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욕(無慾), 무아(無我), 가벼움과 청량함, 그리고 깊고 긴 향기......
지리산 청학동은 그러한 느낌으로 잔잔히 내 온 몸에 스며들었다.
욕심없이 살아가는 눈 맑은 사람들을 만났다.
교회 공동체 어린이들의 캠프를 준비하며 지리산 여행은 내게 좀 무리이지 싶었다.
남아있는 한 쪽 골반이 장시간의 자동차 여행을 견디어 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매들과 신부님의 간곡한 권유는 이런 염려를 뒤로 밀어두게 했다.
여행은 의외로 매우 순조로웠다.
물론 많은 배려의 손길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어린이들 열 여덟 명과 어른 열 다섯 명 이렇게 무려 서른 세 명의 무리가
청학동 깊은 골짜기 오두막을 그야말로 쳐들어 갔다.
얼굴이 고운 사라 자매님과 웃음이 본래 얼굴인 듯한 아브라함 형제님이
시끌벅적한 무리를 맞아 주었다.
산바위에 기대어 지은 나무집과 마당에 엉성하게 지어놓은 정자,
그 곁으로 흐르는 계곡물, 야생의 나무들과 열댓 통 되는 벌집들......
집을 등 뒤로 하고 서면 첩첩한 산등성이들이 줄을 서 있고,
그 가운데를 골짜기가 가르고 있었다.
마당에는 덕석이 깔렸다.
비로 대강 쓸어낸 덕석은 흙투성이였지만 우리는 그것이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맨발로 다니기로 했다.
자연의 풍치에 취해버린 어른들은 '어린이 야영'을 위해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덕석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동동주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은 텐트를 하나씩 차지하고 들어가 속닥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깊은 골의 첫날 밤은 깊어만 갔다.
다음 날은 정신을 가다듬어 어린이들을 돌보아야 했다.
최치원 선생이 제자들과 머무셨다는 곳을 방문했다.
지금은 아기자기한 돌과 나무들과 연못으로 꾸며져 있어 평범했지만 화랑의 기상이
깃들여 있는 곳이라니 사뭇 감회가 새로웠다.
단군의 홍익인간의 얼과 천지화랑의 정신을 이야기 하며 "얍! 얍!" 하고 함께
함성도 질러 보았다.
오후에 방문한 삼성궁은 '한인, 한웅, 단군' 세 성인의 자취를 담은 궁으로
한풀선사가 제자들과 함께 직접 만들고 있는 곳이었다.
잃어버린 우리의 첫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장소를 만들어 준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꿈틀대며 올라왔다.
시작은 작았지만 그 뜻은 자라고 있었고 열매는 튼실할 것이라 예견되었다.
청학동을 둘러싼 숲은 품위 있고, 운치가 있었다.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었고, 연록색으로 부터 짙푸른 색까지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이파리들이 바람따라 우아한 춤을 추며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아! 그대들은 내 혼을 송두리째 가져가버리는구나!'
계곡의 물은 투명한 청록의 수정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오두막의 이웃엔 '김용 선생'이 살고 있었다.
김용 선생은 고향이 진도였다.
그래서 첫 날의 동동주 잔치에 건너와서 함께 어울렸다.
큰 공과 같이 동그란 머리와 우람한 풍채, 부리부리한 듯 하지만 다정한 눈빛을 가진
도인이었다.
그의 집은 반듯한 한옥으로 서까래 밑에는 '無我亭'이라는 堂號가 붙어있었다.
집 안팎에는 그의 정갈함이 배어 있어, 그가 매우 부지런하고
자기 절제가 철저한 사람임을 보여 주었다.
당호가 보여 주듯이 그는 욕심없이 사는 사람이었다.
직업이 나와 같다는 것이 반가웠다.
'노는 사람'이라는 직업 말이다.
무아정에 찾아 온 손님 두어 명과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금새 십년지기나 된 듯 했다.
사람의 향기는 자연의 향기 중에 으뜸이다.
김용 선생과 사라 자매님, 아브라함 형제님 그리고, 미사를 함께 하기 위해
이웃에서 자동차로 달려온 장년의 자매님들 (텃밭을 가꾸며 사신다.)을
가슴 속에 안고 아름다운 숲을 헤치고 내려왔다.
그리고는 괜히 소리치고 싶어진다.
"청학동에는 신선들이 산다네!"
첫댓글 한동안 적막강산이더니...신선놀이 다녀온갑다...지리산기운이 보약이람니다 , 오래품으시어 건강하시길...소리치는님이 파안대소...ㅎㅎㅎ
대학 다닐 때 같이 다니던 학회의 지리산 산행이 생각나네요.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네요. 좋은 시간 잘 보내고 있다니 멀리서도 기쁩니다. 더운 여름 잘 지내시길.....
레오나님 넘 ~~~~~수고 하셨구요 우리 아이들 챙겨서 청학동 다녀오시느라~~~~ 우리아이들 청학동 다녀와서 정서적으로 많이 어른 된거 같아 넘 좋았어요 보내길 잘했다 내년에도 갈 기회가 된다면 꼭가야지 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