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로원/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2, 허수경/봄날은 간다
사카린 같이 스며들던 상처야
박분의 햇살아
연분홍 졸음 같은 낮술
마음 졸이던 소풍아
안타까움 보다 더 광포한 세월아
순교의 순정아
나 이제 시시껄렁으로 가려고 하네
시시껄렁이 나를 먹여살릴 때까지.
3, 이응준/봄날은 간다
스무 살에 부르던 투쟁가처럼 꽃이 핀다
그러나 꽃을 노래하지는 말아라
괴로운 건 꽃이 아니다
꽃을 가지고 싶은
꺽이기 쉬운
멍들어 가는
청춘이다
븕은 꽃을 보고 있는 사형수의 마음 같은.
4, 이승훈/봄날은 간다
낮선 도시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당신과 함께 봄날은 간다
달이 뜬 새벽 네시
당신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봄날은 간다
맥주를 마시며 봄날은 간다
서울은 머얼다
손님 없는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달이 뜬 거리도 간다
술에 취한 봄날은 간다
안개도 가고 왕십리도 가고 노래방도 간다
서울은 머얼다
당신은 가깝다
내 목에 두른 마후라도 간다
기차는 가지 않는다
나도 가고 봄날은 가고 당신은 가지 않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해가 뜨면 같이 웃고 해가지면 같이 울던 봄날은 간다
바람만 부는 봄날은 간다
글쟁이, 대학교수, 만성 떠돌이, 봄날은 간다
머리를 염색한 우울한 이론가, 봄날은 간다
당신은 남고 봄날은 간다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5, 이외수/봄날은 간다
부끄러워라
내가 쓰는 글들은
아직 썩어가는 세상의
방부제가 되지 못하고
내가 흘린 눈물은
아직 고통 받는 이들의
진통제가 되지 못하네
돌아보면 오십 평생
파지만 가득하고
아뿔사
또 한 해
어느 새 유채꽃 한 바지게 짊어지고
저기 언덕 넘어로 사라지는 봄날이여
카페 게시글
◇.....特選 詩모음
봄날은 간다. -손로원, 허수경, 이응준, 이승훈, 이외수-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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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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