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야,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가장 주목할 만한 덕성은 완전한 순수함과 신성함입니다. 그는 너무도 순수하고 신성하기 때문에 ‘신성한 분들 가운데서 가장 신성한 분’이라고 불리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자신이 가르친 모든 미덕들을 스스로 완전히 실행하셨습니다. 모든 철학자들의 이상이었던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이루셨으니 이를 두고 ‘명행족(明行足, Vijjacarana-sampanno, 앎과 실천을 완전히 갖추신 분)’이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의 인품에 깊이 감동합니다. 부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으며, 또 그것은 얼마나 희유한 일이었겠습니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던 부처님께서 아난다를 시자로 삼으신 후(부처님 세수 55세 때) 기원정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난다를 데리고 사위성으로 탁발을 나가셨습니다. 탁발을 나오시는 부처님과 아난존자를 매일 볼 수 있었고, 또 그분들에게 공양을 올렸던 분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자기들이 사는 가까이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웠을까? 인생이란 여로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지만 나를 완전히 흔들어 놓아,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기며, 내 인생을 완전히 변하게 만든 만남이란 정말로 희유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인간으로 오셨던 고타마 붓다(Gotama Buddha) 그 분을 만나다면 그건 바로 운명적인 조우(遭遇, A fateful encounter)입니다. 그러나 그런 조우를 누릴 복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 대신 부처님이 남기신 담마(Dhamma, 法)과 승가(Sangha, 깨달은 제자와 깨달음을 향해가는 제자들의 영적인 공동체)를 만날 수 있고, 우리는 이미 그런 인연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다행하며 축복받은 만남입니까?
하루는 사위성으로 탁발을 나섰던 부처님과 아난존자 앞으로 똥지게를 지고 뒤뚱뒤뚱 걸어오던 니디(Nidhi)가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발을 헛디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똥통이 깨어지고 똥물이 사방으로 튀어 부처님과 아난존자의 가사에도 묻고 말았죠. 공양을 드리려고 거리에 나와 있던 사람들도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겠죠. 부처님께서는 연꽃 같은 당신의 손을 뻗어 똥이 묻은 니디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시면서 “나와 함께 강으로 가서 씻자.”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광경입니까? 사성계급제도가 사회의 근본기강이었던 인도고대사회에는 지금도 그런 일이 통용되지만 불가촉천민이나 하천민은 감히 상위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과는 신체적 접촉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인간의 계급적 차별이 태생으로 결정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브라만은 브라만다운 덕행을 할 때 ‘브라만’이라 불리는 것이지, 브라만 가문에 태어났다는 이유로만 브라만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업(Karma, 카르마, 즉 행실과 말과 용심)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업이 곧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은 업을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업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업을 종결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업설(業說)을 ‘인간평등의 원리’, ‘운명 창조의 원리’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똥을 지던 니디는 부처님이 내미는 손을 잡음으로써 자기 운명이 완전히 바뀌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부처님의 용심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 ‘하는 것 봐서 조금 씩 조금 씩 주시는 분’이 아니고, 이 때다 싶으면 ‘한꺼번에 왕창 주시는 분’입니다. 니디를 강으로 데려가는 것도 황감한 일인데 니디의 몸을 손수 씻어 주십니다.
“안됩니다. 부처님, 당신 같은 성스러운 분께서 어찌 이 천함 놈의 몸을 만져 씻어주신다 하십니까?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니디야, 너는 천하지도 더럽지도 않다. 네 몸은 더러워졌지만 네 마음은 지극히 착하다. 지극히 선한 네 마음으로 인하여 네 몸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난단다.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니디에게 해주신 이 말씀이 부처님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바로 그 말씀이지 않습니까?
너 자신을 함부로 여기지 말라. Do not mistake yourself recklessly.
너는 진정한 너 자신을 알 수 없다. You do not know who you really are.
지금 네가 생각하고 있는 네 자신이란 너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너를 함부로 이렇다고 단정하지 말라.
Who you think you are is made up out of your ignorance. Do not judge who you are too easily.
오히려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I know I do not know myself.
나는 그 어떤 말로써도 정의 될 수 없는 지고한 존재이다. I am a sublime being indescribable by any words.
나는 내가 경험하는 세계의 창조자이다. I am a creator of my world.
나는 천상천하에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I am a unique being in the Universe.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 All beings are equal.
모든 생명은 나와 똑같이 소중하다. All beings are as precious as I am.
니디의 몸을 씻어주시고는 관정(灌頂, 아비세카, Abhisekha)까지 해주신다. 부처님께서 맑은 물을 떠서 니디의 정수리에 부어주신다. 이는 인도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의식인데 왕이 왕위를 물려줄 왕세자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너는 장차 왕위를 물려받을 귀한 존재임을 천상천하와 만인 앞에 내가 증명하면서 너의 존재를 축복하노라’라는 뜻이죠. 그리고 출가하여 당신의 교단에 들어오기를 권유하시죠. 부처님은 이와 같이 왕창 베푸십니다. “제가 어찌 감히” 이러니까 부처님께서 “나의 법은 청정한 물이니 너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으리라. 넓은 바다가 온갖 강물을 다 받아들이고도 늘 맑고 깨끗한 것처럼, 나의 법은 모든 사람을 받아들여 더러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나의 법에는 빈부귀천, 남녀노소, 인종과 국적의 차이를 넘어서 있다. 오직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증득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다는 강물을 가리지 아니한다)와 대해일미(大海一味, 온갖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오면 한 가지 짠맛으로 통일된다)! 이것이 승가, 부처님의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니디는 하루 사이에 운명이 완전히 바뀌어 똥을 지는 천민에서 비구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다 하는 똥을 퍼나르던 사람이 순백(純白)의 길을 가는 청정비구가 되었으니 전미개오(轉迷開悟, 미혹함을 돌이켜 깨달음을 이루다)와 혁범성성(革凡成聖, 범부를 뒤집어 성인이 되다)이 순간이라, 성중성(聖中聖, 성인중의 성인)을 만나는 찰나에 천지가 개벽을 하는 법입니다.
바보라고 쫓겨날 뻔한 쭐라판타카는 또 어떻습니까? 출가한지 4개월이 되도록 4구의 게송조차도 외우지 못하는 둔한 머리로는 스님노릇 할 수 없다고 형인 마하판타카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쫓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심경을 다 살피시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 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쭐라판타카의 손을 잡고 당신의 방(기원정사 안에 있는 부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간다쿠티(Gandhakuti,香室))으로 데리고 들어가 하얀 헝겊을 주시면서 “라조 하라낭(Rajo haranam, 때를 닦아라/한문경전에는 '불진제구(拂塵除垢, 먼지를 떨고 때를 제거하라)'고 나옴)”이라고 외우게 하셨다. 겨우 두 단어로 된 말이니 외우기도 쉽고, 걸레질을 하라니 항상 하던 일이라 어려울 게 없었죠. 이렇게 쭐라판타카의 분수에 딱 맞는 수행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공부 못한다고 구박을 받던 쭐라판타카가 자신해서 절 이곳 저 곳의 먼지와 때를 닦으면서 착실하게 지내니 대중이 보기에도 좋았겠죠. 수행도 하면서 공덕도 닦게 만드신 부처님의 자상하고 세심한 배려가 차별지(差別智, 세상에서 벌어지는 낱낱의 일들을 현명하게 처리하는 지혜)에 통달한 지혜에서 나옵니다. 매일 청소를 하던 쭐라판타카는 하얗던 헝겊이 점차로 물들어 더러워진다는 사실에 눈을 뜹니다. 헝겊이 때로 물들어감에 따라 더러워지고 뻣뻣해집니다. 더러워진 걸레를 물에 빨았더니 다시 깨끗해집니다. 이런 일을 반복됨에 따라 뭔가 알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하, 마음에도 때가 묻으면 이런 식으로 더러워지고, 물들게 되고, 거칠어지는 구나.’ ‘아하, 본래 깨끗했던 걸레가 때가 묻으니 더러워지는 구나. 깨끗한 것이 더러운 것으로 변하는구나. 깨끗한 것이 항상 깨끗한 것이 아니고, 더러운 것이 항상 더러운 것이 아니구나. 깨끗함이 더러움으로 변하는 만드는 것은 때와 먼지이며, ‘더러운 것이 다시 깨끗해지는 것은 맑은 물에 빨았기 때문이구나.’ 이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부처님께서 즉시 광명을 나투시면서 쭐라판타카 앞에 나타나셨다. “그렇다. 쭐라판타카야, 걸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때가 끼느니라. 그 때란 무엇인가? 쾌락에 대한 갈망, 탐욕, 악심, 증오, 성냄, 자만심, 의심, 무지이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때 끼면 더러워진 걸레처럼 뻣뻣하고 사악해지느니라. 이런 때를 완전히 닦아내면 수행의 목표를 이룬 것이니 이른 일러 아라한(Arahat,성자)라 하느니라.” 부처님의 개인교수를 받은 쭐라판타카는 용기를 얻어 더욱 현상의 관찰에 마음을 집중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은 봄을 만난 정원의 화초 같이 활짝 피어납니다. 부처님의 법은 생명의 개화를 촉진시키는 촉매(Catalyst)이며, 영적인 폭발을 일으키는 불씨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에 불씨가 심어져 오온의 해체라는 영적인 폭발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 기분은 어떠할 까요? 그것은 지극한 안온하고, 청정하며 경안(輕安)한 열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붓다 찬미자인 파우스볼(Viggo Fausboll, 1821~1908, 덴마크의 빨리경전 번역의 선구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분을 더 많이 알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The more I know him, the more I love him;
그 분을 더 사랑할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 The more I love him, the more I know him.
첫댓글 스님의 목소리 다시 듣는 듯 어제의 감동이 되살아나 부처님께서 더 한층 가까이 계심을 느낍니다.
니디와 쭐라판다카에게 다가가시는 그 모습 마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_()_
쭐라판다카 아라한을 본받아 걸레질 합니다
...((()))...
감사합니다. 오늘도 마음의 호숫가에서 감동의 큰물결을 느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