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同乘) 1
-정성화
“스텐바이 올 스테이션, 스텐바이 올 스테이션.”
남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온 배에 울려 퍼졌다. 각자 제 자리에 가서 출항 준비를 해 달라는 방송이
다. 분주한 발걸음 소리와 황급히 문을 여닫는 소리, 그리고 무전기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선실의 유리창이 가볍게 떨렸으나 쿵 하는 소리 한번 없이, 배는 부챗살을 펴듯 제 선체를 휘돌리더니 어
느새 방파제 쪽으로 배의 방향을 바꾸었다. 불과 15여분만의 일이었다.
이 거대한 선체를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고 있는 선원들은 겨우 스무 명이다. 예나 지금이나 험한 바다 위
로 배를 끌고 나가는 힘은 남자에게서 나오는 듯하다. 영화 ‘벤허’에서 시커먼 팔뚝으로 쉴 새 없이 노를 젓
던 남자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이 배를 무사히 출항시키고 순조롭게 항해하도록 만들고 있는 사람들
도 역시 남자다. 그들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의 노고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8층의 선실 창가에 서서 배의 앞머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소리 없이 물 위를 미끄러져 가는 오리의 목덜미
에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이 선수(船首)에서도 느껴진다. 남편은 지금 9층에 있는 ‘브리지’(bridge)에서 항
로를 찾기 위해 레이더를 들여다본다든가, 아니면 망원경으로 배의 전방을 살피며 조타수나 항해사에게 무
슨 지시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유조선 3항사로서 첫 뱃길에 나섰던 그는 올해로 이십 년째 뱃사람이다. 어린 시절, 고향 시냇가에 종이
배를 띄우던 소년이 이제는 드넓은 태평양에 5500TEU의 콘테이너선을 띄우는 선장이 되어 있다. 지구본
을 가만히 돌려보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 대륙까지 그의 배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나는 오늘 부산을 출발해서 광양까지 동승하기로 되어 있는 이 배의 손님이다. 오늘 하루는 나도 이 배의
스크류(screw)를 돌리는 기분이 되어보려고 한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이제 유리창에 굵은 점들을 찍어대고 있다. 멀어져 가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하역 인부들과, 건너편 배에서 양쪽 손을 힘차게 흔들고 있는 노랑머리의 외국 선원들 모습이
비속에 더욱 다정해 보인다. 햇살이 부서지는 은빛 바다를 기대했었는데, 오늘 바다는 모처럼 온 이 손님
을 비에 젖는 모습으로 맞이하고 있다.
“뚜우~”
낮으면서도 묵직한 뱃고동 소리가 안개낀 바다위로 울려 퍼진다. 어미 소가 그리워 울어대는 송아지의 울
음을 닮은 듯 하다. 이틀 간의 정박 후 다시 바다로 나가고 있는 이 배가 바다의 품에 안기면서 바다를 부르
는 소리다.
방파제를 빠져나와 외항(外港)에 이르니 물살이 거세어지고 안개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이쯤이던가. 남
편이 유럽에서 두 달만에 입항하던 날이었다. 선석(船席)이 다 차는 바람에 부두가 빌 때까지 외항에 정박
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할 수 없이 내가 4톤짜리 작은 통선을 타고 외항으로 나가, 다시 그의 배에
오르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새벽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 통선이 뜰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떻
게든 그에게 가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뿐이었다. 서둘러 통선장으로 달려갔지만, 선착장은 야속하게도 텅
비어 있었다.
“오늘은 통선이 없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남편의 배 선미(船尾)라도 보일까 싶어 찾아보
았지만, 비바람 치는 바다는 그마저 짙은 안개로 감추어두고 있었다. 바다새의 날개라도 잠시 빌리고 싶었
다. 찰밥이 든 삼단 도시락은 그 날 빗줄기 속에서도 연실 따뜻한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크고 작은 파도가 쉴 새없이 밀려왔다가 하얀 포말이 되어 다시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떨어져 지
내면서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이 파도의 갈피마다 한 장씩 들어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
게 “이쯤의 외로움은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에 섞여도 좋을 하나의 무늬”라고 썼으며, 남편은 나에게
“가족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당신이 토마토 쥬스를 들고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다”며 그리움을 전해왔
다. 아이들도 삐뚤 빼뚤한 글씨로 편지를 썼다. 아빠랑 어서 놀이공원에 같이 가보고 싶다던가 이런저런
선물을 사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남편도 나처럼 이런 것을 다 기억하고 있을까.
초대받은 손님답게 나는 방의 여기 저기를 둘러본다. 벽에 걸어둔 후리지아(freesia)
꽃다발이 눈에 띠여 향기를 맡아보지만, 바짝 마른 꽃잎에서는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생일 선
물로 준 꽃다발을 그는 왜 아직도 벽에 걸어두고 있을까.
책상을 덮은 유리덮개 아래에 우리 집 가족 사진이 들어 있다. 다들 환하게 웃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배
가 흔들린다 해도 우리 가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CD 플레이어의 스위치를 켜니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다. 남편은 클래식 음악으로 단조롭고 외로운 생활을 달래고 있는 모양이다. 그와 내가 이렇듯 아픔의 무
늬가 같은 ‘비늘’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컴컴한 밤바다를 향해 어등을 밝혀들고 고기잡이를 나서는 부부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배의 키를 잡고
있는 남편 옆에서 아내는 말없이 어구(漁具)를 챙기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어라 차차”
하며 그물을 함께 던지고, 무거워진 그물을 함께 끌어올렸다. 부부란 저렇게 그물을 함께 내리고 함께 올
리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란 인생의 항해를 같이 하는 동반자라고 한다. 같은 배를 탄다는 것, 그 동승(同乘)의 의미는 무엇일
까. 단지 같은 배에 오른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쉴 새 없이 배를 흔들어대는 파도를 같이 헤쳐나가고,
바다 위에서의 두려움과 외로움도 같이 나누며, 그물의 양끝을 서로 나누어 쥐고서 세상이라는 바다 앞에
나란히 서는 것, 진정한 동승(同乘)이란 이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언뜻 창밖을 보니 어느새 바다위로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다. 몇몇 작은 섬들이 우리 배 옆을 천천히 지
나가고 있다. 몇 시간째 선실에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남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따닥 따닥” 하이힐 소리에 내가 먼저 놀란다. 그 구둣소리가 다른 선원들에게 아내를 생각나게 할 것 같
아 얼른 구두를 벗어 든다.
동승(同乘) 2
- 정성화
남편을 기다리다가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네 시. 그의 베개는 흐트
러짐 없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배의 항로를 정하고 입출항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배의 조종실 브리지(bridge)에서 남편은 밤새 내려
오지 않았다. 그에게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대강 훑어 내렸다.
그 때 거울 앞에서 이빨이 두 군데나 빠진 그의 빗을 보았다. 마누라가 있어도 홀아비처럼 살아가는
그는 빗 하나도 온전한 걸로 갖지 못했구나 싶어 마음이 울적했다.
연탄불에 꽁치를 구워주는 포장마차도 없고, 저녁 9시 뉴스도 없으며, 아침이 되어도 문 앞에 신문
한 부 오지 않는 곳이다. 봄이 되어도 꽃씨를 뿌릴 수 없는 철판 위이면서, 담쟁이덩굴 하나 벽에 오
를 수 없는 물위에 떠다니는 쇳덩어리일 뿐이다. 두 뼘 크기의 달력 속에나 계절이 오고가는 곳, 아
니 계절이 비껴가는 곳이다.
브리지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몇 개의 스위치 불빛만이 눈에 들어왔을 뿐 온통 캄캄했다. 사람의 소
리대신에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기계음만이 들려왔다. 나는 남편을 숨겨두고 있는 그 어둠 속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 들어갔다.
저 편에서 누군가 내게 아는 척을 했다. 남편이었다. 대뜸 왜 올라왔느냐고 한다. 꺼끌꺼끌한 목소리
다. 피곤이 어느새 그의 목을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하자 나의 목도 메여왔다. 공명(共鳴)이었다.
어두운 데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나를 더 서글프게 했다. 밤에 자동차를 운전할 때 실내등을 끄는
것과 같은 이치라면서, 브리지가 캄캄할수록 배를 부리는 기술이 잘 나오는 법이라고 그는 내게 설명
했다. 한석봉의 어머니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실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아내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와 이카노, 일 하는데. "
남편은 얼른 손을 빼내어갔다. 그의 투박한 사투리가 브리지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넓은 브리지 안에는 오직 세 사람, 조타수와 1항사, 그리고 선장인 남편뿐이었다. 배의 길이는 280m
폭은 40m로, 배를 바다에 띄웠을 때 수면 아래엔 거대한 엔진실이 있게 되며 수면 위로는 9층까지
올라가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배다. 거의 15층짜리 아파트만한 크기다. 20피트 컨테
이너 박스를 5500개나 싣고 부산을 떠나 여드레 만에 미국 L. A.항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배의
속도 또한 빠르다고 한다.
남편이 레이더를 들여다보며 항로를 살핀 후 “130도로 갑시다”라고 주문을 내었다. 조타수는 얼른
키를 잡으며 “Yes, Sir"을 외쳤다. 해도(海圖)위에 배의 항로를 그어가며 현재 배의 위치를 표시해 놓
는 일이라든지, 가까운 배와의 거리를 레이더로 측정하는 일은 1항사의 일인 모양이었다. 남편은 유
리창에 바짝 붙어 서서, 볼 것도 없는 듯한 캄캄한 바다 위를 망원경으로 한참 살피더니 ”어선이 둘
있구먼“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또 통신실로 가서 팩스로 전송되어온 기상도를 들여다보기도 하며,
어둠 속에서도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
집에서 애들 스낵과자나 뺏아 먹고, 아들의 힙합바지를 빌려 입으려고 애쓰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길도 나 있지 않은 바다 위에 이리저리 척척 길도 잘 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손수 커피를 타
서 건네기도 하는 모습이 집에서 보던 남편과는 정말 달라 보였다.
남편의 등은 참 믿음직스러워 보였으며 방파제의 테트라포드(삼발이)를 연상하게 했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들이닥쳐도 테트라포드는 움츠리거나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오히려 파도의 거친 숨결을 다둑
거려 순한 바닷물로 되돌아가게 한다. 어떤 파도든지 잘 헤쳐나갈 것 같은 남편의 등도 그 테트라포
드 모양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의 등은 외항(外港)뿐만이 아니라 내항(內港)에서도 수없이 많은 파도를 만나왔다. 나는
그의 옆구리를 간질이며 찰랑대는 파도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그의 등을 위협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서 가져온 가정환경 조사서의 아버지 직업난에 슬며시 회사원이라고 적음
으로써 그의 사기를 꺾어놓기도 했고, 어느 집 가장(家長)은 월급보다 한달 부수입이 더 엄청나더라는
얘기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그를 허탈하게도 했다.
그리고 편지에다 이렇게 쓴 적도 있다. 우리는 회전목마 위에 있는 말과도 같다고. 축에 고정되어 있
는 말은 세상을 몇 바퀴 돈다 해도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할 운명이라 제자리에서만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때로는 나를 고정시키고 있는 이 축을 뽑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강한 전기를 발생시켜 상대방을 감전시켜 버린다는 전기뱀장어, 어쩌면 나는 그 전기뱀장어 같은 아
내였는지도 모르겠다. 태평양 같은 큰 바다 위에서의 항해보다 연안 항해가 더 힘들더라는 그의 말은
아무래도 내 얘기였던 것 같다.
크고 작은 파도를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뱃길을 열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바다가 되
어 세상의 파도를 끌어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남편’인 듯하다. 아침마다 온 가족이 식탁에 모
여 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삶에 있어 ‘동승(同乘)’이란 그리 거창한 게 아닐 것이다. 어둠 속에 같이 머물러있는 것, 그리고
함께 어둠을 견뎌내는 것이다. 또 어느 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에 휩싸였을 때, 양쪽
의 노를 하나씩 나누어 쥐고 같이 저어가는 게 진정한 의미의 동승이 아닐까 싶다. 춘천에서 돌아오
는 기차 안에서 한번도 아내의 손을 놓지 않았다는 어느 가난한 부부의 얘기를 담은 김소운의 수필
을 떠올려 보며, ‘아름다운 동승’이란 그런 것일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수평선 위에 진주목걸이를 풀어놓은 듯 불빛이 총총하다. 광양항인가 보다. 밤새 파도를 헤치며 달려
온 배도 남편도 이제는 얼마간 쉴 수 있을 것이다.
망원경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보았다. 힘줄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