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부화일로 읽으면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답니다)
Remember, 하롱베이 !
’14년의 여름.
초여름에 유난히 덥더니, 정작 中伏을 지나면서 ‘12호 태풍’『나츠리』휴유증에 전국이 어수선한 즈음, 늦깍이 ‘11호 태풍’『하롱』(이번 여행 목적지의 ‘하롱’)이 뒤따라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도배하고 있었다.
많이 다녀본 해외여행이지만, 나의 ‘버킷 리스트’ 항목이고, 입대를 앞두고, ‘첫 해외 나들이’인 아들과 마음먹고 계획된 여행인지라, 경비에 근거한, 테마와 장소 선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2014년 8월 5일 아침 5시.
출발당일『나츠리』끄트머리 여파로 내리는 빗속을 달리면서도, 여행의 설레임과 모처럼의 쾌적한 기온 때문에,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흥얼거리며, 엑설레이터를 밟는다. 충주 공용 버스터미널은『롯데마트』와 같이 사용하는 주차장인데,『롯데마트』개점 전에는 주차장을 개방하지 않아, 인근의 주택가 도로변에 주차를 하면서, 누구를 위한 주차장인지, 행정당국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직행버스는 휴가철인지라, 출근시간임에도 체증없이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달리고, 길이 4.4km, 현수교인 영종대교도 건너, 낯설지 않은『인천공항』출국장에 다다른다.
11시 5분발 ‘Vietjet Air 8977편’ 186석이 대부분 한국인 여행객들로, ‘우리 국민들이 언제부터 해외에서 여름휴가를 즐겼던가!’ 하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휴가철만 한시적으로 운항되는 비행기인지라, 설친 아침을 대신하기엔 형편없는 기내식과 $2를 주고 사먹어야 하는 커피가 당혹스럽지만, 사회주의 공화국 출신의 어린 스튜디어스들의 상냥한 미소에 상쇄된다. 맨 뒷좌석에 배치되어, 화장실 출입승객들의 시선을 받으며, 5시간여를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끌려 간다.
다소, 시골스런 건물『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들어서니, 에어컨도 없는지 후덥지근한 공기와 바글대는 출입객들, 제멋대로인 입국 수속 動線이 혼란스럽다.
뉘엿뉘엿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30여분을 달려, 신시가지 동쪽에 자리잡은 오늘의 안식처인 5성급 호텔『Nico Hanoi』는 이름이 말해주듯, 정갈한 일본식 정원과 세계인이 북적대는 일본풍 로비가 경제대국 일본자본을 잘 대변해준다. 509호에 여장을 풀고서 초간단 샤워를 마치고, 한인 식당인데도 가당치도 않은 삼겹살 먹으러 갔다. 어설픈 밑반찬들, ‘알랑미’로 지어진 밥은 입안에서만 맴돌고, 퍽퍽한 고기와 쌈장마저, 먹는둥 마는둥 식사 후, 자유시간에 아들과 함께 뱃속을 채우려 재래시장 주변을 돌아다녀보니 늦은 시간인지라 먹을 만한 곳을 못 찾고, 번화가 네거리에 자리한『맥도날드』엘 들어가니, 영어도 통하지 않고, 가격도 비싸고, 종사원들도 퇴근시간 임박해서인지 불친절 그 자체 이다. 어느 나라든지 열대지방은 먹거리만큼은 풍부했던 경험이 무너지는 순간, 호텔로 돌아와 준비해 온 컵라면과 팩소주 하나, ‘KBS world’ 채널에 의존하다 스르르 잠에 빠졌다.
하노이에서 2시간 거리의 국립공원『엔뜨』로 향한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하롱베이』로 가는 중, ‘지역에 따라, 2모작에서 4모작까지 한다’는 벼농사 모내기가 한창인 들판 곳곳에 공동묘지가 있어, 무수한 전쟁에서의 희생이, 이들만의 독특한 葬地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하노이』동쪽 170여㎞,『엔뜨』에서 2시간여 달려, 드디어 베트남 최고의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3대 자연유산중 하나인『하롱베이』에 입성하여, 또 일본식 4성급 호텔『 ****』에 여장을 풀고서 ‘김치찜’을 먹으러 한인 식당을 찾았으나, 어제 저녁의 삼겹살과 별반 다른게 없다.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에게 왜 이렇게 장사할까?’ ‘옵션으로 가는 식당은 다 이런 정도일까?’ 은근히 화도 나지만, 여행의 本質에 충실하려면,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쬐끄만 재래시장도 들렀다, 호텔로 돌아오니, 가이드가 로비에서 열대과일을 한 바구니씩 분배한다. ‘가이드가 저녁마다 들르는 한국인 식당이 불충분하니, 식사대용 하라는 건가~~’ 샤워를 마치고, 호텔 명함을 지갑에 넣고, 주변 탐방에 나섰다. 관광지인지라, ‘개인행동 시에는 취객이나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당부를 되뇌이면서, 호기심으로 토착민들 삶의 흔적들을 유추해보려 한다. 선착장을 중심으로 해변을 따라 길게 도로를 형성하고 있으며, 상가, 숙박시설, 유흥시설들이 조성되어 있거나 조성 중이다. 197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 전에는 조그마한 시골 어촌이, 지금은 년간 200만명의 ‘베트남 관광 일번지’가 되면서, 세계 유수의 자본들이 몰려와, 곳곳을 개발하느라 한참이다. 우리나라 ‘C.J그룹’에서는 대형 극장과 아쿠아룸을 건설 중인 현장도 목격했다. 반면, 후진국답게, 곳곳에 쓰레기와 썩은 물웅덩이가 환경의 심각함을 경고하고 있었으며, 귀소 도중, 차도 곳곳에 우리나라 소라보다 큰 고둥들이 자동차에 압사 흔적이 즐비하고, 인도에도 가로등 주변에 몰려있어, 몇 마리 잡아다 숙소 욕조에 담아 두었으나, 이튿날 룸서비스에게 처치 당했다. 바다이지만 호수같이 아늑한 베이(bay, 灣: 바다가 육지에 둘려진 곳)에 떠있는 영롱한 유람선 불빛과 함께 하루의 휴식에 들어간다.
금방 출발하지 못하고, 한참을 지체하여도, ‘행여 출발에 지장을 줄까봐’ 일행 모두가 선실에서 꼼짝 못하고 대기하는 중, 선창 밖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몽실몽실 물안개를 만들어 멀리 보이는 섬들은 물론, 물위에 떠있는 크루즈 호텔, 선착장 주변 모습들까지도 신비롭게 보여진다. 젊은 선원들과 사진사, 가이드들은 끝을 알 수 없고, 생김새를 짐작할 수 없는, 기기묘묘한 2,960여개의 섬들이 1,553㎢
대략적으로 천궁동굴(승솟?) 하늘문, 용형석, 용좌, 폭포, 선녀탕 등의 이름으로 유혹하지만, 잔잔한 쪽빛 바다에 이름모를 섬들이 스펙터클한 群像을 이루고 있는 그 자체가 경이롭다.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우리 유람선 옆으로 쬐끄만 쪽배들이 과일이나 생선, 음료수 등 간식거리를 들고, 이쪽에서 짠~, 저쪽에서 짠~ , 해적들 마냥 나타나 호객하는 모습도 싫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환상적인 섬들의 물그림자를 가르며 구비구비 한참을 가다보니, 대부분의 섬들은 인적이 없지만, 아늑한 곳에 해상마을, 어시장도 있고, 큰 섬에는 연육한 학교(딸랑 교실하나, 국기대)도, 관공서인지, 해상 감시소 의 섬도 보이더니, ‘전망대’가 있는『띠톱섬』에 다달았으나, 비 때문에 급경사가 미끄러워 위험하기도 하고, 멀리 조망이 어려워 헛고생이라는 가이드의 회유로, 그냥 통과 한다.
이곳의 섬들은 7천만년 전, 지각변동으로 융기된 '카르스트' 석회암 지대로, 대기 중의 산성 물질이 지금의 형상들로 가꾸었고(용식작용), 해수의 침식작용도 한 몫 거들었으니, ‘지구 온난화나 대기의 산성화가 인류에 악영향만을 미치지 않는다’는 다소 궤변도 성립되는 것이다. 가는 길목마다 수많은 유람선에서 버려진 부유 쓰레기(가라앉은 쓰레기는 ???)들이 눈살을 찌푸리지만, 쓰레기 수거 선박이 ‘광활한 해역과 요리조리 해류 때문에 한계를 느낀다’는 선장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Story telling중 하나인
이어, 그곳 어시장에서 배달된 재료로 만들어진 '해선식'(한국인들에게만 유별난 ‘다금바리’, 추가 옵션)으로 신선함을 더하고, 까불기가 코미디언 뺨치는 기사가 운전하는 고속 모터보트(추가 옵션)로 갈아타고, 낙타봉, 하늘문, 돈바위, 연꽃바위, 폭포, 메꿍동굴(해수면보다 25m 높은 호수), 선녀탕 등을 관람하면서도, 눈길 닿는 곳, 어디를 둘러봐도 한 폭의 산수화인지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기 어려운 형상들이 펼쳐있다.
‘소이심 비치’는 영화 '인도차이나', '007 네버다이' 등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아담한 모래해변으로, 비오는 날씨 임에도 인도차이나 sail구조대, 중국, 유럽 등지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어우러져, 한가로이 해수욕을 즐기는 풍경도, 다소 이채롭다. 한 무리의 유럽 노인들은 참전 시(2차대전) 이곳에서의 추억을, 용맹한 자부심으로 열변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진작가나 문장가들도 하롱베이를 세세토록 표현하기는 어렵다’ 하듯이, 형언하기 어려운 풍광들을 뒤로 하고, 서서히 선착장으로 향할 때, 동쪽하늘의 무지개가 그야말로『하롱베이』비경에, 방점을 찍는다.
상륙 후, 다시 저녁차 들른 어제의 한인 식당... 한정식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 몇몇이서 1병 7,000원 하는 '참이슬'만 몇 잔 기울이고 나오니, 식당에서 우리 차량 입구까지 보따리장사들이 길게 늘어서, 저마다 부채, 담배, 목각제품, 해먹 등, 저가공략 관광상품들을 들고, 우리 돈 만원을 외치고 있다.
귀소하여 아들녀석은, 일행 중 젊은 친구들끼리 현지 밤 문화를 체험하러 택시로 나가고, 홀로 남아, 별관 4층에 있는 수영장에서 퐁당거리다, 인터넷에 ‘베트남 맥주(사이공, 하노이, 타이거, 333 등)가 세계에서 제일 저렴하다’고 유혹하기에, 숙소 인근 한적한 공원 옆 노상 카페엘 가보니, 오토바이를 타고와, 우리의 목욕탕 의자에 앉은 현지 젊은이들이 연인끼리, 친구끼리, 대화를 나누면서, 밤공기에 취해 박장대소하고, 장난하는 모습들이, 베트남 전 인구의 30%가 30대 미만이라는 ‘젊은 베트남’을 보고 있는 듯하다. 아직 초저녁인지라 번화가를 배회하니,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은 마사지 샵과 유흥업소이다. 나처럼, 이 시각 길거리를 배회하는 각국 관광객들의 ‘이국의 정취’를 탐닉하기 위한 호기심은, 인간이란 전제에서는 똑같은가 보다. 아들녀석이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곤한 잠에 빠졌다.
먹지못하는 술로 밤문화를 체험하여 힘들어하는 아들이 화장실에서 실갱이를 하면서 아침을 열고, 다시 여장을 추스린다. 어제 서두르느라 깜빡 잊은 룸 팁도 이틀치 챙겨놓고, 아침에 먹은 냉장고의 음료수 charge도 계산한 뒤, 떠나기 싫은『하롱』에서 3시간 반 소요의『하노이』행 여정이 시작되어, 일행들과 담소를 하면서도, 눈길은 자꾸『하롱』으로 향한다.
베트남 전쟁 秘話나 베트남 역사의 변곡점, 주변국들과의 관계, 우리 교민들이나 기업들의 활약상과 우리가 상식으로 접할 수 없는 다양한 현지정보들과 ‘라텍스’와 ‘노니’, ‘커피’ 등의 쇼핑정보까지 박식한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따이한에 의해 죽은 9천여명의 민간인들 합동위령제 ‘따이한 제사’는 마을마다 다른 날짜에 지내고, 온 마을이 향연기로 뒤덮인다는 얘기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머지않아 군에 입대하게 될 아들녀석 변비에 도움이 될까 싶어,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하는『노니』를 우리 돈 42만원에 구입하였다.
이어, 점심을 ‘분짜’로 할까? 오리지널 ‘쌀국수’로 할까?의 기로에서 다수결에 의거 ‘쌀국수’로 정하고, 백김치와 싱싱한 야채를 곁들인 쌀국수를 먹는데, 식당 주인의 특별 서비스로 나온 돼지고기 몇 점 먹으면서, 한인식당의 음식들이 다시금 화두로 떠오른다.
차창 밖의 비포장 농로와 수로, 생김새가 제멋대로인 전답들이 예전 우리네 ‘새마을 운동’ 전 모습과 흡사해 보였고, 따가운 햇살아래, ‘책가방 한쪽에 던져두고 멱 감는 개구쟁이들 모습’이나 ‘집에서 설거지하다 나온 행색으로 오토바이 몰고 가는 아낙들의 모습’들이 문명에 찌들지 않은 순박함, 그 자체이다.『하노이』와『하롱』간을 정기 운행한다는 우리의 ‘금호고속버스’가 간간이 눈에 뜨인다.
다시,『하노이』에서 도착한 곳은 대형 ‘황성적기’(베트남 국기)가 휘날리는『바딘광장』이다. 베트남 독립을 선언한『바딘광장』엔 공산당 본부를 비롯한 행정건물들과 국회의사당이 위치해 있으며, ‘노란선을 절대 넘어가서는 안되고, 2열 종대를 유지하고 입장해야 된다’며, 감시하는 공산당 복장의 앳띤 경비원들이, 근엄하기는 커녕 애교스럽다. 그러나 뙤약볕아래, 경비원들이 군인처럼 무리지어 오와 열을 맞추며 씩씩하게 행진하는 모습은, TV속 북한군 모습과 흡사하고, 광활한 광장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베트남 ‘국민 영웅’『호치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고, 생전 집무실이나 거처, 유품 전시실들이 잘 가꾸어진 정원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연못가에는 나무(*But mog)뿌리가 각양의 형상들로 하늘로 솟아 있다. 기념품가게 앞에는 시골에서 수학여행 온 듯한 어린 학생들이 저마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재잘거린다.
이어, ‘1049년에 지어졌다’는『한기둥 사원(일주사)』은 아담한 연못 중앙의 ‘베트남 국보 1호’이자, ‘하노이의 랜드마크’이며,『못꼿사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연육된 계단과 하나의 기둥(지름 1.5m 정도)위에, 연꽃모양의 정자를 얹고, 아이를 안은 관음보살상이 놓여, ‘연못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기도하면 아들을, 반대방향이면 딸을 점지 해준다.’는 설화를 지니고 있단다.
이어, 휴대품 검사 후 입장한, 근대식『호치민 박물관』내, 동상주변, 전시실, 계단 등에 어린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북적북적함은 ‘영웅의 추모보다 에어컨의 위력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매점 앞 휴게실에 잠깐 쉬는 사이, 옆자리에 모인 몇 명의 학생들이 우리 대화를 듣더니, ‘강남 스타일’ 춤을 추며 재롱을 부리기에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선사하면서도 뿌듯했다.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가 짜증을 부리기에, 준비해간 우리 돈 10원짜리 동전을 주니, 어리둥절하며 금새 얼굴이 밝아진다.
거북이와 칼의 전설을 담고 있는『호안끼엠 호수(환검호)』중심부에 위치하고, 기도의 효염이 영흠하여, 베트남 화폐에도 등장하는『응옥선 사당(옥산사)』은 ‘테훅’이라는 나무다리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5시가 넘어 입장하지 못하고, 길 건너편, 옛날 베트남 왕궁에 납품하던 36품목의 상점들이 모여 형성된『36시장』으로 향한다.
일행 중 일부는 예전엔 ‘富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점차 사라져간다는, 유모차를 뒤에서 자전거가 끌고 가는 형태의『씨클로』를 타고 시장투어를 나섰고, 대부분 젊은 층(본인도 젊다?)들은 자유로운 도보탐방이다. ‘雨期’인지라, 비가 ‘수시로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날씨가, 매퀘한 매연을 청소해 주고, 차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는 거리는 먼저 진입하는 者가 우선이지만, 느긋한 국민성 덕분인지, ‘카오스 이론’처럼 무질서 속에 질서가 성립되는 듯하다. 시장은 복잡한 거리마다 식료품, 시계, 옷, 신발 등 생필품 거리와 골동품, 모조품, 수공예품, 미술품 등을 취급하는 예술품 거리, 꽃시장 등등 나름대로 군집된 만물시장으로, 베트남 대표적 전통시장이고, 과일파는 ‘가인’(길다란 대나무를 한쪽 어깨에 얹고, 앞뒤로 상품을 담은 移動상인)아줌마가 아들에게 와서 그걸 어깨에 얹어주며 사진을 찍으라고 하기에 찍고나니, 무조건 과일을 사야 한다고 애교를 부린다. 한가득한 과일 바구니도 짐이 될까봐 호텔에 그냥 두고 왔지만, 아들녀석은 흔쾌히 몇 조각 파인애플을 $2에 사준다.
이어, 값싼 노동력을 근거로,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OEM생산을 하기에, ‘신상이나 이월 상품이 우리나라의 1/4가격에도 살수 있다’하여, 아웃도어 매장엘 방문하고, 이동중에는 ‘LG의 거리’, ‘경남기업의 랜드마크’인 72층 주상복합건물도 눈에 띄인다.
일행의 일부는 대형식당엘 가서 저녁(오버 옵션)을 하기로 하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류 드라마의 원조인『대장금』이라는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식사를 마치고, 어느 쇼핑몰에서 기다리다 만나, 이번 여행의 마무리인 ‘발 마사지 shop’엘 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shop인지라, 한글 간판도 있고, 마사지를 하는 현지 아가씨(아줌마?)들이 우리말에 익숙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발 마사지를 마쳤다. 귀국은 새벽 1시 45분 비행기이기에 아직도 시간이 넉넉하지만, 친절한 설명과 짜증을 미소로 승화해 준 가이드와 현지 가이드, 내내 일행들을 안전하게 안내해준 리무진 기사님과 보조, 그들과는『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이별을 했다.
출국수속하고, 2시간여를 공항내 C.I.Q 대기실에 있다가, VJ 8976편에 탑승하여, 세상모르게 잠을 자다보니, 어슴프레 동이 터오고, 잠시 일상으로 복귀를 생각하다 보니, 7시 55분『인천공항』이란다. 짐 찾고, 직행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환전과 로밍을 하고서, 주섬주섬『충주』에 도착하니, 점심때이다. ‘보쌈정식’으로 채우고, 집에 와 여장을 풀 생각도 없이, 곧바로 침대에 눕는다. 휴~~ 꿈같은 시간들이지만, 너무 짧아 조금은 아쉬운 여행이었다.
『하롱베이』!!!
우리에겐 대한항공 직항노선이 개설되면서, 광고로 친숙해진 관광지이지만, ‘내셔널 지오그라픽’이나 ‘론니 플레닛’에 빠지지 않는 관광지이다. 흔히들『하노이』를 ‘동양의 파리’라 하고,『하롱베이』를 ‘육상의 장가계’ 라고들 하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죽기 전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함축된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해상투어의 가장 큰 핸디캡이 멀미, 즉 울렁증인데, 이런 생각은 접어둬도 되는 곳이다. 더구나 아들녀석의 ‘첫 번째 해외여행에 경험이 많은 애비가 도움이 됐을까?’도 의문이지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의 기준설정이 모호하다’는게 ‘미스테리’ 이다. 그만큼 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여행’ 이자, 최소의 경비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힐링의 나들이’ 였음은 틀림없다. 앞으로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기 전, 한번은 생각하게 되는 곳’으로 저장하면서, 필이 충만된 자신을 일상으로 되돌린다.
2014년 8월 17일 중원골에서 김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