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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방령에 다시 왔다. 지난 6.24에 황악산을 넘어 대간길을 따라 도착하였으니 이번엔 추풍령을 향해 길을 나설 참이다. 집에서 나올 때 맞은 맑은 하늘은 충북 영동에 이르자 구름이 자욱하다. 비상시 우의를 지참하라는 기본 지침이 맞아 떨어질까 우려하면서 고개에 닿았다. 황간을 지나 올라오면서 가로수가 감나무인 것에 놀랍다. 각 지방마다 특산 수종을 가로수로 접목하려는 시도는 당연하다.
《승정원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괘방령을 묘사하였다. ‘괘방령은 산과 계곡이 험준하여 이곳에 성을 쌓고 진을 설치하면 남문에 자물쇠를 채운 것 같이 든든한 국가의 요새라 하겠습니다(고종15년7월15일)’ 그러나 지금의 괘방령은 일기처럼 험준하지는 않다. 그러나 성문을 설치하기에는 마땅한 장소로 여겨진다.
괘방령 일대는 옛날 전쟁터이기도 했다. 김천시 대항면 마전마을의 유래도 전쟁과 관계있다. 임진왜란 당시 괘방령 마을 인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때 목숨을 잃은 조선군과 왜군의 말들을 들판 한가운데 묻어주고 돌을 쌓아 말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마을 이름도 ‘말무덤이 있는 들’이란 뜻으로 ‘마전(馬田)’이라 했다 한다. 괘방령 고개로 가는 옛길은 사라졌지만 밭두렁과 정상 부근에서 옛길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정상을 오르기 직전에 있었다던 주막과 성황당도 세월을 이겨내지 못한 듯 사라졌다. 대신 괘방령산장이 조용히 지키고 있다.
오늘의 여정은 괘방령을 출발하여 눌의산을 오르고 추풍령 고갯길을 밟은 다음 금산을 지나 영동군 추풍령면 작점리의 작동마을로 내려가는 것이다. 지도의 등고선을 보면 눌의산이라야 743m이나 이번 여정도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00m에서 700m의 고개와 산으로 이어져 있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반복되며 특히 가성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다. 조심조심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서기 무섭게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장군봉으로 이어지며 장군봉에서 내려서는 마루금도 마찬가지로 급경사다. 한참 급경사길이 이어지고 부드러운 산세가 이어지나 싶더니 곧바로 690봉으로 올라서는 오르막이다. 눌의산에서 추풍령으로 향하는 길도 1시간 정도 내려 가야하니 한시도 주의를 늦추면 안 되는 곳이다.
10:05, 44명의 대원들은 여성을 선두로 세우고 북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초입에 돌나물 무리 가운데 패랭이꽃이 활짝 피어 이색적이다. 통나무 계단이 시작되더니 이내 완만한 숲길로 변했다. 숲을 보니 망개떡을 쌌던 청미래덩굴이 자주 보이고 초피나무가 군집을 이룬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청미래덩굴을 '망개나무'라고 칭하는데, 그로 인해 ‘망개떡’이라 불리게 되었다. 청미래덩굴 잎의 향이 떡에 베어들면서 상큼한 맛이 나고, 여름에도 잘 상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초피나무는 우리가 흔히 먹는 추어탕의 향신료로 쓰인다. 경상도에서는 제피나무라 하는데 열매 가루를 이용한다. 잎이 산초나무와 비슷한데 가시가 마주나면 초피나무고 어긋나면 산초나무로 구분한다.
앞에 가는 부부가 스틱을 사이좋게 나누어 1개씩 짚으며 걷고 있다. 흔히 산에서 정(情)이라는 이름으로 스틱을 나누어 이용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사랑과 우정도 좋지만 스틱은 1인당 한 쌍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등산 시 스틱의 중요성은 이미 밴드나 SNS를 통해 익히 아는 정보에 속한다. 무릎이 안 좋거나 좋거나를 불문하고 스틱은 필수 품목이다. 그러나 우리 대원들도 아직 (무릎이)괜찮다거나 귀찮다는 평범한 이유로 극구 거부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제는 살면서 필수적인 것과 부가적인 것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작은 고개가 나오고 418봉을 향해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서늘했던 날씨는 땀이 배면서 체온이 올라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람을 맞으면서 시원한 감이 더 느껴진다.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이 연상 될 정도로 바람이 불어온다. 된비알이 시작되더니 418봉을 만나 쉬면서 물을 마셨다.
두 번째 작은 고개인데 고갯길은 김천 방향으로만 나있다. 고개에서 올라가는데 가는잎그늘사초풀이 바닥에 깔려있다. 그 사이에 등골나물이 흰 꽃을 펼쳐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잎이 큰 떡갈나무가 이젠 성숙한 잎을 펄럭이고 있다. 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나있다. 오솔길은 오소리가 다녀서 생긴 길이다. 오소리는 다리가 짧아 숲을 지나다닐 때 배가 땅에 닿아 낙엽을 쓸고 다녀 길이 생긴다. 이 길은 산토끼도 이용하고 너구리도 다니는데 밀렵꾼들도 이 길을 잘 알아 여기에 올무를 설치한다. 역시 사람이나 동물이나 흔적을 남기기 않아야 한다.
이곳은 소나무가 늙고 병들은 모습이 많이 보인다. 참나무와 공존하다가 이젠 기 싸움에 눌려 점점 힘을 잃은 것이다. 아니 날씨라는 우군을 참나무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뜻밖의 우군이다. 이제 삼림은 침엽수에서 활엽수로 점차 수종 갱신을 하고 있다. 지구가 더워지는 한 어쩔 수 없는 교체 작업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기세가 등등한 참나무는 누구인가? 참나무는 보통명사다. 참나무는 6형제가 있는데 그냥 참나무라 하면 6형제가 듣기엔 약간 섭섭하다. 그 6형제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다. 나름대로 잎이나 줄기의 모양이 다르지만 쓰임새도 다르다. 오늘은 떡갈나무와 굴참나무가 많이 보인다.
알프레드 테니슨이라는 영국 시인의 ‘참나무’가 떠오른다.
‘젊거나 늙거나
저기 저 참나무같이 네 삶을 살아라.
봄에는 싱싱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여름에는 무성하고 그리고, 그러고 나서
가을이 오면 다시 더욱 더 맑은 황금빛이 되고
마침내 잎사귀 모두 떨어지면
보라, 줄기와 가지로
나목 되어선
저 발가벗은 힘을.’
오래된 무덤을 지나자 고사리가 쇤 채로 많이 자라고 있다. 고사리는 우리네 식단에 빠질 수 없다. 단독으로 요리를 할 수 있고 다른 주 메뉴에 부가적 요소로 많이 이용된다. 나는 고등어조림에 고사리가 들어간 요리가 좋다. 소나무 숲을 올라가는데 댕댕이덩굴을 보았다. 이 덩굴은 케이블처럼 단단히 엉겨 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댕댕이인데 예전에 지게나 등짐을 동여매는데 사용했고 바구니 등 세공품도 만들어졌다. 그 옆에 생강나무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봄에 제일 먼저 피는 생강나무는 이파리도 짓찧어 향을 맡아보면 꼭 생강향이다. 잎은 넓은 삼지창이라 보면 쉽다.
오늘 첫째로 나타나는 바위가 앞에 가로막고 있다. 이제 봉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다. 작은 봉우리에서 잠깐 쉬었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오른쪽 김천 방향으로 전망이 나타났다. 누운 소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아래는 낭떠러지, 왼쪽 영동 방향의 완만한 지세와는 확연히 다르다. 시야를 아래로 돌리자 경부고속도로가 보인다. 신나게 달리는 자동차의 굉음도 이따금 들려온다. 가는잎그늘사초를 위에서 보니 장발의 정수리를 보는 것 같다. 오르막이 앞에 있다. 오르막에선 앞에 가던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수 회 경험 축적이 되니 그들도 체력이 보강되었는가 보다. 역시 체력은 쓸수록 좋아진다.
11:50, 가성산(柯城山·716m) 정상에 도착했다. 이름을 보니 예전에 산성이 있을 거라고 추축해 본다. 지면은 콘크리트로 다져 놓았고 ‘김천산꾼들’이 2007년 9월에 작고 아담한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떠들썩하게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는 가운데 정상 주위는 싸리나무와 졸참나무가 지켜보고 있다. 가성산에서 급격한 비탈길을 내려가는데 노린재나무가 보이더니 그 밑에 비비추가 꽃을 활짝 피웠다. 아파트 단지에서 보는 흔해 빠진 비비추와 비교도 안되는 자태다. 그래서 도시미인보다 산골 미인이 더 도드라지게 예쁜 것이다.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희귀해서 오는 것이다. 금 덩어리가 도처에 흔해빠진 존재라면? 그건 금덩이가 아니다. 대간을 타면서 어린 비비추가 이렇게 성인이 되어 예쁜 꽃을 드러낸 과정을 보니 마치 내 딸처럼 예뻐 죽겠다.
아래 안부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여로가 긴 줄기를 올리고 꽃봉오리를 보인다. 꽃은 이제부터다. 활짝 핀 꽃은 이미 호시절이 끝난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것, 바로 꽃봉오리의 장점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12:30, 장군봉(長君峰·627m)에 올라 점심식사를 했다. 오늘 나의 점심 메뉴는 새우볶음밥에 마늘쫑 고추장절임이다. 일산팀에서 가져 온 풋고추가 기분좋게 맵다. 산에서 뭘 먹을까 고민 끝에 얼굴을 보여준 밥과 반찬은 각자 자기 얼굴이 있다. 그 도시락은 아내가 쌀 수도 있고 내가 쌀 수도 있고 새벽 김밥집에서 얼른 사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산상 뷔페는 모든 것을 합일한다.
동네 산악회의 경우 자기가 요리했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먹어보라고 권하는 통에 먹어주는 센스도 발휘해 본다. 그때는 맛없어도 맛있다고 해야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세상에 무차별적으로 자랑질이 범람하는 이때, 자기가 만든 요리를 먹어보라니, 이 얼마나 어여쁜 자랑인가? 주지도 않으면서 자랑질만 하는 행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지 아시는가? 그 사이에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의 흥도 빠질 수 없다.
장군봉 표지는 정상석이 아니라 나뭇가지에 달아놓은 아크릴판이다. 그래도 용인 백두대간 5기팀에서 달아 놓았으니 고맙다.
장군봉부터는 완만하다, 비비추 꽃이 여기저기 또 보인다. 흰 까치수염이 나타나더니 머루나무가 파란 열매를 매달고 있다.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에 머루도 열매를 익히고 있다. 여름이라는 이름은 열매가 열려 익어가는 계절이기에 생긴 것이다. 추풍령에 가면 포도가 맛있다는데 그 포도를 생각하며 머루나무와 작별을 고했다. 그 익어가는 열매를 노리는 녀석들이 또 있다. 참나무가 다양하게 서식하는 곳에 이르자 도토리가 달린 잔가지들이 땅에 떨어진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 훼손의 범인은 키 1Cm인 거위벌레, 도토리가 열리기 전에 알을 낳아놓고 가지를 예리하게 잘라 떨어뜨린 것이다. 알은 애벌레가 되어 도토리 속살을 파먹고 자라서 또 알을 낳고 잘라내고…그놈들의 생은 엄청 간단하고 단순하고 본능적이며 영구적이다.
멀리서 산새 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숲속으로 불어 들어온다. 문득 ‘스위트 피플’의 음악이 떠 오른다. 스위트 피플(Sweet People)은 90년대 활동한 프랑스 오케스트라 음악 그룹인데 음악의 배경에는 항상 새소리가 깔려있어 마음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든다. 특히 ‘A Wonderful day' 는 대표곡으로 이 자리에서 들었으면 싶다. 다음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산행해야겠다.
13:40, 헬기장이 있는 눌의산(訥誼山·743m)에 도착했다. 조심스러운(訥) 충청도와 옳은 것만 따지는(誼) 경상도 사람의 합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는 추풍령과 그 주변의 조망이 좋아 중요한 거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곳도 ‘김천산꾼들’이 세운 소박한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 미역줄나무와 솔나물이 많이 자라고 있다. 미역줄나무의 빨간 꽃이 이상해서 확인해 보니 열매란다. 꽃보다 더 화려한 열매도 있는가? 헬기장 아래에서 역시 화려한 털중나리꽃을 사진 찍고 눌의산 정상에서 내려섰다.
내리막길은 경사가 급하다. 생태관찰을 위한 카메라가 나무에 매달아 장착되었다. 지나다니는 야생동물 관찰용이다. 30분 내려가자 임도가 보이고 민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눌의산 안내도에서 우회전하여 소로로 들어갔다. 여기서 눌의산 정상까지 2.2Km(1시간12분)라고 표기되었다. 달맞이꽃이 활짝 피었고 자두나무 과수원을 지나 공동묘지에 들어서니 달맞이꽃과 어울려 개망초 군락이 화려하다. 저 아래 고속도로 밑으로 들어가 나오면 유명한 추풍령 포도밭이 나온다. 이제 곧 출하 준비를 마친 포도들이 싱그럽게 익어가고 있다. 리본을 따라 굴다리를 또 통과해 추풍령면의 중심인 모텔 카리브 앞 공원에 도착했다(15:00).
추풍령(秋風嶺·221m)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남상규의 노래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면,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기적도 숨이 차서 목 메여 울고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싸늘한 철길. 떠나간 아쉬움이 뼈에 사무쳐, 거치른 두 뺨 위에 눈물이 어려,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4/4박자의 경쾌한 리듬이지만 가사로 표현된 그 안에 녹아있는 애환은 이 추풍령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다. 지금의 추풍령엔 옛길이 없다.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차지해 버려 고개의 이미지는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노래의 가사처럼 구름도 자고 갈 정도로 ‘굽이마다’는 아니다. 그러나 추풍령은 나지막한 고갯길이지만 경북(김천 봉산면)과 충북(영동 추풍령면)을 잇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고개다. 또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계 역할을 한다. 김천 쪽 물은 직지천이 되어 김천의 젖줄인 감천으로 흐른뒤 낙동강에 합류하고, 영동 쪽으로 흐른 물은 추풍령천이 되어 초강천으로 흐른 뒤 금강에 물을 보탠다. 추풍령은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 중 2개의 강에 백두대간의 큰물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추풍령은 조선에선 영남과 한양을 잇는 가장 중요한 관로(官路)였다. 조선의 같은 영남 3대 관문인 영남대로의 문경새재보다는 규모나 명성에선 뒤졌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문경새재의 명성과 규모를 뛰어넘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지나면서 추풍령은 문경새재는 물론 소백산의 죽령과 이화령을 넘던 사람과 경제까지 물려받은 명실상부 최대의 물류이동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6·25때는 격전의 중심이었고 특히 영동으로 가는 노근리 쌍굴다리는 미군에 의해 400여 명의 피난민들이 공습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제 추풍령은 옛 길손들의 발품을 차량과 열차가 쉴 새 없이 대신하고 있다. 어느 집은 경상도요 옆집은 충청도에 속한 곳이다. 추풍령은 여전히 백두대간의 가장 중심이다. 백두대간의 70개 고개 중 가장 사연이 많은 추풍령 고개에 나는 서 있는 것이다.
10여 분 쉬면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금산을 향해 출발했다. 안내도를 보고 추풍령특산물직판장 앞으로 길을 들어가니 청포도농장이 나온다. 싱그런 청포도를 보니 침이 고인다.
불현듯 이육사의 ‘청포도’가 떠오른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청포도가 익어 가는 그의 고장 칠월의 자연적 배경과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독립)을 기다리는 작자의 마음으로 요약되는 아련하며 당당한 명시다. 앞으로 대간길을 가면서 시 한수 정도는 외어 다니는 것이 어떨까.
농장 뒷산으로 올라가는데 상당히 습하고 덥다. 오늘 초반부터 불었던 바람은 추풍령에 들어오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秋風이 아니라서 그런가? 7월이니 매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데 암석이 보이더니 ‘등산로폐쇄’의 밧줄을 쳐놨다. 그 너머는 천 길 낭떠러지다.
이곳 금산(金山·384m)은 일제시대부터 개발된 채석장으로 인해 처참하게 파괴된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현장이다. 산의 중심이 예리한 칼로 자른 듯한 모습인데 여기서 떨어지면 그야말로 추풍낙엽이다. 내가 알기론 백두대간의 70%가 사유지란다. 이곳도 그 중 일부인데 그나마 2004년 이후 개발이 정지되어 방치된 상태다.
백두대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한반도 중심생태축으로서의 기능이다. 즉 한반도의 호랑이와 반달곰이 백두대간을 타고 남북을 오르내리며 시베리아까지 왕복함으로써 이종교배로 건강한 생태체계를 유지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는데 이에 따라 산림청에서는 백두대간의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우리가 지나온 바람재는 복원이 완성된 모습인 것이다.
잘려나간 금산을 급하게 내려와 완만한 숲길에 들어갔다. 이곳의 대표 수종은 청미래덩굴과 초피나무다. 아침에 나올 때 망개떡을 먹고 나왔는데 그 망개떡을 싼 청미래덩굴 잎이 자주 보이니 이 무슨 인연인가? 우연인가? 역시 발밑에는 가는잎그늘사초의 하늘하늘한 풀이 많이 자라고 있다. 수암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으니 소나무 지대에 모처럼 소나무의 기풍이 어린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인 들기산(501m)에 올랐다(16:20).
들기산에서 20분 정도 가면 해주 오씨 무덤이 나온다. 오늘의 대간 종주는 공식적으로 여기 까지다. 왼쪽으로 오솔길을 타고 10분 내려가면 마을로 내려가면 임도를 만날 수 있다. 대나무가 우거진 소로를 따라 영동군 추풍령면 작동리 경로당 앞마당에 도착하여 오늘의 여정이 끝났다(17:10).
閒花自落好禽啼 一徑淸陰轉碧溪
坐睡行吟時得句 山中無筆不須題
한가한 꽃 혼자 지고 예쁜 새들 우짖는데
소롯길 맑은 그늘 돌아서면 푸른 시내,
앉아 졸다 가다 읊다 때로 싯귀 얻어도
산중에 붓이 없어 적을 길이 없구나
김시진(金始振·1618~1667)의 산길(山行)이라는 한시로 오늘의 여정을 정리해 본다.
오늘은 주형철씨 부부가 투혼을 발휘했고 뒷풀이는 지홍기씨가 담당했다. 그리고 황일영씨 동생이 추풍령에서 포도밭을 운영하는데 그 크고 맛있는 포도를 찬조했다.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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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다린 이유가 있었네요. 생생한 표현과 숨은 이야기, 글과 사진 감사드립니다. 한 문장도 허투루 읽히지가 않네요 정현종님의 시가 많이 남네요. 따님같다는 얘기도..
어찌보면 지루할 수 있는 산행구간이었음에도 산행기 덕분에 새로운 즐거움을 늦길수 있었읍니다. 잘 읽었어요..
파괴된 백두대간을 무서워하며 내려다보는 제 뒷모습을 잡으셨네요 늘 지나온 길을 뒤돌아 반추하게 하는 산행기 감사합니다
세밀하게 잘 표현해 주신 산행기 감명깊게 잘 보얐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