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여러 가지 추억을 공유했다. 학창시절에는 그 집을 찾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어서 소문난 집을 이제야 찾았노라 하니 20년이나 묵혀 온 담금 술을 내오시니 흐르는 시간이 아까웠을 뿐이었다. 특히 미꾸리와 미꾸라지를 구별 하는 법을 귀담아 듣고 나니 상식도 풍부해졌었다. 미꾸라지는 동들 동글하고 갈색이며 좀 작은 것이고, 미꾸리는 갈색보다는 좀 검은 편이고 꼬리는 넓죽하며 수염도 큼직하고 좀 큰 것이라고 하였다. 내 기억을 떠올리자면 미꾸리는 시골 논배미 도구창에서 잡는 것이고, 미꾸리는 논에 물들이고 두엄을 내었을 때 검고 큼직한 것이 꼬리를 치면서 두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미꾸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구리든 미꾸라지든 서늘한 두부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무기력해져서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이 '사우안락(死于安樂)'이 아닌가.
세대갈등과 무임승차: 이 밖에도 동양고전에도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남을 탓하지 말라(不怨天 不尤人)는 삶의 지혜도 있고, 위기에 맞닥뜨리면 도마뱀은 '꼬리를 잘라 천적에게 넘겨주고 목숨을 구한다.’는 '단미구생(斷尾求生)', '수탉이 위험을 미연에 차단코자 자신의 멋진 꼬리를 미리 뽑는다.'는 '웅계단미(雄鷄斷尾)'이란 고사성어도 있다. 이 모두가 삶의 지혜이다. 내 탓 네 탓 타령이 지금 이 시대에는 원조 라떼(나 때는)의 노령 세대와 MZ 시대간의 갈등에도 적용된다.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한 사회적 찬반논란에서 합리적 논리도 되고 시대적 경종도 된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된 것은 '생우우환(生于憂患)'의 정신자세로 살아 온 덕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풍요로운 사회 같지만 노사갈등과 노동현장, 청년실업문제, 복지 포퓰리즘, 결혼기피, 인구감소 등등 사우안락(死于安樂)'의 분위기로 우리 사회가 변모해 가고 있지 않은가 걱정이다. 그런데도 막연히 우리 민족의 DNA를 들먹이면서 ‘걱정도 팔자’라고 애써 외면할 수도 있다. ‘내 탓이오’가 2020년에 노래로 불리어지는 것을 보면 남 탓 타령에 익숙한 개돼지에 대한 경종도 된다(특히 2절). 무릇 존재와 공생을 위한 처세나 통치는 극단보다는 중용의 도를 중시하는 ‘삶의 철학’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내 탓 네 탓 같은 타령보다 발전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탓 타령보다는 현명한 선택을 하여야 한다. 허준의 근심에서처럼 내 탓에 무게를 두고 평소에 대비하고, 천적의 시에서처럼 현상을 받아드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도마뱀이나 인간이나 삶의 교훈은 다를 바 없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지혜로운 선택은 주어진 시련과 여건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반면, 어리석은 선택은 실패의 몰락을 남 탓이란 핑계로 돌리는 것이다. ‘적폐청산이나 ’전 정권 탓‘이나 다 주어진 여건인데 바로잡으려고 몰입하기에는 기간이 짧다. 서산대사의 답설(踏雪)의 발자국처럼 역사를 탓하기보다 역사를 만드는 굵고 묵직한 통치철학을 시대적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202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