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교, 보통학교, 심상소학교로 이어져 오던 이름이 1941년 국민학교가 되었다. 국민학교는 독립 후에도 50년이나 더 쓰였다. 정부는 1995년 8월11일에야 일본식 이름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어째서 그토록 변화가 더디었을까? 일제는 우리나라 중요 군사시설 달성토성을 공원화하고, 신사를 설치했다. 민족의식 말살 조치였다. 그런데 1970년에는 우리나라 정부가 스스로 동물원까지 설치했다. 달성토성은 언제나 국가 사적의 면모를 되찾을 수 있을까? 무엇 때문에 나쁜 변화는 계속되는 것일까?
1919년 8월11일 타계한 철강왕 카네기는 전 세계 5천곳 이상에 도서관을 지어 기부했다. 그는 많은 명언을 창작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물론 변화와 관련되는 명언도 남겼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변화에 자신을 적응시키고, 나아가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개인이든 인류든 사람의 시간은 변화의 연속이다. 변화가 정지되면 사람은 소멸한다. 우주의 그러한 이치를 카네기는 짧은 촌철살인에 담아 표현했다. 만약 카네기가 장황하거나 중언부언의 수사법을 썼으면 세계인의 환호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시조는 짧은 형식에 높은 가치를 담아낸 경이로운 문학 갈래이다. 대구 최초의 현대 시조시인 이상정의 '남대문역에서'를 읽어본다. "이 속에 타는 불은 저 님은 모르시고/ 서운히 가는 뒷모습 애석히 눈에 박혀/ 이따금 샘솟는 눈물 걷잡을 줄 없애라"
이상정은 1925년 중국 망명길에 오르면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가 연상되는 감회를 그렇게 시조에 담았다. 제목의 남대문역은 현 서울역이다. 서울역 광장에는 일본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거사로 순국한 강우규 지사 동상이 서 있다. 강우규 지사도 짧은 시를 남겼다.
"단두대 위에 봄바람은 있는데/ 몸이 있어도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을 수 있으랴." 길다고 해서 시의 작품성이 덩달아 향상되지는 않는다. 카네기 명언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전통 문학 시조도 짧은 덕분에 독자에게 주는 감동의 온도가 더 뜨거워졌을 법하다.
최근 감상한 김규원 시 '우리 세상'도 그런 생각을 더욱 굳게 해준다. "내 껍데기/ 네 껍데기/ 겹겹이 쌓은 것/ 이 세상 역사// 내 알갱이/ 네 알갱이/ 켜켜이 포갠 것/ 새 세상 희망"… 서양 시가 들어오면서 우리 시가 길어졌다. 쓸데없는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