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친절한 복희씨』중 <대범한 밥상>, 박완서 소설집, 문학과 지성사, 2007.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애를 씁니다. 이해하기 쉬우니까 쉽게 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위해서 제 나름대로는 애를 씁니다.” (박완서 작가 인터뷰 중)
박완서 작가는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1950년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재학 중에 한국전쟁의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여성동아』여류 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휘청거리는 오후>,<너무도 쓸쓸한 당신>,<아주 오래된 농담>,<엄마의 말뚝>,<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남자네 집> 외 다수가 있다.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 하는가>,<두부>,<호미> 등 다작을 한 작가다.
이야기를 좋아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박완서 작가 어머니는 시집올 때 필사한 소설책을 한 꿰짝 가지고 온 분이셨다고 하셨다. 여러 작품에 다양한 이야기를 쓴 작품들이 놀랍다. 『친절한 복희씨』중 <대범한 밥상> 은 묵직한 인생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40대에 유방암 수술을 받은 것이 전이 되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3개월 남았다는 통보를 받는다. 남편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이다. 남편은 회계사였고 암 선고 받고 남은 기간 동안 3남매 앞으로 있는 재산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났다. 막내가 다른 자식들보다 사는 형편이 기울었는데 재산을 나눌 때 공평하게 나눴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남편 죽고 재산분배가 마뜩지 않았던 것이다. 우애 좋았던 3남매는 서로 적대시하게 됐다. 남편 가고 남은 재산을 또 나눠줘야 하는 상황에 주인공은 친구 경실이를 보고파 한다.
친구 경실이는 인생에 데미지를 입었다... 거대한 데미지를. 딸과 사위를 착륙직전 비행기가 폭파하는 바람에 둘을 잃었다. 여섯 살, 세 살 어린 남매를 남겨 두고 말이다. 할머니인 경실이는 그 때부터 괴기한 소문에 시달린다. 장례식장에서 본 경실이는 초롱초롱해가지고 밥을 아귀아귀 먹더란다. 상주들을 가운데 두고 한 쪽은 경실이, 한 쪽은 친할아버지와 넷이 손을 잡고 있는데 꼭 가족같더라. 장례치르고 사돈댁에 내려가 넷이 같이 살더라, 서로를 ‘하니’라고 부른다. 사돈끼리 망측한 동거를 시작했다 등... 소문은 무성하고 겉모습대로 해석하면 이렇게 보인다. 그러나 진실은 본인만 아는 것이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세상 눈이 자신의 삶에 무슨 영향이 있을까.
주인공은 경실이가 차려 놓은 대범한 밥상을 받아 든다. 돌솥에 밥을 하고 짠지무와 곤드레나물, 씀바귀 민들레 잎도 된장에 찍어 먹는다. 소박한 밥상이다. 밥상을 마주하고 대범한 지난 세월을 듣는다. 대범하다고 생각했는데 듣고보니 모두 얽힌 오해덩어리들이다. 아뿔싸.... 인간의 입은 뭘 그리 떠들고 다녔단 말인가. 자식 잃은 친구를 눈꼽만큼은 생각 못하고 죽기살기로 궁금증을 부풀리고 부풀려서 자기해석을 해버린다.
“그 밖의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더라. 남이 뭐라고 하든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내가 아닌데. 소문뿐 아냐. 요새 산이 좀 예쁘냐. 저 앞산을 좀 봐라.(p229)
자식을 잃고 손주들을 건사해야는 속마음은 알려하지 않고 외형적인 모습만을 떠드는 관계를 다시 생각해본다. 읽지 않으면 책 내용을 모르고 보지 않으면 속 마음을 모르는 것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가볍게 넘기고 살아가고 싶다.
서평-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