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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희 (문학박사)씨의 아주 좋은 읽을 내용을 올립니다. 읽고 들으시고 은혜 받으세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애창되는 찬송가인 “Abide With Me”는 2013년 지난 7월에 열렸던 런던 올림픽 개막 축가 로도 불려졌다. 스코틀랜드 출신 가수인 에밀리 산데가 화려한 반주 없이 나지막하게 부른 이 노래는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그때 런던 올림픽에서의 무대 공연은, 2005년에 런던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7월 7일 런던에서 발생했던 폭탄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기획되었다. 사건이 있던 날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주도한 자살폭탄테러로 오십여 명이 사망했는데,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동안 보도진들의 카메라를 통해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과 같은 우리 삶 속에서 죽음을 내다보며 주님이 함께 계셔 주시기를 간구하는 이 찬송가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었다.
영국의 국왕인 에드워드 7세와 조지 5세도 평생 이 찬송을 애창하였으며 그들의 장례식에서도 조문객들이 이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1936년에 조지 5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윈저궁의 성 조지 교회에서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서 이 찬송가가 전 세계로 방송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하트마 간디, 테레사 수녀 등도 이 찬송가를 애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1912년 영국의 타이타닉 호가 미국 뉴욕을 향해 항해하던 중 대서양 한복판에서 빙산과 부딪쳐 침몰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부른 노래들 중에도 이 찬송가가 있었다고 한다.*
(Henry Francis Lyte)
작시자인 헨리 프랜시스 라이트 목사는 일평생 건강이 좋지 않아 괴로움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는 1793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드남에서 태어났는데 고아로 힘들게 성장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아일랜드의 더블린 대학을 겨우 졸업할 수 있었고, 그 후 영국 국교회의 목사가 되어 한 어촌 마을인 브릭스햄에 와서 25년간 교회의 성직을 맡았다. 목사의 딸로서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그의 부인과 결혼한 후에는 가난의 쓰라림에서는 해방되었으나 젊었을 때 생긴 천식과 폐병의 괴로움은 일평생 그를 괴롭혔다. 더욱이 그의 교구인 브릭스햄 지방은 기후가 불안정해서 그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주민의 대다수인 어부들은 성품이 우락부락하고 거칠었다. 그러나 그는 거친 뱃사람들을 사랑해서 그 연약한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일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해변을 산책하는 것을 일과로 삼아 산책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설교 말씀을 준비했는데, 라이트 목사의 사랑에 마음이 녹은 그곳 사람들은 양같이 순해져서 병약한 라이트 목사를 무척 사랑했고 라이트 목사도 그곳에서 목회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라이트 목사의 건강이 언제나 문제였다. 그의 나이 51세인 1844년부터는 건강이 한계에 부딪혔다. 이제 그는 교회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상태가 되었고, 그의 의사는 그에게 브릭스햄을 떠나 기후가 따뜻한 이태리나 남유럽으로 가라고 권했다.
결국 그는 강단에 설 수 없을 정도의 건강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설교를 해달라는 교인들의 간청과 송별 설교를 해야겠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1894년 9월 4일 그는 거의 기다시피 하여 강단에 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 죽은 자가 살아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내가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닥치는 죽음의 그 엄숙한 시간을 모두 다 준비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바람입니다.”
라이트 목사의 딸 안나 마리아 맥스웰 호그는 라이트 목사의 회상록 서문에 당시의 상황을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름이 가고 9월이 왔다. 이 달은 한 번 더 고향을 떠나는 달이었다. 하루하루 아버지의 출발 날짜가 다가오므로 하루의 생활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가 한 번 더 회중들에게 설교하실 뜻을 비치실 때 온 가족들은 너무도 놀랐다. 아버지의 연약하심과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 때문에 강단에 서시는 것을 막아야 했으나 막무가내셨다. 아버지는 비교적 건강하실 때 가끔 하시는 말씀이 ‘녹슬어 없어지느니 차라리 닳아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하시곤 하였다.
아버지는 결과에 대해서 조금도 겁내지 않으셨다. 그의 기대는 잘 맞아 들어갔다. 설교를 마치셨고, 회중들의 숨 가쁜 경청 속에 성찬에 관한 설교를 하셨다. 아버지는 부축을 받아가며 성찬 예식을 치렀고 그 수고로 인해 지치고 피로해 하셨으나 감동적으로 끝났다.” (김경선 저 <찬송가 해설> 참조)
그날 오후 라이트 목사는 그가 늘 거닐던 해변을 마지막으로 거닐면서 고요히 하나님과 속삭이며 기도하였다. 그 기도 내용은 이 세상에서 죽어 하늘나라에서 가서도 주님이 늘 함께 계시기를 간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기도를 여덟 절의 시에 담았다. 바다 위에는 짙은 황혼이 드리우고 어느 새 달이 떠올랐다. 달밤에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거닐 때에 그의 마음속에는 시가 쏟아졌다. 그는 서재로 급히 달려가 그의 영혼을 휩쓸었던 모든 생각을 모아 시로 만들었다.
원래 시는 모두 여덟 절로 되어 있으나 우리 찬송가에는 네 절만 실려 있다. 1절부터 원문대로 가사를 음미해 보자.
1절
Abide with me: fast falls the
eventide; 나와 함께하소서. 황혼이 빨리 내립니다.
The darkness deepens, Lord, with me abide: 주여, 어둠이 깊어갑니다. 나와
함께하소서.
When other helpers fail, and comforts flee, 다른 돕는 자 위로 못하고 위로 얻을 곳 없을 때에
Help of the helpless, O abide with me. 오, 무력한 자의 도움 되시는 주여, 나와 함께하소서
abide 거하다, 머무르다. eventide 황혼, 석양. darkness 어두움 helpers 조력자
fail 실패하다
comfort 위로, 위안
flee 달아나다
이 1절의 가사는 찬란하지만 너무도 빨리 떨어지는 황혼, 그리고 깊어가는 밤을 맞이하면서 세상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위로를 구하는 내용이다. 바다 위에 펼쳐지는 황혼을 바라보며 인생의 황혼에서 옛일들을 반추하는 라이트 목사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화려한 붉은 빛으로 타들어가는 노을빛을 바라 보노라면 누구나 인생의 황혼을 생각하고 곧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문장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면, 첫줄 문장의 뒷부분은 도치되었다. 이 찬송가 전체의 각운은 a-a-b-b의 형태를 지닌다. “The eventide falls fast”가 원래 문장인데 둘째 줄 끝에 있는 abide와 각운(rhyme)을 맞추기 위하여 eventide가 뒤로 나온 것이다.
이 절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단어는 황혼이라는 의미의 ‘eventide’ 이다. ‘even’은 ‘evening’의 약자인 ‘even’과 ‘조수, 조류, 흐름, 물결’등의 의미인 ‘tide’가 합쳐진 단어이다. 즉 ‘eventide’는 해가 지고 어두움이 물결처럼 몰려오는 상태, 즉 밝음이 있는 황혼 때를 의미한다. 사실상 “Eventide”는 이 찬송가의 원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찬송곡은 라이트 목사가 작곡한 것도 있었으나 멜로디의 흐름이나 화성이 약간 어색하여 잘 불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라이트 목사의 시가 나온 지 14년이 지난 1861년, 윌리엄 헨리 몽크는 찬송가집을 편집하면서 이 찬송가의 가사에 곡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가사 내용에 감격해 곡을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곡을 붙이기에 부족한 자신의 능력에 절망하고 있던 어느 날, 그의 제자 한 명이 피아노 연습곡을 열심히 치고 있었는데, 그 곡에 몰두해 있던 몽크의 뇌리에 하나의 멜로디가 떠올랐다. 몽크가 그 악상을 가지고 곡을 만드는 데는 10분이 채 안 걸렸다고 한다.
죽음을 내다보며 고요히 하나님과 속삭인 이 시의 곡이 10분도 안 되어 완성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 찬송가는 “Eventide”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그때부터 이 찬송가가 본격적으로 많이 불리게 되었다. 이 찬송가가 이토록 유명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몽크가 가사에 꼭 맞는 아름다운 곡을 붙였기 때문이다.
라이트 목사에게 브릭스햄에서의 마지막 2, 3년은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그가 건강 문제로 오랫동안 교회를 비워 둔 사이에 교회 내부에는 불화가 일었고 주일학교 교사들은 교회를 떠나 형제단(Plymouth Brethren)으로 갔는가 하면, 성가대원들 또한 프리머스 형제단으로 가 버렸다. 이런 일들은 그의 마음을 한층 더 무겁게 했을 것이었다. 쓸쓸한 길을 가는 그는 그토록 무기력한 자신에게 도움이 되어 주시는 주님이 감사했고, 다시금 함께해 주실 것을 간구했다.
훗날 이 찬송시의 복사본이 인쇄되어 사용되던 중, 라이트 목사를 떠나 프리머스 형제단으로 간 성도들에게도 이 시의 복사본이 전달되었는데, 그들은 이 찬송시를 읽으며 1절의 ‘다른 돕는 자 위로 못하고(When other helpers fail)’라는 구절이 자기들을 뜻함에 틀림없다고 하면서 그의 죽음을 애절해 했다고 한다.
2절
Swift to its close ebbs out life’s little day; 인생의 짧은 세월 속히 끝나고 죽음에 빨리 이르러
Earth’s joys grow dim, its glories pass away; 이 땅의 기쁨 희미해지고 그의 영광은 지나갑니다.
Change and decay in all around I see;
내 주변의 보이는 모든 것은 다 변하고
썩습니다.
O Thou who changest not, abide with me 오, 변치 않는 주여 나와 함께하소서
swift 신속한. close 끝. ebb 썰물같이 빠지다. grow 하게 되다. dim 희미한. glory 영광.
pass away 지나가다. decay 부패, 썩음. Thou you(주격)의 고어 changest change의 3인칭 단수(고어형)
우리네 인생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어제같이 짧게만 느껴진다. 살아오는 동안 슬픔도 기쁨도 영광스런 일도 많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다 변하고 썩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않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니, 주께서 함께해 달라는 마음의 간구이다.
문법적으로 볼 때 2절 첫 문장의 구조는 아주 난해하다. 원래 어순은 Life’s little day ebbs out swift to its close인데 둘째 줄 마지막 단어인 away와 각운을 맞추기 위하여 문장이 도치되었다. 주어는 Life’s little day이고 동사가 ebbs out이다. ‘ebb’가 드물게도 ‘썰물같이 빠진다’라는 뜻의 동사로 쓰여서 인생의 짧은 날들이 빨리 썰물같이 빠져나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셋째 줄에도 넷째 줄과의 각운을 맞추기 위한 도치가 있다. “I see change and decay in all around.”가 원래 문장이다.
3절
I need Thy presence every passing hour; 내 생명이 가는 순간순간마다 주의 임재하심이 필요합니다.
What but Thy grace can foil the tempter’s power? 주의 은혜 외에 그 무엇이 유혹자의 권세를 깰 것인가?
Who like Thyself my guide and stay can be? 누가 당신같이 나의 인도자요 버팀목이 되오리까?
Through cloud and sunshine, O abide with me.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주여 나와 함께하소서
thy your의 고어 presence 임재하심 but -외에 (except) foil 패배시키다 tempter 유혹자 thyself yourself의 고어 guide 인도자 stay 지주, 버팀목 through -를 통하여 cloud 구름 sunshine 햇빛
3절 역시 문장이 복잡한 편이다. 둘째 줄의 but은 접속사가 아니라 ‘외에’라는
의미의 전치사임에 주의하여야 한다. 또한 셋째 줄에서 ‘stay’라는
단어는 ‘머무르다’는 의미의 동사가 아니라 ‘지주, 버팀목’이란 의미의
명사임에 주의하여야 영문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4절
Hold Thou Thy cross before my closing eyes; 주여, 내가 눈 감을 때 주의 십자가 높이 들어 주시고
Shine through the gloom and point me to the skies; 어둠 속을 비추사 하늘을 향하게 하소서
Heaven’s morning breaks and earth’s vain shadows flee; 하늘나라의 아침이 동트고, 이 땅의 헛된 그림자
사라지도다
In life, in death, O Lord, abide with me. 살든지 죽든지, 오 주여 나와 함께하소서.
cross 십자가 closing 닫는, (눈을)감는 shine 비추다 gloom 어둠, 우울함 point 가리키다 heaven 천국 vain 헛된 shadow 그림자 life 생명 death 죽음
이것은 그가 완성한 시의 마지막 8절로서 그의 마지막 간구이다. 그가 십자가를 푯대로 정하고 인생을 산 사람임을 말해 주는 내용이다. 그는 마지막 눈을 감을 때 십자가를 높이 들어달라고 간구한다. 이 마지막 절은 문장 구조도 대체로 간단하며 각운 역시 a-a-b-b가 저절로 맞아 떨어진다.
이 찬송시를 쓴 다음날인 9월 5일의 일기는 더욱 눈물겹다. 자유롭게 창공을 훨훨 나는 새들과 아이같이 대화를 나누는 그의 글에서 순수함이 엿보인다.
“남쪽으로 날아갈 꿈을 꾸고 있는 작은 방울새 한 마리가 매일 아침 충실하게 내 창가에 찾아와 황혼의 시간이 가까웠다고 사랑스럽게 경고해 주고 있다. 제비들은 떠날 채비를 다하고 같이 가자고 나를 부른다. 나보고 함께 날아가자고 졸라대고 있으나 날아가기는커녕 기어갈 수도 없게 되었으니 내가 진정 영국을 떠나갈 수나 있게 될 것인지 내 자신에게 묻는다.” (김경선 저 <찬송가 해설> 참조)
그는 가족과 교우들의 눈물의 전송을 받으며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여정에 오른다. 그러나 그로부터 2개월 후 그는 프랑스 니스 근처의 망텅(Mentone)에서 세상을 마치게 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그의 찬송 마지막 절의 마지막 2행의 구절이 새겨졌다.
Heaven’s morning breaks and earth’s vain shadows flee;
In life, in death, O Lord, abide with me.
하늘나라의 아침이 동트고, 이 땅의 헛된 그림자 사라지도다
살든지 죽든지, 오 주여 나와 함께하소서.
라이트 목사의 육신은 비록 연약했으나 그의 정신과 신앙은 얼마나
강건하였는가를 이 찬송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죽음이 그늘처럼 드리워진 가운데 작시된 이 찬송은
전 세계 모든 교회에 또 많은 성도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이 찬송은 전술한 대로 초기에는
낱장으로 인쇄되어 쓰이다가 1850년 라이트 목사의 딸인 안나가 펴낸 회상록 에 실렸으며 후에 거의
모든 찬송가집에 수록되었다.
이 곡을 작곡한 몽크는 경건한 음악가였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그냥 치지 않고 듣는 이들이 영적 감화를 받을 수 있도록 중점을 두어 연주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노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렇듯 찬송가의 유래를 더듬어 나가노라면 어느 찬송가도 무심히 흥얼거려서는 안 될 것 같다. 해 그림자가 멀리 멀리 사라지고 저녁이 몰려올 때, 또 감당할 수 없을 듯한 어둠이 몰려올 때 우리가 기도할 것은 다만 “O Lord, Abide With Me(오 주여 나와 함께하소서)”라는 기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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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휘자님, 오랜만에 올려주신 글,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