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친구들이 멀리에 삽니다.
고향이 같은, 한 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깃들었던
인연의 질김을 실감합니다.
먼 곳에서 친구가 다녀갑니다.
날이 갈수록 세련되어가는 벗
"어? 예쁘다"
한 마디에 입었던 겉옷을 대뜸 내려놓고 갑니다.
"그래? 안 그래도 너 주면 좋겠다 싶었어"
'뭐야? 도무지 겁나서 뭔 말을 못하겠네...'
하면서도
저 또한 자주 그랬습니다.
그 스카프 예쁘네... 하면
그래?
풀어주고
브로치 괜찮구나 하면
그렇지? 맘에 들지? 동료의 옷으로 옮겨 달아주던 때 많았었지요.
그렇게 나누고 그렇게 옮아간 마음들이
또롱또롱 편안하고 눈물 겹던 때 많습니다.
예상치 않게
이승을 떠난 사람도 늘고
전화기 붙들고 어딘가 건강이 무너졌다며
목울음 삼키는 사람도 쏠쏠치 않게 생기지만
그래도 그 마음 여전히 꽃등불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요
혈압으로 애저녁에 저쪽 사람이 된 친구녀석도
한달 전 길 떠난 동료도
함지박처럼 둥글기만 하던 그 마음들 생생하여
여태 얼굴 앞에서 웃습니다.
한결같이
사람 좋은 그 웃음들이 저물 줄 모르는 건
말하자면 축복입니다.
은총입니다.
막막한 어둠을 관통할 때
손 끝에 느껴지는 따뜻함인 게지요.
참 오랜만에 손으로 쓴 편지를 받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아나로그란 그윽하도록 아련한 꿈입니다.
때마침 걸려온 전화 너머에서
"웬일로 오늘 목소리는 맑음이래? 기분 좋아보이네?"
대뜸 알아채는 벗들 또한 신기 뻗친 귀신들입니다.
어거지로 시를 몇 편 급조했고(??)
시인학교를 합니다.
처음엔 그냥 장소 빌려드린다... 가벼이 생각했는데
점점 어깨 눌리고 이마 받치고 아이고! 이젠 등짝이 무겁습니다.
일기야 매양 쓰는 거지만
잡문이야 늘상 긁적이는 거지만
시. 詩... 제목이 붙으면 앗! 뜨거라! 달아나게 되는 공포증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입니다.
하옇든지간에
덜컥 발목이 잡혀서
에라이, 모르겠다. 뚜닥뚜닥
날림공사로 얽은 낱말 몇 개
절반은 장난 절반은 걱정으로 디밀어놓고
통개통개 우둔거리는 가슴입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진솔하기를
맑기를
정직하기를
참되기를
오랜 바램으로 심지 세웠지만
더러는 아니올시다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는 수 없습니다.
다른 이의 눈이 내눈과 비끼는 각도를 가졌다해서
비난 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눈에는 내 눈의 각도가 비틀렸을 테니 말이죠.
다만
다름은 피곤합니다.
얽매임은 실상보다 배가된
구체적인 불편이 되기도 하지요
비평서를 즐겨 읽습니다.
문학 비평서, 문화 비평서, 그림 비평서
또는 비평의 또 다시 비평... 같은 것
말 잔치처럼 공허할 때도 있지만
속이 뻥 뚫리도록 명쾌, 상쾌, 시원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러하든지
논리란 사람의 한계 안에 있습니다.
빈틈없이 짜여진 논리도 역시 사람의 산물이지요.
따라서 어딘가 헐겁고 부족합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모르는 부족함보다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처절하게 아는 꽉참의 차이...를 생각합니다.
하나 더 한다면
부족함을 알아내려고 기를 쓰는 중간 단계도 가능할 수는 있겠군요.
누구도
다른 어떤 이를 단정 지어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누구'가 개채로서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생각이 여러 갈래입니다.
징계와 배척
포용과 아량
단어 조합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반의어로 설명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행간에는 집더미보다 더한 말들과 마음들이 포개져 있는 거지요
차곡차곡...
그래서 사람이 무섭습니다.
나 또한 사람입니다.
용서에 인색합니다.
알지요.
때문에 늘상 갈팡질팡 버거운 게 아닐런지요?
넘지 못하는 벽에 꽝 부딪는 이마... 에구! 혹덩이가 불거집니다.
다시 또 부딪고 깨지려고 덤비겠지요.
어리석음은 안다고 하여 넘어지는 게 아닙니다.
손으로 쓴 편지
답장을 써야겠습니다.
9월엔
정통 유학파이신 사순문선생님이 맡아주실 생활영어반을 시작합니다.
윤순철선생님이 지도하시는 통키타도 이미 시작되었지요
요가와 무용 기본동작에서 만들어진 건강 스트래칭도 있습니다.
2급 능력시험 준비를 시작하게될 일본어 고급반과
맹렬히 뒤를 따르는 중급반... 어째 요즘 실렁실렁 게으름을 피우는 초급반도 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로 반을 나눈 학생부도 있습니다.
긴 여름방학에 들어간 동요모임, 솜씨동아리도 빠지면 안되지요.
수련관을 정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낭송회 길토래비는 아직도 넘치는 의욕으로 공부 중입니다.
꼬맹이들의 와글와글 집합소인 그림교실도 잊어선 안되지요
제가 가르쳤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빛나던 아이가 요즘은 선생님을 합니다.
지켜보면 끄덕끄덕 놀랍습니다.
통제는 아직 쬐끔 서툴지만요.
속이 좋아서지요.
희한하게도 꼬맹이녀석들은 누가 더 사나운지(??) 금방 압니다
작은 선생님 옆을 휘리릭 지나쳐와서
작업대 앞에서 개인 작업에 열중하는 저에게 달려옵니다.
으갸갸?? 선생님은 저기 계시는데?? 등 떠밀어 보내도
일러바치러, 허락 받으러, 점검 받으러, 간다고 인사하러 저에게 쪼르르 달려옵니다.
아니, 이쪽 말고 저쪽이라니까... 돌려세우면서 내심 당황합니다.
입 다물어도 누구 목소리가 더 큰지를 알아채는 아이들에게 감탄합니다. (에구구!!)
지난 번에
협약을 하러 찾아 간 보건소에서 이수향소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수련관은 저돌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더라"네요.
소장님이 말씀하시는 '수련관' 낱말 안에는 상담지원센터와 꼭다배움터 청년 사업단이 한꺼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돌적이라... 죽을둥 살둥 용을 쓰긴 하는 것 같은데... 정도로 받아들입니다.
예산 예산...
어느 기업체 못지않게 좋은 대우를 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대우로 넘치는 우리 선생님들의 능력에 보상을 줄 수 있다면... 바라지만
한정된 예산 안에서 숫자 셈을 해야하는 게 진짜 진짜 싫습니다.
사실 말이지 제가 어디 고용주인가요?
아닙니다.
저 또한 우리 선생님들과 똑같은 입장인데 말입니다.
에휴!
후반기에 접어들면 또 예산이 무겁습니다.
땡볕 여름이 지글거립니다.
수련관의 모든 님들
마음은 늘 서늘하고 맑은 기운으로
잘 다스리시는 날이기를!
첫댓글 저희들도 힘이 되어드려야 하는데 늘 관장실을 무상으로 드나들면서 시보다도 관장님 만나는 기쁨이 더 클만큼도 되고 저울에 달아보지는 않았지만...때로 시낭송이 버거울땐 멤버들에게 힘을 얻기도 합니다. 마음으로만 영차 영차 응원합니다. 수련관이 잘 운영되어야 드나드는 저희도 발걸음 거벼울테니...그나저나 서령이 아빠 기계 연구한거나 얼렁 잘되면 이럴때 관장님 어깨좀 펴 드릴수도 있을텐데...머니가 또 문제네요.
손으로 쓴 편지, 컴퓨터로 쓴 편지를 일주일 내내 못 보내고 있는 마음에 꾼밤 한대 날아온 듯... 일본어를 다시 시작해야...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 ^*^.
계절따라 생각도 주저리주저리 갑니다.^&^ 나누어 생각해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하 많습니다. 지금보다 몇 가지 줄일 수 있음 강똥해 맘 가분하겠다 생각합니다. 늘 바라는 것이지만 관장님 건강부터 꼼꼼히 챙기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