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7:1-10
찬송가 찬370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독수리와 백향목 (1-4)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던 시기는 유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얼마 전, 유다가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외교 사절단을 보낸 시점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BC 6세기. 당시 최강의 세력은 애굽와 바벨론이었습니다. 유다는 이 두 나라의 완충지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여 혼합 민족이 되어 다른 지역에 이송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유다도 멸망 직전의 상황에서 초강대국의 침략 위협 속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다윗 또는 히스기야와 같은 민족의 위기를 헤쳐나갈 지도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마지막 네 왕인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를 보면 이들이 왕으로 즉위한 평균연령은 고작 22세였습니다. 그중 두명은 불과 3개월 만에 애굽과 바벨론에 의해 각각 폐위되었습니다. 새로 세워진 두 왕도 11년간의 집정 후에 바벨론의 대군주를 반역한 일로 모두 왕위를 잃게 됩니다. 남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즉위했을 때 바벨론은 왕족들을 비롯한 능력 있는 사람들은, 반란을 줄이기 위해 바벨론으로 이미 전송시켰고, 에스겔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안타깝게도 예루살렘에 남은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성전이 아직도 예루살렘에 건재하고 있기에 나라가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그릇된 확신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곳은 몰라도 예루살렘과 성전만큼은 하나님께서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실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시드기야와 남유다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이 비유를 통해 17장에서도 계속 등장합니다. 17장의 비유는 ‘포도나무와 두 독수리의 비유’입니다.
(2-4)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인의 성읍에 두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종종 그 의미를 잘못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자’라는 표현입니다. 신약을 보면 ‘인자’라는 표현은 대부분 예수님을 표현할 때 인자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앞뒤의 본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기서 인자는 에스겔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또 한 가지가 본문에 나오는 ‘독수리’입니다. 크리스천들이 많이 암송하는 말씀 중에 이사야 40장 31절에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독수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그 외에도 몇몇 구절에서 ‘독수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뜻할 때 사용되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독수리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언급된 화려하고 몸집이 큰 독수리는 힘세며 적대적인 정복자 바벨론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된 표현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는 본문의 앞뒤를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을 상징하는 힘이 센 독수리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는데, 그 연한가지를 꺾어 상인들의 땅으로 가지고 가서 그곳에 심었다고 말합니다.
구약시대 레바논의 백향목은 그 멋진 자태 때문에 제왕의 나무로 불렸으며 숭고함과 장엄함을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궁을 보면 백향목을 가지고 건축한 궁들이 있었고, 이 궁의 이름을 레바논 궁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독수리는 레바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연한가지를 꺾어 상인들의 도시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는 바벨론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왕이 유다를 침공해 백향목이라 불리는 여호야긴왕을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곳에 잡아 둔 사건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여호야긴은 유다의 왕이 된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의 조언을 따라 바벨론에 복종해야 했지만, 그가 바벨론의 가장 큰 적이었던 애굽에 도움을 청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유다는 성전의 많은 보화와 수많은 지도자가 함께 끌려갔고, 에스겔도 이때 함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독수리와 포도나무 (5-6)
(5-6) 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
이제 독수리는 백향목을 대신해 포도나무를 심고 온갖 혜택을 주었습니다. 포도나무를 옥토에 심고, 물도 풍족히 주었습니다. 이는 식물이 자라는 데 중요하고, 필수적인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잡아간 여호야긴을 대신해 시드기야를 왕으로 삼아 유다를 다스리도록 한 사건을 말합니다. 그래서 백향목은 여호야긴왕을, 포도나무는 시드기야왕을 뜻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배반과 결과 (7-10)
(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여기서 문제가 한가지 생깁니다. 죽어가던 포도나무를 옥토에 심고 풍족하게 해 주었더니 이 나무가 삶에 대한 욕망이 점점 더 강해져서 첫 번째 독수리에게 등을 돌리고 두 번째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를 향해 뿌리를 뻗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독수리도 첫 번째 독수리와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두 번째 독수리는 첫 번째 독수리보다 화려하지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첫 번째 독수리는 포도나무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었지만, 두 번째 독수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포도나무가 첫 번째 독수리에게서 벗어나 두 번째 독수리에게 자신의 가지를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본래 포도나무는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이 포도나무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맺어야 할 열매의 자리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첫 번째 백향목이었던 여호야긴이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함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여줌으로,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 번째 포도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므로 열매를 맺기를 원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시드기야는 처음 왕이 되었을 때 바벨론에 납작 엎드렸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조금씩 유다의 회복이 시작되는 듯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와 시드기야 왕을 향해 품으신 본래의 은혜와 계획이 진행되는 듯 보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유다가 근근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가지를 내기 원하셨습니다. 잎이 무성해지기를 원하셨고, 결국 다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회복하기를 누구보다 더 원하셨습니다.
(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셨지만, 그들을 통해 자기 백성의 회복의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포도나무인 시드기야왕은 바벨론과의 언약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더 강해 보이고 힘 있는 두 번째 독수리인 애굽을 의지하려 했습니다.
(9-10)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열매를 따며 그 나무가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가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볼지어다 그것이 심어졌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에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본문은 새로운 독수리를 쫓아간 포도나무의 결말을 보여줍니다. 처음 독수리가 그 뿌리를 뽑고, 가지를 꺾어버릴 것입니다. 독수리가 하지 않아도 그 포도나무는 뜨거운 바람에 의해 말라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에 있는 유다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 있는 것을 두 마리의 독수리와 한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보여줍니다.
이 메시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보여줍니다. 역사의 흥망성쇠가 강대국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세상은 강대국인 바벨론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신흥 강자인 애굽을 의지하면 인생이 풀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애굽위에 바벨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대단한 강대국인 바벨론도 하나님의 자기 백성의 회복과 열매 맺기를 위하여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 새벽의 시간을 지나면 우리는 애굽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독수리와 같은 바벨론도 만날 것입니다. 시드기야와 같이 눈에 좋아보이는 애굽이나 바벨론을 의지해야 할 것 같은 유혹이 올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누구를 선택할 것이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때 애굽도 바벨론도 아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만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
기도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흥망성쇠가 주님께 있듯 우리 인생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바벨론과 애굽과같은 나라를 의지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워 보이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참된 지혜이며 명철임을 우리가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가 주님만 의지하여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유다는 나라가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도 왜 예루살렘과 성전만큼은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까?
2. 두 마리의 독수리는 각각 어떤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까? 강대국에 대한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유다는 끝까지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도 하나님은 끝까지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십니다. 무너져가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있다면 나눠보세요.
4. 바벨론은 심판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기 위해 사용하고 계시는 바벨론이 있다면, 그 도구를 통해 회복과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작성: 이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