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아침, 대회일정을 모두 끝마친 후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하던 중 송홍석 아마7단의 뒷덜미를 부랴부랴 잡아챈다. 관광에다 시상식에다 빡빡한 일정을 보내는 통에 간신히 인터뷰 막차를 잡아탄 셈인데 그는 돌아서서 생각지도 못한 인터뷰에 놀랐다는 듯이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대부분의 팬들은 송홍석 아마7단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예전과 같이 아마대회가 활발히 열리던 시절도 아니거니와 아무래도 팬들의 관심은 아마보단 프로에게 쏠리는 게 인지상정이리라.
대다수의 젊은 아마추어 강자들이 그렇듯 송홍석 아마7단도 한때 입단유망주로 손꼽혔던 이무기다. 건강상의 이유로 연구생을 그만 두었던 그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마대회에 참가해 그해 아마랭킹 1위까지 오른다.
송홍석 아마7단의 소개와 더불어 앞으로 그가 보여줄 행마를 독자들에게 활짝 열어본다.
우승축하해요. 국무총리배 우승은 처음인데 기분이 어때요?
좋습니다. 어느 대회건 간에 우승은 좋은 거잖아요. ^^
보니까 바둑을 일찍 끝내고 다른 이들의 바둑을 관전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던데요. 국무총리배에서 맞붙었던 상대방들이 비교적 쉬웠었나 봐요?
바둑은 어떻게 하다보니 일찍 끝났어요. 결과적으로 전승을 했지만 내용상 제가 좋았던 바둑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중국선수와 둘 때는 중반에 낙관하다가 역전까지 갔었는데 중국선수가 제대로 뒀다면 제가 이길 일이 없었을 거에요. 미국 선수와 둔 바둑도 만만치 않았고요.
유럽이나 구미 쪽 선수들은 그래도 한 수 아래의 실력이지 않나요? 미국 선수와 둔 바둑이 만만치 않았다니 조금 의외네요.
그쪽 선수들도 잘 두는 사람들은 굉장히 잘 둡니다. 초반 포석을 짜는 실력은 수준급이에요. 다만 몸싸움이 벌어지거나 종반 끝내기에 접어들면 세밀한 맛이 떨어져 쉽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는 게 흠이죠. 이번에 둔 미국선수는 전에도 한 번 만났어요. 미국에서 열린 도요타컵에서 한 판 뒀었는데 그 때도 힘들게 이겼습니다.
국무총리배가 아마대회 몇 번째 우승이죠? 2007년에는 아마랭킹 1위에도 올랐었는데요.
첫 우승이 2007년 전국체전 개인전 우승이었고 그 다음이 미추홀배, 익산서동배, 고양시장배, 문경서재배였을 겁니다. 2007년엔 운 좋게 아마랭킹 1위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쭉쭉 내려가서 6위에 앉아있죠. 하하.
바둑은 언제부터 배운 건가요? 부모님 영향이 컸겠죠?
바둑은 형이 먼저 배우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7살 때 시작했는데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 나이 또래 애들처럼 피아노학원에다 태권도학원에다 여러 학원을 골고루 다녔는데 부모님 얘기로는 제가 바둑에 꽤 관심을 보였대요. 부모님도 바둑 쪽에 재능이 있다보고 계속 밀어주셨고요.
그럼 한국기원 연구생은 언제쯤 들어갔나요? 몇 조까지 활약했는지도 궁금해요.
연구생은 초등학교 4학년 말에 시작했고 주로 1조에 있었습니다. 연구생은 18살 때 그만뒀어요.
연구생 그만 둔 건 입단대회 스트레스 때문인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몸이 많이 안 따라줬습니다. 예전부터 몸이 안 좋은 편이었는데 오랜 기간입단대회를 준비하다보니 이곳저곳에서 탈이 나더군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연구생을 나왔습니다.
부모님이 무척 아쉬워했겠군요. 프로기사가 되길 간절히 원했을 건데요.
크게 내색은 안 하셨지만 속으론 많이 아쉬워했을 겁니다. 입단은 지금도 항상 제 가슴 속에 아련함으로 남아있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할 생각이에요.
입단 문턱까지 갔다가 한 끗발 차이로 좌절된 기억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입단대회 에피소드가 궁금하군요.
언제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6전 전승한 다음에 지석이한테 반집 진 적이 있었어요. 그 바둑을 지더라도 다음 판을 이겼으면 입단할 가능성이 많았는데 반집 진 충격 때문이었는지 그 다음 판도 보기 좋게 지고 말았습니다. 이것 말고도 초반에 잘 나가다 막판에 연거푸 미끄러져 탈락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요. 기대가 컸던 만큼 상심도 엄청나게 커 오랫동안 아파했었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프로가 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단 얘기가 들리면 아직도 입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었죠.
연구생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뭐가 크게 다른가요?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하니 기분이 어때요?
연구생을 나와서 한동안은 즐거웠습니다. 바둑을 떠나 이것저것 다른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한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않았죠. 바둑이 무척 두고 싶었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마대회에 하나 둘씩 출전하기 시작했고 대회 성적도 그럭저럭 내다보니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됐네요.
연구생 때는 조금 답답했어요. 주위 동료들 모두가 내가 넘어야 할 경쟁상대라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단이 지상최대의 목표인 이상 서로 간의 경쟁의식은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였죠. 지금은 홀가분해요.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바둑을 둘 수 있고 대회를 통해 많은 사람을 알게 되다보니 내성적인 성격도 활발하게 바뀌더군요.
물론 아마대회가 워낙 속기고 하루에 3판 이상씩 두는 강행군이라 연구생 때와는 바둑내용이 질적으로 크게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바둑을 즐길 수 있으니 그 자체로 크게 만족해요.
아마추어가 프로세계대회에 출전해서 본선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 입단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올해 생겼는데요.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LG배나 삼성화재배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데 그게 제 맘대로 돼야 말이죠. 지금까지 2번 출전했는데 모두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국무총리배 우승자는 내년 통합예선 출전권이 부여된다는데 최선을 다해봐야죠.
이제 22살인데 바둑 말고도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을 것 같아요. 바둑 외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글쎄요. 아직은 명확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요. 대학교에도 진학하고 싶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다른 분야의 것들도 경험해보고 싶고. 하지만 아직까지 바둑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아서 당분간은 바둑을 계속 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성원에 보답 드리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입단의 관문도 뚫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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