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③ 如來福德神通力(여래복덕신통력)이여 여래의 복덕과 신통의 힘이여. 摩尼妙寶普莊嚴(마니묘보보장엄)하시니 마니보석, 아름다운 그 보석으로 널리 장엄하셨으니. 여래의 복덕과 신통력. 福德 그리고 神通力 이렇게 하면은 일반적인 그 불교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또 무슨 엉뚱한 그런 그 신통력이 있는가? 초능력같은 것을 이제 상상을 하죠. 福德하면 또 유루복(有漏福) 부처님이 버려버렸던거 그런 복덕을 또 이제 상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겠습니까? 부처님은 다 이미 버리고 그 너머의 참 아무리 아무리 퍼내써도 다함이 없는 그런 그 뭐라고 할까? 깨달음의 진리에 의한 가르침의 복 또 가르침의 보배 뭐 그런 것으로 우리가 이해해야겠죠.
其地及以菩提樹(기지급이보리수)가 그 땅과 그리고 보리수. 보리수도 본래 필발라수라고 하는데 菩提樹 깨달음의 나무, 이름도 바뀌어지고 그렇죠?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풀도 아무 잡풀이나 눈에 보이는대로, 그때 무슨 낫이 있었겠어요? 톱이 있었겠어요? 그냥 손으로 그 눈에 선하지요. 우리 부처님 성도하신 날이 곧 다가오고 있으니까.
지금 이제 음력으로 초하루 시작해가지고 지금이 한참 부처님이 바른 선정에 들어있을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제 상식적인 날짜로 계산하면, 초하루부터 납월 팔일까지잖아요. 납월 팔일이 성도재일(成道齋日)이지 않습니까? 불교의 최대 기념일. 최대 기념일이 깨달음의 날, 정각하신 날, 성도하신 날이라고 그렇게 아셔야 됩니다. 불교를 똑바로 아시는 분은 생일이 아니라 부처님이 성도하신 날이다. 누구없이 생일없는 사람 어디있습니까? 근데 성도하신 날은 없어. 우리도 다 생일은 다 있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사월 초파일로 생일을 가진 사람들도 무수히 많아. 이 땅에는, 뭐 태어나다 보면 우연히 그런 날 태어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불교가 정상적인 궤도에 오를려면은 이 납월 팔일 성도재일을 우리가 아주 참 성대하게 우리가 보내야합니다. 그래서 초하루부터 성도일까지 최소한도 이『화엄경』을 설하든지 1주일. 아니면 뭐 특별기도정진을 하던지. 그래서 선원에서는 용맹정진 기간이잖아요. 지금 다 용맹정진에 들어갔습니다. 그래 이제 마지막 부처님께서 1주일간 바른 선정에 들었다고해서 우리도 그러면 용맹정진해서 납월 팔일날 새벽에 저기 떠오르는 샛별, 모닝스타(morning star) 누가 법문할 때 그러더라구요. 새벽별을 보고 한 번 깨달아보자. 이래가지고 딱 그 시간에 죽비를 쳐서 방선을 합니다. 고렇게 형식은 고렇게 갖춰놨어요. 실속이 없어서 그렇지. 형식은 다 그렇게 갖춰놨습니다. 참 그런 것들도 우리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이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 눈에 보이는 아무렇게나 뭐 자란 옆에 풀, 나뭇가지 이런 것을 그냥 부처님의 그 손으로 뜯어가지고 그냥 돌 위에, 그 돌은 지금도 있잖아요. 그 돌 위에다 척 적당히 깔아놓고 그 위에 앉아있었는데, 아 그것도 무슨 풀을 뜯었는지 뭐 알 바가 없죠. 그런데 그걸 길상초(吉祥草)라 이렇게 또 이제 이름이 또 근사하게 붙여집니다.
그렇습니다. 참 한 분의 그 위대한 업적으로 말미암아서 모든 것이 그렇게 이제 바뀌는거죠. 그렇다고 뭐 풀이 금빛으로 변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대로 1주일지나니까 말라빠져서 쓸데도 없어져버렸는데, 그런데 그것은 영원히 길상초야. 참 불교에는 이런 의미부여가 참 돋보이죠.
遞發光音而演說(체발광음이연설)이로다 그 보리수가 빛과 소리를 서로 번갈아가면서, 發하면서 연설한다. 불법을 연설한다 이 말이여. 보리수가 거기서 빛도 번쩍거리고 소리도 나고 여기저기서, 요즘 또 그런거 기술이 좋으니까 그런 어떤 그 연출을 충분히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거.
그 이런 것들을 그 내가 가끔 이야기하지마는 그 저기 무석 그 대불(大佛) 거기에 그 도량에 가면은 범궁이라고 하는데, 궁전이 있는데 그 궁전 나는『화엄경』을 보면서 그 궁전이 늘 떠올라요. 그래서 거기에는 이러한『화엄경』의 이런 광경을 실질적으로 함 표현해봤습니다. 사실은 여기있는 것은 전부가 상징적인 것인데, 거기는 그대로 액면대로 받아들여가지고 우리가 오늘날 기술도 좋고 자재도 너~무 좋고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 한 번 여기서 한 번 표현해보자 해가지고 어마어마하게 궁전을 지어놨어요. 거기가면 이제 연극이 이제 한 번 나오는데, 부처님 생애가 쭈욱~ 이렇게 나오는데 그것도 참 볼만 합니다. 중앙홀에서 가만히 있다가 거기서 처억~ 이제 보리수나무가 올라오고 보리수나무 밑에 부처님이 척 앉아있는 그 상이 딱 올라와요. 그런 것들을 다 연출해놨습니다. 한 번 정말 한 번 볼만해요.
그런데『화엄경』을 우리가 알뜰히 공부한 사람이 거기 가서 그런걸 보면은 훨씬 값지게 보고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거기는 그 대리석, 제일 좋은 색깔의 대리석을 갖다가 많이 쓰는데 대리석보다 더 비싼 나무가 있대요. 비싼 나무를 갖다가 또 이제 건축해놓은 곳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④ 寶燈無量從空雨(보등무량종공우)하야 그랬습니다. 보배등불이 한량없는데 하늘로부터 비내리듯이 쏟아진다. 이거 역시『화엄경』입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져있는『화엄경』한 구절, 한 구절이에요. 이게 보배등불이지 무엇이 또 다른 보배등불이 있겠습니까? 등불 그 까짓거 아무리 밝아봤자 요즘 전기 저기 형광등만 못하는데, 그렇습니다. 보배등불이 한량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보배등불 하늘에서부터 쏟아진다.
寶王間錯爲嚴飾(보왕간착위엄식)하야 寶王 보석중에서도 제일 그 좋은거 그걸 王자를 써요. 제일 크고 아름답고 좋은 보석. 뭐 옥을 캐는데도 보니까 그 옥도 여러 질의 옥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뭐 싼 것은 버려버리고 좋은 옥만 이렇게 이제 캐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있다보니까 그래서 王자가 늘 붙어다닙니다. 어떨 때는 보리수나무도 시시한 보리수나무가 많은지 보리수왕(菩提樹王) 이렇게 이제 표현하기도하고 그렇습니다. 寶王이 사이사이에 잘 嚴飾 잘 꾸몄더라.
그래서 悉吐微妙演法音(실토미묘연법음) 여기 이렇게 해놨네요. 모두다 미묘하게 法音을 연출하더라. 모두 아름다운 소리를 토해서 법음을 연설하더라. 그런 뜻입니다. 진리의 소리가 법음이고 진리의 소리가 묘음이죠. 무슨 귀에 그렇게 아름답게 들린다고 그게 의미없이 들리는거 그게 무슨 뭐 묘음이라고 할게 없죠. 如是地神之所現(여시지신지소현)이라 이것은 땅을 관장하고, 땅을 맡은 신의 나타난, 나타낸 바더라.
그 다음에 ⑤ 寶地普現妙光雲(보지보현묘광운)하야 보배 땅에서 그 척박한 자갈밭, 모래밭을 전부 보석으로 뒤덮여있는 그런 땅이라고 합니다. 妙光雲을 아름다운 빛구름을 널리 나타내서. 부처님이 계시니까. 부처님이 성도한 곳이니까. 부처님이 성도하셔서 만인류를 다 구제하시고 만인류를 전부 죄업 많은 중생에서 부처로 승격시킨 그런 역사의 땅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죠. 寶炬焰明如電發(보거염명여전발)이어든 아주 보배횃불이 아주 밝게 밝게 비춰서 번갯불이 번쩍이는 듯 하다.
寶網遐張覆其上(보망하장부기상)하며 보석으로 그물을 짜는데 그 그물이 널~리 높이 그 위를 덮었고 보배로 된 가지가 아주 여러 가지로 뒤섞여서 펼쳐가지고 아름답게 장엄을 했더라.
⑥ 汝等普觀於此地(여등보관어차지)에 그대들이 이 땅을, 부처님이 성도하신 부다가야의 그 땅을, 그 땅을 널리 바라봄에 種種妙寶所莊嚴(종종묘보소장엄)하라 가지가지 아름다운 보배로 장엄한 바를 바라보라. 이 땅에 널리 바라보라 그런 말입니다.
顯示衆生諸業海(현시중생제업해)하야 중생들의 諸業海 중생들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업의 바다죠. 업이 뭐 한두 가지라야지. 너무 많고 많으니까 바다라. 業力難思議(업력난사의) 업의 힘은 참 불가사의하다. 도저히 뭐 우리가 옆에서 같이 살아봐도 그 업, 그 사람의 업은 도저히 어떻게 이해할 길이 없고 못 말리죠. 그런 업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많이 보는데, 그건 다른 사람 눈에 뜨인게 그렇지마는 내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더 백 배, 천 배, 만 배 더 많습니다. 그 뭐 개인의 업을 어떻게 옆에 사람이라고 해서 다 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業海에요. 중생의 業海를 현시해서
令彼了知眞法性(영피료지진법성)이로다 그들 중생들로 하여금 참다운 법의 성품을 보게한다. 알게한다. 了知하게 한다. 깨달아 알게 한다. 그렇습니다.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 諸法不動本來寂(제법부동본래적) 이 이치를 알게 한다. 眞法性을 알게하는도다.
⑦ 普遍十方一切佛(보변시방일체불)의 널리 두루두루 시방에 계시는 일체 모든 부처님의 所有圓滿菩提樹(소유원만보리수)가 석가모니부처님만 이야기하면 이건 섭섭하지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사람사람이 다 부처님이고 생명생명 하나하나가 다 부처님인데 그래서 여기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普遍十方一切佛이 所有圓滿菩提樹라 나는 감나무 밑에 앉아있어도 그 감나무는 전부 보리수야. 소나무 밑에 앉아있어도 소나무가 전부 보리수야. 일체 중생 떡갈나무 밑에 앉아있어도 전부 보리수야. 이제는 이제 그런 상황으로 이제 우리가 눈을 돌려야한다. 눈을 떠야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普遍十方一切佛의 所有圓滿菩提樹 이게 우리가 역사적인 부처님만을 그렇게 떠올리면은 그 이런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그래 이제『화엄경』에서 우리가 부처님이라고 하는 말이 무수히 나오는데 때로는 역사적인 부처님 또 법신불, 화신불 뭐 보신불 뭐 이런 등등 그리고 마음의 부처님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 또 그리고 두두물물, 일체 생명, 일체 사람이 다 부처님 그리고 有情無情(유정무정)이 皆有佛性(개유불성) 심지어 저 무정물까지도 일체 뭐 돌이나 자갈이나 바위나 흙이나 모래나 이런 것까지도 전부 부처님이다 라고 까지 하는 이 다양한 의미를 가진 부처님, 그 모든 것을 포함한 그 부처님이『화엄경』에서는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역사적인 부처님도 이야기했다가 때로는 마음의 부처를 이야기했다가 때로는 뭐 진리로서의 부처님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아주 정신 안차리면 아주 혼란스러워요. 또 혼란스럽게 이야기를 많이 했고 또『화엄경』에서도 그렇게 그냥 보면은 아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익숙하게 공부를 하다보면은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한 부처님을 마음에 그 안주하게 됩니다. 마음에 그런 자리를 잡게 되요. 그런 부처님이 있는 모든 보리수가
莫不皆現道場中(막불개현도량중)이라 전부 이 도량 중에 나타내지 아니함이 없어.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이 되는거요. 우리가 앉은 바로 이 문수선원 법당 바로 이 자리가 보리도량이고 보리수가 있는 곳이고 이러한 이치를 알면은 여기서 온 시방 일체 부처님이 다 이 자리에서 나타나고, 나타나있고 서로서로 그렇게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 그런 이치를 우리가 알면은 이러한 것이 그대로 이해가 되는거죠.
그래서 演說如來淸淨法(연설여래청정법)이라 여래의 청정한 복을 연설한다. 꼭 뭐 말로하는 말로 설하는 그 법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리고 뭐 그 사람이 하는 말은『화엄경』을 앞에 놓고 해도 모순덩어리야. 전~부가 엉터리로 설명하고 앞뒤가 안맞고 그래요. 그『화엄경』설법은 사실은 그게 아니잖아요. 溪聲便是廣長舌(계성변시광장설) 山色豈非淸淨身(산색기비청정신) 그게 이제『화엄경』을 여는 열쇠다 라고 늘 이제 그 말씀을 드리죠.『화엄경』을 이해하는 열쇠. 들리는 소리와 들리지 않는 소리가 전부 부처님의 청정한 법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도 법이다 이거여.
⑧ 隨諸衆生心所樂(수제중생심소락)하야 그런데 중생심의 즐겨하는 바를 따라서 그 땅이 普出妙音聲(보출묘음성)호대 그 땅이 능히 음성을 낸다. 그렇죠. 그대로가 사실은 완전무결한 법회의 장소고 그대로 법문이 흘러넘치는데 그러나 이제 중생심의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이제 우리가 우정 표현하자면은 이렇게 책을 찍고 법회시간을 마련해서 꾸역꾸역 와가지고 또 어떤 형식을 취해서 이렇게 듣는거에요. 요건 또 우리의 그 고런 입장이 있어. 그걸 이제 隨 衆生心所樂이라 중생심의 즐겨하는 바를 따라서.
그 뭐『화엄경』의 이치대로 있는 그대로가 다~ 법문이고 그대로 부처님이고,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 전부 부처님이고, 들리는 것이나 들리지 않는 것이 전부 부처님의 한량없는 설법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그 다음에 할 일이 없어져버려. 할 일이 없어져버려. 차원은 그게 맞는데 할 일이 없어져버려. 그 중생의 근기에 안맞는거죠. 그거는 또, 그래서 隨 衆生心所樂하야 중생들의 마음에, 중생들의 근기에 딱 맞춰가지고 또 거기에 맞춰서 하~ 뭐 산신기도가 좋다. 무슨 뭐 지장기도가 좋다. 뭐 아비라기도가 좋다. 뭐 108배가 좋다.
요즘 또 불교TV에서 저 BBS TV, BTN말고 BBS에서 차마고도를 방영을 해요. 옛날에 이제 KBS에서 그 방영했던 차마고도를 방영하는데 그게 또 참 그때 감명 깊게 보았는데 요즘 더 감동이 더 있어. 왜냐? 내가『화엄경』공부가 그만치 깊어졌으니까. 그런 안목으로 또 이제 보니까 그렇게 깊어지더라구요. 이 참 세 사람의 젊은 사람들이 이제 일보일배(一步一拜) 일보가 아니라 내가 걸어가는걸 다 세봤어. 세보니까 오보일배(五步一拜)라. (하하) 대개, 그 우리나라는 일보일배가 있고 삼보일배(三步一拜)가 있고 그 다음에 그 보니까 오보일배라. 내가 몇 번 셌어. (하하)‘저 사람들 몇 걸음 걷고 그 절하는가?’하고, 그 두 걸음을 한 걸음으로 치면은 삼보일배가 되고 하나, 둘 뭐 좌우 상관없이 계산하면 오보, 오육보에 일배를 하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그~ 그 그 내리막길이나 오르막길이나 얼음이나 눈이나 바위나 자갈이나 할 것없이 또 강을 건널 때는 여기서 미리 건너가서 한 서너 번 하는게 아니고 미리 한 댓 번 하고 강을 건너가. 또 담장이 있을 때는 또 못하잖아요. 또 미리하고 가는거야. 그렇게 아주 정성스럽게 성의있게 그렇게 하더라구요.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그 중생들 또 그 세계에서는 또 그 방법이 좋게 여겨지니까 그렇게 하는거여. 그게 중생심의 즐겨하는 바를 따라서 내놓은 방법이라. 절대적인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요. 이것만이 옳다 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 절대 불법에 대해서 이거다 저거다 고집할건 없어요. 그 자기의 그 주장, 자기의 고집, 자기의 견해 이것을 다 방하착(放下着)해버리는 날 비로소 이제 진정한 불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心所樂하야 其地普出妙音聲 아름다운 음성을 거기서 그 땅에서 다 낸다.
如佛座上所應演(여불좌상소응연)이라 거기에서 땅에서 나는 소리가 부처님이 법좌 위에서, 사자좌 위에서 우정 중생을 향해서 뭐 如是我聞(여시아문)하사오니 一時(일시)에 佛(불)이 하고 쭈욱 이제 경을 설하는 것하고 똑같더라 이 말이여. 신기하죠? 그러니까 이제 조금 이제『화엄경』고우해서 차원이 차츰차츰 높아지면은 그저 설거지하면서 덜그럭거리는 소리에서 부처님 설법소리를 들어야되고,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서 부처님 설법소리를 들어야되고, 또 혼자 심심해서 가만히 있어 아무 소리 없을 때 아무 소리 없는 소리를 또 부처님 설법소리로 들을 줄 아는 그런 차원까지 이제 돼야 합니다. 그 참 언제나 그렇게 될른지요?
一一法門(일일법문)이 咸具說(함구설)이로다 그랬잖아요. 일일법문이 다 거기에 구체적으로 다 갖춰져 설하고 있다. 부처님이 법상에 올라가서 하는 소리나 이 땅, 이 청소기, 내 방, 내가 거처하는 모든 곳에서 다~ 아름다운 법문의 소리를 내고 있다. 아주 거기다 내가 별표를 해놨네. 여덟 번째 노래 별표를 해놨습니다. 아주 참 뛰어납니다.
이 정말 이런 법문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이렇게 마음에 새겨보고 읊조려보고 또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읽어보면서 또 다시 음미하고 그럼 아주 속이 후련하고 시원해요. 아주 청량제입니다. 그야말로
⑨ 其地恒出妙香光(기지항출묘향광)하야 아름다운 향기광명을 항상 내서. 그 땅에서는 光中普演淸淨音(광중보연청정음)하니 그 광명 가운데서 묘한 향기광명 그랬어요. 그 광명 가운데서 청정한 소리를 널리 연출하니 若有衆生堪受法(약유중생감수법)이면 만약에 어떤 중생이 그 땅에서 늘 나오고 있는 소리. 우리가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 땅에서 항상 나오는 아주 아름답고 향기로운 그 광명, 그 아름다운 청정한 소리를 만약에 받아들인다면은, 거기서 법문의 소리를 만약에 어떤 중생이 堪受 능히 받아들인다면은
悉使得聞煩惱滅(실사득문번뇌멸)이로다 모두 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부 번뇌가 소멸하게 한다. 그렇습니다. 번뇌소멸이 바로 그 자리에서 이뤄진다.
⑩ 一切莊嚴悉圓滿(일체장엄실원만)하니 낱낱 장엄이 다 원만하니 假使億劫無能說(가사억겁무능설)이라 假使 億劫이라하더라도 다 능히 설명할 수가 없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엄인지 그렇습니다. 이미 있는 장엄이에요. 이미 있는 장엄, 어디에든지 다 있는 장엄입니다. 뭐 이것을 우정 범궁에서 연출해본다고 했지마는 참 거기도 감탄할 정도로 해놓긴 했어요. 그렇지만 이미 있는 자연현상, 자연스럽게 있는 것하고는 비교가 안되죠. 사실은, 거기에서 이미 있는 것에서 눈을 떠야 됩니다.
如來神力靡不周(여래신력미불주)일새 거기에 다 여래신력으로 그렇게 돼있다는 것입니다. 여래신력이 두루하지 아니함이 없을새. 是故(시고)로 其地皆嚴淨(기지개엄정)이로다 그런 까닭에 이 땅이, 이 땅이 다~ 청정하게 장엄돼있더라. 어디가? 우리가 앉은 이 곳이, 어디에 가던지 바로 그 곳이 뭐 여기서는 뭐 얼핏 저기 인도 부다가야 부처님이 성도하신 그 땅을 말하는 듯 하지마는 그게 아니라. 우리가 있는 이 땅, 이 장소 거기가 어디가 됐든지간에 전부 이제 보리수 밑이고 부다가야라고 하는 그런 차원이 바로『화엄경』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그 안목이 딱 서야 이『화엄경』을 공부하면은 혼란이 안생겨요. 허 그저 기분좋고 뭐 영 모순되는거 같으면서도 다 들어맞고, 그렇지 어떤 기준을 딱 세워놓고 듣기로 시작하면은 아주 혼란만 가중되지요.
(4) 大智日菩薩의 讚歎
爾時에 大智日勇猛慧菩薩摩訶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一切道場衆海하고 卽說頌言하사대
世尊凝睟處法堂하사 炳然照耀宮殿中하사대
隨諸衆生心所樂하사 其身普現十方土로다
如來宮殿不思議라 摩尼寶藏爲嚴飾하니
諸莊嚴具咸光耀어늘 佛坐其中特明顯이로다
摩尼爲柱種種色이요 眞金鈴鐸如雲布라
寶階四面列成行이요 門闥隨方咸洞啓로다
妙華繒綺莊嚴帳과 寶樹枝條共嚴飾하며
摩尼瓔珞四面垂어든 智海於中湛然坐로다
摩尼爲網妙香幢이요 光焰燈明若雲布며
覆以種種莊嚴具어든 超世正知於此坐로다
十方普現變化雲이여 其雲演說遍世間하야
一切衆生悉調伏하니 如是皆從佛宮現이로다
摩尼爲樹發妙華여 十方所有無能匹이라
三世國土莊嚴事가 莫不於中現其影이로다
處處皆有摩尼聚여 光焰熾然無量種이라
門牖隨方相間開하니 棟宇莊嚴極殊麗로다
如來宮殿不思議라 淸淨光明具衆相이어든
一切宮殿於中現하니 一一皆有如來座로다
如來宮殿無有邊이여 自然覺者處其中하시니
十方一切諸衆會가 莫不向佛而來集이로다
그 다음에 大智日菩薩(대지일보살)의 讚歎(찬탄)이라 그랬습니다. 그 때 大智日勇猛慧菩薩摩訶薩(대지일용맹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널리 일체 도량 대중들을, 대중바다를 널리 관찰하고 곧 게송을 설해 말씀하셨다.
① 世尊凝睟處法堂(세존응수처법당)하사 世尊이 凝睟 응시한다는 응(凝)자에다가 睟도 똑바로 바라보는 모양 수(睟)자입니다. 그래서 세존이 법당에서 딱~ 이렇게 눈동자가 요동하지도 아니하고 옆으로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한 곳을 향해서 턱 이렇게 凝睟 응시하고 있어. 炳然照耀宮殿中(병연조요궁전중)하사대 환~하게 궁전을, 환하게 부처님이 앉아서 계시기만해도 그 계신 그 모습이 궁전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그러면서 隨諸衆生心所樂(수제중생심소락)하사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즐겨하는 바를 따라서 其身普現十方土(기신보현시방토)로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기도 와 계시잖아요. 통도사같은데는 방석 위에 그냥 계셔. 형상없는 방석 위에 그냥 계셔. 그렇게 볼 줄 알아야 돼. 통도사 그 법당 다 기억하시죠? 방석만 있잖아요. 방석 위에 참~ 진짜 부처님이 계시는 것을 깨달아라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여기봐요. 其身普現十方土로다 시방국토 그 어딘들 나타나지 아니한게 없어. 전부 부처님 몸이야. 그러면 낱낱이 어떤 그야말로 석굴암부처님같이 거룩한 형상이 뭐 곳곳에 있다 또 그렇게 이해하면 안되는거여. 그러면 또 이제 도로 돌아가버려.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려.
그럼『화엄경』의 안목은 뭐냐? 그대로, 방석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불상은 불상대로 그대로 부처님이다. 석굴암 불상은 불상대로 그대로 부처님이다. 산천초목 두두물물 산하대지가 그대로 부처님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其身普現十方土라고 하는 것은, 만약에 뭐 석굴암부처님같은 부처님을 시방국토에서 다 나타내보인다 뭐 이렇게 생각하기로 하면은 그 몇 개를 만들어야 되겠어요? 억만 개를 만들어도 안되는거죠. 그렇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또 우리의 어떤 그 수준에 맞춰서 그~ 곳곳에 부처님 천불, 만불을 또 모시고 그런 것도 다 포함해서 우리가 불신으로 봐야죠. 隨諸衆生心所樂했으니까.
뭐 어디 부처님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우리집에는 이런 부처님 모실란다. 그 우리나라는 아무리 뭐 불심이 장한 집안이라 하더라도 집에 불단을 모시는 경우는 거의 없죠. 우리나라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그게 거의 일반화됐어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면은 아무리 시시한 불단이라도 불단 다~ 모시고 저기 저 현관에 들어가 오는 입구에는 반드시 지장보살 모시고 나갈 때 절하고 들어올 때 절하고, 또 건축 제일 중심에, 제일 좋은 자리에 불단을 모시잖아요.
그 불단 하나가, 내가 일부러 저기 저 거기 뭐고? 동본원사 맞은편에 가면은 불구상점이 여러 수백 개가 있어요. 서점 뭐 온갖 불상 거기에 불구상점이 있는데 거기에 불단만 아주 장엄하게 만들어놓고 파는 곳이 있어. 그 내가 제일 비싼거 물어봤어. 얼마냐? 하니까. 2억엔. 불단 하나가 2억엔이라. 여기 크기가 요 정도 넓이밖에 안돼. 근데 얼마나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했는지 2억엔. 20억원. 불단 하나만, 그래 이제 부자들은요 그 불단을 얼마나 근사한 불단을 그 집에다 모셨느냐 그게 그 집의 부를 자랑하는 것이 되고, 그 집의 격을 자랑하는 것이 되고 그래가지고 그 대대손손 물려주는거죠. 그걸, 대대손손 물려주는거라. 그것보다 더 비싼 것은 자기들 몇 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그것이 훨씬 더 비싸죠. 그건 값으로 매길 수가 없고, 요즘에 만든 것도 그렇게 20억원이나 하는 그런 그 불단이 있더라고, 직접 가서 내가 확인했으니까.
그렇습니다. 중생들의 마음에 즐겨하는 바를 따라서 또 거기에 이제 그런 나라에서는 그 불단을 그렇게 이제 참 화려하고 장엄하게 그렇게 모십니다. 그리고 문을 또 이렇게 닫아버리고 그리고 또 아침에 일어나서 문 열고 세수하고 탁 거기 예배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거기서부터 예배하고 그런 그 생활을 일반화돼있죠.
② 如來宮殿不思議(여래궁전부사의)라 여래의 궁전을 불가사의함이라.
|
첫댓글 _()()()_
隨諸衆生心所樂하사...고맙습니다. _()()()_
_()()()_
감사합니다._()()()_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一切莊嚴悉圓滿하니/ 낱낱 장엄이 다 원만하니 假使億劫無能說이라/ 다 능히 설명할 수가 없다
如來神力靡不周일새/ 여래신력이 두루하지 아니함이 없을새, 是故로 其地皆嚴淨이로다/그런 까닭에 이 땅이 다 청정하게 장엄돼 있더라. 고맙습니다_()()()_
_()()()_
고맙습니다._()()()_
一一法門(일일법문)이 咸具說(함구설)이로다 그랬잖아요.
일일법문이 다 거기에 구체적으로 다 갖춰져 설하고 있다.
부처님이 법상에 올라가서 하는 소리나
이 땅, 이 청소기, 내 방, 내가 거처하는 모든 곳에서 다~ 아름다운 법문의 소리를 내고 있다.
아주 거기다 내가 별표를 해놨네. 여덟 번째 노래 별표를 해놨습니다.
아주 참 뛰어납니다.
이 정말 이런 법문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이렇게 마음에 새겨보고 읊조려보고 또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읽어보면서 또 다시 음미하고 그럼 아주 속이 후련하고 시원해요. 아주 청량제입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
_()_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_()()()_
고맙습니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