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영웅 曹操조조의 短歌行단가행

短歌行단가행 -曹孟德조맹덕(曹操조조)-
對酒當歌대주당가
술잔을 높이 들고 노래 부르나니
人生幾何인생기하
인간의 삶이란 몇 해나 되는가
譬如朝露비여조로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삶
去日苦多.거일고다
지나간 나날속에 괴로움만 쌓였도다
慨當以慷개당이강
슬피 한탄하며 목놓아 노래 불러도
憂思難忘. 우사난망
근심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구나
何以解憂하이해우
무엇으로 이 근심 풀 수 있으리
惟有杜康유유두강
오로지 한 잔 술이로다
靑靑子衿청청자긍
푸르고 푸른 그대들 賢人들의 옷깃이
悠悠我心유유아심
내 마음 깊이 오래도록 그리움으로 남아 있으니,
但爲君故단위군고
나는 단지 그대들 때문에
沈吟至今.심음지금
이제껏 생각에 잠겼었다네.
遊由鹿鳴유유록명
사슴들이 정답게 무리지어 울부짖으며
食野之綴식야지철
들판의 쑥을 뜯어 먹듯이
我有佳賓아유가빈
나에게도 귀한 손님 생겨난다면
鼓瑟吹笙고슬취생
거문고 타고 생황 불며 극진히 대접하련만.
明明如月명명여월
저 달 처럼 밝고 유능한 인재를
何時可得하시가득
나는 언제나 얻을 수 있을지?
憂從中來우종중래
가슴 속으로부터 우러나는 근심
不可斷絶불가단절
끊을 수가 없구나.
越陌度阡월백도천
사방으로 머나 먼 길 넘나 들면서
枉用相存 왕용상존
친히 왕림하여 서로 안부도 물었고,
契闊談계관담
뜻이 맞아 함께 이야기 나누며 잔치도 벌였으니
心念舊恩.심념구
마음 속으로나마 옛 우정을 기억해 두어야지.
月明星稀월명성희
달이 휘영청 밝으니 별 빛은 희미한데
烏鵲南飛오작남비
까막 까치 남쪽으로 날아가 본들,
繞樹三잡요수삼잡
나무 둘레를 몇 차례 빙빙 맴돌 뿐
何枝可依하지가의
어느 가지에 가히 의지할 수 있으리?
山不厭高산불염고
산은 높아짐을 마다하지 않고
海不厭深.해불염심
바다는 깊어짐을 마다하지 않는 법.
周公吐哺주공토포
周公이 입 안의 음식을 뱉고손님을 맞았던
것처럼 賢人현인들을 歡待환대한다면
天下歸心천하귀심
天下천하의 民心민심이 모두 내게로 향하리라
이 작품은 어진 인재를 갈망하는 작자의 심경을 노래한
詩시로서 古樂府고악부의 相和歌辭상화가사 중 平調曲에 속한다.
曹操의 短歌行은 모두 두 首이며 나머지 한 首는 4言句
위주로 되어 있긴 하지만 5言句와 6言句도 일부 섞여
있는 雜言體의 작품으로, 周 文王
과 齊 桓公 그리고 晋 文公 등을 찬양함으로
써 자신이 天子를 모시고 臣下의 도리를 다하겠
다는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의 創作 시기는 대략 서기 208년(建安 13年)
부터 210년(建安 15年) 사이 쯤으로 추정된다.
曹操가 建安 13年 9월에 劉表의 아들인 劉琮의 항복
을 받을 때 劉琮의 휘하에 있던 杜夔 역시 함께 투항
해 왔는데, 杜夔는 원래 音樂에 상당한 조예가 있어
서 漢의 雅樂郞을 역임하였던 인물이다.
曹操는 그를 軍謀祭酒에 임명하여 雅樂을 창제토록
하였고, 이에 杜夔는 舊雅樂 4曲을 전하였으며 그
중의 하나가 곧 〈鹿鳴〉이었다 한다.
曹操가 이 작품에서 인용한 〈鹿鳴〉篇도 바로 杜夔
가 전한 舊雅樂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曹操가 杜夔를 얻은 후 建安 13年 12月
赤壁大戰에서 참패한 다음 建安 15年에 [求賢令]을
내리기까지의 어느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人生幾何라는 恨歎을 시작으로 해서 뒷부분을 주로
人生 無常과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 대한
안타까움을 밝혀 두고 있다.
다분히 消極的인 情緖가 짙게 깔려 있는데,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赤壁大戰에서의 패배로 인한 좌절감과 아울러 당시 나이
60을 눈 앞에 두고 실감하게 된 짧은 인생에 대한 허망
한 느낌 그리고 天下를 제대로 平定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강박 관념 등이 크게 그의 뇌리에 작용하였을 것
이라 생각해본다.
또한 東破선생이 그의 不朽의 대작 赤壁賦
에서 다음과 같이 음유했듯시.......
客曰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相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方其破荊州下江陵
順流而東也 축노千里 旌旗蔽空 시酒臨江
橫삭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객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달이 밝게 떠오르니 별빛이 희미해지고 까막까치는
남쪽으로 나네"란 시는 바로 曹孟德의 시가 아니요,
서쪽으로는 夏口를 동쪽으로는 武昌을 바라보니 山川
이 서로 얽혀 있고 나무는 빽빽하고 푸르며 싱싱한데,
이 곳이 孟德이 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당한 곳이
아니요,
바야흐로 荊州를 破하고 順流를 타고 江陵
으로 내려갈 때 강 옆에 붙어 (뱃전) 술잔을 권하며
장창을 비스듬히 꽂아 놓고 시를 읊었으니 참으로
일세의 영웅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조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기서 동파산생은 객을 빌어 조맹덕을 영웅으로
높이평가했던 것이다.
방황하는 인재들에 대한 걱정을 피력하였고, 마지
막에서는 管仲이나 周公처럼 어진 인재들을 두루
받아들여 天下統一의 위업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힘찬포부오 글은 반전을 거듭한다
短歌行은 여러 각도에서의 思念과 多面的인 感情
色彩를 표현한 曹操의 抒情詩 중 代表作일 뿐만
아니라, 그 雄大한 氣勢와 風格으로 보아 曹操의
전체 詩 작품들 중의 代表作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본다.
※ 단가행의 이해
吳와 蜀이 아직 평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은
이미 晩年에 접어든데 대한 허무함을 노래한 조
조 다운 시이다,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술을
만들 었다하는 두강 그도 자신이 만든 술로 시
름을 달랬으리라 조조는 생각해본다.
東坡선생이 당신의 赤壁賦에서 인용했던 曹操의
短歌行 中章부분을 생각해보자.
月明星稀
달이 휘영청 밝으니 별 빛은 희미한데
烏鵲南飛
까막 까치 남쪽으로 날아가 본들,
繞樹三
나무 둘레를 몇 차례 빙빙 맴돌 뿐
何枝可依
어느 가지에 가히 의지할 수 있으리?
여기서 劉備를 여지없이 卑下하고있는 것이다.
까막까치를 劉備에 비유해 유비가 남으로 남으
로 피신해 달아나지마는 그 가는 곳에는 의지
할 곳 하나 없는 외로운 신세가 될것이
자명하다고 劉備를 내리 깔고있다.
靑靑我心 《詩經》〈鄭風〉〈子衿〉篇 중의
이란 구절에서 따 온 표현이다.
靑衿}은 원래 周나라 때 學生들이 입었던
복장으로 깃이 푸른 옷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작자가 그리워하고 있는 어진 선비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 周公吐哺
周公이 입에 머금었던 음식을 토해내다.
{周公}은 西周 初期 정치가로 姓이 姬이고 이름이
旦이었으며, 周 文王의 아들이자 武王의 아우였다.
武王을 도와 殷나라를 멸망시켰으며,
武王이 죽고 난 후에는 나이 어린 成王을 잘 보좌
하여 나라의 기반을 굳건히 다짐으로써,
孔子를 비롯한 후세 儒家들로부터 聖人으로 받들
어졌을 뿐만 아니라 天下 백성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그는 머리를 감거나 밥을 먹다가 손님이 오면 감
던 머리를 움켜 쥐고 먹던 밥을 뱉어버리고서 뛰
어나가 맞이하였을 정도로 특히 어진 선비들을
매우 歡待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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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해설과 사진 덕분에 명시를 더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조조는 천하간웅이라 하지만 그래도 위대한 영웅임에 분명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여유도 갖고 있었습니다. 전쟁터 막사에서까지 종요 등의 굴지의 명필의 진본 작품을 붙여 놓고 서예 연습에 몰두했다 합니다. 때문에 조조 본인이 명필이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