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만산 봉양정(鳳陽亭)
소재지: 상주시 북천로 55-13
상주 삼악(三岳)의 하나인 천봉산(天峯山:435,8m)은 빼어난 정기로 백두대간 밤원숭덕지맥에서 동으로 벗어난 노음산의 끝자락으로 상주의 명산이다. 이 산 자락아래 경북북부지역의 명문학교로 알려진 상주중학교가 북천을 앞에 두고 자리하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교훈(校訓)이 성실(誠實)이라고 음각한 큰 자연석이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1936년 6월 상주공립농업실수학교(당시 중덕리)로 개교하여, 1948년 11월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하는데, 배출인원이 22,000여 명이나 된답니다. 정면에 교사가 일자로 배치되어 있고, 실내체육관, 식당 등 많은 부대시설이 참교육을 실시하는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어 보입니다.
이 학교 안에 전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 기와지붕의 건물이 함께 하고 있는데, 그 이름을 봉양정(鳳陽亭)이라 걸었네요.
한 층의 단위에 지어진 건물은 전면에는 둥근기둥이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세웠는데, 바닥은 마루이고, 앞, 뒤로 마루에 오르기 쉽도록 디딤돌을 놓았지요. 원래 상주시내에 있던 정자를 1954년에 박인양 선생이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전 하는데, 기둥마다 여러 곳에 홈이 많이 있습니다. 천장은 연등천장과 반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중당협실형으로 추측이 된다고 합니다. 가구는 5량가 삼분변작법으로, 대들보 위에는 동자주를 세워 중도리를 받았지요, 처마는 겹처마로 비교적 건물은 안정성이 있고, 시원하고 간결하게 보이는데, 측면에서 보면 기품이 넘칩니다.
박인양 선생이 건립하여 상주중학교에 희사한 건물이라 하며, 이름은 중국 고전 시경(詩經)의 봉명조양(鳳鳴朝陽)이란 글귀에서 취했다고 합니다. 한 때 교실이 부족하여 이곳에서 수업을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안동대학교 내에 역동서원(易東書院)이 있듯이 상주중학교 안에 봉양정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퍽이나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만의 학생들이 亭의 참뜻을 공부하고 떠났다면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건물 내부에 봉양정기(鳳陽亭記)가 걸려 있는데,
「봉양정(鳳陽亭)은 이 고장 상주(尙州)의 인재양성(人材養成)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한 박인양(朴寅陽)선생이 창건(創建)하여 본교에 희사한 정자이다. 봉양(鳳陽)이란 중국고전 시경(詩經)에 있는 봉명조양(鳳鳴朝陽)의 어귀에서 딴 것으로, 봉황(鳳凰)이 우는 동쪽언덕에 훌륭한 성행(性行)을 가진 사람이 난다는 뜻인데, 본교는 옥야백리(沃野百里)를 굽어보는 상주(尙州)벌의 동쪽에 소백산맥(小白山脈)에서 흘러나려 우뚝 솟은 천봉산(天鳳山)을 뒤로하고, 남으로는 갑장산(甲長山)이 우리들의 붕정만리(鵬程萬里)를 손짓하고 있으며, 도도한 역사(歷史)의 강물에 함께 흐르는 북천(北川)의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다.
본교가 1936년 6월 18일에 탄생의 울음을 터뜨린 후, 수많은 영재(英才)를 배출하여 온 누리에서 봉양(鳳陽)의 얼을 펴고 있으니 바로 이 유서(由緖)깊은 봉양정(鳳陽亭)에서 춘풍추우(春風秋雨) 심신(心身)을 갈고 닦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앞으로 이곳을 찾을 상중인(尙中人)들아! 우리 모두 다음 명(銘)을 마음에 새겨 봉양(鳳陽)의 얼을 영원히 이어나가자. 봉명(鳳鳴)하니 천하(天下)의 영재(英才)가 모였도다. 조양(朝陽)하니 서봉(瑞鳳)이 이곳에서부터 온 누리에 비상(飛翔)하리라. 1999년 12월 校長 洪鍾爀 記 校監 鄭載覺 書」이고,
亭 앞 송덕비(頌德碑)의 명문(銘文)은 ‘故商山朴公寅陽翁之頌德碑’ 이고, 비문(碑文)은 「고 상산박공寅陽옹은 기원四二一六년 七월 二九일에 영남웅군 상주에 태어나서 일찍 한국 궁내부 순릉참봉에 서임하셨었다. 소위 한일합병인 국치를 당했을 때 용약구국운동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불러 민족사기를 돋구어 주셨다. 그러나 국운이 쇠잔한 한 때 왜정 三六년간을 오로지 육영사업에 여념이 없이 지내셨다. 정의의 광복은 三千里江山을 다시 빛내게 하였다. 공은 순후 인자한 성품으로 여생을 상주교육재건을 위하여 동분서주 급기야 그 철의를 관철하여 사도에 큰 공로를 남겨셨다. 또 법원 상주지청사 재건도 공의 헌신적 노력에 이루어졌으나 그 중 거적이 본교에 현저하였음은 천추에 빛을 자랑 아니 할 수 없다. 슬프다, 공은 四二八七년 十월 九일에 七三세를 일기로 영면하셨다. 공의 장례는 본군 교육회 장으로 안장되었다. ... ... 후일에 귀감이 되기 바란다. 四二九? 상주중학교장 김국한 執筆 金演權」이라 적고 있다.
또한 상주 왕산 역사공원에 상주고등학교 설립자로 1974년에 ‘商山 朴公寅陽先生 永世不忘碑’를 세워 그 공덕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