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차 아림산악회 영도봉래산 정기산행안내
일시 :2013년 9월22일 (일요일 )09시 30분
장소 :영도 남항대교 옆 반도 아파트입구
산행코스:영도대교밑 절영도 둘래길 출발~백련사~정상~함지골~목장원~75광장
산행시간: 약3시간
준비물 :간단한음료와간식 ▷도시락은 준비안하셔도 됩니다
점심겸 하산주는횟집에서 할예정◁
비상열락처~산행대장 이헌철☎010~3837~6566 총무☎ 서동석 011~590~7968
영도 봉래산(蓬萊山/396m)
부산시가지 전망대요, 남해안의 절경과 진한 바다 내음에 취하는 하루다.
영도의 정중앙에 위치한 봉래산은 봉황이 드나드는 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예부터 신선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봉래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조봉(祖峰), 그 다음 봉우리를 자봉(子峰), 그리고 나머지 손봉(孫峰)이 있다.
세 봉우리의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노라면 세 봉우리는 확연히 구분이 된다.
산 전체가 원추형으로 보이고 산세는 상당히 가파른 편에 속한다,
특히 남쪽 방향의 산사면은 거의 바다로 내리다 꽂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산기슭에는 풍화작용에 의한 바위가 쪼개져 대규모의 너덜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짤게 부서진 바위 사이사이로 섬지방 특유의 키작은 식물들이 자생하여 출입시에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려야 한다.
아주 오래전, 일본이 산의 기세를 꺾어 우리나라 전역을 점령키 위한 교두보로 여기고,
목이 마른 산, 혹은 말라서 없어지는 산이라는 뜻으로 고갈산이라는 이름도 한때 불리웠었다.
봉래산 정상에는 영도사람들이 거의 신성시 하는 할배바위 즉 조봉(祖峰)이 있다.
산은 비록 낮지만 태종대를 비롯한 부산항 및 시가지 거의 대부분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몇안되는 일급 전망대이다.
영도의 원래 이름은 절영도(絶影島)였다.
절영도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 따라 올 정도라 하여
끊을 절(絶)자에 그림자 영(影)자을 붙여 절영도라 불려졌다.
뭍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서식하고 있어 항상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으나,
이 곳 영도만큼은 섬이기 때문에 맹수들이 없어 안전하였고, 또한 먹이(조개, 생선, 열매)를 구하기 좋았고 기후가 따뜻하여
살기에 알맞은 곳이었으며, 신라시대부터 조선조 중기까지는 목장으로 말을 방목한 곳으로 유명하다.
영도는 육지와 인접한 섬으로 말을 방목하기에 적당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예로부터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國馬場)이 있었으며 명마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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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도 영도를 「마키노시마(牧島)」라고 하였는데 일본어로 "말 먹이는 목장의 섬"이란 뜻이다.
해방후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옛이름 "절영도"를 줄여서 현재의 "영도"로 부르게 되었다.
영도는 신석기 시대의 동삼동패총, 영선동패총 등으로 보아 부산지방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곳이라 추정된다.
패총이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질이 쌓여 생긴 것인데 그 속에는 여러가지 사람들이 쓰던 유물이 썩지 않고 잘 남아 있어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고장 영도는 선사시대에 여러가지 생활 여건이 당시로는 사람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 자료발췌 영도구청 홈페이지 -
봉래산의 등산로는 좌우지간에 엄청 많다.
고지대까지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보니 사람사는 곳 인근에는 봉래산을 오르내릴 수 있는 등산로가 개셜되어 있다.하지만 이번 산행은명절 끝이라 영도 대교서출발하여 백련사 정상 ~함지골을경유목장원 75광장 도착하여 횟집서 점심겸 하산주먹을예정`~~~
◈ 산행코스
영도대교밑 절영도 둘래길 출발~백련사~정상~함짓골~목장원~75광장도착 약3시간소요 예정
첫댓글 총무님 항상준비 하느라 고생이많습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시고 봉래산에서봐요'
고문님 항상관심 기울려주셔 감사 합니다
명절이니 부산의 산도 좋겠네요................맑은 가을날 바다를 품는 산행이 되겠군요..................
가조 대장님
다친곳은다 나어셨나요?
고생했습니다
당연히 다 나았죠~~
아림 회원님들오곡백과가 풍성한가을 가정에도 항상풍성하시고 올 추석명절 잘보내시고 봉래산 산행때
뵙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김종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