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 2세기 시리아 사본에 기록된 동방박사들의 고국 ‘신라’
昔根 유요한 목사
(알이랑코리아 대표, 한국기독교상고사학회 선임연구원, 알이랑교회 담임)
신라의 초기 국호는 ‘시라’(斯盧)로 불리어졌다. 신라 국호는 鷄林 외에 徐耶伐, 徐那伐, 徐羅伐, 新羅, 薛羅, 斯盧, 尸羅 등으로 표기되었는데 그 음이 모두 비슷하다. 역사학자들은 그 소릿값과 뜻을 캐려면 해당 시기의 중국어로 읽은 뒤 그 구성 음소를 고대국어에 맞추어 재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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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글자 盧[?ra], 邪·耶[?la], 羅[*lα]는 땅을 뜻하는 고대국어 †ra를 표현한 것으로서, 奴[?na]와 那[*nα]도 마찬가지이다. 앞글자 徐[*zα]와 薛[*set]은 고대국어로는 †sa와 †sar로 재구성되므로 薛羅[†sarra]는 /†sarra/를, 徐羅伐의 徐羅[†sara]는 †sarra의 중복된 r을 줄여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중국 남부와 교류한 백제, 신라에서는 한자를 강동방음(江東方音)으로 읽었으므로 ‘斯’의 讀音은 †si가 되며, 斯盧·斯羅·尸羅는 모두 †sira로 읽는다고 한다. 徐羅[†sara]가 그러했던 것처럼, †sira도 †sirra(新羅)의 중복된 r을 줄여 표기한 것이고, -rr-은 말하기, 듣기 모두 -r-로 구현되기 쉬우므로 斯盧, 斯羅, 尸羅는 물론이고, 新羅도 당시에는 ‘시라’로 읽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즉 신라의 초기 국호는 ‘시라’(斯盧)였던 것이다.
☞→▶신라의 초기 국호 사라벌(徐羅伐)과 시라(斯盧)의 뜻
이 ‘시라’가 주후 8세기 시리아 사본에 ‘시르’(쉬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안디옥 계열의 이 시리아 사본에는 동방박사들의 고국 이름이 명기되어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으로 ‘시르’라고 불리는 땅”이라고 기록돼 있다.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인데 ‘시르’라고 불리는 땅이라... 그렇다면 이 ‘시르’는 신라의 초기 국호 ‘시라’가 틀림없다. ‘시라’는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이다. 이 동방의 ‘시라’가 ‘시르’로 표기된 것이다. 놀랍게도 동방박사들의 고국인 신라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페르시아는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그리고 ‘시르’(Shir)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따라서 시나이 사본의 기록에 의하면 페르시아는 동방박사들의 고국이 아니다. 바벨론도 예루살렘에서 근거리이며 ‘시르’(Shir)라고 불린 적이 없다. 그러므로 바벨론도 동방박사들의 고국이 아니라고 간주 되어야 한다.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어느 나라일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세 가지 예물을 아기 예수님께 드린 것은 맞지만, 그들은 정말 세 명인가? 성경학자인 브렌트 란다우(Brent Landau)는 오래된 이 질문들에 대해 근사치에 가까운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인 브렌트 란다우(Brent Landau) 박사는 ‘동방박사의 묵시’라고 불리는 성탄절 이야기를 BAR 2011/ 37(6)에 소개하였다. 또한 책으로도 출간했다.
란다우 박사가 소개한 ‘동방박사의 묵시’는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된 주후 8세기 시리아 사본에 기록된 동방박사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비록 시리아 사본은 주후 8세기의 것이지만, 시리아 사본의 원본은 주후 2세기 중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란다우 박사는 믿는다. 만약 그렇다면 시리아 사본의 원본은 마태복음이 기록된 지 1세기 후에 기록된 것이다.
시리아 사본에는 동방박사의 신비로운 기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반짝이는 별, 베들레헴으로 동방박사들을 인도하는 기적적인 이야기들,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박사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고국에서 그들의 형제와 이웃들에게 기독교의 믿음을 전한 이야기, 그리고 도마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동방박사의 묵시’에 기록되었다.
란다우가 번역한 ‘동방박사의 묵시’에 따르면 동방박사는 단지 세 명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시대의 그림에는 동방박사를 늘 세 명으로 그려왔다. 마태복음 2장에는 박사들을 세 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에 대해서도 바벨론의 점성술가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도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라고만 기록되었다. 여기에서 박사에 해당되는 마고이(ma,goi)는 ‘지혜자 또는 점성가’로 번역할 수 있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인 브렌트 란다우(Brent Landau) 박사가
영문으로 번역 출간한 ‘동방박사의 묵시’
란다우 박사가 번역한 ‘동방박사의 묵시’에는 그들을 ‘침묵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일종의 수도사)’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박사들의 수는 적어도 12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자료가 기술되어 있다. 박사들의 고국인 동방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인 신비로운 땅 시르(Shir)라고 불리는 땅이다.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인데, ‘시르(Shir)’라고 불리는 땅이라고? 그렇다면 그 ‘시르(Shir)’는 신라의 초기 국호 ‘시라’(shira)를 그렇게 표기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은가? 신라는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이다. ‘시라’(shira)가 ‘시르’(Shir)로 조금 변음이 된 것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페르시아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이며, ‘시르’(Shir)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바벨론도 마찬가지다.
동방의 현자들은 자기들이 동방의 ‘시라’에서 왔다고 소개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동방박사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인 ‘시라’라는 동방의 나라에서 왔다고 분명히 그들의 고국 이름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신들은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당연히 질문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나라인 ‘시라’에서 왔노라고 명백히 대답했을 것이다.
란다우 박사는 시르(Shir)를 중국 또는 중국 가까운 곳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그가 중국을 연상한 이유는 애석하게도 동아시아의 고대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동방박사들의 고국인 시르(Shir)는 중국과 전혀 관련이 없다.
만일 란다우 박사가 중국 가까운 곳인 한반도에 ‘시르(Shir)’와 유사한 ‘시라’(shira)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1세기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전에도 중국에는 ‘시르(Shir)’는 고사하고 그것과 비슷한 국명 조차 존재한 적이 없지만 한반도에는 있었기 때문이다.
극동의 한반도에는 ‘시르(Shir)’와 유사한 땅이 엄연히 존재했다. 바로 ‘시라’(shira)이다! 그런즉 시리아 사본이 동방박사들의 고국으로 기술한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인 신비로운 땅 시르(Shir)라고 불리는 땅”은 의문의 여지없이 극동의 ‘시라’(shira) 즉 ‘신라’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시리아 사본을 기록한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의 고국인 ‘신라’에 대해 근사치에 가까운 답을 그들은 제시하고 있다.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인 신비로운 땅 시르(Shir)라고 불리는 땅”이라고... 그 시르(Shir)가 신라의 초기 국호 ‘시라’(shira)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에 ‘시라’라고 불리는 땅이 동방에 존재했다. 이 ‘시라’가 시나이 사본에 ‘시르’로 표기된 것이다. 아마도 사본의 기자가 조금 틀리게 기록했거나, 200여 년간 동방박사들의 이야기가 전승되면서 ‘시라’가 ‘시르’로 소리가 약간 달라졌을 것이다. 실로 동방박사들의 고국이 신라라는 것은 허황된 가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타당한 근거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객관적 이론이다.
한편 시리아 사본에는 동방박사들이 도마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경북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산기슭에는 암벽에 ‘도마’라는 히브리어가 새겨져 있는 사도 도마상이 있다. 그래서 시리아 사본의 기록은 도마와 시라(신라)가 모종의 연관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 도마의 내한 가능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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