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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德光人
바티칸 천장화에 꽃핀 율려(律呂)의 위대한 천지창조
미켈란젤로의 천부리즘을 세계화하는 것이 바로 한류(韓流)다
바티칸의 역사와 미켈란젤로의 문화유산
아침 햇살이 따사롭다. 오늘은 이 따사로운 아침햇살을 맞으며 바티칸을 찾아볼 예정이다. 바티칸(Vatican)은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성 베드로의 묘지가 있는 성지 순례지로서, 바로 이곳에는 인류의 위대한 역사와 인간의 숨은 정신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뛰어난 르네상스와 바로크양식의 각종 예술작품들과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바티칸(Vatican)은 1929년 2월 11일 파시즘(fascism)의 정치적인 기반을 얻고자 하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와, 그리고 교황청의 경제적인 기반을 다지고자하는 교황청의 뜻에 따라, 바로 교황청의 특사인 가스파리(Pietro Gasparri)추기경이 서로 무솔리니와 라테란(Lateran)조약을 체결함으로서 독립국으로 인정된 작은 나라이다. 즉 이탈리아와 교황청의 정경유착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 교황 피우스(Pio)2세와 무솔리니의 라테란 조약
이 라테란(Lateran)조약으로 이탈리아 정부는 바티칸에 대한 교황청의 주권을 인정하였고 가톨릭을 국교로 인정한다. 그리고 또한 이탈리아는 과거 교황령을 인수받는 조건으로 17억 5000만 리라(lira)를 교황청에 지불한다. 바로 이 자금은 오늘날까지도 바티칸의 주요한 경제적인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바티칸은 영토가 50㏊ 미만에다가 인구가 1000명도 안 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그러나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를 인쇄할 수 있는 인쇄능력을 갖추고 있어 인쇄업이 매우 발전한 나라이기도 하다. 물론 그 외에도 독자적으로 은행· 우체국· 방송국 등도 갖추고 있으며, 군대는 스위스 인으로 구성된 100명 정도의 수비대가 전통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로마의 이 작은 지역이 인류 유산에 미치는 중요성은 보잘것없는 영토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일시적이었지만,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 이후 줄곧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이 바티칸은 고대 로마 가톨릭의 중요한 고고학적인 유적지의 중심지이다. 또한 교황의 권력이 자리하고 있는 가톨릭의 성스러운 국가로서, 세계 기독교도들과 비(非)기독교도들의 매우 중요한 문화적 기준점들 중 하나로 작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바티칸은 교황청이 위치한 나라이다. 그리고 교황청의 교황은 바로 이곳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 ─聖堂)에서 열리는 추기경 회의에서 선출된다. 이 교황 선출의 비밀회의가 열리는 추기경 회의, 즉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릴 때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교황 선출이 진행 중임을 알리는 신호이고,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사실은 우리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티칸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바티칸의 찬란한 과거의 역사를 잘 대변하며, 그 뛰어난 가치를 지니는 건축적·예술적인 교회와 궁전들의 역사적인 소장품들일 것이다. 우리들은 이 역사적인 작품들은 통해 고대로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서유럽 문명의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역사적인 작품들 속에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프레스코화의 작품들이 있다. 프레스코(fresco)화는 건축물 벽화를 그릴 때 쓰는 화법으로, 바로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프레스코화란 간단히 말하면, 덜 마른 회반죽의 바탕위에 물에 갠 안료(顔料 .pigment)로 바탕에 채색을 하는 신선한 그림화법을 말하는 것이다.
바티칸의 건축적·예술적인 작품들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이 모든 작품들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다. 나는 바티칸을 대표로하는 작품들 중, 바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가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 천장(天障)에 그린 세계최대의 벽화인 천지창조(Genesis, 天地創造), 세상의 종말에 그리스도가 지상에 재림하여 세상의 시작부터의 전 인류를 심판하여 그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한 자를 구원하고, 그를 믿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은 자를 멸한다는 바로 그 교의(敎義)를 나타낸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最後─審判),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보며 자비의 베품을 하나님께 요청하는 피에타(Pieta)상, 그리고 이스라엘 제 2대 왕인 다비드를 대리석으로 조각한 다비드(David)상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나는 이러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작품 속에 들어난 그의 정신적인 세계를 분석하여, 우리 한민족의 고대역사와 연결시켜보려 한다. 과연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 속에 무엇을 담고자 한 것일까? 그리고 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우리민족의 오랜 상고문화와 서로 어떤 유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는 매우 중요하다. 만일 미켈란젤로의 작품 속에 우리민족의 숨결이 생생히 살아있다면, 이는 곧 세계 예술사를 다시 써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세계를 살펴보자.
▲ 바티칸의 문화유산을 살펴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수많은 인파
미켈란젤로의 작품 속에서 들어난 천부도(天符都)의 원리
바티칸의 해맑은 이른 아침 수많은 인파들이 나를 맞이한다. 나는 바티칸 성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수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바티칸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시스티나(Cappella Sistina, ─聖堂)성당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이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 식스토 4세가 성모 마리아에게 지어 바친 성당으로서, 건축가 조반니 데 도르티의 설계로 1473년 착공하여 1481년에 완성한 성당이다. 건물 자체는 깊이 40.5m, 너비 13.2m의 장당(長堂)을 높이 약 30m의 요면(凹面) 궁륭천장(穹窿天障)으로 덮고, 좌우에 높은 고창(高窓)을 배열한 평범한 것에 불과하나, 성당내부의 벽화와 천장화(天障畵)는 르네상스 회화의 보고(寶庫)임을 여실히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나는 이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림에 압도되는 감탄스러움과 함께 전혀 낮 설지 않는 느낌마저 든다.
▲ 교황 식스토 4세가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 바티칸시국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 ─聖堂)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프레스코(fresco)천장화와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最後─審判)이 그대로 나의 두 눈에 들어온다.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1512년까지 4년에 걸쳐 약 18미터의 높이에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를 설치하고 힘든 작업 끝에 성서와 관련된 343명의 인물들을 그려낸 바로 그 천장화이다. 그런데 이 천장화(天障畵)와 최후의 심판을 살펴보는 순간 나는 그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온 인류가 그토록 경외하는 이 위대한 작품은 바로 천부경의 기하학적 수리원리에 의해 그대로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천지창조!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라는 명령을 받고, 미켈란젤로가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천장(天障)에 그려낸 이 위대한 그림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민족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천부경(天符經)의 천부도(天符都)였던 것이다. 즉 우리민족의 창세기를 기록한 부도지(符都誌)와 천부경의 수리학적 그림이라는 것이다. 이때 나는 부도지에 나타난 율려(律呂)의 천지창조의 본음(本音)의 소리를 바로 이곳으로부터 듣게 된다.
▲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 벽화
이 천부도(天符都)의 기본원리는 우주를 이루는 천지인의 영원한 세계를 무너지지 않는 재생과 부활의 의미를 담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이러한 세계를 어떻게 고안해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민족의 위대한 천부사상에서 논하는 수리학적 개념에서 얻어낸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위대한 천장화를 그려내기 위해 몇 가지 수의 원리를 생각해 낸다. 그것은 바로 숫자 1·3·4·9·0이다. 바로 미켈란젤로는 이들 숫자의 의미를 천장화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때 숫자1은 물질계, 숫자3·4는 현상계, 숫자9는 완전한 부활의 재생계, 그리고 숫자 0은 하늘의 원천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의 세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미켈란젤로는 천장화(天障畵)를 그려내기 위해 천장의 수평면을 9등분하여 전체적으로 9가지 색으로만 채색(彩色)을 하는 통섭의 문화를 그려낸다. 시스티나(Cappella Sistina, ─聖堂)성당의 입구에서 수평면으로 아홉 개의 패널로 분류되었다가, 다시 출구에서 하나로 뭉치는 인류평화의 원활한 통섭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하늘의 원천계를 천부경의 기하학적 수리체계로 표현한 것이다. 이때 9등분한 수평면은 가로와 세로가 각기 다른 4각형의 장방형으로 만들어 3개씩 짝을 지어 그림을 그린 다음, 이 장방형사이에 8개의 3각형을 만들어 넣어 전체적으로 9개의 패널을 만들고, 그리고 그곳에 그림을 차례차례 1개씩 그려 넣는다. 이때 장방형의 4각형은 밑변4 높이 3의 기본개념으로 집어넣어, 천수의 중심 수(數)5가 들어나게 한다. 왜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이와 같은 개념으로 그려냈을까? 그것은 바로 영원한 재생과 부활을 의미하는 천부경의 천부사상을 그대로 그려내기 위해서이다. 천부경은 숫자 9의 의미를 각기 각각 가로와 세로로 배치하여 여기에 81자의 문자를 기록함으로서 영원한 우주의 재생원리를 설하고자 하는 경전이다. 과연 숫자 9가 이루는 세계는 영원한 재생의 의미를 나타낼까? 이제 숫자 9의 신비한 세계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 마법같은 재생의 완전수 9
숫자 9는 수학적으로 카프리카(Caprica)의 불변의 수로서 신비한 재생(再生)의 의미를 나타낸다. 숫자 9가 갖고 있는 이런 신비한 현상은 1949년 인도의 수학자인 D. R. 카프리카(D.R. Caprica)가 발견해낸다. 바로 우주의 모든 변화 속에서 작동하는 영원한 재생과 부활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신비한 원리는 바로 같은 숫자 하나로만 이뤄지지 않은 임의의 수를 정하고, 그리고 그 역(易)에 쓰인 숫자를 크기순으로 배열한 뒤 가장 큰 수에서 가장 작은 수를 반복적으로 빼서 만들어낸다. 그러면 그 수는 항상 9가 재생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零(0)을 그대로 이어 부치는 무한대(∞)의 의미로서, 숫자 9의 영원한 완성을 의미하는 뫼비우스(Moebius)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즉 숫자 9는 하늘의 완전수라는 것이다. 바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천부경(天符經)은 이를 기본으로 그려지고 기록된 것이다.
이 카프리카(Caprica)의 불변 수의 공식에 따르면 일단 0부터 9가지의 숫자 중 서로 다른 두 개의 숫자 a와b를 정한 후(단, a>b) 크기순으로 두 자리 숫자 10a+b와 10b+a를 만든다. 그리고 그 다음 이 둘 중 큰 수에서 작은 수를 빼고 그 숫자를 다시 10a+b, 10b+a에 대입한다. 이렇게 하면 a와 b에 어떠한 수를 넣어도 답이 항상 9가 나온다. 예를 들어 먼저 1과 8을 선택하면 두 수 18과 81을 만들 수 있고 그 차이는 63이다. 63에서 두 수 63과 36을 만들 수 있고, 그 차이는 27이다. 여기서 27과 72를 만들 수 있고, 그 차이는 45다. 여기서 만든 45와 54의 차이는 9가 된다는 것이다. 천부경에는 바로 이와 같은 재생의 의미가 들어가도록 숫자 9를 가로와 세로로 배열하여, 이의 거듭되는 제곱(9☓9=81)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천부경(天符經)의 의미는 바로 전 우주를 해석하는 수리학적인 원리로 그대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한자를 통해 살펴보아도 숫자 9의 의미를 금방 알아낼 수 있다. 한자(漢字)의 숫자 9(九)자는 비칠 별(丿)자와 새을(乙)의 합자를 나타낸다. 바로 비칠 별(丿)자는 하늘의 빛을 나타내고, 새을(乙)자는 그 빛이 온 세상에 널리 굽이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온 세상에 영원한 재생을 의미하는 하늘의 빛(丿)이 굽이쳐 완전한 세계(乙)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아래와 같은 천부사상의 철학적인 사유의 개념을 그림과 글로 표현한 것이다.
천(◯.한) – 원형 - 령(靈) – 공간 – 무형 – 무색- 원인자 – 환인-원천계
지(□.땅) - 방형 – 체(物) – 물질 -유형 – 흑색 – 상존자 – 웅녀-물질계
인(△.얼) - 각형 – 혼(魂) – 시간 -실재 – 회색 – 구도자 – 환웅-현상계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구상하는 예술적인 세계를 이처럼 천장화(天障畵)로 그려내고 그리고 그 결과로서 그는 최후의 심판을 받고자 한다. 이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最後─審判)은 세상의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재림하여 세상의 시작부터의 전 인류를 심판하여 그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한 자를 구원하고, 그리고 그를 믿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은 자를 반드시 멸한다는, 바로 그 교의(敎義)로서 심판한다는 그림이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통해 이처럼 자신이 꿈꾸고 그려왔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미켈란젤로는 이와 같은 원리로 그림을 그렸을까? 이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면밀히 살펴보기로 하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의 천장화(天障畵)를 살펴보면, 천장의 수평면을 9등분하여 9개의 장방형 패널을 만든 다음, 그 속에 3개씩 짝을 지어 그림을 그려나간다. 먼저 제단 쪽에서부터 첫째 짝의 노아이야기(3개: 노아의 제사, 대홍수, 술에 취한 노아)부터 그려 그려나가고, 이어서 둘째 짝의 아담과 이브의 창조(3개: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 추방으로 구성)를 그려나간다. 마지막으로 셋째 짝에 천지창조(3개: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달과 별의 창조, 바다와 육지의 분리로 구성)을 그려나간다. 이렇게 하여 1508년부터 시작한 장방형 9개의 그림 장면을 8개월 후에 모두 완성한다. 그리고 1510년부터, 이 9개의 그림 주변으로 새로운 그림들을 메워나가기 시작한다.
장방형 주변의 8개의 삼각형부분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선조들을 그리고, 또한 그 주변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7명, 이방의 예언자인 무녀 5명을 그린다. 그리고 천장 사각의 모서리에는 이스라엘을 구한 성인인 모세와 청동 뱀·하만의 징벌·유디트·다윗과 골리앗을 그리며, 문 쪽의 모서리에서 제단까지 이르는 모서리에는 그리스도의 선조인 이새·솔로몬·르호보암·아사·웃시야·히스가야·요시아·스룹바벨을 그린다. 이어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요나·예레미야·다니엘·에스겔·이사야·요엘·스가랴를 그리고 이방의 무녀로는 페르시아 무녀·에트리아 무녀·델포이 무녀·쿠마에 무녀·리비아 무녀 등을 그려낸다.
드디어 1512년 10월까지 이렇게 조수 1명두지 않고 혼자서 기적적으로 완성한 천장화(天障畵)는 그해 만성절 11월 1일 성대한 제막식을 하게 된다. 그는 천장화를 그리는데 있어서 프레임 등의 일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혼자서 작업을 했으며 등이 휘어지는 육체적인 격심한 고통마저 이겨낸다. 이처럼 미켈란젤로의 고통 속에 탄생한 천장화(天障畵)는 343명의 수많은 인물들이 제한된 틀 속에서 율동적으로 배치된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모습으로 잘 그려짐으로 인해서 후세에 모든 세계인들로부터 양과 질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찬사를 듣게 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 거대한 규모의 작업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23년간 그림 그리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으나, 결국 1534년 그는 다시 교황 바울로 3세의 강압적인 위촉으로 인하여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最後─審判, 1535~1541>이라는 성당 정면의 제단화(祭壇畵)마저 그리게 된다.
이 최후의 심판은 벽면전체를 상하 4층으로 나누어 7년에 걸쳐 위에서부터 천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심판의 장면, 묵시록의 7천사, 그리고 맨 아래층에는 지옥을 그려, 천장화(天障畵)의 고전적인 작풍과는 매우 다른 격렬한 터치형식으로 그림을 그려나간다. 과연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제단벽화를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천부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헬레니즘의 인본주의와 헤브라이즘의 신본주의에서 오는 정신적인 극심한 고통의 한 단면일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천장화에 그려진 작품 중 아담의 창조와 제단 벽화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미켈란젤로의 정신적인 고통의 예술세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 미켈란젤로의 대표작품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最後─審判)
아담의 창조와 최후의 심판에서 나타난 미켈란젤로의 정신세계
시스티나 성당의 대표적인 천장화(天障畵)의 그림은 바로 아담의 창조화이다. 이 그림을 천장의 9개의 장방형 그림 중 둘째 짝의 첫 번째 패널에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통해 신에 의해 창조된 남자에게 하느님이 팔을 펼쳐 그 손가락 끝을 대며 생명의 기(氣)를 불어넣은 그림을 그려 넣었다. 하지만 이 그림을 통해 미켈란젤로는 무슨 뜻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 그림에서 하나님은 옷을 걸치고 있으며, 그의 곁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인간의 뇌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인간 아담은 옷을 전부 벗고 순수한 알몸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우리들은 이 문제를 한번 쯤 고민해보아야만 한다. 아담의 창조에서 들어난 미켈란젤로의 정신적인 예술세계!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미켈란젤로는 이 아담의 창조를 통해 중세 서유럽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대한 자신의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1475-1564, 280*570)
옷을 걸치고 있는 하느님의 뇌, 그것은 바로 각종 음모로 가득 찬 신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며, 교황청의 모든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하다. 하지만 아담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순수한 자연적인 인간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인간이 바로 신(神)이며, 신은 곧 타락한 인간보다도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하느님이 손가락 끝으로 부여하는 생명의 기를, 역시 손가락 끝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가 중세유럽사회에서 저질렀던 탐욕의 교권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신본주의의 헤브라이즘에 대한 헬레니즘의 강한 도전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인간성 회복을 외치는 르네상스부흥운동의 고단한 외침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미켈란젤로는 아담의 창조를 통해 신의 복잡한 지혜를 거부하며, 한없이 순수한 자연적인 인간성 회복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성 회복에 대한 그의 외침은 그가 조각한 벌거벗은 다비드(David)상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어 나타난다.
▲ 성 바르톨로메오가 한 손으로 들고있는 미켈란젤로의 벗겨진 몸
그런데도 교황청은 미켈란젤로의 이러한 깊은 속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천장화(天障畵)를 그린 23년 뒤 <최후의 심판, 1535~1541>마저 그에게 다시 그려줄 것을 명령한다. 이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그림에 담아 그려낸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바로 이 최후의 심판을 통해 자기 몸의 피부를 칼로 동물 껍질 벗기듯 추하게 그려 나간다. 이는 교황청에 대한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을 직접적으로 들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추하게 벗겨진 미켈란젤로 자신의 몸을 예수 그리스도가 임명한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성 바르톨로메오(아람어: ברתולומאוס הקדוש, 그리스어:Βαρθολομαίος)에게 들고 있게 그려낸다. 미켈란젤로는 왜 성 바르톨로메오에게 자신의 벗겨진 몸 가죽을 들고 있게 한 것일까? 여기에는 바로 미켈란젤로가 교황청을 바로 보는 정신적인 시각이 잘 들어있다. 그런데 그것을 무엇일까? 그것을 바로 성 바르톨로매오 축일 학살사건에 있다. 이 학살사건의 문제는 이 성 바르톨로매오를 축일하는 1572년 8월 24일부터 10월까지의 축일행사에서 가톨릭신도들에 의한 약 1만 여 명에 달하는 개신교신도들의 학살(虐殺)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성 바르톨로매오 축일 학살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간의 대립과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한 카트린의 우려가 폭발하여 일어난 바로 그 만행 사건이다.
미켈란젤로는 바로 이 천주교의 학살만행사건을 자신의 삶에 빗대어 가톨릭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그려낸 것이다. 이는 바로 가톨릭 신본주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르네상스 인문주의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天障畵)와 최후의 심판을 통해 새로운 휴머니즘의 세상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런데 이처럼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몸 가죽마저 벗겨내는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추구하고자 했던, 그 최고봉의 인문주의적인 사회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자연주의적인 최고의 인문주의의 보고(寶庫)는 과연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초기 로마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명을 승화시킨 르네상스 문명을 말하는 것이고, 이러한 르네상스 문명은 바로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최고로 추구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초기 헬레니즘 문명에 강한 영향을 미친 사상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민족의 위대한 천부사상이다. 미켈란젤로는 이미 고대사를 연구하면서, 이를 모두 알고 시스티나 성당 벽화에 이처럼 그림으로 재현한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정신세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하여, 우리민족의 위대한 창세기인 부도지의 천지창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부도지(符都誌)가 말하는 율려(律呂)의 천지창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하고 의미 깊은 창세기록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징심록(澄心錄)의 부도지(符都誌)이다. 이 징심록(澄心錄)은 신라 제18대 실성왕(재위402~417)때 박혁거세 거서간의 9세손이며, 파사이사금의 5세손으로, 영해 박씨(寧海朴氏)의 시조이기도 한 박제상(朴堤上, 363~418년)이 저술한 고대(古代)의 선가서(仙家書)로서, 바로 박제상이 신라 보문전 태학사로 재직할 때, 열람한 자료들과 그리고 가문(家門)에서 오랜 세월동안 전해져 내려오던 각종 비서(秘書)들을 종합하여 저술한 것으로서 아래와 같이 총 3교(敎) 15지(誌)로 구성되어 있다. 부도지(符都誌)는 이와 같이 징심록(澄心錄)의 상교(上敎) 중 제1지(誌)에 전해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우리민족의 역사서로서 한인, 한웅, 단군의 역사와 더불어 신라 초기의 역사기록 등이 적혀있다. 또한 부도지(符都誌)는 박제상의 후손인 박금(朴錦)이 1953년 부도지의 내용을 세상에 공표함으로써 드디어 일반에 공개하게 되었고, 1986년 번역본이 출간되어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상교 - 부도지(符都誌), 음신지(音信誌), 역시지(曆時誌), 천웅지(天雄誌), 성신지(星辰誌)
▪중교 - 사해지(四海誌), 계불지(禊祓誌), 물명지(物名誌), 가악지(歌樂誌), 의약지(醫藥誌)
▪하교 - 농상지(農桑誌), 도인지(陶人誌), 그리고 나머지 3지는 알 수 없다.
지구촌의 많은 민족들은 그들 나름대로 개국신화를 갖고 있지만, 창조 신화를 가진 민족은 유대민족과 우리의 한민족을 포함해 몇 안 된다. 박제상이 쓴 이 부도지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세계(世界)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팔려(八呂·8개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로부터 창조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조들은 이 창조를 위한 본질이 바로 율려(律呂 · 악기와 조율, 혹은 우주의 근본 진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즉 부도지에 의하면 천지창조의 주인공이 바로 율려(律呂)라는 것이다. 이 율려(律呂)의 천지창조의 내용을 간단히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율려(律呂)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나타났고, 우주의 어머니인 마고(麻姑)를 잉태한다. 그리고 마고는 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도 없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고,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는다. 율려가 또다시 부활하여 지상에 육지와 바다가 만들어낸다.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루더니 풀과 나무, 새와 짐승들이 태어난다. 마고는 이 율려(律呂)를 타고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으며, 천인과 천녀들은 하늘의 본음(本音)으로 만물을 다스린다.
네 천인과 네 천녀는 마고의 뜻에 따라 서로 결혼하여 각각 3남 3녀를 낳는다. 그리고 그들이 또 다시 서로 결혼하여 몇 대를 지나는 사이 1만 2천명의 무리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상의 가장 높은 곳에 '마고성(麻姑城)'이라는 이상적인 삶의 공동체(符都)를 이루며 산다. 그들은 품성이 조화롭고 깨끗하며, 땅에서 나오는 지유(地乳)를 먹고살아 혈기가 매우 맑다. 그들의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하늘의 소리를 듣고 율려(律呂)를 체득하여 자신이 바로 우주와 하나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이처럼 우주의 원리인 율려(律呂)에 의존하여 살았기 때문에, 유한한 육체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수명을 누린다. 그들은 만물에 깃들인 마음의 본체를 읽는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았으며, 그 마음의 본체를 운용하여 소리를 내지 않고도 말을 했고, 마음먹은 곳은 어디든지 갔으며, 형상이 없이도 행동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우리들은 이 율려(律呂)의 천지창조를 통해 몇 가지 특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율려(律呂)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바로 이 율려는 천지창조를 만들어내는 모든 실체이지만, 서구 사회의 창조론처럼 신(神)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는 특이점이다. 이처럼 부도지에 묘사된 율려(律呂)는 바로 우주 그 자체로서, 우주의 본질인 기(氣)이기도 하며, 그리고 그 기(氣)가 움직이는 이(理)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즉 율려(律呂)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우주 창조자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주창조를 바로 보는 우리선조들의 생각이 얼마나 현실적이며 자연적이고 과학적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둘째로, 율려(律呂)에 있어서 우주창조의 수리학적인 분화방식이다. 율려(律呂)는 이기일원론의 이(理)이면서 기(氣)이기도 하다. 이 이기(理氣)가 바로 하늘이요 우주요 율려인 것이다. 이 이기일원론의 에너지(天)가 뭉치면 별(地)이 되고 사람(人)이 된다. 최초의 인간 마고는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즉 천지인(天地人)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마고는 선천인 남자와 후천인 여자를 배우자 없이 음양으로 탄생시킨다. 이는 곧 기(氣)의 분화방식이 짝수로 분열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다시 선천인 남자와 후천인 여자는 역시 배우자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고, 궁희와 소희는 역시 배우자 없이 각기 4명의 천녀와 천인을 낳는다. 그리고 이들은 또 다시 3남 3녀를 낳아 짝수 배열의 탄생을 만들어낸다. 또한 이들은 최종적으로 1만 2천의 무리를 지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麻姑城)에 삶의 터전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율려(律呂)에서 말하는 인간창조의 수리학은 율려(1), 천지인(3), 선천남과 선천여(2), 궁희와 소희의 자손(각기 4명의 천녀와 천인)으로 이어지는 천부경의 수리학과 같은 분화방식을 띤다. 즉 수리학적인 분화과정이 1, 2, 4, 6, 12의 형태로 분화된다. 이때 인간창조행위에 있어서 ‘배우자 없음’이란 용어는 철저히 대자연의 이기일원론의 자연법칙으로서만 창조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氣)의 산소, 수(水)의 물, 화(火)의 불, 토(土)의 흙이라는 4대 생명의 양식을 이들에게 제공해준다. 율려의 창조론은 근본적으로 서구의 창조론과는 그 질이 다르다. 전체적으로 율려(律呂)의 인간창조과정은 현대 과학의 체세포 분화과정과 물리학의 물질분화과정과 그대로 일치함을 보는 듯하다.
셋째로, 서구의 종교적인 창조론과 부도지에서의 율려창조론은 근본적으로 그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구의 창조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해나간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곧 언어(言語)이며, 언어는 지적으로 생각하는 그 지혜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적인 지혜는 인위적이며, 가식적인 창조론을 말함이다. 즉 서구의 창조론은 생각을 통한 이성적인 창조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율려(律呂)의 창조론은 율려(律呂)을 표현하기 위한 팔려(八呂)의 악기에서 나오는 음악과 함께 모든 창조행위가 이루어진다. 이 음악(音樂)이라는 것은 자연적인 순수한인간의 감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감성의 음악은 우주음(宇宙音)이 내는 본질적인 소리이기도 하다. 즉 율려(律呂)는 순수한 인간성을 되찾고자 하는 르네상스문화부흥운동의 정신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들은 율려(律呂)의 천지창조와 서구 유럽의 종교적인 천지창조론에서 나타나듯이 미켈란젤로가 왜 심리적인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순수자연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르네상스부흥운동을 그토록 그의 화폭에 담으려 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여야만 한다. 우리들은 이제 동서(東西)문명의 천지창조론을 놓고 삶의 바른 선택을 하여야만 한다. 이 선택에 의해서 우리들은 최후의 심판을 아마 받을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을 하여야만 한다. 그 선택의 문제점들은 생각해보기로 하자.
천지창조론과 최후의 심판을 통한 우리의 위대한 선택
천지창조! 이 4자는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이 천지창조론에 대한 규명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니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이처럼 풀려지지 않는 이와 같은 천지창조론에 대한 규명작업에 반드시 나서야만 한다. 만일 인류가 종교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이와 같은 규명작업에 게을리 한다면, 근세 서구문명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부흥 운동이 그 빛을 바라고 말 것이다. 아마도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통해, 율려(律呂)의 천지창조론에 대한 부활을 르네상스부흥운동으로 알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율려(律呂)의 천지창조론은 상고시대 서양의 신비철학이며, 그 종교적인 뿌리가 되는‘ 카발라’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카발라(Kabblah)라는 말은 ‘입에서 귀로 받는다.’는 의미로 구전으로 이루어진 고대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 카발라는 배달국 환웅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민족의 카발리즘은 상고시대 구전을 타고 초기 그리스·로마 헬레니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러한 카발리즘은 서구 유럽사회에서 헤브라이즘의 신본주의 사상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변질되기 시작한다.
율려(律呂)의 천지창조론에서 보듯이 우리민족의 천지창조론은 철저히 자연주의적인 헬레니즘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연주의적인 헬레니즘의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간 것이 바로 천부경이다. 천부경(天符經)은 바로 세계 최초로 씌여진 카발라경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카발라경은 유대민족의 비밀경전이기도 한 것이다. 천부경은 바로 서구 유럽문명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원 뿌리이며, 르네상스문화부흥운동의 새로운 기치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민족의 세계화에 나서야만 한다. 이미 우리민족의 위대한 민족정신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으로 잘 그려져 있다.
우리들은 정말로 미켈란젤로가 인류문명사에 무엇을 남기고자 한 지를 바로 인식해야만 한다. 미켈란젤로는 바로 자신의 그림을 통해 천부경의 위대한 인류애와 세계화정신을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말한다. 인류여 모두 자연으로 돌아오라! 모두 순수한 인간정신으로 돌아오라! 그리고 율려(律呂)의 천지창조 정신으로 돌아오라! 그렇지 않으면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미켈란젤로가 그의 그림을 통해 최후로 남기고자 한 말인지도 모른다. 나는 미켈란젤로를 생각하며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떠나 다음 목적지로 가면서 먼발치로 교황청의 화려함이 주는 그 상징성 속에서 미켈란젤로의 외로운 고독함을 그려본다. 그리고 그를 통해 다시 새롭게 부활하는 우리 한민족의 위대함을 또 다시 그려본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만 할 것인가? 그 선택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깊은 가슴 속에서만 그대로 그려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시대 진정한 한류의 정신문화가 될 것이다. 이 한류(韓流)란 바로 천부사상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이미 근세 르네상스문명을 통해 우리민족의 이 위대한 한류정신을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벽화에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