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 14. 지참금 문제로 결혼이 무산된 후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다 그때까지도 나는 고드프리와 한집에 살았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내 집 한 켠에 살면서 가게 한쪽에서 유리장이 일을 했다. 그런데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늘 수학에만 빠져 있었다. 고드프리 부인은 친척의 딸을 나와 맺어주려고 둘이 만나는 자리를 자주 마련했다. 나는 여자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어느 정도 만나다가 정식으로 청혼을 했다. 그녀의 부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 우리 둘만 있을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었고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결혼이 결정되었다. 고드프리 부인이 양쪽 집을 오가며 필요한 심부름을 해주었다. 나는 여자 쪽에서 인쇄소의 남은 빚을 갚을 만큼 지참금을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고드프리 부인을 통해 전했다. 100파운드가 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부인은 여자 집에 그만한 여유가 없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 나는 집을 저당잡히면 될 거라고 했다. 며칠 뒤에 여자 쪽에서 결혼을 승낙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해왔다. 브래드퍼드에게 물어봤더니, 인쇄업이 벌이가 시원찮은 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활자가 금방 낡아서 새것을 계속 사야 하며, 그래서 키머와 해리가 차례로 망했고 나도 분명 머지않아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자기 집에 오지도 말고 다시는 딸도 만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이 정말 마음이 변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기 딸과 내가 정이 많이 들어 헤어지지 못할 테니 둘이서 몰래 결혼하면 아예 지참금을 주지 않거나 원하는 대로 깎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았다. 너무 화가 나서 다시는 그 집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고드프리 부인은 그들이 아록 보면 좋은 사람들이라며 다시 나를 그들과 연결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쪽의 집안사람들과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 일로 고드프리 부부는 나를 원망했다. 자연히 서로 사이가 불편해졌고 결국 그들은 이사를 나갔다.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지만 더 이상은 세를 놓지 않기로 했다. 이 일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주변도 둘러보았고 다른 곳에 사는 지인들에게 부탁도 해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쇄업을 가난한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신부에게 지참금을 바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혹 지참금을 가져오겠다는 여자가 있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젊은 남자로서 육체적 욕구를 억제하기 힘들 때면 아무 여자나 사서 관계를 가졌는데 돈은 그렇다 쳐도 굉장히 꺼림칙했다. 다른 무엇보다 병에 걸릴까 봐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리드 씨 가족과 이웃이자 오랜 친구로 지내면서 여전히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내가 그 집에 처음 하숙하던 때부터 그들 가족은 내게 살갑게 대해주었다. 나는 종종 리드 씨 집에 놀러가서 이런저런 일에 의논 상대도 되어주고 가끔씩은 도움도 주었다. 그 집에 드나들면서 리드 양을 볼 때마다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늘 기운 없고 어두운 표정으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리드 양이 그렇게 불행하게 된 것이 런던에서 경솔하고 변덕스럽게 굴었던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리드 양의 어머니는 내가 런던으로 가기 전에 우리 둘의 결혼을 반대했고 내가 없는 동안 딸을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려고 한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에 대한 예전의 좋은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시 맺어지는 데는 큰 장애물이 있었다. 리드 양과 결혼했던 남자의 본처가 영국에 살고 있다고 하니 그 결혼은 무효로 볼 수 있겠지만 거리 때문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자가 죽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확실한 건 아니었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만일 그 남자가 많은 빚을 남기고 죽었다면 뒤에 리드와 결혼하는 사람이 그 빚을 갚아야 했다. 이 모든 문제를 무릅쓰고 우리는 모험을 했다. 1730년 9월 1일 나는 리드 양을 아내로 맞았다.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리드 양은 훌륭하고 믿음직한 동반자였으며 인쇄소에 나와서 일도 많이 도와주었다. 우리는 함께 성장해나갔고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해서 내가 저지른 또 하나의 잘못을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