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강원도 사람
심 영 희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제13회 해외 심포지엄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다. 6박 7일 일정으로 20여명이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열 시간 오십 분만에 로스엔젤스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카운터로 나오자 김영중 해외 부이사장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버스로 시내로 이동하는 일행은 비버리힐즈, 헐리우드, 나이니스극장을 구경한 뒤 저녁을 먹고 코리아타운으로 갔다. 한국의 대형 마트와 같은 매장엔 한국상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룸메이트끼리 후식으로 과일과 음료를 사가지고 숙소로 갔다.
여행에서 룸메이트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여행 분위기 절반은 룸메이트와의 화합이냐 불화냐에 따라 틀려진다. 하룻밤도 아닌 여러 날 밤을 함께 해야 하기에 룸메이트는 늘 기대의 대상이 된다. 다행스럽게 십 년 넘게 함께 동인활동을 해온 서원순 사무국장과 짝이 되어 서로 배려하고 아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둘째 날 오후 4시 해외 심포지엄이 한국수필가협회 회원들과 미주문인협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사장님은 한국수필가협회와 새한국문학회 이사장을 겸하고 있으므로 1부는 새한국문학회에서 시상하는 해외 소월문학상 시상식을 하고, 이어 2부에는 한국수필가협회 해외 심포지엄이 거행되었다.
사무국장의 진행으로 이철호 이사장의 내빈소개와 인사말에 이어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의 유머 섞인 환영사가 있었다. 미주한국수필가협회 초대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했던 김영중 해외 부이사장이 소월문학상을 수상했다.
미주한국수필가협회 이영주 회장의 축사에 이어 한국측에서는 강원한국수필가협회 회장이란 직함으로 내가 축사를 했다. 축사 끝에 ‘소월문학상’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으로 애송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낭송했더니 대단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 후 몇 명의 수필가는 아예 나를 진달래꽃이라고 불렀다.
축사가 끝나고 자리에 앉자 한 사람 건너편에 앉았던 바로 조금 전 미주대표로 축사를 했던 이영주 회장이 자기는 강원도 철원이라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같은 강원도 사람이라는 고향애로 손을 꼭 잡으며 악수를 했다.
다음날 알게 된 일이지만 이영주 수필가는 조국의 명예를 걸고 뉴욕에서 활동하는 ‘안 트리오’ 멤버 세 자매 어머니였다. 대단한 어머니란 생각이 든다. 그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딸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뉴욕으로 돌아갔다.
이숙 사무차장은 오랫동안 사무국장 일을 하면서 미주문인들과 절친한 사이여서 보기 좋았다.
2부 심포지엄에서는 ‘수필에 있어서의 사실성과 문학성’이란 주제로 한국측에선 김영웅 수필가와 부산한국수필가협회 한영자 회장이 주제발표를 했고, 미국측에선 김영중 부이사장이 열변을 토했다. 이철호 이사장이 좌장이 되어서 진지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대구에서 온 허정자 수필가를 비롯해 양측에서 몇 명씩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미주문인협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각 문학단체 회장과 회원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다.
행사가 끝나자 또 한 사람이 다가오면서 “나 강원도 영월”하며 춘천에 김학철 교장선생님을 아느냐고 물었다. 같은 문학단체 회원이라고 잘 안다고 했더니 자기가 누나라고 했다. 춘천에서 활동하는 김학철 시인이 이승희 수필가의 고종사촌 동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또 반갑다고 끌어안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타국에서 그것도 한국인 중에서 강원도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행사가 끝난 뒤 한국식 불고기 뷔페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동족의 정을 나누었다.
식사 후 노래방으로 초대한다기에 일행 중 몇 명을 빼고는 노래방으로 갔다. 미주문인 거의가 오는 줄 알았는데 마중 나온 사람은 혼자였다. 흰 양복차림부터 많은 끼가 느껴졌다. 노래방에 들어가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는데 그 시인 역시 강원도 동해가 고향이라며 강릉중학교, 강릉고등학교 출신인데 관동대학교 엄창섭 교수와 강릉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나는 또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반갑다고 엄창섭 시인한테 안부 전하겠노라고 했다.
노래방 첫 테이프를 끊은 이상태 시인의 노래실력도 대단했다. 노래와 무대매너가 강원도 영동사람 기질이 다분했다. 우리 회원들도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의 안명희 수필가를 선두로 돌아가며 노래실력을 발휘했다. 무르익었던 노래방 분위기가 끝나갈 무렵 김영중 선생이 참석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택시를 탔다. 요금은 미터와 상관없이 5불에 팁 1불을 합쳐 6불을 지급했다. 팁 문화가 생활화된 나라라 밥 먹고도 팁, 잠자고도 팁, 택시 타고도 팁을 내야 했다.
강원도 인심이 새삼 자랑스럽다. 그 많은 문인 중에 대표로 회원들을 노래방으로 초대해 주었다는 사실에 고마움과 자부심을 느꼈다.
일정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출국할 때는 서원순, 강양옥 수필가와 함께 일행이라고 말하고 같은 라인에서 짐은 부치고 비행기안에서 나란히 앉아가면서 정담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어 먹었는데 올 때는 같은 줄에 섰으나 좌석 번호는 뚝 떨어져 있었다. 미국행은 단체 표 예약이 안되기 때문이란다.
A줄 22번은 김영웅 수필가 자리고, C줄 22번은 내 좌석이다. B줄 22번은 누구인지 찾았으나 주위에는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좌석을 찾아가니 B줄 22번에는 어린 남학생이 앉아있었다. 속으로 이 좌석의 주인이 너였구나 하고 있는데 김영웅 수필가가 들어와 좌석에 앉았다.
남학생을 중간에 두고 얼굴을 앞으로 내밀고 얘기할 수도 없는 일이라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피곤한 탓에 스르르 잠에 빠졌는데 식사시간이라고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차례차례 식탁 위에 올려지는 밥을 보며 가족이란 말이 떠 올랐다.
그때 문득 우리 좌석을 다시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이건 틀림없는 가족이다. 아빠, 아들, 엄마가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이다. 학교에서 퇴임한 김 선생은 나보다 나이가 많고 십대 학생은 영락없는 아들이라고 했더니 김영웅 선생님이 씩 웃는다.
식사를 마친 후 옆자리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다 방학을 해서 집에 가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며 과테말라에 사는데 한국에 여행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이는 열다섯 살이고 이름은 박성민이라는 중학생인데 남자지만 여학생처럼 귀엽고 예쁘게 생겼다.
세관 입국서류에 주민등록 기재난이 있는데 주민등록번호가 무엇이냐고 물어왔다. 과테말라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느냐고 되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지갑에서 내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주며 한국에서는 성인이 되면 신분증으로 소지하고 아이가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 번호가 부여된다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 그래도 걱정이 되어 한국에 친척이 있나 확인했더니 친척집이 있어 그곳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해 안심이 되었다. 한국말을 잘하는 한국소년이지만 과테말라에서 태어나 자랐다니 부모의 조국에 와도 모든 게 낯설 것 같다. 즐거운 여행되라며 조심해서 잘 가라고 했더니 싱긋 웃고는 인파 속에 파묻혔다.
사람들의 인연이란 이렇게 이루어진다. 바로 옆자리에 과테말라 학생이 안았었는데 바로 오늘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한승수 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과 김진선 강원도지가, 김정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등 공식 대표단 60명과 유치위원, 동계경기 관계자 취재진 등 250여 명이 1시 30분 인천공항에서 특별전세기 편으로 결전의 땅 과테말라로 향한다는 신문기사는 내 마음에 진한 감동을 느끼게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과테말라에서 오는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고, 강원도 평창이 고향이라 진심으로 2014년에 평창으로 전세게 동계스포츠 인들이 모여들기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권혁승 평창군수와 군민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났던 미주문인들과 참석했던 한국수필가협회 회원들은 동족이라는 그것도 문학인이라는 동지애로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 그 먼 타국 땅에서 세 명의 강원도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전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 파이팅!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파이팅!
강원도 사람 힘내라!
덧붙여 Yes, 평창!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기원.
(2013년 출간 “노란색은 왕이다”에 수록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