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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 [Book of Jeremiah]
예레미야의 예언과 그의 생애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책으로, 12소선지서를 합한 것보다 더 길다.
다른 선지서들과는 달리 비교적 예레미야 자신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전기적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의 성격도 기도문과 고백 속에 잘 나타나 있다(렘 1:6; 4:10; 14:13; 16:14-15 등). 저자 :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에 의해 기록되었다.
여호야김 왕 4년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로부터 요시야의 날로부터 지금까지 계시된 모든 예언들을 기록하라는 명을 받았다(렘 36:1-2).
그는 그의 서기관이자 친구인 바룩을 불러 이 모든 예언들을 받아쓰게 하였으며, 바룩은 성전으로 가서 그 글을 낭독하였다(렘 36:8).
여호야김 왕 5년 9월, 예루살렘과 모든 성읍들에 단식이 선포되었을 때 바룩은 다시 그 예언들을 백성들에게 낭독했다(렘 36:9-10).
이 사실이 방백들에게 보고되어 바룩은 두루마리를 갖고 방백들에게 불려갔으며, 그 두루마리는 여호야김 왕에게 보내졌다(렘 36:20-21).
그러나 여호야김 왕은 낭독되는 내용을 듣자마자 작은 칼로 조각내 화롯불에 던져 태워버렸다(렘 36:23).
그러나 그 내용들은 다시 기록되었으며(렘 36:28), 그 외에도 많은 내용들이 추가되었다(렘 36:32).
이후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내용들이 추가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26장에서와 같이 예레미야가 3인칭으로 언급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바룩은 예레미야와 함께 애굽에 잡혀갔으며(렘 43:6), 거기에서 예레미야의 예언들을 모아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역사적 배경 : 예레미야가 예언할 당시(BC 627-586)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했던 앗수르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앗수르의 내부 문제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앗수르 영향력이 약해지자 이를 계기로 애굽이 자연스럽게 유다를 장악하게 되었다(렘 2:18).
그 결과 유다에는 친애굽 세력이 득세하게 되었다.
유다가 멸망할 당시 예레미야는 강성해져 가는 바벨론을 예견하면서 친바벨론 정책을 주장했다(렘 27:17).
하지만 이미 애굽과 우호 관계를 가졌던 유다는 친애굽 정책을 고수했다(렘 2:18). 한편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기에 근동 지역의 중심 세력으로 떠오른 나라는 바벨론이었다(렘 52:4).
신바벨론의 왕으로 등극한 나보폴라살(Nabopolasar, BC 625-605)이 메대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앗수르를 공격, 니느웨를 함락시키더니(BC 621) 드디어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 왕이 갈그미스에서 애굽과 앗수르의 연합군을 이겨 근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BC 605). 이렇게 강성해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반바벨론 정책을 펼치던 유다를 칩입하여(BC 605) 여호야김 왕 때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유다를 속국으로 삼았다(렘 39:2-3).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친애굽 정책을 펼치며 에돔, 모압, 두로, 암몬, 시돈과 동맹 세력을 형성하여 반바벨론 정책을 펼치자(대하 36:13)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멸망시켜 버렸다(BC 586, 렘 52:27-30). 예레미야 시대의 왕들 예레미야는 요시야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다의 마지막 5명의 왕들이 통치하던 때에 사역했다. 요시야(BC 640-609) - 8세에 왕이 된 그는 성전을 수리하고 종교개혁을 통해 우상숭배를 배격했다.
하나님을 잘 섬겼던 선한 왕이었다.
므깃도에서 애굽 왕 느고와 싸우다가 전사했다(왕하 23:29-30). 여호아하스(BC 609) - 예레미야서에서는 살룸이라고 지칭되었는데(렘 22:11) 애굽 왕 느고에 의해서 애굽으로 잡혀 가서 죽었다(왕하 23:33-34).
여호야김(BC 609-598) - 애굽 왕 느고에 의해 왕이 된 그는 탐욕스럽고 잔혹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었으나 회개하지 않았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굴복했다가 다시 반역하기도 했다(왕하 24:1-4). 여호야긴(BC 598-597) - 18세 때 바벨론 왕에 의해 유다 왕으로 지명되었던 그는 석 달 간 통치했던 포악한 왕이었다.
멸망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었다(렘 22:24-25).
바벨론에게 항복하여 볼모로 잡혀 갔으나(왕하 24:12)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왕하 25:27-30). 시드기야(BC 597-586) -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친애굽 정책을 썼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하였으며 결국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렘 39:4-7).
예레미야서에 담긴 핵심 메시지 : 예레미야는 범죄하는 백성들과 지도자들에게 심판의 필연성을 선포하면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소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비록 그의 메시지가 전통적인 조직신학적 표제나 범주로 접근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두드러진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예레미야에 의해 묘사된 하나님 :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시며(렘 2:13; 17:13),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권적인 분, 곧 토기장이시며(렘 18:1-12), 만물의 자연 법칙을 세우신 세상의 창조주시다(렘 5:22; 8:7; 10:12; 27:5-6; 31:35-36).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서 ‘남편’(렘 2:2)과 ‘아버지’(렘 3:19)와 같은 포근하면서도 인격적인 상징을 사용하였으며, 이스라엘을 ‘아들’에 비유하기도 했다(렘 3:19, 21; 4:22).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방탕한 아들의 아버지이며, 정숙치 못한 아내의 남편이었다(렘 3:19-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백성들에게 제사장과 성전 선지자들이 요구했던 그런 희생과 의식 준수를 요구하는 대신 회개와 순종을 요구했다(렘 2:34; 6:7; 21:11-12; 34:8-22).
무엇보다 하나님의 요구사항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었다(렘 9:24). 반면에 이방신들은 ‘헛된 것’(렘 2:5), ‘신이 아닌 것’(렘 2:11), ‘터진 웅덩이’(렘 2:13), ‘인간이 고통을 당할 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무력한 것’(렘 2:28) 등과 같다.
여호와의 능력은 그분을 알지도 못하고 또 인식하지도 못하는 열방들을 통제하시며, 이는 생명도 없고 능력도 없는 그들의 ‘신 아닌 신들’ 위에 군림하시는 여호와의 우월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비유들 살구나무 가지 -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남은 자들을 보호하신다는 상징(렘 1:11-12). 끓는 가마 - 바벨론을 통해 우상숭배와 죄악이 만연한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상징(렘 1:13 -16). 썩은 베띠 -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는 유다가 쓸모없는 베띠처럼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비유(렘 13:1-11). 토기장이와 진흙 - 유다를 포함한 모든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렘 18:1-10). 깨진 오지병 - 유다가 자신의 죄 때문에 깨진 오지병처럼 철저히 심판받을 것을 나타냄(렘 19:1-13). 무화과 두 광주리 - 좋은 무화과는 바벨론 포로 후 회복될 백성을 상징.
나쁜 무화과는 바벨론에 항거하거나 애굽으로 도망간 사람들을 비유(렘 24:1-10).
줄과 멍에 - 바벨론의 침략은 불가피하며 유다는 바벨론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함을 상징(렘 27-28장). 토지매입 - 반드시 유다 백성을 바벨론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여 회복시키실 것을 상징(렘 32장). 진흙에 감춘 돌 - 유다인들이 도망간 애굽도 바벨론에 의해 고통과 멸망을 받을 것임을 나타냄(렘 43:8-13). 강 속에 버려진 책 - 바벨론이 반드시 멸망할 것임을 상징(렘 51:59-64).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 :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며(렘 33:24) 하나님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수많은 은유적 표현들로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렘 31:3) ‘첫 열매’(렘 2:3)였으며,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렘 2:21), ‘사랑받는 자’(렘 11:15; 12:7), 여호와의 ‘기업’(렘 12:7-9), 그의 ‘포도원’(렘 12:10), 그의 ‘양무리’(렘 13:17)였다.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는 더 이상 정숙한 신부가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첫사랑을 버리고 바알을 좇았으며, 발정한 암약대와 성욕에 헐떡거리는 들 암나귀로 전락하고 말았다(렘 2:23-24).
여호와께서 그들을 교정하기 위해 그들을 괴롭혔으나 그들은 이것마저 거부했다(렘 2:30; 5:3; 17:23; 32:33; 35:13).
이스라엘에게는 회개하는 것 외에는 달리 희망이 없었다(렘 25:1-14).
그러나 심판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종말이 아니었다.
심판 이후에는 확고한 회복이 있을 것이며, 또한 죄 용서함과 새로운 마음에 근거한 새 언약이 있기 때문이다(렘 24:7; 31:31-34). 죄와 회개 :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악을 묘사하기 위해 광범위한 용어들(죄, 죄악, 반역, 범죄, 악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죄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었는데, 첫째는 이방신들을 섬긴 것이요(렘 2:25), 둘째는 윤리적 도덕적 형태의 개인적 죄악과 사회적 죄악이었다.
윤리적 죄악은 정의, 정직, 순수성 등과 관련된 것이다(렘 7:5, 8).
이제 이스라엘의 유일한 희망은 회개와 여호와께로 전인격적으로 돌아서는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졌다(렘 3:1-4:4; 8:4-7; 15:19; 36:7).
따라서 예레미야는 그 백성들에게 악한 행위를 돌이키고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와 그의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호소했다(렘 3:12-14; 4:1-4; 18:11; 31:18-19).
미래에 대한 소망 : 예레미야가 그의 사촌 하나멜의 밭을 매입한 행동은(렘 32:6-15) 유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이며,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렘 32:15)는 말씀의 확증이기도 하다.
바벨론 포로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렘 29장), 70년이 지난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방문하실 것이고, 또 그들의 땅을 돌려주고 재산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말하고 있다.
새 언약을 묘사하고 있는 예레미야 31:31-34은 미래의 소망에 대한 정점이다.
어느 날엔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언약을 주실 것이며, 그것은 그들이 수세기 동안 어겨 왔던 그런 언약이 아니라 율법이 백성들의 마음 위에 기록될 그러한 언약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다윗을 위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실 것이다(렘 23:5-6; 33:15-16).
예레미야는 그 의로운 가지에 ‘여호와 우리의 의’(렘 23:6)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붙여 주었다. 전체 개관 : 에스겔서의 예언들이 연대기적인 순서를 따라 정리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예레미야의 예언들은 연대기 순으로 정돈되어 있지 않다.
다만 지금의 본문을 전체 개관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부름 받는 예레미야(1장) 2.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의 말씀(2-45장) 주로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의 예언(2-25장) 거짓 희망과 거짓 예언자(26-29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미래의 위안(30-33장) 왕과 백성에 대한 마지막 경고(34-38장) 예루살렘의 몰락과 살아 남은 자의 운명(39-45장) 3.
열국들에 관한 예언들(46-51장) 애굽(46장), 블레셋(47장), 모압(48장), 암몬(49:1-6), 에돔(49:7-22), 다메섹(49:23-27), 게달과 하솔(49:28-33), 엘람(49:34-39), 바벨론(50-51장) 4.
역사적 부록 : 예루살렘의 마지막 날들(렘 52장) 예레미야서의 글 형식 : 예레미야서에는 여러 종류의 글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 이러한 형태에 대한 이해는 예레미야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한 방편이다.
어떤 형태인지 각각을 살펴보자.
시문(詩文)으로 된 예언의 글(1-25장, 특히 2-6장): 유다 백성들의 잘못(2장),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부르심(3장), 유다를 멸망시킬 적군(4-6장), 유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상황과 심판(7-25장). 탄식과 기도(주로 1-20장) : 백성들이 드리는 회개와 신뢰의 기도(3:21-25), 재난에 대한 탄식(4:10, 13; 6:24-26; 8:18-9:2, 10-11, 17-22), 백성이나 예언자의 탄식과 기도(14:1, 13-18), 예언자의 탄식(23:9), 에브라임의 탄식과 기도(31:18-19), 바룩의 탄식(45:3), 이스라엘의 탄식과 기도(51:34-35). 설교 형식의 글(7-44장 여러 곳) : 하나님의 주권, 안식일, 심판과 약속, 거짓 예언자, 우상을 섬기지 말 것 등에 관한 설교. 예레미야에 관한 3인칭 보도문의 글(26-29장, 36-45장): 예레미야의 설교와 재판받음(26장), 거짓 예언자 하나냐와 맞서는 예레미야(28장), 예루살렘 함락 즈음에 예레미야가 겪은 일(37-44장).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상징들 : 예언자들의 상징적 행동들은 드라마틱한 방법을 통해서 백성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와 행위를 상징화하고 예언자의 선포를 확실히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징들은 그 행동 자체보다는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중요하다.
또한 상징적 행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 자체에 어떤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행위로 묘사된 미래를 실제화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적 행위들은 하나님의 행동을 소개하고 표현해 줌으로써 예언자의 메시지를 강화시켜 준다.
구약성경에는 약 30여 개의 상징적 행위들이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 예레미야서에 집중되어 있다. 예레미야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 예레미야서는 유다가 가장 어려웠던 때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 주는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고민하며 괴로워하던 예언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아울러 예언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예언자의 모습이 이후로도 하나님의 백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 새롭게 이해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이 시대에 바로 전해야 할 예언자적인 책임을 가진 우리는 그냥 말씀만 전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지니는 뜻에 스스로 반응을 보이고 깨닫지 못하는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갈등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예레미야서는 우리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려 주는 예언서가 될 것이다.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예수님 예레미야는 생애 자체가 예수님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목자이신 예수님 -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렘 23:4).
의로우신 예수님 -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왕이신 예수님 -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으킬 너희 왕 다윗을 섬기리라”(렘 30:9; 23:5 참조). 의로운 가지이신 예수님 - “그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렘 33:15).
예레미야애가 [Lamentations of Jeremiah]
예레미야서의 슬픔에 잠긴 발문(跋文; postscript)이다.
이 책의 히브리어 제목은 본문이 시작하는 첫 단어를 따서 ‘어찌할꼬’라는 의미의 ‘에카’(?kha)로 불렸으며, 헬라어로 기록된 70인역의 제목은 ‘큰 울음’ 또는 ‘탄식시’라는 의미의 ‘트레노이’(threnoi)였다.
다섯 장의 애가를 통해 저자는 죄로 인한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해 탄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공의를 주장하는 예언자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이 책은 죄로부터 비롯된 슬픔, 비통, 고뇌, 황량함과 고통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애 3:1-18).
애가서는 예루살렘의 몰락을 슬퍼하면서 동시에 생존자들을 향해 비난하며 또한 그들에게 가르침과 희망을 주고 있다(애 4:22).
이 책은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와 함께 포로기에 속하는 예언서로, 예레미야애가가 지난 일에 집중하는 반면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는 앞날을 바라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 및 기록 연대 : 히브리어 본문은 저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몇 가지 점에서 예레미야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먼저 유대인들의 전승이 이 책의 저자로 한결같이 예레미야를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며, 무엇보다 70인역이 이 애가를 예레미야서 바로 다음에 놓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70인역의 머리말에는 “예레미야가 앉아서 예루살렘에 대해 애가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예레미야가 저자라는 또 다른 주장은 애가의 문체와 구절에 있어서 예레미야서와 많은 유사점 때문이다(애 1:15과 렘 8:21, 그리고 애 1:16과 렘 9:1; 13:17; 14:17).
역대하 35:25의 “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는 기록이 애가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레미야가 애가의 저자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작 연대에 있어서는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즉 애가서 전체에서 보여지는 예루살렘 파괴의 생생한 묘사와 충실한 감정에 비추어 볼 때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록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BC 586년 초나 말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애가에 담긴 메시지 예루살렘의 멸망 - 예레미야애가는 수도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애가(哀歌)이다.
성전이 훼파되고 왕들이 끌려갔으며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던 상황을 바라보며 그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었다.
죄의 결과 - 하나님은 계속되는 백성들의 반역에 대해 진노하셨고, 그 결과로 멸망하게 하셨다.
인간의 영광과 교만의 헛됨을 말하였다. 하나님의 자비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을 통한 고통을 경험하게 하셨다.
그분은 고통을 통해서 신실하지 못했던 백성들이 되돌아오게 하실 만큼 자비로운 분임을 말했다.
소망 - 하나님은 남아있는 백성들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시는 분이며 하나님과의 진실되고도 뜨거운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역사적인 배경 : BC 588-586년에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포위하고 있었으며(왕하 25:1-10 참고), 유다의 동맹군인 애굽은 전쟁에서 패했으며, 유다의 다른 성읍들은 차례차례 무너졌다(렘 34:6-7 참고).
이제 예루살렘만 남게 된 것이다.
바벨론의 포위로 말미암아 성중에는 양식이 다 떨어졌으며(왕하 25:2), 심지어 굶주린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들을 먹기도 했다(애 2:20; 4:10).
마침내 성벽이 뚫리고 바벨론의 군대가 도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왕하 25:4-7).
느부갓네살이 그 도시를 점령하기까지는 수 주일이 걸렸으며, 점령한 후에는 도시를 약탈했다.
그 후에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귀인의 집까지 파괴하기 시작했다(왕하 25:8-9).
마침내 예루살렘의 성벽까지도 허물어버렸다(왕하 25:10).
바벨론 군사들이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에 그곳에는 불에 그을리고 깨진 벽돌 조각들만 남았을 뿐이었다.
이 모든 광경을 예레미야는 목격했다(렘 39:1-14; 52:12-14).
예레미야애가서는 이처럼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멸망당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기록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버리시고, 그들을 향한 은혜를 거두신 것에 대한 심리적, 영적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기록 목적 :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슬픔을 표하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과 그의 백성에 대하여 여전히 신실하심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기록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는 약속에 대한 신실성과 그의 백성에 대하여 아직도 불변의 사랑과 자비심을 갖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애 3:22-23). 예레미야애가와 신명기 28장과의 관계: 애가의 저자는 예루살렘이 경험한 모든 비통과 고난이 이미 약 900여 년 전의 모세가 예언한 신명기 28장의 저주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당한 불행의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세우신 언약에 성실하셨다.
이스라엘이 당한 불행은 불순종의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불순종에 대한 심판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또한 회개에 대한 회복도 약속하셨다(신 30:1-10).
이는 애가의 저자가 그 와중에서도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이유이다(애 3:21-32).
포로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그들로 하여금 신명기 28장의 교훈을 배우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예레미야애가 5:21-22의 기도는 낙담한 백성들의 의심하는 부르짖음이 아니라 오히려 신명기 28장과 애가서의 교훈을 알고 있는 포로들의 믿음의 반응인 것이다.
애가의 구조와 문체적 특성: 애가의 형태는 두 가지 구조적 요소의 사용에 의해 강조된다.
첫째는, 다섯 장 중에서 세 장의 첫머리에 나오는 ‘아!’ ‘오!’(히브리어로 ‘에카’)라는 단어의 반복이다(애 1:1; 2:1; 4:1 참고).
이 ‘에카’라는 말은 극도의 놀람이나 비통한 감정을 나타낸다.
애가 형태가 강조하고 있는 두 번째 요소는 1-4장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키나’(qinah)의 사용이다.
애가나 기타 애가 문학은 보통 그 나름의 독특한 보법(譜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그 보법에는 ‘키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이것의 가장 큰 특징은 평행 구절의 두 번째 콜론(colon)이 항상 첫 번째의 것보다 짧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절름발이식의 보법 형태는 독자에게 허무감과 불안전한 느낌을 갖게 준다.
이러한 두 가지의 요소는 애가에 슬픈 기분을 더해 주며, 그들의 감정적 격렬함을 높여 주고 있다. 애가는 모두 5장에 걸친 일련의 비탄시이지만 각 장은 서로 분리된 애가이다.
1-4장은 비록 그 세부적인 점에서는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다 개별적이고 완전한 ‘알파벳 두운 시’(acrostic poetry)이다.
1, 2장과 4장은 각각 히브리 알파벳의 22자로 시작되는 22절로 되어 있다.
3장은 이 책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66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장에서 처음 3절은 히브리어 첫글짜인 ‘알렙’으로 시작되며 그 다음 3절은 히브리어 두번째 글짜인 ‘베트’로 시작된다.
단지 5장만은 22절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알파벳 두운 시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는 않다. 애가서의 문학적 구조는 또 하나의 독특성이다.
1-2장과 4-5장은 서로 평행을 이루는 교차 대구법으로 배열되어 있다.
2장과 4장이 하나님께 중점을 둔 반면, 1장과 5장은 사람에게 중점을 두고 있다.
3장은 고뇌 중에 있는 저자의 반응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책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 배열은 오른쪽 그림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전체 개관 : 예레미야애가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슬픈 책이다.
저자는 거대한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의 슬픔을 여기에 적고 있다(애 1:1-2).
그러나 슬픔 가운데서도 저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한다(애 1:18).
모든 것이 큰 슬픔으로 보이지만 미래에는 기쁨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항상 신실하신 분이시다.
예레미야애가의 핵심 구절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 3:22-23)이다.
장별로 본 애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애가 : 죄로 인한 예루살렘의 훼파(애 1장) 두 번째 애가 :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애 2장) 세 번째 애가 : 예레미야의 반응 - 그의 고뇌와 희망과 기도(애 3장) 네 번째 애가 : 여호와의 진노(애 4장) 다섯 번째 애가 : 남은 자들의 반응(애 5장) 예레미야애가에 기록된 신명기 28장의 성취구절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애 1:3 “그 열국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을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신 28:65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애 1:5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 신 28:44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애 1:5 “네 자녀들이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신 28:32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도다” 애 1:6 “여호와께서 너로 네 대적 앞에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한 길로 그들을 치러 나가서는 그들의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신 28:25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애 1:18 “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네게 있지 못할 것이며” 신 28:41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신 1:15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신28:37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애 2:20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신 28:53 “노유는 다 길 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애 2:21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유치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신 28:50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애 4:10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신 28:56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 애 5:2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신 28:30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 애 5:5 “그 열국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여” 신 28:65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애 5:10 “주리고 목마르고…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신 28:48) “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애 5:11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이 잘 것이요" 신 28:30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애 5:12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신 28:50 “시온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애 5:18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 신 28:26
[최신 구약 개론] 예레미야
"예레미야서는 선지서들 중에서 가장 큰 책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약의 인물 중 가장 파악하기 쉬운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생애에 대해 풍부한 역사적 전기적 자료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선지자 자신이 스스로의 성격을 자신의 수많은 기도들 속에서 드러내고 있음을 본다.
예레미야는 앗시리아의 몰락과 바벨론 제국의 발흥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사역했다.
또한 유다의 마지막 네 왕들의 시대에 나라의 종말에 대해서 에언하며, 실제로 예레미야는 직접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도하기도 했다. 역사적 배경 정치적인 상황 거대한 앗시리아 제국은 앗술바니팔의 죽음과 함께 찾아왔다.
통치를 받던 이집트와 바벨론 등이 다시 저들의 야망을 펼쳤으며, 메데의 노력으로 앗시리아는 멸망을 당한다.
그러나 앗시리아의 멸망 중에 불거져나온 다른 제국들의 세력 재편성 과정에서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그 사이에 유다 왕국도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갈그미스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그 이후에 페르시아의 발흥까지 전세계는 바벨론의 손아래 들어갔다.
유다에서는 요시아에 의해서 발견된 율법책을 따라서 개혁을 시작했고, 이집트와 바벨론의 세력 확장의틈바구니에서 요시아는 이집트의 느고에게 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때로부터 여러 왕들이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를 오가며 추종하며 살아남기 작전을 벌였으나, 결국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반기를 든 대가로 바벨론에 의해 586년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주변 국가들의 제국주의적인 야망의 부활과 결강 속에서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그 격동의 시절을 목도하였다.
예레미야서는 국수주의, 편집증, 친 바벨론계와 친 이집트계의 갈등,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투쟁등을 생생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런 세월 속에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은 것이다. 선지자 자신 선지자의 활동 시기는 요시야 13년(주전627경)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고, 예루살렘 멸망 후에 이집트로 떠나기까지 계속되었다.
그의 사망 연대는 추측하기가 어렵다.
예레미야의 나이 문제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요시야 13년을 예레미야의 탄생연대로 늦추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경우 요시야의 개혁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해답이 제시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는 8세때인 609년에 사역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심각한 본문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앗시리아에 대한 언급들(2:18)이나, 요시야 시대에 받은 신탁(3:6-14)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성인이며, 사역중인 선지자에게 임하셨기 때문에 아이였던 예레미야에게 적용되기 보다는 오히려 도입문구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2,3마일 정도 떨어진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예레미야는 자기 시대의 정치, 종교적 권세들에 저항했으며, 그를 이은 다른 많은 선지자들처럼 그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 때문에 박해를 당했으며, 성전의 유사장에 의해 매를 맞고 감금을 당했으며, 배반하고 선통하고 탈주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자신에 대한 음해를 받았으며, 구덩이에 갇히고 시위대 뜰에 갇힘을 당했다.
역사 비평학적인 접근 방법들 예레미야서의 어려운 점은 본문들이 두서없이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특정한 연대도 주어져있지 않으며, 파악하기 어려운 근거들에 의해 배열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본문이 연대기적인 순서를 따르고 있지 않으며, 어떤 일관된 구도를 따르는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역사비평학계에서의 예레미야서에 대한 논의는 인간 예레미야와 그의 이름을 가진 책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별로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레미야서에서 예레미야의 것으로 보이는 소수의 본문들을 찾아내었으나, 다른 학자들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예레미야서의 대부분은 바룩이 기록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레미야의 심판에 대한 신탁들은 회개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도 실제로는 항상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의 심판의 메시지와 회개의 메시지와 회복의 메시지 간의 관계는 신학적으로 아주 복잡 다단하기 때문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예레미야서의 본문 예레미야서는 본문비평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70인경 예레미야서에는 맛소라 본문에 있는 단어중 약 2700여개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문의 순서도 다르게 배열되어 있다.
두 본문 간의 차이는 단순히 통상적인 사본 전승상의 차이(필사자의 실수 등)만은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 책의 형성 과정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예레미야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판본이 맛소라와 70인경을 통해서 각각 보존되었으며, 또한 쿰란의 도서관에서도 병행해서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엇핏 보기에 보다 짧은 본문이 더 고대의 것이라고 가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대의 필사가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을 추가하거나, 다듬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70인경의 예레미야서가 구약의 다른 책들보다 더 맛소라 본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이 차이를 과장해서는 안된다.
그 차이는 대부분 암시된 부분을 설명하거나, 명백히 하기 위해서 변화가 가해진 경우들이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분석 예레미야서의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의 본문이 알기쉽게 배열되거나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소한 전체의 일관성 있는 구조조차도 주석가들의 공통된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틀을 만들 수 있는데, 가령 1:1-24:13절은 유다 및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선언들로서 하나의 모음집일 가능성이 있다.
25:1-3에서 선지자는 1장에 기록된 자신의 사역이 시작된 때를 다시 언급하는등 몇가지 사항들은 1장과 25:1-13절이 한 커다란 부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수미쌍괄식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30-33장은 또한 위로의 책이라고 불리우는 예가 자주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미래 회복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41-51장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예레미야의 신탁들의 모음집을 형성하고 있다.
70인경에서 이 부분은 25:13절 바로 뒤에 나오고 있다.
이 세 개의 대규모 모음집 외에 두 개의 문헌이 더 들어있다.
26-29장과 34-35장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대개 예레미야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 전기적 성격의 네러티브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예레미야서는 다수의 상징적인 행위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예레미야 및 기타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이러한 상징적인 행위들은 그들의 설교의 한 부분이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행위들은 하나님의 효과적인 말씀들이었다.
신학적인 메시지 예레미야의 신학은 이 선지자가 메신저로서 지정학적 종교적 상황들 속에서 만난 예루살렘의 시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역동적으로 형성되어진 것이다.
아래는 다양한 설교들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들이다. 예레미야의 하나님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전혀 도입되지 않았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서 절대적인 주권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그는 우주의 창조주였으며, 이 세상에 대해서 심판을 베푸시는 분이셨따.
이방 나라들에 대한 선지자의 신탁들이 바로 예레미야가 가졌던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에의 확신이었다.
예레미야는 또한 이스라엘의 죄와 악을 크게 강조함으로 하나님의 거룩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나님은 인내심이 많으시고,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백성과 언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독특한 지위는 예레미야에 의해서 풍부한 은유적 표현으로 나타난다(첫 열매, 참 종자, 귀한 포도나무, 신부, 양 무리, 포도원, 산업 등).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나라였으며,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모세의 율법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이 나라가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도성이 난공불락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예레미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는 자신이 모세로부터 이어지는 선지자들의 반열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예레미야와 모세 예레미야서에는 신명기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학자들은 예레미야란 사람 자체가 예레미야서에서 일종의 제2의 모세로 그려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모세가 선지자적인 중보자였던 것처럼, 지금 예레미야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깊은 기도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런 중보기도를 하지 말도록 명하셨다.
심판의 확실성 때문이다.
모세는 자신의 중보기도로 민족을 구했지만, 예레미야는 이 책읨을 더 이상 감당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한 모세는 애굽에서 출애굽 시켰지만, 예레미야는 역애으로 애굽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나라의 역사가 완전히 원점으로 돌아갔음을 보게 된다.
미래를 향한 소망 예레미야가 자기 사촌의 땅을 구입한 것은 머지않아 돌아올 것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포로생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고 비록 포로생활의 기간이 짧지 않고 길기는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아직도 은혜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외쳤다(29:11).
이제 하나님은 돌판이 아니라 마음 판에 율법을 세우실 것이다.
이렇게 예레미야는 미래의 소망과 함께 미래의 메시야적 소망에 대해서도 표현하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스가랴서가 이런 예레미야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약으로의 접근 신약에 인용되고 있는 예레미야서는 약 40여군데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바벨론 멸망과 관련해서 계시록에 나오고 있다.
또한 신약의 성도들에게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며 커다란 슬픔에 빠진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
윙클은 마23:29-34와 렘7,26장간에 많은 유사성이 있음도 발견했다.
사람들이 예레미야와 예수님을 연결시켜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마 예레미야와 예수님 양자 모두가 성전 및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 심판을 선포했기 때문일 것이다.
"
[최신 구약 개론] 예레미야 애가
"587년 예루살렘 멸망은 물리적, 심리적, 영적 황폐는 엄청난 것이었다.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에 대해서는 산문 기록들이 잘 다루고 있고, 애가서는 이 순간의 처절한 절망을 시가로 잘 표현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저자 및 연대 애가는 익명의 책이다.
고대의 전승은 예레미야라고 말하고 있고, 물론 이것은 상당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히브리어 전통은 예레미야와 애가서를 연결짓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애가는 정경의 세 번째 부분인 성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예레미야서는 선지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애가서는 아브월 9일의 축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라어 역은 애가서를 예레미야서 다음에 위치시키고, 1:2절을 삽입함으로 예레미야 저작에 대해서 무게를 두었다. 대략적인 연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일치가 있었다.
이 책에 표현된 생생한 묘사와 충실한 감정에 비추어 볼 때 이 책의 연대를 예루살렘이 멸망된 지 칠십오년 이상이 지난 이후의 연대를 제시하는 사람은 전혀없다.
시대 이 책은 587년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반응이므로, 저작은 포로시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애가서는 예루살렘 도시가 처참하게 멸망을 당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쓰여졌으며,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버리시고, 그들을 향하신 은혜를 거두신 것에 대한 심리적, 영적인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문학적인 분석 장르 장르는 명백하게 애가로 분류된다.
물론 복합 장르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은 총체적으로 본문을 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패리스는 애가를 시편의 공동체 애가들과 연결시켰고, 특별히 시44,60,74,79,80 등과의 긴밀한 유사성을 발견했다.
애가서의 내용을 볼 때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전쟁에서의 패배임이 분명하다.
이 책이 주전 587년의 멸망과 관련이 있다는 것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정작 이 책에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것은 시편의 여러 시들과 비슷한 경우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애가들 애가라는 장르는 이스라엘에게 독특한 장르는 아니었다.
수메르-아카드의 장르와 성경의 애가 사이에는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으며, 그러기에 애가가 단순히 성전 재건시에 쓰여졌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듯하다.
이 책이 성전 파괴시, 즉 이 사건의 고통과 쓰라림이 아직 생생할 때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있다. 구조 다섯장이며, 다섯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 책은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기법들이 사용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에 알파벳 두운 시적인 양식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네 장은 다 개별적이고 완전한 알파벳 두운 시들이다.
그러나 5장은 22개의 행을 가지고 있음으로 알파벳 두운시의 흉내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전혀 알파벳 두운 시가 아니다.
문학적인 구조로 볼 때 놀라운 것은 비록 저자가 시적으로 다소 엄격한 틀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자기 시 속에서 감정적인 표현을 자유롭게 표출하는데 속박당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애가서는 멸망에 대한 절망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지만, 그 마지막은 결국 미래의 어떤 확실치 않은 하나님의 개입을 소망함으로 마무리짓고 있다. 문체 키나(qinah).
이 보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평행구절의 두 번째 콜론이 항상 첫 번째의 것보다 짧다는 것이다.
보통 3:2 보법으로 불리우는 이것은 균형잡히지 않아서 일종의 절뚝거리는 리듬으로 간주되며, 장례식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의 질질 끄는 듯한 걸음걸이에 적합하다. 의인법.
언어가 깊은 고통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개인적인 경험을 집단적인 것으로 만들고, 국가전체를 한 개인의 측면에서 보는 것으로 극복한다.
이것을 우리는 의인법이라고 부른다.
언어를 통한 사역.
애가서의 표현이 단지 멸망에 대한 묘사를 넘어선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애가서의 저자의 목적은 단지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치료자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부적절한 언어를 통해서 시인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얼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파멸적이었는지를 하나님께 아뢰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를 호소할 수 있다. 신학적인 메시지 집단 적인 고난의 문제이다.
애가는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그 분으로 하여금 자기 백성을 위해 개입하시며, 자기 백성을 회복시켜 주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시온 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루살렘 멸망은 곧 백성의 신앙의 파괴를 가져온 것이다.
이 백성의 심판의 배후에는 역시 하나님이 서계신다.
그들은 멸망시키시는 것은 바벨로니아인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3:22-23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자기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도 담고 있다. 신약으로의 접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악의 세력을 십자가에서 깨뜨리시고 미래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모든 인간적인 적들 및 영적인 적들과 마지막 전투를 벌이실 용사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