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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영상 : https://youtu.be/W8GyQDRx_ZU
제목 : 우리의 곤고함을 돌아보소서
본문 : 렘 15:15-21
날짜 : 2026. 8. 30 주일오전예배
뜨거운 광야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것은 물입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를 오래 걷다 보면 준비한 물은 떨어지고 온몸의 기운이 빠집니다. 그때 멀리 물길처럼 보이는 골짜기를 발견하면 여행자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광야에는 사람을 실망시키는 시내가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계절에는 많은 물이 흐르지만, 정작 물이 가장 필요한 건기에는 완전히 말라버리는 시내입니다. 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찾아갔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메마른 모래와 돌밖에 없다면 그 절망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가 바로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부르시면서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말씀을 믿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한 결과 돌아온 것은 칭찬과 환영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미워하고 비난하며 박해했습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18절에서 “주는 내게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라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아무런 도움도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까?”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때를 만납니다. 기도했지만 응답이 보이지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 했는데 오히려 손해를 볼 때가 있습니다. 몸의 아픔이 계속되고, 가정의 문제가 풀리지 않으며,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좀처럼 낫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속에도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나를 알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시는가? 왜 나의 고통을 보고만 계시는가?”
오늘 우리는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의 형편을 아시오니 우리를 기억하시며 돌보소서. 우리의 눈물과 아픔을 외면하지 마시고 우리의 곤고함을 돌아보소서”라고 기도했던 예레미야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곤고한 날을 만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여호와께 간구해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예레미야는 ‘주께서’라는 말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심판을 선포해야 했는지, 그 말씀을 전하면서 얼마나 아파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게는 자신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가 다 설명하지 못해도 주님께서 아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수고를 주님께서 아십니다. 사람들이 오해한 일의 진실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밤마다 흘린 눈물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도 아십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을 보면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그들의 근심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것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마침내 구원하기 위하여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성경에서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잊으셨으니 다시 생각해 내시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이제 행동해 달라는 뜻입니다.
시편 56편 8절을 보면 다윗은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흘린 눈물을 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하나도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는 의미 없이 흘려진 눈물이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의 문제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자신이 직접 원수를 갚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함과 최종적인 판단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우리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끝까지 해명하고 싶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똑같은 고통을 당하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마지막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곤고할수록 기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새로운 정보를 알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곤고함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에 나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구해야 합니다.
2. 여호와께 진실히 기도해야 합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잠시 듣고 지나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삶 속에 깊이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이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주셨다는 사실은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먹고 기뻐했던 예레미야가 17절을 보면 “주의 손으로 말미암아 홀로 앉았사오니.”라고 말을 합니다. 말씀은 기쁨이었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고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전한 결과 예레미야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은 것이 아니라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18절을 보면 예레미야는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라고 그동안 참았던 고통이 터져 나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상태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니 괜찮습니다. 나는 믿음이 있으니 아프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오히려 “주님, 저는 아픕니다. 이 고통이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상처가 깊고 낫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앞에서도 괜찮은 척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아픔을 감춥니다. 하나님께 힘들다고 말하면 믿음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속의 말을 삼킵니다.
그러나 시편 62편 8절을 보면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예쁘게 꾸며서 내놓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토하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연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가면을 벗는 시간입니다.
시편 13편 1절을 보면 다윗도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잊힌 것처럼 느꼈지만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께서 말라버린 시내처럼 느껴진다는 질문을 품고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믿음은 질문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질문이 생겼을 때 그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만 진실하게 기도한다는 것이 우리의 감정과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느끼기에는 하나님께서 말라버린 시내와 같았지만, 하나님은 실제로 신실하지 않은 분이 아니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버림받은 것처럼 느끼는 것과 하나님께서 실제로 우리를 버리신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으로 드리는 우리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보다 마음을 먼저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픔을 숨기지 말고 진실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3. 여호와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자신의 마음을 모두 쏟아놓은 후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예레미야가 기대했던 내용과 달랐습니다. 예레미야는 박해자들을 즉시 제거하고 자신의 고통을 끝내주시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예레미야에게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형편보다 먼저 마음을 다루셨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바꾸실 때가 있습니다. 문제를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만 문제를 견딜 수 있는 믿음을 먼저 주실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뜻대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바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의 마음에는 귀한 것과 무가치한 것이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한 것이었지만, 낙심과 상처에서 나온 성급한 판단은 무가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곤고할 때 마음속에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다. 내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라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고통에서 나온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귀한 것과 무가치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상처가 하는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시편 130편 5절을 보면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 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며 건짐이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고난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놋 성벽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싸움이 없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싸움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게 하겠다”고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은 ‘놋 성벽’이 아닙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라는 약속입니다.
예레미야가 강해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견디는 것입니다. 고통이 없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31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복시키고 새 힘을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다시 말씀 앞에 세우시며, 고난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여호와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말라버린 시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아픔과 눈물을 알고 계셨고, 낙심한 그를 다시 말씀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그들이 너와 싸울지라도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원하고 건져내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곤고함을 돌아보신다는 것은 언제나 즉시 문제를 없애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환경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키십니다. 싸움을 멈추게 하기보다 싸움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곤고한 날이 우리에게 닥치면 우리는 여호와께 “주님께서 아시오니 우리를 기억하시고 돌보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마음을 숨기지 말고 여호와께 “주님, 우리의 고통이 계속되고 상처가 낫지 않아 너무나 힘이 듭니다”라고 진실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게 하옵소서”라며 여호와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로 응답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응답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곤고함 가운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주님께 늘 응답받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